[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나의 캐릭터들 중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A 모두 사랑한다는 빤한 답변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꼭 하나만 꼽자면 ‘핍’이라는 이름을 가진 토끼라고 할 수 있겠다. ‘네가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핍을 처음 그렸기 때문이다. 그때 했던 낙서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데, 다른 캐릭터들은 언제 그렸는지도 모르게 탄생했지만 핍은 태생이 분명하기에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핍으로 작업을 할 때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마치 정규 앨범을 준비하는 가수의 마음과 같다고 할까. 게다가 요즘 정말 나를 조금씩 구원하는 중이기도 하다.
<Sartre> ⓒ 윤원보, 2019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아. 나를 제외하고는”
<Prozac: Monster> ⓒ 윤원보, 2022 “나와 나와의 틈”
Q 가장 좋아하는 색의 배합은?
A 짙은 파란색과 채도가 낮은 빨간색의 조합이다. 물론 배합 비율이 잘 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다른 컵라면을 먹어볼까 하다가도 결국 매번 짜장라면을 선택하게 되는데, 나에겐 그 조합이 짜장라면처럼 훌륭하다.
Q 무언가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시작된다고 생각하는가.
A 존 버거의 책에서 읽은 그 구절이 생각난다. 타인에 의해서다. 타인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는 만큼 배제할 수 없는 존재 아닌가. 그렇기에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은 점점 타인과 공감대를 만들고 연대의 마음으로 번져간다. 그러면 더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난다. 그러니 결국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나로부터가 아닌 당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Q ‘창작’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어쩔 수 없는 받아쓰기’일지도 모르겠다. 창작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림을 안 그릴 수 없어 그리고 있는데, 영감이라는 것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에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안 할 거야?’ 그럼 나는 그것을 받아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창작이다.
Q 여러 차례의 전시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최악의 하루는?
A 꽤 오래된 전시였는데, 단체전이었다. 전시라는 분위기를 잘 모르던 때라 아는 작가가 없는 그곳에서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주치는 작가들과 대화를 하는데 뭐랄까, 대부분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이었다. 서로의 그림에 대해 칭찬만 늘어놓는 분위기가 매우 따분하고 조금은 가식적인 듯해 전시장을 빨리 나오고 싶었다. 전시의 속성상 그런 부분들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작품을 보며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을 거라 생각한 나에겐 도망치고 싶은 자리였다.
Q 화가를 다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은?
A 존 버거의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가 꼭 그렇다. 예술에 대한 이해, 화가로서 지녀야 할 신념과 태도를 야노스 라빈이라는 가상의 화가가 쓴 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존 버거는 소외된 자들이나 응당 지녀야 할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예술가였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 책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은 ‘타협’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존 버거의 격려이자 응원으로도 읽었다. 그래서 이 책이 떠오르지 않았나 싶다.
Q 예술적 영감을 받은 책 세 권을 꼽아 달라.
A 《루시언 프로이드》(조디 그레이그):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자 20세기 뛰어난 사실주의 구상화가 루시언 프로이드의 평전이다. 사생활의 측면에서 그리 본받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구상화에 대한 그의 의지와 그것이 표현된 그의 작품들이 매우 강렬했다. 그림에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속 깊은 이성 친구》(장자크 상페):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작가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그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데, 그 형식은 상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위트 있게 그리려고 노력하지만(성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반면에 ‘속 깊은’ 그림을 지향한다. 그림에 글을 더하니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듯도 하다.
《초상들》(존 버거, 톰 오버턴 공저): 해석에 대한 강박을 없애준 책이다. 이를테면 책이나 영화 혹은 어떤 종류의 매체든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데, 이 책이 나를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나에겐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Q 내 인생의 첫 책은?
A 초등학생 때 엄마와 같이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서점엘 들렀다. 왜 서점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고, 더군다나 왜 작고 하얀 영어책을 골랐는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카툰으로 된 영어 교재였는데 아마 만화여서 관심이 가지 않았나 싶다. 그 책은 지금까지 내 서재 한 켠에 잘 꽂혀 있다. 영어는 여전히 잘 하지 못한다.
<Prozac: Happy pill> ⓒ 윤원보, 2022 “이런 기분 너는 알지 못할 거야”
Q 2022년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책은 무엇인가.
A 《바바리안 데이즈》(윌리엄 피네건)다. 예전에 읽은 책인데 올해 또 읽어 선정하게 되었다. 어떤 책들은 표지만으로도 굉장한 매력을 뿜어내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 회사에서 도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 강렬함에 매료되었고, 그날 퇴근시간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매장에서 책을 구입하고 나서는 마치 팬 사인회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무언가에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파도에 ‘미친’ 서퍼,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서핑은 저자에게 삶을 관통하는 것이며, 하나의 명상과도 같고 거의 숭배에 가까운 대상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파도를 타는 열정적인 사랑과 도전을 통해 인생의 ‘스웰(swell)’을 감당하는 격렬한 낭만이 펼쳐진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나도 저렇게 열렬히 그림을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Q 내가 생각하는 책의 의미란?
A 책의 의미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관심사의 폭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고스톱이나 게임과 마찬가지로 책도 하나의 유희라고 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책을 숭상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역정을 낼지도 모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책을 보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놔야 즐길 수 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다른 책을 읽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아도 슬슬 넘기면서 읽는다. 나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그러다보면 점점 독서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욱 만끽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책의 의미는 ‘추앙’보다는 ‘유희’에 있다.
Q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자신의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것.
Q 동시대의 생존 인물 중 가장 부러운 사람은 누구인가.
A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포인트가드 스테픈 커리다. 커리는 경기 내내 다양한 제스처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잘 되지 않을 때 실망하는 표정을 짓거나, 경기가 잘 풀릴 때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저 선수는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으니 정말 부러울 수밖에.
Q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가.
A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 우리의 기원과 미래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Q 죽기 전에 《월간 윤원보》 구독자에게 딱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남기겠는가.
A ‘다음 호도 기대해주세요.’ 가능하면 떠날 때 위트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Q ‘나의 서재’에 대해 짧게 코멘트를 한다면?
A 모든 벽을 책으로 채우겠다는 내 욕망의 결실이다. 책을 두서없이 꽂아놓는다. 그래야 책을 찾을 때 서재를 한 번이라도 더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의 낮은 책장은 나의 애정과 약간의 허세가 응집된 도서를 모아놓은 대외용 코너다.
서재 사진 ⓒ 윤원보
윤원보가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자본주의 시대에서도 옳은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최갑수)
방향 없이 번져가는 잉크와 같은 감정에 언어를 부여해준다.
《인간의 조건》(한승태)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라. 내가 한 일을. 그리고 당신이 해온 일들을.
《행운아》(존 버거)
궁핍하고 아프고 외롭다고 해서 삶의 다른 모양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왜 당신은 내가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져준다.
《소유나 존재냐》(에리히 프롬)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소유욕은 어째서일까. 아직 기회는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윤원보_도서관 사서, 화가
도서관 사서. 자신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날마다 고통을 받으며 즐겁게 책을 찾고 선별하고 구입하는 일을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 어떤 것이 본업이냐고 물으면 “둘 다 본업인데요”라고 대답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구독자를 포함해 아무도 모르지만 알고 보면 교양잡지인 《월간 윤원보》를 몰래 발행하고 있다. 철학을 전공했으나 모르는 건 당신과 매한가지다.
Q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음식은?A 몇 살 때인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보리차에 말은 밥 한 숟갈에 장조림 한 조각을 얹어 먹여주신 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음식이다. 구수한 보리차의 향과 간장의 짭조름함이 기억난다. Q 음식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A 중·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도시락의 밥을 넣는 칸에 반찬을, 반찬 칸에 밥을 싸주셨다. 이런 어머니 덕분에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4월호에서는 최평순 환경·생태 전문 PD를 소개한다. Q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고 있던 대학생 때 24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텀블러 라이프〉를 만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2월호에서는 대한성공회 사제이며 ‘영화 읽어주는 신부’로 불리는 박태식 신부를 소개한다. Q 첫 책을 출간할 때의 마음을 기억하나.A 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