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도서관과 부모교육] 할머니와 손녀의 어린이 도서관 탐방기 -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손녀와 손잡고 도서관 가기
조숙희_중앙대 영문학과 교수
2022-09-2609:00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손녀와 함께 그림책을 천천히 넘기며 들여다보는 도서관에서의 하루,
도서관은 손녀를 무한한 지식의 신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손녀와 손잡고 도서관 가기는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손주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보는 게 나의 버킷리스트 항목 중 하나였다. 첫 손녀가 기특하게도 책을 좋아하여 늘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손녀가 30개월이 되었을 때 드디어 내 소원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여러 국공립 도서관에서 관장을 역임한 지인께서 친절하게도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어린이를 위한 구립도서관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먼저 손녀에게 도서관이라는 곳에 가면 그림책이 엄청 많아서 마음껏 골라서 볼 수 있으며, 거기에 가려면 작은 초록색 버스를 타야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손녀는 “갈래, 할머니, 나 도서관에 갈래. 버스 타고 갈래” 하면서 즐겁게 집을 나섰다. 드디어 마을버스를 타고 어린이 도서관에 도착, 도서관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은 뒤 의기양양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도서관 실내로 들어가기 위해서 신을 벗기는 순간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손녀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찔끔찔끔 눈물을 짜더니, 급기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손녀 왈, “할머니, 도서관에 간다면서······ 여기는 병원이잖아?” 도서관 안쪽 코너의 카운터에 사서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손녀의 눈에는 병원의 간호사 선생님이 계시는 공간으로 보였나보다.
“아니야, 여기는 병원이 아니고 도서관이야.”
“정말 병원이 아니야? 도서관이 어디 있어? 어디?”
이렇게 물어보며 계속 우는 손녀 때문에 조용하던 도서관이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사서 선생님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볼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라니. 나는 사서 선생님들이 ‘아이구, 병원과 도서관도 구별 못 하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다니······ 말로만 듣던 극성 헬리콥터 할머니인가보다’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난감했다. 아, 정말 내가 너무 극성스러웠나, 자책감이 밀려왔다.
“할머니, 도서관에 간다면서······ 여기는 병원이잖아!”
다행스럽게도, 손녀에게 그곳이 병원이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걸 납득시킨 뒤 도서관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사태는 곧 진정되었다. 마음이 풀린 손녀는 서가를 조심조심 돌아다니며 책들을 구경하고, 만져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책들을 꺼내달라고 했다. 어린이를 위한 서가에 책이 느슨하게 꽂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녀의 낙점을 받은 책들을 꺼내들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코지 코너로 가서 작은 소리로 읽어주었다. 손녀는 특히 토끼가 물감이 가득 든 여러 개의 통을 들락날락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는 내용을 좋아했다.
“할머니, 이 책 너무 재미있어요. 다시 읽어주세요.”
진지하게 책을 들여다보는 손녀의 모습이 신기한 듯,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들이 오며가며 우리 손녀를 쳐다보았다. 한 시간 반쯤 지난 뒤 이제 집에 가자고 하니, 손녀가 미처 못 읽은 책들을 다 들고 가자고 한다. 다섯 권만 빌릴 수 있다고 했더니 한참을 고르고 또 고른 후 일, 이, 삼, 사, 오를 세어 나에게 주었다. 그 책들을 빌려 들고 도서관을 나섬으로써 손주랑 도서관에 가보는 첫 체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이후 반여 년이 흐르는 동안 어린이 도서관을 다시 가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용기를 내어 말로만 듣던 유명 중고 마켓 사이트에 가입, 여러 종류의 동화책을 직접 구입했기 때문이다. 구태여 도서관을 가지 않더라도 상당 기간 동안 손녀가 소화할 수 있는 책들을 골고루 싼 값에 구할 수 있어서,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귀동냥을 해가며, 요즘 엄마들이 많이 읽힌다는 생활동화, 초보 영어 동화,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동화 등등 다양한 책들을 구하는 일도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가 음원펜을 혼자 조작할 줄 알게 되면 신세계가 열린대요”
그 덕분에 알게 된 요즘의 동화책 트렌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음원펜’의 위용이다. 손녀가 백일 되던 때쯤 꼭 있어야 한다고 며느리가 귀띔해주어서 첫걸음용 영어 동화책 전집과 요즘 유아들의 필독서라는 생활동화 전집을 사준 적이 있다. 상당히 비쌌던 것 같은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쁜 손녀가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니 금액의 과소는 조금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들의 공통점이 음원펜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지금까지 음원펜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콘텐츠가 탑재된 음원펜을 동화책 페이지에 갖다 대면 책의 내용이 음성으로 재생되는 것이었는데, 정말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영어 동화책을 예로 들자면, 매 페이지마다 적혀 있는 두세 마디의 영어 문장이나 구절이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재생되는 것이다. 생전 처음 영어를 접해보는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짧은 단어 위주로 되어 있는데, 아주 명료한 원어민의 발음으로 재생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엄마들이 어정쩡하고 서툰 발음으로 영어를 읽어주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장점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머님, 제 친구가요, 아이가 음원펜을 혼자 조작할 줄 알게 되면 신세계가 열린대요.”
며느리가 해준 말의 뜻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업무에 시달리고, 육아에 지치고, 가사노동까지 하느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여유나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젊은 엄마들에게는 아이가 혼자 펜을 대기만 하면 알아서 큰 소리로 읽어주는 음원펜이 정말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일상에서 늘 처리해야 하는 힘든 일들을 척척 해주는 우렁각시 같은 존재는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아니, 여성)의 삶을 가장 획기적으로 바꾼 문명의 이기는 자동차도 아니고, 컴퓨터도 아니고, 인공지능도 아니고, 바로 세탁기라는 소신을 한 번도 바꾸어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음원펜에 감탄하는 엄마들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이와 함께 앉아 책장을 넘기며 말품을 파는 우렁각시 할머니가 되어볼까?
그런데 이처럼 음원펜이 가지는 엄청난 이점에도 불구하고, 음원펜을 활용함으로써 놓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커 보이는 것은 구닥다리 할머니의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아이가 영어 단어 두세 마디 듣고 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또 음원펜을 누르는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다양한 콘텐츠들로 가득 차 있는 예쁜 그림들의 존재감이 무력화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영어 동화책뿐 아니라 우리말로 쓰인 동화책들을 음원펜으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령 커다란 페이지에 꽉 채워진 어린이의 침실 그림에서, 조그만 어항 같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반려곤충 장수풍뎅이(아님 하늘소일까?), 벽에 걸린 가족사진, 바닥에 널린 갖가지 블록 장난감 등등은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아이들의 인지능력을 향상시켜줄 훌륭한 그림 교재다. 단지 그 교재는 완벽한 발음으로 내용을 읽어주는 음원펜의 활용과 더불어, 엄마가 아이와 함께 앉아서 책장을 넘기며 말품을 파는 과정이 수반될 때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아이 혼자 책을 읽게 하고 엄마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신세계와 아이들에게도 흥미진진한 배움의 신세계가 동시에 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깔끔하고 만족스럽게 일거양득을 누리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와 화가가 공들여 만든 동화책이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음원펜이 놓치는 부분들을 열심히 보완해주는 우렁각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말품뿐 아니라 발품도 열심히 팔아서 손녀와 함께 어린이 도서관을 자주 다녀야겠다.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책들과 친해지는 기회를 주는 것이 손녀를 무한한 지식의 신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비용도 안 드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조숙희_중앙대 영문학과 교수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주로 셰익스피어와 현대 영미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 분야에 관한 수십 편의 학술논문과 공저가 있다. 중앙대학교 교양대학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했고, 고전르네상스학회장과 한국아메리카학회장을 지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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