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도서관 155개가 파괴됐고, 298개의 도서관이 훼손됐다고 한다. 이에 세계기념물기금(World Monuments Fund)과 같은 비정부기구(NGO)들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세계기념물기금은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Chernihiv) 지역의 청소년 도서관을 재건하고 있다.
체르니히우 청소년 도서관은 1918년과 1919년에 있었던 볼셰비키의 공격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지난해 3월 도서관 일부분이 러시아의 미사일에 무너져버렸다. 세계기념물기금의 유산 위기관리 전문가인 카테리나 곤차로바(Kateryna Goncharova)는 “체르니히우 청소년 도서관은 우크라이나 문화와 정체성을 공격하는 러시아를 보여주는 건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서관은 단순히 책과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를 넘어 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도서관 건축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고 남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를 위한 공용 거실인 도서관’을 구현한 핀란드의 키르코눔미 도서관
핀란드의 키르코눔미 도서관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독서와 연구, 학습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역할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외에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는 도서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핀란드 건축설계회사인 JKMM Architects는 키르코눔미 옛 시립도서관의 기존 콘크리트 구조를 재사용해 키르코눔미 도서관을 리모델링했고, 시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80년대 건물을 리모델링한 키르코눔미 도서관에는 육아·청소년 활동·전시와 공연 공간 등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이 충분하다.
도서관 근처 교회 건물의 구리 지붕에서 영감을 받아 도서관 외관에 구리를 사용했다. JKMM Architects의 창립 파트너인 티무 쿠르켈라(Teemu Kurkela)는 “구리는 키르코눔미시의 중심지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교회의 구리 지붕은 풍화되어 청록색으로 보이는 반면에, 도서관의 구리 외관은 빛을 반사하는 모습 때문에 물고기 비늘 같기도 하다. 멀리서 도서관을 보면 큰 빈티지 스피커처럼 보인다.
도서관 1층 카페는 넓은 유리벽이 감싸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리벽은 도서관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서관 내부의 공동 공간을 강조해 준다. 또 도서관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각적인 개방감과 연속성을 제공한다. 티무는 “요즘 핀란드인들은 도서관을 공용 거실이라고 부릅니다. 도서관을 영감을 찾는 장소, 독서 외 다른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다 함께 모이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밝혔다. JKMM Architects는 키르코눔미시에 거주하는 4만여 명의 시민들뿐 아니라 헬싱키에서 통근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서관에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연대와 복지에 관한 지역적 기반을 만드는 것을 키르코눔미 도서관의 필수 사항으로 여겼다.
JKMM Architects의 인테리어 건축가인 티이나 리트코넨(Tiina Rytkonen)은 “도서관 내부는 환영하는 분위기로 친근하게 디자인되어, 모든 사람들이 도서관 건물에서 집”과 같은 느낌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키르코눔미 도서관에는 황동 부품을 사용한 맞춤 조명, 난간 등이 있어 특유의 따뜻함과 품위가 느껴진다. 황동은 향균성을 가지고 있어서 최근 더 각광받고 있는데, JKMM Architects는 도서관을 설계할 때 콘크리트와 대조되는 소재로 황동을 선택했다. 주 열람실의 디자인은 콘크리트 기둥과 보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접적인 자연광이 기둥과 보에 투과되어 마치 나무숲을 가로지르는 햇빛과 유사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특색을 바탕으로 키르코눔미 도서관은 지난해 국제건축대상의 도서관 부문에서 수상했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서가
방문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시애틀 중앙도서관
수많은 방문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도서관도 있다.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스물여섯 개의 분관이 있는데, 2020년 한 해 동안 98만여 명이 시애틀 공공도서관을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2004년 5월에 지어진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2023년이 된 지금까지 획기적이고 방문자가 많은 도서관으로 꼽히고 있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에서 가장 혁신적인 공간은 ‘나선형 서가 공간(Books Spiral)’이다. 네 개 층에 걸쳐 완만한 경사로로 이어진 나선형 서가 공간에서는 논픽션, 잡지, 신문, 오디오북 등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방문자가 정보를 연속적으로 접하게 하면서 동시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와 조슈아 프린스 라무스(Joshua Prince-Ramus)가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빨강 층(Red Floor)’이라고 불리는 4층은 독특한 색채 때문에 어린이를 포함한 여러 방문자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공간이다. 4층의 모든 벽, 바닥, 천장, 계단까지 열세 가지 종류의 빨간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인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거나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때 이 도서관을 매일 방문했던 앤드류 콘스탄티노(Andrew Constantino)는 “당신이 노숙자라면 당신이 머물도록 허용하는 장소가 많지 않을 텐데,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당신의 할머니 댁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로비는 의도적으로 계획되지 않은 공간으로, 바람이 드나들며 자연광이 쏟아지는 로비에서 방문자들은 편하게 쉬거나 모임을 갖는다. 만 개의 창문으로 이뤄진 외관과 145만 권이 넘는 책과 자료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시애틀 중앙도서관을 방문하는 이유일 것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사람과 책이 도서관의 주인임을 색깔로 나타내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을 처음 보면 새하얀 정육면체 큐브가 떠오른다. 그만큼 단순하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도서관으로 보일 수 있다. 내부도 외관과 동일하게 흰색으로만 되어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과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만 뚜렷하게 색깔로 나타난다. 이는 건물이 아닌 사람과 책이 도서관의 주인임을 강조하는 건축가의 의도였다.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은 역피라미드 구조로,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게 확보되어 꼭대기 층에 다다르면 도서관 내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특히, 높은 층에서 바라보는 중앙 열람실의 계단은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 〈올라가기와 내려가기(Ascending and Descending)〉가 연상되어 친근하기까지 하다. 도서관 외벽에서도 친숙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네 면의 외벽에 도서관을 뜻하는 한국어, 영어, 독일어, 아랍어 단어가 각각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이은영 건축가가 설계한 이 도서관을 방문한다면 낯선 타국에서 ‘도서관’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보면서 특별한 친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1. “As bombs fall, a San Jose State librarian rushes to preserve Ukraine’s cultural legacy”, 2023.2.21.,https://www.record-bee.com/2023/02/21/as-bombs-fall-librarians/
2. Ukrainian Institute, https://ui.org.ua/en/postcard/chernihiv-regional-youth-library/
3. “Saving Ukraine’s built heritage: picking through a year of destruction”, 2023.2.24., https://www.architectsjournal.co.uk/news/saving-ukraines-built-heritage-picking-through-a-year-of-destruction
5. “JKMM revamps a 1980s public library in Finland with a copper-clad expansion”, 2022.7.29., https://www.archpaper.com/2022/07/jkmm-revamps-1980s-library-finland-copper-clad-expansion/
7. “Welcome to the library of the 21st century”, 2022.7.24., https://www.cbsnews.com/news/welcome-to-the-library-of-the-21st-century/
8. “Calgary’s Central Library is a stunner to rival Seattle’s”, 2022.6.29., https://www.washingtonpost.com/travel/2022/06/29/travel-calgary-central-library/
9. The Spaces, https://thespaces.com/peek-inside-15-of-the-worlds-most-beautiful-libraries/
서우민_자유기고가
자유기고가. 대학에서 국제학부를 전공하고 국제환경단체에서 콘텐츠 담당자로 근무하며 잡지 《그린 마인드》에 기고했다. 최근에 다시 기고를 시작해 해외의 다양한 현안 이슈와 도서관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2114년에 출간될 책을 위해 100년 동안 천 그루의 나무 심기노르웨이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은 2014년부터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Future Library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는 2114년에 출판될 책의 재료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100년 동안 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수확한다. 케이티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는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한 기업 활동이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새로운 유럽연합 지침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기업들과 유럽연합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른 국가의 기업들은 곧 유럽연합 ESG 관련 분류
도서관이 지식의 보고이자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학문 연구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8세기 바그다드를 수도로 한 이슬람 아바스(Abbasid) 왕조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서 영감을 받아, 전 세계의 지식을 보존하는 도서관을 설립하겠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아바스 왕조 2대 칼리프 만수르(Caliph Al Mansur)가 통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