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창을 열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사서에게 찾아가 말 그대로 “뭐든지” 물어봤다. 쓸데없다거나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라며 혼내는 사서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용자의 질문과 요청에 응답하는 업무를 미국 도서관에서는 참고 서비스(reference service)라 한다. 1883년 보스턴 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되어 보편화되었으며, 사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업무다.’
-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마티, 2022, 12쪽.
미국의 AI 연구소 ‘오픈 AI’가 최근 공개한 ‘챗GPT(ChatGPT)’가 연일 화제다. 인터넷 강자로 군림하는 구글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강력한 인공지능 챗봇이란다.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대화 능력을 갖춘 챗GPT가 구글의 검색 엔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언젠가 《도서관은 살아 있다》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사서는 검색 엔진의 원조’ 꼭지에 썼던 문장을 이렇게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챗GPT 창을 열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열었다······.’
참고 서비스를 수행하는 사서에게 더욱 강력한 도구가 생긴 것일까? 챗GPT 창을 열고 다음 질문을 해봤다. ‘뉴욕 공공도서관 로즈 열람실에 얼마나 많은 참고도서가 있나요?’ 빠르게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구글과는 다르게 뜸을 들여가며 챗GPT가 문장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뉴욕 공공도서관 로즈 열람실 참고도서 수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공공도서관의 책들은 자주 교체되기 때문에 수량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수량은 공공도서관의 웹사이트나 전화를 통해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최근 화제를 모은 AI ChatGPT 홈페이지의 대문 ⓒOpenAI
같은 질문을 구글과 사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 사이트의 실시간 채팅(AskNYPL)을 통해 사서에게 질문했을 때 ‘14,800’이라는 숫자를 알아내기까지는 대략 한 시간이 걸렸다. 구글은 0.70초 만에 1천 320만여 건의 검색 결과를 보여주었다. 최상단에 표시된 구글 추천 검색 결과에 따르면 로즈 열람실에는 5만 2천여 권의 참고도서가 있다. 구글은 천만여 개가 넘는 링크와 철 지난 정보를 주었고, 뉴욕 공공도서관 사서는 업데이트된 정확한 정보를 주었다.
필자는 《도서관은 살아 있다》에서 ‘예나 지금이나 참고 서비스에 필요한 사서의 첫 번째 자질은 무한한 인류애와 인내심이다’(13쪽)라고 말했다.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무한 노동을 할 수 있고 무한한 인내심까지 지닌 인공지능 사서가 정보 데스크에서 인간 사서의 참고 서비스 업무를 대신할 날이 올까? 감정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공지능 사서는 반복되는 질문이나 얼토당토않은 질문에도 성심껏 답해줄 수 있으리라. 어쩌면 대면 관계를 꺼리는 젊은 세대의 도서관 이용자들은 인공지능 사서를 선호할지도.
얼마 전 읽은 기사에 따르면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10~13세 전용 도서관 ‘티오트레톤’이 사람 얼굴을 한 인공지능 사서를 도입했는데 사람 사서를 불편해하거나 말을 거는 걸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도서 추천 인공지능, 서가 안내 로봇, 도서 운반 로봇, 도서 정리 로봇, 방역 로봇, 책 배송과 장서 점검 업무를 수행하는 드론(도서관 다람쥐들이여, 엉뚱한 서가에 책을 숨겨놓는 짓은 이제 그만!) 등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하는 도서관이 늘고 있다. 버지니아주 소재 로아노크 카운티 도서관은 미국에서 최초로 로봇을 팀원으로 채용한 공공도서관이다. 이곳의 로봇 보조 사서 페퍼(Pepper)는 학생 이용자들을 위한 도서관 STEAM 프로그램 업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사람 얼굴을 한 인공지능 로봇 ⓒUnsplash
몇 년 전, 중국의 한 도서관에 배치된 인공지능 로봇끼리 말다툼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도서관 방문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배치된 두 도서관 안내용 로봇의 대화를 일부 살펴보니 이러했다. “그만 싸우자. 당신은 드라마의 여왕이 아니다. 화내지 말라”, “널 용서하기 어려울 것 같다.” 로봇이 인내심을 잃다니!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처럼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왠지 섬뜩하다.
호주 국립도서관의 책 배달 도우미 로봇 ‘아이작’이 구 모델 ‘찰리’를 대체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로봇이 로봇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현실이라니! 언젠가 인간이 로봇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니,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사서를 대체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했다. 챗GPT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사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의 직관, 이해력, 인식력, 감정, 문제해결 능력과 같은 능력이 필요한 사서의 업무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일부 사서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업을 통해 사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답변을 듣고 싶어 질문을 약간 바꿔보았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사서를 대체할까요? 예, 아니오로 대답해주세요.” 챗GPT가 답했다. “아니요.” 다행이다. 인간의 데이터로 제대로 학습한 것 같다.
도서관 인포메이션 센터의 모습 ⓒ도서관여행자
챗GPT에게 좀 더 어려운 질문을 해봤다.“사서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사서는 책과 인터넷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이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읽을 책을 추천하고,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독서에 대한 관심을 증진시키는 일도 합니다. 이러한 기능을 통해 사서는 사회에서 교육, 문화,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봤다. “인공지능에게 없는 인간 사서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을 반복했더니 챗GPT가 다양한 답변을 제공했다. 인간 사서는 읽을 책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인간 사서는 읽을 책에 대한 감성적인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인간 사서는 읽을 책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을 할 수 있다, 인간 사서는 읽을 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인공지능 사서는 어떤 책을 추천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프로그램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 사서는 그들의 경험과 감성을 기반으로 책을 추천할 수 있다, 인간 사서는 읽을 책에 관한 토론과 강연을 개최하며 인공지능 사서는 이러한 기능을 가지지 않는다, 등등······.
하지만 ‘사서의 가치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챗GPT는 매번 비슷하면서도 단편적인 대답만을 늘어놓았다. 인공지능에게는 꽤 어려운 질문인가 보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어도 짜증 내지 않는 인공지능 챗봇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인공지능에게 없는 인간 사서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이번엔 좀 더 빠른 속도로 챗GPT가 답했다.
“인공지능은 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제공할 수 있지만, 인간 사서는 이러한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관점과 이해력, 사회적 인문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사서는 이용자들의 질문과 요구를 이해하고,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서는 이용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사서는 이용자들의 정보 요구에 따라 그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적응적으로 동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관점, 이해력, 사회적 요소는 인공지능이 구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새 학습을 한 것일까? 답변이 제법 그럴듯하다.
ⓒ도서관여행자
사서이자 문헌정보학자인 마이클 고먼은 《도서관의 가치와 사서직의 의미》에서 사서의 핵심적인 가치로 관리자 정신, 서비스, 지적 자유, 합리주의, 문해력과 학습, 기록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의 공평성, 프라이버시, 민주주의를 꼽았다. 미국도서관협회(ALA)는 사서의 핵심 가치 역량을 접근성, 개인정보 보호, 민주주의, 다양성, 교육 및 평생학습, 지적 자유, 보존, 공공선, 전문성, 서비스, 사회적 책임 및 지속가능성으로 정의했다.
사서들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직업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확장해왔다. 이것이 (‘무한한 인류애’를 지닌) 인간 사서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리라. 인공지능에게 가르칠 수 없는 사서의 암묵적 지식이기도 하다.
얼마 전 케빈 루스의 《퓨처프루프》란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사회적, 정서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한 사람들은 효율적 생산이나 업무 수행을 주된 기술로 삼는 사람들보다 미래에 더 나은 입지를 차지할 것이다······ (중략) 사람들에게 유대감과 사회적 만족감을 선사하는 능력은 그 가치가 커질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바꿔 읽어보자. ‘이용자들에게 유대감과 사회적 만족감을 선사하는 사서의 능력은 그 가치가 커질 것이다.’
사서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식, 육체, 감정 노동의 격무에 시달리며 직업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고 지낸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게 사서의 가치를 되새겨준 이들은 동료 사서들이었다. 이용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는 사서들을 볼 때마다 깨닫게 되었다. 사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지를. 인공지능에게 결여된 능력, 바로 ‘공감력’이다.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서가 때로는 이용자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도서관은 살아 있다》에 담은, 사서 시절의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을 여기에 다시 꺼내본다.
‘참고 서비스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이용자에게 수많은 질문과 감사를 받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희로애락이 있는 삶을 읽었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다가오더니 크리스털 메스(필로폰) 관련 정보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의학 분야 참고도서와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를 검색해 자료를 출력해드리자 이용자가 갑자기 마약 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흐느꼈다. 당황한 나는 어떤 말로 응대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같이 울어드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용자가 데스크를 떠나며 내게 말했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마티, 2022, 19쪽
이 칼럼에 소개된 책들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마티, 2022.
마이클 고먼, 《도서관의 가치와 사서직의 의미》, 태일사, 2019.
케빈 루스, 《퓨처프루프》, 쌤앤파커스, 2022.
도서관여행자_작가
작가. 도서관에서 삶을 읽고 삶에서 도서관을 읽는 여행자. 도서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 도서관 활동가. 카드목록함이 있던 아날로그 시대 도서관을 경험한 운 좋은 세대다.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대 정보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여러 기업에서 IT 개발자로 일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현재는 사서가 부러워하는 도서관 이용자다. 친환경 북 아티스트를 목표로 인생 삼모작을 준비 중이다. 트위터 @kpark_librarian 인스타그램@library_traveller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마르셀 프루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로라 부시, 노자, 카사노바. 정답은······ 이들은 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사서였던 유명인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인간 사서는 명성을 떨치기가 어렵다. 부를 얻기도 힘들다. 도서관이 생긴 이래 사서여서 유명해진 인간은 없을 것이
‘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나는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이민자, 장애인, 노숙인,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 그러면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해와 공감을 키워나갔다. 책으로 배웠던 것을 넘어선 소중한 경험이었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을 읽는 곳
아이들이 어릴 적 이야기다. 캄캄한 밤에 침낭과 담요를 챙겨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 불빛 없는 곳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별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리 옆에 혼자 온 아저씨가 자리를 잡았다. 두툼한 누런 점퍼에 벙거지 모자까지 푹 눌러써 ‘고구마장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를 처음엔 경계했다.그러다 호기심이 생겨 “여기 왜 오셨어요?” 하고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