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독일에 유학 가서 정신 좀 차리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선진국에 와 있다고요. 당시 독일이 잘사는 선진국이란 걸 모르고 유학을 갔겠습니까? 아니까 갔죠. 하지만 제가 진짜로 독일이 선진국이라고 느끼게 한 것은 바로 도서관이었습니다. 도시라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살짝 한가해 보이는 사서들이 여럿 있는 도서관 말입니다. 그들은 책을 빌리러 온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이 빌린 책 리스트를 살펴보고 이런저런 참견을 했습니다. 독서 활동에 아주 유익했죠.
2000년 저는 달력에 빠져 있었습니다. 간단한 퀴즈를 맞히지 못했거든요. ‘1001년 1월 1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는 모두 며칠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혹시 속으로 계산해보니 365,000일 또는 365,250일이라는 답이 나오던가요? 아닙니다!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답은 365,243일입니다. 달력에 대한 천문학 지식과 그레고리 달력 제정과 관련한 유럽 중세사 지식이 있던 제가 답을 틀리자 몹시 답답했거든요. 제 독서에 사서들이 참견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라, 저 책을 읽어라,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허브다. 사람과 사람, 지식과 지식을 연결해주는 중심이다. 그 중심에 사서가 있다’고 말입니다.
도서관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일단 글을 아는 사람일 겁니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문해력, 즉 글자를 읽는 능력이었습니다. 읽을 줄 알아야 자신의 이익을 지키면서 교양을 갖춘 문화인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 문해력이 필요한 21세기
노인들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는 일을 여러 해 했습니다. 노인들은 꼬마들보다 훨씬 빨리 배웁니다. 삶의 지혜가 충만한지라 지식이 금방 쌓이죠. 하루에 두 시간씩 일주일에 5일, 딱 열 달 만에 초등학교 국어와 산수를 떼십니다.
글에 눈을 뜨게 된 그들의 표정에서 ‘행복’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졸업식 날 할머니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타납니다.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에이, 이게 뭐 대단하다고······ 누가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우씨! 그럼 우리 교사들도 넥타이 매고 와야 하는 것 아냐······’ 뭐 이런 심정이었죠. 남편과 애들, 심지어 손자까지 졸업식장에 부릅니다. 졸업 노래를 부를 때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글과 셈을 깨우친 기쁨이 그렇게 큰 겁니다. 할머니를 격려하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졸업하는 게 그렇게 좋아서 우시는 거예요?” 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마디를 더 붙이십니다. “아이고, 이렇게 금방 깨우치는 게 글인데, 새끼들과 영감 키우고 먹이느라 이걸 이제야 깨우친 게 하도 억울해서 우는 거요.”
이젠 21세기입니다. 과학을 이해하며 즐길 수 있는 문해력, 즉 과학 문해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보는 행위가 아니라 문장을 실제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하는 방법을 좌우하죠. 과학 문해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현상과 공식을 보는 행위가 아니라 사실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고 실제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많은 분들이 과학은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입니다. 과학은 어렵습니다. 그런데요, 과학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역사도 어렵고 예술도 어렵고 경제, 철학, 지리, 문학 모두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과학만 유독 어렵다고 느낄까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자연어로 서술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수학이라는 비자연어로 서술됩니다. 언어가 다르니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수학이라는 과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과학을 즐길 방식이 필요합니다. 과학관이 바로 그것이죠.
열람실들 중 하나만 실험실로 바꾼다면?
“우리나라에 과학관이 몇 개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성인은 대개 다섯 개부터 시작합니다. 서른 개, 쉰 개 정도에서 멈추죠. 가끔 500개 또는 천 개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살짝 정신없는 사람이라고 넘깁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운 국립과학관만 다섯 개입니다.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같은 다른 부처에서 세운 국립과학관도 제법 있지요. 과학관협회에 등록된 과학관만 147개입니다. 많습니다.
자,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과학관 몇 곳에 가보았는가?’ 대부분 한 곳도 가보지 않았을 겁니다. 가보신 분들도 다섯 손가락이면 충분히 다 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자녀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가본 과학관이 몇 개나 됩니까?’ 단언하건데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한 곳이라도 가본 사람은 열 명이 안 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나이가 제법 있는 독자라면, 어릴 때와 젊을 때 과학관이란 걸 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최고로 꼽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국립과천과학관은 2008년, 서울시립과학관은 2017년에 개관했으니 말입니다. 예전에는 창경궁에나 작은 과학관이 있는 정도였죠(그게 지금의 국립어린이과학관입니다). 젊은 독자라면 과학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부모님이 보기에 ‘이 아이는 딱히 과학과는 상관없이 살 것 같아’라고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과학을 좋아하는 분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도서전에 과학관의 체험 전시물을 가지고 나가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과학도 잘 즐깁니다. 그래서 꿈꿔봅니다. 2천 300개가 넘는 도서관이 과학관의 역할을 흡수하면 어떨까요?
이젠 열람실이 지금처럼 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자기 방이 있고 카페가 책 읽기엔 더 좋아요. 열람실들 중 하나만 실험실로 바꾸면 어떨까요? 일년에 한 번 가는 과학관에서가 아니라, 매주 방문하는 2천 300개가 넘는 도서관에서 과학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실험이라는 책을 통해서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 문해력은 이 시대의 핵심 능력입니다. 과학은 이제 문화입니다. 시민의 과학 문해력이 높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합리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입니다. 명랑 사회 구현합시다. 도서관이 할 수 있습니다.
이정모_국립과천과학관장
국립과천과학관장.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을 거쳐 현재는 국립과천과학관장으로 일하면서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공룡과 기후위기다. 쓴 책으로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등이 있다.
수많은 책들 중에 소수의 책을 선별하는 기준은 솔직히 개인의 취향,취향이 동네책방의 개성을 만든다. 그림책방 곰곰을 한두 줄로 소개하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늘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를 위한 그림책방”이라고 소개한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우리 책방에서 좋아하는 그림책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처음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아무리 좋은 지식과 자원을 쏟아붓더라도내면이 부실하다면 예술적 감수성은 길러지지 않는다! ‘기적의 피아노 소년’ 두민이의 예술적 감수성 훈련법지금은 종영한 SBS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적의 피아노 소년 김두민’이라는 타이틀로 파리 명문 음대에 최연소 합격한 아동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워낙 작정하고 뛰어난 영재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서
디지털 네이티브3년을 끌던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실 밖 캠퍼스는 만개한 겹사과꽃처럼 활기로 가득하다. 대면 강의는 물론 답사, MT 등 미루어놓았던 모임과 만남이 끊임이 없고 일정 너머 일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교수라면 이럴 때 간절한 것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