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도서관과 부모교육] 부모가 물러간다, 아이가 나아간다 - 그림책 속의 부모와 아이
김서정_동화작가, 평론가, 번역가
2022-09-1609:00
그림책 속 부모는 왜 아이를 괴물 나라로 밀어내고, 겨울밤 숲 속에 떨굴까?
서로의 성장을 위해서 아이를 놓아주는 부모의 모습!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법
사람들이 책을 본다. 왜? 뭔가를 배우려고(‘느끼려고’나 ‘즐기려고’도 있지만, 그것도 궁극적으로는 배움에 포함될 수 있다. 어떤 느낌과 즐거움이 어떻게 올라오는가를 배우게 되니까). 사람들이 뭔가를 배운다. 왜? 성장하려고. 사람들이 성장한다. 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일까? 올바르면서도 유연하고, 많이 알면서 많이 나누고, 따뜻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단호해야 할 때는 단호하고, 성실하면서도 여유 있고, 생각 깊으면서도 감성 충만하고, 연민도 유머도 갖추고, 자신과 남을 잘 돌보고, 독립적이면서도 협동 잘 하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마지막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 막강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를 ‘아이들이’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더 오래 성장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이 책을 읽히게 된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다 성장한 줄 알고 노력하기를 멈추지만, 아이들은 덜 자랐으니 가열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여겨서 책을 읽히려 애쓴다. 좋은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만큼 어른들도 읽어야 양쪽 다 성장할 수 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서 각자 생각하고 느낄 거리를 찾아낼 수 있는 그림책이 각광받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히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담은 그림책은 함께 읽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어른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의 삶에서 뒤로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기적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가 좋은 예가 되겠다. 엄마가 차려놓은 따뜻한 저녁밥이 아이를 괴물 나라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마무리에서 모성애, 위로, 환대 등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아이를 괴물 나라로 밀어낸 것이 엄마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맥스에게 저녁밥도 안 주고 방에 가둔 것이 엄마였다. 덕분에 아이는 자기 방을 세상 전체로 만들어 일년을 배를 타고 항해한 끝에 제 안의 괴물을 만나고 다스리는 법을 익히게 된다. 엄마는 자기가 아이의 폭력성을 뜯어고치려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본질을 인정해주고(“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원서에서는 "You, wild thing!"이다. 어린 사내아이 안에 펄펄 살아 있는 야생의 존재를 호명해서 끌어내준 셈이다), 스스로 환상 안에서 그것을 분출한 뒤 가라앉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야생의 에너지는 성인 남자에게도 들어 있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써먹을 수 있는 석기시대가 아닌 이상 어른도 이런 환상 안에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아빠와 아들이 함께 보면서 환상들을 나누고, ‘따뜻한 저녁밥’으로 상징되는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많이 거쳐보는 게 좋지 않을까.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맥스의 엄마가 아들을 앞으로 밀어냈다면, 《부엉이와 보름달》(제인 욜런 글, 존 쇤헤르 그림)의 아빠는 딸을 뒤에 떨군다. 통과의례처럼 겨울밤 숲속으로 부엉이를 보러 가는 날, 아빠는 돌아보는 법도 없이 성큼성큼 앞서 나간다. 어린 딸은 가끔 뛰기도 하면서 종종종 아빠를 좇는다. 추위도 무서움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엉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실망감까지 받아들인다. 그러고 난 뒤 마주친 부엉이. 영원 같은 순간에 우주와 하나가 되는 듯한 체험을 한 딸을 아빠는 그제야 안아 올린다. ‘눈부신 보름달 아래 침묵하는 부엉이 날개에 실려 날아가는 소망’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아빠의 말은 딸의 일생에 가장 단단한 좌표를 준 셈이다. 나는 내 아이 인생에 어떤 좌표를 줄 수 있는가. 모든 아빠들의 화두가 아닐까.
놓아주어야 서로가 해방되는 해피엔딩
《꼭 잡아 주세요, 아빠!》(진 윌리스 글, 토니 로스 그림)에는 아이 놓기를 두려워하는 부모가 나온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딸도 무서워하지만, 가르치는 아빠도 무서워한다. ‘널 놔준다는 건 끔찍이도 어려운 일이구나’ 하며 아빠는 눈물까지 흘린다. 딸이 다칠까봐서가 아니라 ‘그렇게 멀리 갈 수 있으니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봐 무섭’다는 것이다. 자전거 배울 때뿐이겠는가. 학교에 갈 때, 사춘기를 겪을 때, 결혼을 할 때······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놓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에 능숙해진 아이가 돌아와 ‘내가 아빠를 꼭 잡을게요. (······) 우리 같이 해나가는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서로 성장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는지를 이런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려움을 넘어 공포에 질린 채 아이를 꽁꽁 싸매고 끌어안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메두사 엄마》(키티 크라우더 글·그림)처럼. 동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시키고 학교도 보내지 않은 채 자기 머리카락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메두사 엄마가 있다. 그 밑에서 딸도 작은 메두사로 자란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살고 싶은 삶이 있는 법이다. 학교에도 가고, 친구들과도 놀고, 동네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삶. 마지못해 학교 가기를 허락한 뒤 따라나서려는 엄마를 딸은 막아 세운다.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하니 따라오지 말라면서. 이 단호한 자세가 딸을 풀어주고 나아가 메두사 엄마까지 해방시킨다. 멋진 해피엔딩이다.
부모가 놓아주지 못하면 아이가 떠나야 한다. 부모가 따라나서면 아이가 막아 세울 수 있다. 부모가 두려워하면 아이가 진정시킨다. 이렇게 압축해서 말하면 낯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관계, 일상에서는 드문 장면인 듯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길고긴 삶의 과정에서 어느 날 문득 부닥치고 놀라게 되는 이런 상황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길고 부산한 일상 속에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그림책 속에서 명료하게 깨닫게 되는 삶의 진실. 서로의 성장을 위해 부모와 아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가 그림책 속에는 무궁무진하다.
김서정_동화작가, 평론가, 번역가
동화작가, 평론가, 번역가. ‘김서정스토리포인트’에서 동화와 그림책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쓴 책으로 평론서 《잘 나간다 그림책》 《캐릭터는 살아 있다》가 있고, 그림책에 글을 쓴 《나의 사직동》 《용감한 꼬마 생쥐》 《앤티야 커서 뭐가 될래》, 번역한 책 《어린이문학의 즐거움》 《안데르센 메르헨》 《그림 메르헨》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 IBBY 어너리스트 번역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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