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강연에 가면 과학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2015년 교과과정의 개편으로 고등학교에 문과반, 이과반을 없애고 ‘통합과학’이라는 새로운 과목이 신설되었다. 최근에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교육과정이 변화하고 있지만, 공교육 현장에서는 선생님이나 학생들 모두 따라가기 버거운 게 현실이다. 물리,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과목으로 임용고시를 보고 과학교사가 된 선생님들에게 통합과학이나 과학사 같은 과목은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새로운 과목이다. 과학 선생님들은 통합과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학생들에게 과학책 독서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나는 고등학교 《과학사》 교과서를 쓰고 통합과학과 관련한 책을 내면서 많은 문제의식을 느꼈다. 주입식 과학교육의 한계에 부딪힌 우리 사회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면서도 그 방향성과 대안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2015년 개정 교과과정은 통합과학 교육의 목표를 ‘과학적 문제해결 능력’, ‘합리적 의사결정과 소통 능력’,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에 두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나와 있는 통합과학 교과서가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교과서에 나온 과학 지식을 열심히 공부하면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문제해결력, 민주시민의 자질이 키워지는가? 예컨대 교과서에 나온 주기율표의 원소기호를 외우고 물리학의 운동법칙에 관한 문제를 열심히 푼다면 과학적 사고와 시민의식이 함양될까? 과학 지식을 많이 안다고 지구를 사랑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세계 시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과학교육과 교과서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과학적 사고의 탄생》(푸른지식, 2017)과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의 《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까치, 2017)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였다.
카를로 로벨리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신화에서 과학을 탄생시킨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경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시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등의 업적을 재조명한다. 이들은 위대한 질문, ‘만물의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를 제기하고,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논쟁하면서 과학적 사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로벨리는 우리가 그동안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통찰이나 과학적 사고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강조하는데, 나는 그 말에 적극 동의한다.
한국의 과학교육이야말로 과학적 사고를 충분히 가르치고 배운 적이 없었다. 지금껏 과학적 사고는 교육과정의 지침에 나오는 이름뿐인 명분이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님은 학창시절에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강연장에서 고대 시대 과학의 탄생이나 17세기 과학혁명을 강의할 때 과학적 사고나 합리적 사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한마디로 합리적 사고는 ‘설명력’이라고 말한다. 설명하는 언어에는 타인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껴서 하는 말, “그냥 그런 것 같아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즉, 직관적 사고는 최종 결론만 말할 수 있을 뿐 그 결론에 도달한 과정을 말할 수 없지만, 합리적 사고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를 순차적으로 말로써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지만, 인간의 언어는 사회적이고 공적이다. 무엇에 대해 합리적 사고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하고 서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먹이나 칼이 아닌 논리적 언어로 타인을 설득하면서 인류는 진화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어떤 이야기가 더 나은지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인데, 바로 A보다 B가 더 낫다는 것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합리적 사고와 과학이 출현했다.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과학적 사고의 탄생》(카를로 로벨리 저, 이희정 옮김, 푸른지식, 2017)(좌)
《호모 사피엔스와 과학적 사고의 역사》(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조현욱 옮김, 까치, 2017)(우)
과학교육을 통해 합리적 사고를 훈련해야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 과학적 사고는 자연스러운 것인가? 신화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식이나 행성의 운동과 같은 자연현상은 초자연적인 존재, 즉 신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다. 반면에 뉴턴의 중력 법칙이나 다윈의 진화론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뇌가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시공사, 2017)이나 조지프 히스의 《계몽주의 2.0》(이마, 2017)은 ‘합리적 사고는 느리게 일어나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화론과 뇌과학으로 논증한다. 과학 공부가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생각이나 비과학적 사고에 빠지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학교육을 통해 합리적 사고를 훈련받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과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원자, 전자기장, 에너지 등은 상식에 위배되는 개념이다. 수학이나 과학적 용어를 배우지 않고서는 과학자의 사고방식에 접근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상식과 통념에 맞서서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 뉴턴의 만유인력이나 패러데이의 장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은 완벽히 새롭게 창안된 개념들이다. 이들 과학자는 질량이나 장, 에너지 등의 과학적 용어를 정의하고 E=mc²과 같은 수학의 법칙을 제시했다. 이러한 과학적 개념을 안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은 인간이 만든 언어이고, 언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 개념을 이해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 즉 과학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된다.
과학하는 마음, 감수성, 통찰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책 읽기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배우는 것
과학 교과서는 완성된 지식을 가르치고 있지만 과학은 만들어지고 있는 지식이다. 과학은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기존의 개념을 고치고 더 낫게 하는 활동이다. 과학의 가치는 바로 여기, 우리의 지식과 사고를 얼마나 확장하는가에 있다. 어떤 설명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가를 따지면서 우리는 과학적 사고를 배운다. 이제 과학 교과서는 문제 풀이와 답 맞추기보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의 사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학교의 과학교육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유하는데, 과학책은 과학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책에는 숱한 역경을 딛고 과학적 성취를 이뤄낸 인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컨대 신화에서 과학을 탄생시킨 자연철학자들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부정하고 담대하게 인간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화가 틀리고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삶을 바쳤다. 모든 과학자들은 온갖 비난과 조롱을 감내하면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과학책은 이러한 용기와 인내심, 호기심,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과학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사고를 배운다. 스스로 글을 읽으며 과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다. 과학을 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출제자의 의도가 분명히 있는 책이지만 과학책은 저자보다 독자를 위한 책이다. 독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과 가치를 발견하도록 장려한다. 과학책 읽기는 인류의 지적 도약을 깨우치고, 지구에 태어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과학 하는 마음, 감수성, 통찰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배우는 것이다.
과학 저술가로 살아가는 나는 과학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과학책을 통해 앎의 기쁨을 느낀 경험이 평생 나를 이끌었다. 우리 청소년들이 과학이 주는 특별한 감동과 경험을 누리지 못하고 교과 공부에만 치중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정 공부를 잘 하려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의지와 용기, 내가 사는 세상을 사랑하고 더 나은 사회를 갈망하는 목표의식이 요구된다. 학원에서는 지식을 가르칠 수 있지만 이 같은 인간적 가치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도서관과 과학책에서 자신의 무궁무진한 가치를 발견하는 청소년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정인경_과학저술가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과학기술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했다. 펴낸 책으로는 《내 생의 중력에 맞서》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통통한 과학책 1, 2》 《과학을 읽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 등이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 《과학사》(씨마스)를 집필했으며, 한겨레신문에 ‘정인경의 과학 읽기’ 칼럼을 쓰고 있다.
딴짓이 가능한 학교이자 딴 생각이 넘치는 놀이터,도서관에서 상상하지 못한 그 어떤 것을 만나다. 나는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간 적은 거의 없다. 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웬만한 공공도서관 지하엔 언제나 식당이 있었고, 돈가스를 5천 원, 가끔은 4천 원에도 먹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밥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멀리 가는’ 이들인 어린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잘 보내는 일 《어린이는 멀리 간다》는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은의 첫 에세이다. 어린이와 어린이책에 대한 그의 꾸준하고도 진심 어린 목소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독자가 분명하게 상정되어 있는 평론집과는 달리 더 많은 이들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유독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이책 업계에서
2114년에 출간될 책을 위해 100년 동안 천 그루의 나무 심기노르웨이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은 2014년부터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Future Library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는 2114년에 출판될 책의 재료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100년 동안 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수확한다. 케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