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도서관을 탐방하는 코너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 내부 ⓒ 정무늬
의정부에 미술 도서관이 생겼다고 했다. 아주 잠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솔직한 마음은 ‘내가 의정부를 몇 년 떠났기로서니, 나 몰래 미술 도서관이 생겨?’였다.
30년 넘도록 의정부에 붙박이로 살았다. 의정부정보도서관은 아버지가 TV 리모컨을 독점한 우리 집 거실보다 친근한 장소였다. 인기 도서를 하루라도 빨리 거머쥐기 위해 주민센터에 달린 작은도서관까지도 줄줄 꿰고 살았다. 그런데 미술관과 도서관을 융합한 매력적인 공공 플랫폼이 생겼다니.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지금 내가 사는 도시에도 훌륭한 도서관이 여럿 있다. 하지만 미술 도서관은 없다. 전국 어디를 뒤져도 마찬가지다.
뭔가 다르다, 예술의 공간이 되는 도서관
빗방울이 자동차 앞 유리창을 깨부술 듯 쏟아지던 날. 녹슨 우산살에 매달려 의정부미술도서관을 찾았다. 희뿌연 물안개에 휩싸인 건물 외관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첫인상은 퍽 좋았다. 협소한 주차장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면 생각은 달라졌겠지만.
호우 경보 탓일까. 도서관엔 기분 좋은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린이 서가 대신 기획 전시 공간이 보였다. 각종 미술 서적이 은은한 조명 아래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엔 페이지를 넘기기조차 어려울 만큼 거대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빅북도 있었다. 2019년도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굿즈를 사지 못해서 원통했는데……. 3천 부 한정판이 상하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책을 감상했다. 흠모하는 작가의 작품을 손바닥만 한 도판이 아닌 초대형 책으로 감상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전시와는 또 다른 발견과 울림이랄까. 어린이는 보호자와 함께 이용해달라는 안내 문구 또한 따스하게 느껴졌다.
기획 전시될 어린이들의 작품 ⓒ 정무늬
데이비드 호크니 빅북 ⓒ 정무늬
도서관 책은 편의를 위해 양장본 표지가 제거되는 경우가 잦다. 표지도 책의 일부라고 보는 나 같은 독자에겐 좀 아쉬운 일이다. 미술 도서관의 책은 미술관에 걸린 작품처럼 대접받는 듯 보였다. 활자와 이미지를 함께 전해야 하는 미술 도서의 특성 때문일까. 이 도서관의 사서는 큐레이터의 안목까지 겸비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며 여러 번 감탄을 삼켰다.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보이는 조명, 중앙부의 나선형 계단, 원색의 안락의자, 팬톤 사의 컬러칩 번호를 이용한 화장실 문까지. 사소한 부분까지 정성스레 꾸며져 미술 도서관의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일층 벽면엔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된다는 예술 탐구형 테마 콘텐츠가 재생 중이었다. 3층엔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었다. 어둠을 사랑하고 고립된 공간에서만 작업하는 내겐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장소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의 집중력이 존경스러웠다.
독서 후 산책과 휴식이 가능한 공원이 세 개
도서관을 둘러보다 색연필과 색종이, 가위, 풀 등이 놓인 테이블을 발견했다. 한쪽 벽면엔 기획 전시와 관련한 어린이들의 작품이 붙어 있었다. 전시 준비 기간이었으므로 나는 그 그림들만으로 주제를 짐작해야 했다. 전시를 보지 못한 안타까움도 잠시, 색연필과 색종이를 만지작거리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전시할 수 있는 것도 미술 도서관만의 매력이었다. 낙서하는 걸 좋아하는 어른도 어린이들 사이에 얼마든지 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곳 미술 도서관은 송산사지 근린공원, 푸른마당 근린공원, 활기체육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독서 후 산책을 하기에도, 독서에 지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적당하다. 특히 송산사지 근린공원은 너른 잔디밭이 있어서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거나 플라잉디스크를 던지며 놀 수 있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나눠 먹는 가족들이 자주 보인다.
송산사지근린공원 ⓒ 정무늬
위키백과에 따르면 송산사지는 ‘조선 개국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 왕조와의 절개를 지킨 조견, 원선, 이중인, 김양남, 유천, 김주 등 여섯 분의 뜻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 있던 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찾은 날은 장마의 한가운데. 중랑천은 범람했고, 도서관 뒤편으로 이어진 숲길 진입로는 붉은색 ‘출입 금지’ 테이프로 가로막혀 있었다. 외부 사진을 찍으려다 우산을 놓치는 바람에 나는 축축하고도 불쌍한 생쥐 꼴이 되었다. 검은 가죽 샌들에서 배어나온 물이 발등을 물들이기 전에 도서관을 떠났다. 화창한 날을 기약하며.
미술 애호가 BTS RM의 친필 엽서가!
의정부미술도서관을 다시 방문했을 때는 기증 도서관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 ‘남준’이란 분의 친필 엽서가 있었다. 막연히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육필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것은 2006년이고, 미술도서관은 2019년에 개관했음에도 말이다. 엽서 속 ‘남준’이 BTS의 RM이라는 것을 깨닫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께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미술도서관 방문객 중엔 이제 백남준보다 김남준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어쩌면 세계적으로도.
배가 고파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지도 앱을 켜고 맛집을 검색했다. 의정부라고 부대찌개 맛집을 소개하는 건 지독한 클리셰 아닌가? 그곳이 식객에서도 소개된 ‘오뎅식당’이라면 더 볼 필요도 없다. 부대찌개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닭백숙집이었다. 뽀얀 국물과 누룽지를 곁들인 닭 한 마리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침은 돌았지만 ‘닭백숙이 이 에세이에 걸맞은 메뉴인가?’ ‘닭백숙은 왜 어울리지 않는가? 맛있으면 그만이지.’ ‘현대적인 미술관 전경과 옹기 냄비 속 닭백숙은 어떤 조화를 이룰 것인가?’ 치열하게 고심하다 포기했다. 사실 미술도서관 근처엔 내가 오랫동안 애정한 찐 맛집이 존재한다. 가족, 친구, 전 남자친구, 그 전 남자친구, 심지어 은사님까지 모신 곳이다. 하지만 체인점이라 망설여졌다. 그 브랜드 체인점 중 제아무리 특출나고 탁월한 맛이라 해도 말이다.
긴 고민 끝에 선택한 맛집은 ‘망향비빔국수’였다. 이 또한 체인점이니 앞뒤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미술도서관에서 불과 138미터 거리의 접근성, 뛰어난 가성비, 수백 건의 ‘내돈내산’ 후기로 검증된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연천 본점에서 국수 두 그릇을 해치운 기억이 있다. <강철비>에서 북한군 역할의 정우성이 한국 영화사에 남을 폭풍 먹방을 선보인 곳이 바로 망향비빔국수다. 깔끔한 육수와 탱탱한 면발의 국수도 맛있고, 국수에 곁들여 먹는 아삭한 백김치도 기가 막힌다. 본점에는 없었던 돈가스, 만두도 선택지를 넓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작한 국물의 매콤새콤 비빔국수가 식욕을 자극한다.
작가. 유튜브 채널 ‘웃기는 작가 빵무늬’를 운영하고 있다. 느긋하게 사는 법을 탐색 중인 뼛속까지 꿀벌. 최근 관심사는 레토르트 삼계탕과 고기 구워 먹을 수 있는 계곡 찾기다. 쓴 책으로 《웹소설 써서 먹고삽니다》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공저)가 있다.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후로 나는 줄곧 도서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4월, 돌이 갓 지난 아이와 제주에 방문했을 때, 제주 토박이인 친구가 회심의 미소를 띠고 우릴 데리고 갔던 곳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곳은 고(故)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기적의 도서관(2004)이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삼각 형태의 외형을 지닌 이 도서관은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도서관을 탐방하는 코너이다. 도서관도 식후경, 창원 가로수길 ‘썬댄스’배롱나무인가. 대형 토분 속 관목이 붉게 꽃을 피운 마당에서 손님들이 사진을 찍는다. 지나던 사람들도 불쑥 들어와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하며 사진을 찍고 간다.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창원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도서관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이유는‘‘강’-간김에.’ 이 요상한 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지어준 별명 중 하나다. 어디 간 김에 자꾸 뭘 더 하는 걸 좋아하는 까닭이다. 도서관에 가면 그냥 책만 냅다 읽다 올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