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재는 시한부 공유서재다. 직장을 휴직하고 차린 공간이었기에 문을 처음 여는 순간부터 문 닫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주어진 스무 달 동안 책의 숲에 둘러싸여 살아볼 요량으로 만든 서재의 문을, 우리는 모두에게 열어두기로 했다. 이 작은 도시의 외진 언덕마을 가게까지 애써 찾아주는 소수의 사람과 오직 책으로만 얽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읽고 쓰는 삶이 그리 부산스럽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 같았다.
문을 연 뒤로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거나 추천받았다. 물론 ‘어서오세요’와 ‘조심히 돌아가세요’라는 인사 외에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책을 추천하거나 추천받고 싶지만 직접 얘기 나누기를 꺼려하거나 낯부끄러워하는 손님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노트 한 권과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가게 한 구석에 준비해두기로 했다.
처음노트 ⓒ남형석처음노트 속 ‘인생 첫 책’ ⓒ남형석
먼저, 노트의 이름은 ‘처음노트’라고 붙였다. 이 노트에는 자신의 ‘인생 첫 책’을 쓰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처음 재미를 느낀 책, 어떤 세계로 나를 처음 이끌어준 책, 처음 만난 시집, 첫사랑에 관한 책 등 그 어떤 ‘첫’ 의미를 담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누군가 그렇게 추천의 글을 적어놓으면 그 책을 사서 서재에 꽂아두었다. 첫서재의 문을 여닫은 지난 스무 달 간 50여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인생의 첫 의미가 담긴 책을 노트에 남겨두고 떠났다. 단지 노트 한 권일 뿐이지만 거기에는 50가지 인생의 문이 열린 어느 시점이 빼곡하게 담겨 있는 셈이었다.
하나같이 정성스럽게 남겨두고 간 ‘인생 첫 책’들 중에 유일하게 서로 다른 시기에 온 두 손님의 추천을 공통으로 받은 책이 있었다. 19세기에 태어난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집 《섬》이었다. 추천인 중 한 명은 ‘나의 10대를 어지럽혔던 첫 번째 책’이라며 이런 글을 적어놓았다.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없으며,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인생관이 쿨하고 성숙해 보였다. 덕분에 난 점점 더 회의적인 청소년이 됐다. (중략) 막상 어른이 돼서 읽으니 소회가 달랐다. 작가도 사는 게 참 어려웠나 보다, 무서웠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그 어떤 규칙도 없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데, 우리는 공포심을 숨기고 죽을힘을 다해 규칙에 맞춰서 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을 포함해서 이렇게 미치도록 아이러니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불쌍하고 슬프고 그랬나 보다.’
10대에는 작가의 ‘멋짐’을 마냥 동경했다면, 30대가 훌쩍 넘어서는 작가의 내면과 이면을 보듬어보게 되었다는 글이었다. 또 다른 추천인은 ‘쓰게 되는 동기가 되어준 첫 책’이라고 밝혔다. 10대와 30대에 다른 모양으로 읽힐 수 있는 책, 누군가에게 글쓰기의 욕구를 불어넣어준 책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읽기 시작한 《섬》은 서문부터 남달랐다. 《이방인》과 《페스트》로 잘 알려진 알베르 까뮈가 쓴 추천의 글로 시작하는데, 이렇게까지 아름답고 지적인 추천사를 이제껏 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본문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정답을 알려주는 책보다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책에, 지식을 늘어놓는 책보다 고찰의 과정을 낱낱이 더듬는 책에 더 끌려왔다. 《섬》은 그런 책이었다. 물론 젊은 시절의 호기심과 환멸과 저항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일러주는 것 같아 다소 허무했지만, 감성과 이성을 구분하기 힘들 만큼 잘 버무린 작가의 맛깔난 설득 앞에 그 허무함마저 달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섬과 섬 사이의 간극,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외딴섬의 풍경을 마치 나의 몸속 어디인 양 이입해보기도 했다. 기대했던 ‘섬 여행기’는 아니었지만 왜 제목이 ‘섬’인지 뒤늦게 알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직장생활이라는 바다의 한가운데서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그러나 알고 보면 깊은 바닷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첫서재에서의 일상에 진득하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책 같아서 위안이 되었다.
그림책상담소 ⓒ남형석
두 번째, 조그마한 상자의 이름은 ‘그림책 세 줄 상담소’라고 붙였다. 첫서재에는 두 개의 방이 있는데 하나는 글책방, 다른 하나는 그림책방이다. 그림책방은 그림책 작가이자 테라피스트인 아내가 직접 큐레이션한 공간이다. ‘그림책 세 줄 상담소’는 거기 한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누군가 쪽지에 고민을 적어 상자에 넣어두고 가면, 그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그림책을 SNS로 소개해주고 세 줄의 상담 글을 덧붙여드렸다. 오프라인 공간을 찾은 사람이 남기고 간 고민을 온라인에서 답변해드리는 셈이었다.
처음에는 상자가 매일 텅텅 비어 있을 때가 많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쪽지도 시나브로 쌓여갔다. 예정대로 첫서재 문을 닫을 무렵에는 100장이 넘는 쪽지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중 손님들이 가장 많이 두고 간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것도, 상처로 남은 과거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비교’에 관한 고민이었다.
‘남들은 쉽게 해내는 일을 유독 나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멍청한가” 싶고 자존감이 낮아져요.’
‘제가 휴직하고 가정을 돌보며 육아를 책임지는 동안 남편은 직업적 성장을 이룬 게 눈에 보일 정도예요. 저만 제자리인 것 같아 서글퍼요.’
‘주위를 보면 모두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데 저는 언제쯤 활짝 필 수 있을까요?’
많은 손님들이 정성껏 눌러 쓰고 간 ‘비교’에 관한 마음들을 읽어 내리며, 사람의 마음을 가장 황폐하게 만드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제각기의 고민마다 제각기 다른 책을 권해드렸지만 우리가 추천한 단 한 권의 책만큼은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열매 작가님의 그림책 《구멍》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으며 속에는 더러운 것들만 들어차 있는 작은 구멍이 책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구멍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되지만, 결국 작은 자신을 직면하면서 도리어 커다란 세상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는 누구나 비교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비교하는 마음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할 수는 없을까? 결국 남보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내 안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책의 주인공 ‘작은 구멍’은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오며 체득한 바와도 같은 결말이었다.
수년간 그림책 테라피스트로 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강연과 북살롱을 열어온 아내는 이 ‘그림책 세 줄 상담소’를 운영하며 유난히 책임감과 부담감에 허덕였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한 상담이라지만 누군가 손글씨로 꾹꾹 눌러놓은 고민의 깊이를 가늠하면 한 권의 책이라도 허투루 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한 권을 추천하려면 당연하게도 수십 권을 읽어봐야 하기에 아내는 틈날 때마다 춘천의 크고 작은 도서관들을 헤매고 다녔다. 이 작은 도시에 도서관이 부족하거나 부실했다면 상담소 운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무튼 상담소를 차린 덕에 그림책 강사로서 아내의 역량도 강제로 향상되었을 테니, 우리로서는 마냥 남들에게 좋은 일만 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노트’와 ‘그림책 세 줄 상담소’는 첫서재라는 작은 공간에 더 작게 꾸린 우리만의 책 벼룩시장이었다. 다른 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이 오가는 대신 추억과 경험,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이 교환되었다는 것이다.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만들자고 했던 처음의 다짐과 완벽히 부합했던 셈이다.
첫서재 문을 닫고 직장으로 복귀한 지금도 가끔씩 처음노트와 그림책 상담소의 쪽지를 열어본다. 거기 담겨 있는 작고 귀한 마음들이, 직장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지금의 작고 여린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설사 지켜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네가 잘못된 건 아니야’라고 속삭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상담해주고자 열었던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 지금은 나를 말없이 상담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속 깊은 위로를 얻을 때마다 내심 몇 번이고 되뇌게 된다. ‘첫서재 하기를 참 잘했어’라고.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일부 인용했으며, 사연에 나온 지명 등 일부 사실은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했습니다.
남형석_기자
신문기자로 시작해 방송기자를 거쳐 뉴스기획 PD로 30대를 마쳤다. 마흔 살부터는 회사에 긴 휴직계를 낸 뒤 아무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떠나 시한부 공유서재 ‘첫서재’를 차렸다. 지금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썼다.
직장에 스무 달의 긴 휴직계를 낸 뒤,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떠나와서 차린 시한부 공유서재 ‘첫서재’(1편 바로가기The Liverary)를 차린 목적은 오직 ‘돈이 아닌 것들 벌기’였다. 10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지겹도록 돈만 좇고 살아왔으니, 잠시라도 생의 우선순위에서 돈을 배제한 채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첫서재에서 돈이 아닌 가치들이
2021년 봄. 마흔이 되어 맞이한 첫봄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고도 없는 이 소도시에 발 닿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유서재 짓기였다. 인적이 드문 구도심의 60년 묵은 폐가를 사들인 다음 몇 달을 들여 정성껏 고쳤다. 그리고 방 한 칸은 아내의 책들로, 다른 한 칸은 나의 책들로 채워 넣었다. 다른 빈틈은 우리가 그간 살아오며 사랑했던 그림과 조각과 소
이렇게 따뜻한 11월이 있을까 싶을 정도더니 12월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계절은 순식간에 바뀌어 문득, 겨울이다.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마산에 갔다. 80여 년 전 시인 백석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걸을 요량이었다. 그렇게 부둣가 어시장까지 이르렀다. 겨울 해는 이내 저물고 어둑신한 골목으로 짠물이 흘러갔다.오래 전 백석이 쓴 시를 떠올리니 어떤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