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스무 달의 긴 휴직계를 낸 뒤,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떠나와서 차린 시한부 공유서재 ‘첫서재’(1편 바로가기The Liverary)를 차린 목적은 오직 ‘돈이 아닌 것들 벌기’였다. 10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지겹도록 돈만 좇고 살아왔으니, 잠시라도 생의 우선순위에서 돈을 배제한 채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첫서재에서 돈이 아닌 가치들이 교환되거나 쌓이는 몇몇 프로젝트를 실험했다. 그중 하나가 ‘첫다락’이었다.
첫서재에는 두 평 남짓 다락방이 있었다. 책장 뒤에 숨겨진 계단을 고불고불 타고 올라가면 어른 키보다 천장이 낮은 자그마한 은신처가 나타난다. 사람 한 명 겨우 잘 만한 침대와, 지름이 세 뼘 남짓한 고목 탁자, 원목 스탠드, 그리고 책 몇 권이 거기 놓여 있다. 이곳에 일주일에 한 사람씩 손님을 초대했다. 북스테이인 셈인데, 숙박비를 지불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지금이 아닌 5년 뒤에 돈이 아닌 것들로 숙박비를 내기로 약속한 이들에게만 다락을 내어드렸다. 누군가의 미래와 현재의 공간을 교환하기로 한 셈이다.
첫서재가 예정대로 문을 닫은 지난가을까지 일흔일곱 명의 손님이 5년 뒤를 약속하고 ‘첫다락’에 머물다 떠났다. 노래를 지어주기로 한 뮤지션, 시를 선물하기로 한 문학도, 뮤지컬 티켓을 주기로 한 배우,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약속한 화가, 그리고 5년 뒤에 무엇이든 하고 있을 자신을 선물하겠다는 누군가······ 저마다 소중하게 품고 살던 꿈을 두 평의 다락방에 고이 새겨두었다.
첫다락 ⓒ남형석
첫다락 손님은 길게는 닷새까지 머물 수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오기 전에 늘 ‘잠깐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해줄 수 있는지’ 서면으로 여쭈었다. 이곳에 머물기로 한 이들의 사연과 속내가 궁금하기도 했고, 5년 뒤 숙박비를 받을 때 또렷이 얼굴을 기억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가끔 ‘조용히 머물다 가고 싶다’며 정중히 거절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개 흔쾌히 허락하고 자신의 시간과 곁을 한 줌씩 내주었다.
대화는 대부분 가게 문을 닫은 깊은 밤 시작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노란 등불을 켜고 마주 앉아 차를 홀짝이며 서로를 꺼내던 일흔 번 넘는 밤들을 여전히 선명히 기억한다. 미리 질문을 외워두거나 따로 선물을 준비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때때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서재에 있는 책을 한 권 꺼내어 손님의 손에 덥석 쥐어주기도 했다. 그 책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들이었다. 반대로 손님이 “꼭 읽어 달라”고 내게 추천해주거나 뒤늦게 소포로 보내온 고마운 책들도 있었다.
첫서재 문을 열고 맞이한 첫 가을. 앞마당 라일락나무의 이파리가 조금씩 갈색 빛을 띠다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다락방에 찾아와 나흘째 머무르고 있던 손님 A와 나는 부쩍 추워진 밤을 갓 꺼낸 전기히터로 대충 녹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누군가에게서 받은 두어 차례 귀중한 선의가 자신을 살렸기에,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늘 버려지는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손찌검을 일삼는 아빠와 살던 중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고, 몇 년 뒤 아빠도 “너희들을 도저히 못 키우겠으니 엄마한테 가라”며 곁을 떠나버렸다. 엄마와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며 얹혀살았지만 몇 달 넘게 신세를 지면 늘 “이젠 다른 곳으로 가라”며 버려졌다.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어릴 적 기억 탓에 그는 누구에게도 정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사이 바다와 가까운 동네에서 땅 한가운데 도시로, 다시 서울로 거처를 강제로 옮겨야 했다. 사회에서도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기막히게 알아내는 누군가에게 성폭력과 집단 괴롭힘을 당한 탓에 죽음까지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귀인을 만나 상담을 받고 치료와 치유를 받으며 삶을 버텨냈다고 고백했다.
밤의 첫서재 ⓒ남형석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되묻지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간접적으로 봐온 삶을 누군가는 온 피부와 가슴에 묻혀가며 살아내고 있었다. 이야기를 귀에 담은 것만으로도 어떤 생을 빚진 기분이었다. 어쩔 줄 몰라 애써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데 문득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읽었지만 첫 문장과 마지막 문단을 거의 외울 정도로 가슴에 간직하고 있던 소설 《황금 물고기》였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50대 무렵 세상에 내놓은 이 장편소설은 예닐곱 살 무렵 유괴당한 소녀 ‘라일라’의, 감히 주체적일 수 없던 삶의 여정을 좇는다.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거쳐 대서양 건너 미국까지 흘러가며 라일라는 어른이 된다. 그의 삶은 강물을 거스를 힘조차 없는 작은 물고기와 같이 이리저리 떠밀려가지만, 그의 몸을 두른 황금빛 비늘만큼은 퇴색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손님 A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그의 단단한 눈빛과 뜻 모를 기운에 이끌렸다. 그 원천을 구체적으로 밝히기엔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에게도 황금빛 비늘이 있다는 믿음을 갖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침 서재 잘 보이는 책장에 꽂혀 있던 그 책을 집어 들어 그에게 건넸다.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온 내가 어설픈 위로나 조언을 건네기보다는 소설 속 라일라를 그에게 소개해주는 편이 더 나아 보였다.
몇 달 후 첫서재에 다시 찾아온 A는 “책을 아직 못 읽었다”며 머쓱하게 웃었지만 그 소식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얻었다. 언젠가 다시 찾아와 “다 읽었다”며 웃을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내 진심을 전했으니, 우연히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으로서의 할일은 다 하였다.
계절이 세 차례 바뀌어 첫서재의 두 번째 여름이 왔다. 그 사이에도 매주 한 명씩 첫다락에 찾아와 머물다 떠났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손님 B는 그림책 작가였다. 그는 서재 창가 자리에 도화지와 팔레트를 펴고 앉아 몇 시간째 같은 자세로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카운터에 있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미로와 관련해서 제게 추천하고픈 책이 있을까요?”
“네? 미로요?”
“미로에 관한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요. 내년쯤 출간할 그림책에 들어갈 내용이에요.”
생각지 못한 주제에 당황해서 머릿속이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다독가는 아니라 단 몇 권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중 추천하고픈 책이 다행히 있었다. 미하엘 엔데의 단편집 《자유의 감옥》이었다. 정확히 ‘미로’가 등장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책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가 미궁이자 미로를 상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자유의 감옥》을 알게 된 건 지난 초겨울 찾아온 또 다른 다락방 손님 C 덕분이었다. 중학교 때 연극에 빠진 이후로 헤어나지 못했다는 손님 C는 대학생이 된 이후 직접 연출한 연극을 꾸준히 대학로 무대에 올리며 살고 있었다. 창작을 할 때 가장 영감을 받은 작품이 있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미하엘 엔데의 모든 작품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떠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세계로 서재지기님을 초대하고 싶다’며 미하엘 엔데의 책 두 권을 소포로 보내왔다. 그중 한 권이 《자유의 감옥》이었다. 그렇게 접하게 된 책을, 나는 미로를 궁금해하는 새로운 다락방 손님 B에게 건넨 것이다.
며칠 뒤, 손님 B는 ‘좋은 영감을 받았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책을 돌려주었다. 우리는 카운터 앞에 선 채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미하엘 엔데가 그려낸 상상의 미로에 대해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그는 내게 보르헤스를 아냐고 물었다.
“보르헤스의 단편집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서재지기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나는 남미 환상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를 생애 처음으로 만났다. 그의 말을 듣고 구매한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은 읽는 내내 덜덜 떨리던 내 손을 떠나 지금은 그 책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 또 다른 다락방 손님의 손에 가 닿아 있다. 두 권의 책이, 한 공간에서, 다른 시차를 두고 만난 네 명의 사람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느슨한 결속에 스밀 때마다 나는 ‘첫다락 만들길 참 잘했어’라는 낯부끄러운 칭찬을 스스로에게 건네게 된다. 돈 대신 다른 것들을 벌기로 하고 차린 책의 숲에서만 채워질 수 있는 신비한 연결고리일 테니 말이다.
※ 이 글에서 필자의 저서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일부 인용했으며, 사연에 나온 지명 등 일부 사실은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했습니다.
남형석_기자
신문기자로 시작해 방송기자를 거쳐 뉴스기획 PD로 30대를 마쳤다. 마흔 살부터는 회사에 긴 휴직계를 낸 뒤 아무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떠나 시한부 공유서재 ‘첫서재’를 차렸다. 지금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썼다.
2021년 봄. 마흔이 되어 맞이한 첫봄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고도 없는 이 소도시에 발 닿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유서재 짓기였다. 인적이 드문 구도심의 60년 묵은 폐가를 사들인 다음 몇 달을 들여 정성껏 고쳤다. 그리고 방 한 칸은 아내의 책들로, 다른 한 칸은 나의 책들로 채워 넣었다. 다른 빈틈은 우리가 그간 살아오며 사랑했던 그림과 조각과 소
첫서재는 시한부 공유서재다. 직장을 휴직하고 차린 공간이었기에 문을 처음 여는 순간부터 문 닫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주어진 스무 달 동안 책의 숲에 둘러싸여 살아볼 요량으로 만든 서재의 문을, 우리는 모두에게 열어두기로 했다. 이 작은 도시의 외진 언덕마을 가게까지 애써 찾아주는 소수의 사람과 오직 책으로만 얽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읽고 쓰는 삶
도서관을 멸망시켜야 한다지난번 마지막에 작별인사를 드렸는데, 한 번 더! 앙코르를 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번 더! 무엇을 쓸까? 지난번까지는 일본의 도서관과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책 몇 권을 소개했습니다. 주제에 맞지 않아 소개하지 않은 책도 몇 권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중 한 권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제목은 ‘찾으시는 책은(おさがしの本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