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투어’에서는 팝업스토어 견학, 전시회 견학, 특정 지역 여행기 등 기획팀의 방문 스케치와 경험담을 제공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화사하고 밝은 색채를 사용해 삶의 밝은 면을 그려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한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전시기간: 2023.05.17.(수) ~ 2023.09.06.(수)
장소: 더현대서울현대백화점 6층 ALT.1
휴관일: 백화점 휴점일과 동일
관람시간:
평일(월-목) 10:30~20:00
주말(금-일) 10:30~20:30
le boeuf sur le toit(1920) 속 Raoul Dufy 의 무대 디자인
Dufy의 석판화 (Bertin 컬렉션)_Au Temps du “Boeuf sur le Toit” 1918–1928 전시회
여러분은 ‘라울 뒤피’를 알고 계셨나요? 저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Jean Cocteau)의 발레 오페라극 ‘지붕 위의 황소(le boeuf sur le toit)’를 통해 라울 뒤피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장 콕토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시를 영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라울 뒤피의 작품 또한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감정과 색을 더해 그림으로 다양한 멜로디를 만든 프랑스의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의 작품 속으로 빠져보려 합니다.
라울 뒤피 Raoul Dufy (1877년 6월 3일 ~ 1953년 3월 23일)
라울 뒤피는 1877년 노르망디의 항구도시인 르아브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집에서 태어난 뒤피는 어릴 적부터 예술적 감수성과 창조적인 사고능력이 뛰어났는데요.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은 음악처럼 리듬과 하모니가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산책하고 탐구하면서 나는 내 그림의 본질을 찾았다. 그래서 내 작품에서는 배회의 느낌이 드러나기도 한다.
배회한다는 것은 비판 받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나는 형식의 정립과 적용보다는 연구와 분석을 더 선호해 왔다.
이러한 탐구의 즐거움을 내 주변의 이들과 나누고 싶다”
전시회는 뒤피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아틀리에에 개인적으로 보관했던 작품들로, 작가가 크나큰 애착을 가졌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전기와 빛의 시대에 대한 경외와 찬사를 환상적인 색채화 선으로 표현한 뒤피의 최대 역작인 ‘전기의 요정(La Fée Electricité)’의 연작 오리지널 작품을 포함해 총 130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요. 작품이 다양한 만큼 시대와 미술 기법에 따라 주제를 나누어 총 12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시회를 통해 20세기 전반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명이자 끊임없이 긍정적으로 예술을 바라보았던 뒤피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스페셜 투어는 축복과 기쁨의 화가라고 불리는 뒤피의 위대한 여정에 함께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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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Autoportrait
첫 번째 섹션을 여는 작품은 라울 뒤피의 자화상 세 점입니다.
매우 다른 스타일로 완성되어 있는데 이 자화상들을 통해
그의 화가로서의 긴 경력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 Impressionnisme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에 위치한 산업 항구 도시 르아브르(Le Havre)에서 태어난 그는,
초기에는 인상파의 후예로서 재능 있는 풍경 화가로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야수파> Fauvisme
1906년부터 그는 전통을 거부하고 혁명을 지향했던 야수파의 주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은 강렬한 색상과
가벼운 붓질을 활용하여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입체파> Cubisme
뒤피는 그의 친구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와 함께 입체주의 기법을 시도했으며,
폴 세잔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08년에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Marseilles)
근처 에스타크(Estaque)의 풍경을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냈습니다.
<뒤피의 민중예술> L'art des masses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민중예술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라울 뒤피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동물시집(Le Bestiaire)》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내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패션> Fasion
리옹의 유명 직물 제조업체와 협헙하게 된 그는 수많은 견본을 그려냈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와도 함께 일했습니다.
뒤피는 1920년대의 패션계를 선도하는 대표주자였고 그 자신만의 상표를 만들었습니다.
<장식예술> Arts décoratifs
이 시기에 뒤피는 데생의 분리, 자연스러움, 선명하고 투명한 색상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그림체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장식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 1924년부터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Josep Llorens Artigas)와 함께 수많은 도자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와 말> Mer et Cheval
라울 뒤피는 작은 말들로 가득한 해안가 도시의 환상적인 이미지로부터 회화적
영감을 받아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향 노르망디(Normandie)에서
경마장을 운영하여 금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여행> Voyage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라울 뒤피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그리고 미국을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풍경을 자유롭게 그려냈습니다.
<초상화> Portrait
라울 뒤피는 초상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초기부터 그는 아내 에밀리엔(Emilienne Dufy)을 모델로 삼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종 유명 인사들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케슬러 가문이 1930년에 의뢰한 기념비적 가족 초상화는 뒤피가 남긴 걸작 중 하나입니다.
<대형 벽화 장식> Décor d'une grande fresques
1930년대는 라울 뒤피가 대형 벽화 장식에 전념한 기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937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된 《전기요정(La Fée Électricité)》또한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석판화로 작업된 뒤피의 《전기요정(La Fée Électricit)》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은 본연 그대로 보존된 자연의 풍경을, 또 다른 반은 산업적인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과도기적 시대의 풍경 속에 전기의 발명과 관련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배치했습니다.
<아틀리에> Atelier de Dufy
라울 뒤피가 다루었던 독창적인 주제들 중 하나는 바로 작가 자신의 아틀리에,
특히 파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한 구엘마 스튜디오였습니다.
뒤피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만큼 작가 자신 또한 훌륭한 아마추어 음악가였으며,
이 주제는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검은 빛> Cargos noirs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검은 화물선들(Cargos noirs)》을 다룹니다.
작가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거의 완전히 파괴된 고향 항구를 묘사하기 위해
검은색 단일 색조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법은 작품이 햇빛의 방향에 따라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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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화상>
전시회는 화가 라울 뒤피의 자화상 3점으로 시작됩니다. 각각 20대, 40대, 70대 때 그린 자화상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품의 화풍이 다릅니다.
자화상, 1898
두껍게 발린 물감으로 인해 무거운 느낌을 주는 첫 번째 자화상은 인상주의 화풍으로, 빛에 의해 달라지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왼쪽과 오른쪽이 얼굴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자화상, 1948
두 번째 자화상은 야수파 화풍으로, 자화상하면 떠올려지는 색이 아닌 강렬한 색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친 붓질에 비해 다소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그림을 보는 내내 저 시기의 뒤피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자화상, 1920 - 1925
세 번째는 입체화 화풍으로, 다른 사람이 보는 자신의 외형들을 섞어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다양한 색이 쓰이지 않아 자화상을 더 깊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표현해야 할 부분들만 선으로 표현되어 그림이 담백해 보였습니다. 뒤피의 화풍은 그가 그림을 그린 이후로 계속해서 변화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술의 흐름 속에서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예술을 연구하고 표현하며 자신의 화풍을 찾았던 뒤피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2.<인상주의로부터>
팔레즈의 마시장, 1902 - 1904
마르티그의 카페 테라스, 1904
뒤피는 1899년 파리의 국립 미술학교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웁니다. 당시, 학교의 회화 교수였던 ‘레옹 보나(Léon bonnat)’의 작업실에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요.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뒤피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외젠 부댕(Eugene Boudin)’과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이 시기 뒤피의 그림들에선 구름과 바다가 주된 풍경인데 이는 부댕과 모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댕과 모네는 바다가 가진 무한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름다움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이 구름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그림에 표현함으로써 자연과 구름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생트-아드레스의 해변, 1904
생트-아드레스의 잔교, 1902
이 시기 뒤피는 빠른 붓 터치와 환한 색채를 사용해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이런 뒤피의 기법을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 ‘생트-아드레스 잔교’가 있는데요. 생트-아드레스 해변 풍경을 그린 작품 다수에서 이런 기법이 드러납니다. 빠른 붓 터치에도 불구하고 빛이 가진 매력을 섬세하게 그림에 담아내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지게 만들었습니다.
“화가가 자신의 색채로 빛을 담아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그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도록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색채가 아닌 빛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3.<야수파 라울 뒤피>
트루빌의 벽보들, 1906
에스타크의 카페, 1908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를 다니며 미술을 배우던 뒤피는 틀에 박힌 미술 수업에 회의를 느꼈고 자퇴 후 새로운 미술 기법을 찾게 됩니다. 순간적인 느낌을 살리는 묘사 등 인상주의 기법을 깊게 탐구했지만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색채 실험에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화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뒤피는 디테일하고 정확하지만 순간적인 느낌을 살리는 인상주의 기법보단 자신 내면에 있는 예술에 대한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요? 이후, 1905년에 열린 ‘앙데팡당전(Salon des Indépendants)’에서 ‘앙리 마티스(Henri Mattisse)’의 작품 《사치, 평온, 쾌락(Luxe, Calme et Volupté)》을 보게 됩니다. 뒤피는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강렬한 색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1908
르아브르의 깃발로 장식된 거리, 1906
이 시기 뒤피가 그린 그림에서 내내 ‘강렬한 색감 속에 덧칠해진 선’들을 보며 뒤피가 어느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La Dame en rose)》에서 얼굴, 표정, 손에 두껍게 칠해진 검은 선들은 그가 해당 모델을 얼마나 자세하게 담고 싶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림의 모델은 훗날 뒤피의 배우자가 되는 ‘에밀리엔 뒤피(Emilienne Dufy)’입니다. 야수파 화가들은 색을 해방시켜 영혼까지 해방시키고자 했는데요. 색을 형태에서 해방시켜 사람들의 시선을 색채로 옮긴 야수파 기법은 그림을 보는 이들의 감정을 뒤흔들었고 솔직함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색채’란, 본연의 색채가 아니라, 물감의 색, 화가의 언어를 이루는 단어와도 같은 팔레트 위의 색채를 뜻한다.”
#4.<입체파로서의 라울 뒤피>
누드 습작, 1953두 개의 붉은 항아리 조각과 동상, 1908
야수파 기법을 통해 자신의 화풍에 한 단계의 매력을 더한 뒤피는 더욱 더 다양한 기법을 찾게 됩니다. 1907년 파리에서 열린 ‘폴 세잔(Paul Cézanne)’의 대규모 회의전에서 그의 작품을 본 뒤피는 차분한 색감과 각진 형태를 이용해 대상을 조각조각 나누고 비틀어 표현한 입체파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와 함께 입체파를 발전시킨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인근의 작은 어촌마을 ‘에스타크(L'Estaque)’로 가서 폴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만의 색채 이론과 철학을 완성했습니다.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뒤피는 사물이 가진 구조와 형태를 자연이 가진 형태로 재해석해 표현했고 단순하지만 거친 터치들로 그림을 그려나갔는데요. 특히, 뒤피가 그린 누드화들은 색감보다 인물이 가진 선과 매력을 살리는데 중점을 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르세유 항구에 정박된 배들 , 1908
에스타크의 집, 1908, 조르주 브라크
뒤피는 입체파에 매력을 느꼈지만 색보다는 구조에 신경을 쓰고 무엇을 대상으로 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조각을 내서 표현하는 것이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림 작품들 중 《마르세유 항구에 정박된 배들(Bateaux à quai dans le port de Marseille)》은 입체주의 화풍에 다른 화풍들이 섞여있습니다. 정박된 배 뒤에 있는 집들은 오른쪽에 있는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 《에스타크의 집(Maisons à l'Estaque)》처럼 입체파 화풍을 풍기지만 정박된 배와 그림 앞쪽에 그려진 풀잎은 인상주의와 야수파 화풍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은 늘 잘 짜여진 계획에 따라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논리 정연함에 대한 열망,
그리고 모든 예술가들에게 잠재하는 무질서와 혼락에 대한 이끌림, 그 둘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5.<뒤피의 민중예술>
뒤피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을 연구했지만 대중들은 그의 새로운 시도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대중들에게 외면당한 뒤피는 그림을 팔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는데요. 1910년, 후원가 ‘조르주 봉장(Georges Bonjean)’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설립한 ‘메디치 재단(Villa Médicis libre)’에서 제공하는 장소에서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고 대중예술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말, 1910 - 1911
벼룩, 1910 - 1911
티베트 염소, 1910 - 1911
패션 모더니즘의 기반을 만든 초기 모더니스트 중 한 명인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와 저녁식사를 하던 중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를 알게 됩니다. 아폴리네르는 그에게 자신의 《동물시집(Le Bestiaire)》에 들어갈 목판화를 제작해 줄 것을 요청했고 뒤피는 목판화 30점을 제작하는데요. ‘동물시집’의 부제가 《오르페우스의 행렬(Le Bestiaire ou Cortège d'Orphée)》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물들의 행렬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시인이자 뛰어난 음악가였던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면 동물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고 하는데요. 시집은 ‘오르페우스 행렬’이라는 구조를 통해 서사를 표현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에게 친숙한 가축이나 포유류, 두 번째는 곤충과 벌레, 세 번째는 새 혹은 날개 달린 동물들의 행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라울 뒤피는 이를 기반으로 시집에 들어갈 목판화를 제작했습니다. 전시회에서는 목판화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의 데생본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뒤피는 텍스트와 작품 사이에 일치와 불일치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작품의 내용과 다르게 자신이 해석한 것을 삽화에 그려 넣었습니다.
잉어, 1910 - 1911
오르페우스, 1910 - 1911
뒤피는 흑백의 강한 대비를 이용해 장식적 효과를 최대한 살렸고 세세한 묘사로 꽉 들어찬 배경 위에 단순화된 형태로 동물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꾸밈없고 순수한 대중 예술이 가진 매력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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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원문]
Admirez le pouvoir insigne
Et la noblesse de la ligne :
Elle est la voix que la lumiére fit entendre
Et don’t parle Hermés Trismégiste en son Pimandre.
- <Orphée>
[국문 번역]
찬양하라 선의 탁월한 힘을
그리고 그 고결함을 :
그것은 삼장 거인 헤르메스가
포이만드레스에서 말하는 빛의 목소리.
- <동물시집, 오르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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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위해 연합한 국가들, 1915
성모 마리아, 1914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대중 예술에 대한 뒤피의 관심은 더 커졌는데요. 대중 예술의 혁신을 고민하던 뒤피는 애국심을 고양하는 선전용 그림을 그렸고, 이 작업들을 위해 19세기 초 종교와 군대를 위한 교훈적인 그림을 일반 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었던 《에피날 판화(Impression à Epinal)》를 참고합니다.
“판화를 하면서, 목판화 도구를 이용한 기초적인 방법만을 가지고도
조형적이면서 장식적인 아름다운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 1차 세계 대전 종전, 1915
《제1차 세계 대전 종전(La FIN de la GRANDE GUERRE)은 그림 속 수탉을 중심으로 전쟁으로 인해 피해 입은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탉 밑에 깔려 있는 독수리는 독일을 뜻합니다. 아침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의 상징 수탉이 독수리 위에 서 있는 것을 통해 전쟁이 끝나고 다시금 밝은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뒤피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 주변에 있는 시는 뒤피가 전쟁으로 인해 겪은 슬픔들을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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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원문]
Les peres de famille,
Les homme de vingt ans,
Les belle jeunes filles
Et les petits enfants
Chaque jour en pature
A des loups devorants
<la deuxième paragraphe>
[국문 번역]
가족의 아버지,
스무 살의 남자,
아름다운 어린 소녀와
어린 아이들이
탐욕스러운 늑대들의
먹이가 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두번째 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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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패션>
1909년에 독일 뮌헨을 방문한 뒤피는 표현주의와 뮌헨의 장식미술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후, 아폴리네르의 시집 《오르페우스의 행렬(Le Bestiaire ou Cortège d'Orphée)》에 들어간 목판화에 매료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가 옷감의 텍스타일 패턴 제작을 요청하면서 뒤피는 활동 분야를 확장하게 됩니다.
그의 말처럼 뒤피는 푸아레의 추상적인 디자인에 대담하고 감각적인 모양을 가진 디자인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푸아레는 뒤피를 통해 여성 패션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었습니다.
암사슴, 새 그리고 나비, 1912
이번 전시회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뒤피의 태피스트리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암사슴, 새 그리고 나비(Biche, oiseau et papillons)》는 뒤피의 고향인 프랑스에서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으로 한국이 최초라고 합니다. 뒤피는 태피스트리에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물의 요정, 동물, 새, 꽃, 나비 등을 주로 표현했습니다.
이 시기의 뒤피는 자연을 탐구하고 예술가같이 구상하고 장인처럼 만들자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그가 본격적으로 천을 이용한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그림에 녹여내려고 노력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새로운 세상을 경쾌하게 맞이하고자 한 게 아닐까 합니다. 대중 속으로 그리고 자신의 예술 속으로 말이죠.
“자연을 탐구하자. 예술가같이 구상하고 장인처럼 만들어내자”
#7.<장식예술>
조셉 요렌스 아르티가스(Josep Llorens i Artigas), 스페인 도예가, 1892 ~ 1890
‘폴 푸아레((Paul Poiret)’와의 협업으로 다양한 작업을 접한 뒤피는 유명한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를 알게 되면서 도자기를 제작하게 됩니다. 1924년 카탈루냐 출신 도예가 ‘조셉 요렌스 아르티가스(Josep Llorens i Artigas)’와 만나게 되면서, 꽃병, 타일 등을 200여개 생산합니다. 뒤피와 아르티가스는 현대 미술이 일상적인 사물 형태로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시도했습니다. 1930년부터 1950년대는 도자기 장식을 탐구하는 화가들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를 대표하던 화가 샤갈, 피카소, 호안 미로는 3차원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에 반해 뒤피는 회색, 빨간색, 황토색 등 흐릿한 색을 많이 사용했고 색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조개껍데기를 든 목욕하는 여인, 1925
전원 음악회. 1948
거실의 정원, 1877 ~ 1953
위에 보이는 《거실의 정원(Jardin d'appartement)》은 어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채셨나요? 거실의 정원은 뒤피가 아르티가스와 함께 작업한 ‘화분’입니다. 저는 미니 분수 혹은 어항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분이었다니!!! 이처럼 뒤피는 새로운 예술을 선도하는 예술가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오르페우스의 화병, 1938
또, 뒤피가 아폴리네르와 작업했던 ‘동물시집’의 소재를 사용해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그려 넣은 화병을 볼 수 있는데 작품의 중심이 되는 코끼리와 하프를 연주하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시대의 취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가들이고, 대부분의 장식가들은 예술가를 뒤쫒아 갈 뿐이다.
오늘날의 장식가들은 야수파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강렬한 색채, 변형, 아라베스크 문양에 대한 취향이 장식화와 벽면 장식에서 두드러진다”
#8.<바다와 말>
뒤피는 그가 나고 자랐던 고향의 해안선과 맞닿은 영불해협의 여러 풍경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얻었고, 1904년부터는 남부의 햇볕이 내리쬐는 지중해의 경치가 그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었습니다. 항구도시인 노르망디의 르아브르(Le Havre)에서 자란 뒤피는 그 영향으로 자신의 작품에 해안선을 많이 그렸습니다. 전통적인 원근법의 형태에서 탈피한 가공의 지형을 중시하면서 헤엄치는 여인과 우의적 비유의 형상들, 조개. 화물선, 범선 등 여러 가지 세부 묘사가 넘쳐나는 자신만의 해안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영불해협: 영국과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의 수로(水路)
*해안선: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선
암피트리테, 1925
암피트리테, 1930
암피트리테, 1935 ~ 1953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정령’이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내인 ‘암피트리테(Ἀμφιτρίτη)’를 그린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바다라는 주제와 관련해 물놀이하는 여인의 형상을 수많은 작품에 표현했는데 특히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를 표현하는데 있어 보다 주제를 확장시켜, 귓가에 조개를 가까이 대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아우성치다’라는 뜻을 가진 ‘암피트리테’의 이름에 맞게 작품들은 바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특유의 기품이 있는 아우라를 내뿜는 듯 했는데요. 그림을 보고 있으니 뒤피가 태어나고 자랐던 르아브르의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영하는 붉은 빛 여인, 1925
깃발 달린 화물선과 요트 경기, 1937
해안가의 말들, 1925
바다가 보이는 창문, 1920 - 1922
조개껍데기가 있는 대수육도, 1920 - 1925
도빌의 경주마 예시장, 1930
작품을 둘러보다 보면 조개와 여성이 함께 그려진 작품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포세이돈이 그녀에게 진주와 함께 조개껍데기로 만든 왕관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그림에 표현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봤습니다. 1923년부터, 뒤피는 작품에 ‘승마’라는 주제를 바다와 결부시켜 표현했습니다. 폴 푸아레의 자극 아래 다양한 영향을 깨닫고자 1922년 경마장을 자주 방문했는데 군중, 말, 움직임의 광경에 미적 아름다움을 느꼈고, 이를 작품에 표현했는데요. 당시, 부유층들이 승마 그림을 좋아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상주의 기법을 쓴 그림과 현재 그림을 보면 뒤피의 회풍이 아주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이때부턴 형태에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색을 칠해 선들이 디테일 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 또는 멀리서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때부터 뒤피의 그림은 원근법이 사라지고 평평해졌는데 드디어 뒤피만의 기법이 생겼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근법은 구성의 모든 요소들 사이를 이어주는 기술이다.
사물을 수직으로 배치하는 것보다 모든 사물을 감상자의 시선과 평행하게 배치시켜 중심을 꿰뚫는
소실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표현의 힘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9.<여행>
뒤피는 1922년 3월부터 5월까지 갔던 이탈리아에서 많은 영감을 받게 됩니다.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를 방문한 뒤피는 남쪽의 짙고 일정한 빛을 통해 고전적인 풍경을 발견하고 이를 다채로운 색채로 자신이 마주했던 풍경들을 그려냈습니다.
아빌라의 풍경(스페인), 1949
칼타지로네(시칠리아), 1922 - 1923
타오르미나의 고대 극장, 1923
이탈리아 여행 이후, 자유분방한 선과 명쾌한 색채성을 합성한 장식적 양식을 확립했는데요. 유화 외에 수채화도 뛰어나 많은 명성을 얻었고, 여행을 통해 고대에서 영감을 받아 해양 세계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도 많이 그렸습니다. 뒤피는 윤곽선을 사용하여 형태를 구분하고 수채화로 색상을 채웠는데, 이 때문에 작품 속 장소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랑그르의 귀리밭 수확, 1935
랑그르의 수확, 1933
프랑스 남부 지역이나 영국에서 머물며 그린 작품들에서도 자유로운 풍경화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방스를 처음으로 방문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는데요.
“여기서 빛에 대해 개안하지 못했다면 나는 인상파나 야수파의
아류화가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을 것”
뒤피는 여행 이후 자신이 느꼈던 것을 토대로 ‘빛이야말로 색채의 원천이며 빛이 없는 색채는 생명을 잃은 무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 시기부터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빛의 향연으로 눈부시다는 평을 받습니다.
#10.<초상화>
1920년부터 1930년대까지 당대 최고의 초상화로 알려졌던 뒤피의 작품엔 당대 유명한 문학 작가들과 사교계 유명 인사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또, 뒤피의 부인이었던 ‘에밀리엔 뒤피(Emilienne Dufy)’도 모델로 자주 등장했는데요. 실제로 부인의 초상화를 시대별로 그려줄 만큼 사이가 좋았습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1908
에밀리언 뒤피의 초상,1916
야수파에 빠졌던 시절 그린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La Dame en rose)》은 에밀리엔과 결혼하기 전 그린 작품인데 결혼 후 1916년에 그린 《에밀리언 뒤피의 초상(Mme Dufy)》을 보고 있으니 둘 사이에 흐른 세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처럼 손이 가장 먼저 보였는데요. 다른 부분들에 비해 검은색 선이 진하고 두껍게 그려진 듯한 손을 보니 뒤피가 자신의 부인 에밀리엔의 손을 많이 좋아한 것은 아닐까요?
젊은 여인의 초상, 1930
남자의 초상, 1930 - 1933
피에르 제스마의 초상, 1932
인상주의부터 야수파, 입체파 등 다양한 화풍을 연구하고 연습했던 것이 결실을 맺은 듯, 이 시기에 그렸던 초상화들은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뒤피가 말했던 빛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숲속의 말을 탄 사람들, 1931 - 1932
1930년에 영국 석유회사의 소유주 ‘장-바티스트 케슬러(Jean-Baptiste August Kessler) 가족’의 그림을 그리면서 뒤피는 초상화 작가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는데 해당 작품은 뒤피의 작품 중 이례적으로 크기가 컸던 대형화였습니다. 대형화 작품인 만큼 케슬러 가문의 사유지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자유로운 화풍으로 작풍을 완성했지만 얼굴이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아 케슬러가 만족하지 못했고 이후 그림 하나를 더 그렸다고 합니다.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뒤피의 첫 번째 버전이고, 두 번째 버전은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그 실재의 힘을 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11.<대형 장식 벽화>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뒤피의 최대 역작이라 불리는 《전기 요정(La Fée Électricité)》’입니다. 《전기 요정》은 193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때 ‘전기관’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던 작품입니다. 전기와 빛의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기술에 바치는 경의를 표현한 것으로 전기가 인류에게 가져온 눈부신 발전에 대한 찬미를 그려냈습니다.
전기 요정,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루크레티우스, 1570
뒤피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시이자 철학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la nature des choses)》에서 크게 영감을 받았습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신에게 배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의 낡은 사상을 버리고 인간 중심의 근대가 탄생할 수 있도록 원자, 영혼 그리고 자연현상을 다루는 도서입니다. 작품의 가운데 부분을 보면 뒤피가 루크레티우스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상단에 있는 번개의 신 제우스, 전기의 요정인 아이리스를 통해 신들의 도움을 받아 전기가 만들어진 것과 하단에 그려진 110명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누리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말이죠.
뒤피는 만국박람회가 끝난 후 <전기 요정>이 창고에 보관되어 대중들과 멀어지자 이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후 대중들을 위해 석판화로 다시 제작했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전기요정>은 석판화 제작 이후 뒤피가 직접 과슈로 채색한 작품이자 유일본입니다. 기존 뒤피가 제작했던 석판화의 경우엔 검은색 드로잉선을 볼 수 있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전기 요정》은 검은색 드로잉 대신 색상이 입혀져 있습니다.
“인간 종족이 대게는 쓸데없이 걱정의 우울한 파도를 굴리고 있음도 입증했다.
왜냐하면 마치 아이들이 맹목의 어둠 속에서 떨면서 모든 것을 겁내듯, 우리도 때로는 빛 속에서
그렇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몸서리치면서 그려보는 것보다 조금도 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루크레티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中-
#12.<아틀리에>
1909년 파리에 있던 첫 번째 아틀리에부터 1940년 프랑스 남부 ‘방스’와 ‘페르피냥’ 지역의 아틀리에에 이르기까지 뒤피는 자신의 창작 활동의 무대였던 공간을 작품으로 삼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틀리에를 다룬 그의 작품에선 이젤과 캔버스 그리고 붓과 같이 그림을 그리는 도구들이 묘사되었고 각 아틀리에마다 특유의 색을 부여했습니다.
방스 아틀리에의 누드, 1943겔마 거리의 아틀리에, 1935
방스 아틀리에를 그릴 때는 주로 붉은색이 띄는 오렌지색을 사용했고 파리의 아틀리에엔 밝은 파란색을 사용해 낮 시간대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성벽에 둘려싸여 중세시대가 떠오르는 방스는 성벽에 햇살이 반사되어 돌 특유의 색을 머금고 창문을 통해 빛을 반사하는데요. 그 빛이 뒤피가 사용한 붉은색의 오렌지색과 닮았습니다. 파리는 건물 사이사이가 생각보다 띄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잘 보이는데요. 뒤피는 각 지역에서 자신이 바라보았던 하늘의 빛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붉은 바이올린, 1948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 1952
또,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뒤피는 굉장한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페르피냥 지역에 머무를 당시에는 악기 연주자, 관현악단이 등장하는 작품을 주로 그렸습니다. 간결하면서 색채가 돋보이는 그의 걸작 ‘붉은 바이올린’ 상단에 ‘라울 뒤피의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작업 방식에 내재한 음악성을 화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테라스를 향해 나 있는 커다란 창문 너머로 장관이 펼쳐지는 나의 아틀리에는 무척이나 훌륭하다.
좋은 모델과 나의 아틀리에를 배경으로, 바라건대 놀라운 연작들을 그려낼 것이다.”
#13.<검은 빛>
‘동물시집’목판화 작업 이후 검은색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뒤피는 1920년대부터 풍경화에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빛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눈이 먼 상태를 어두운색으로 표현했는데요. 특히, 류마티스 관절염의 첫 발작을 느낀 1937년부터 195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렸던 작품들에 검은색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심한 류마티스를 앓았던 뒤피는 병약해진 자신의 몸을 보며 우울해했고 그림에 검은색을 사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검은 화물선, 1950
투우, 1949
첫 번째 작품인 ‘생트 아드레스의 검은 화물선(Cargo noir)’은 한쪽에는 환하고 밝은 풍경이 펼쳐지지만 다른 한쪽에는 검고 거대한 배가 바다에 떠있는데요. 첫 번째 작품 이후 그의 그림 속 검은 화물선은 점점 더 짙은 검은색으로 그려졌고 밝은 풍경이 그려진 면도 있지만 해당 부분에도 검은색과 짙은 계열의 색들이 섞여 두 공간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느낌을 들게 만듭니다.
생트-아드레스의 검은 화물선, 1948-1952
검은 화물선, 헤엄치는 여인들과 해안가 천막들, 1949
이후, 그의 그림에선 검은 화물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검게 칠해져 있는데 이 무렵 그의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눈이 부셔 그림을 그리는 것을 힘들어했다고 합니다.이 시기에 그가 그린 작품을 보며 평생 빛이 가진 색을 찬미했던 작가가 죽음을 기다리며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검은색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은,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듯 뒤피는 자신이 보았고 느꼈던 모든 색을 한곳에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일 고점에서의 태양은 검은색이다.
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검은색은 지배적인 색이다.
검은색으로부터 출발해서 색채들의 대비를 통해 빛을 발견하는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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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은 이들에게 빛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던 라울 뒤피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뒤피는 ‘빛’이 색의 원천이자 빛이 없는 색채는 생명을 잃은 무기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를 그의 작품들 속에 녹여냈습니다. 그가 처음 화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만난 인상주의의 출발점은 빛이었습니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사용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빛이라는 하나의 색채에서 시작된 뒤피의 여정은 그가 만났던 빛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끝낸 여정을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의 빛은 여러분들에게 각각 어떤 색체로 보이고 있나요?
뒤피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말한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가 생각납니다. 우리 삶에서 ‘쾌락’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일반 사람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방탕한 이들이 즐기는 향락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쾌락’이 가진 본뜻은 몸에 괴로움이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 ‘아타락시아’라고 하는데 뒤피의 작품은 ‘아타락시아’ 그 자체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생에 아름답지 않은 날도 있었겠지만 아름다운 날을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이 행동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그의 작품이 오랜 시간 흘러도 사랑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행복과 삶에 대한 아름다움 즉, 아타락시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 아닐까요? 뒤피의 그림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온 삶을 통해 그려냈던 아름다움 앞에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내면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통해 평안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뒤피가 말하고자 했던 행복 그 자체 아닐까요? 행복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목표이자 가장 아름다운 행위니까요.
“행복은 어떤 눈길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바라보며 걷고 있는 이 길을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세상도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오늘의 스페셜 투어 어떠셨나요?
우리는 종종 삶을 바라볼 때 자신이 가진 것들 중 가장 볼품없고 아픈 것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스페셜 투어’에서는 팝업스토어 견학, 전시회 견학, 특정 지역 여행기 등 기획팀의 방문 스케치와 경험담을 제공합니다. 다시 우리네 일상으로! 함께하는 도서관2022 제59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 방문기 지난 2년간 온라인에서 진행되었던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가 드디어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제59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는 2022년 10월 12일
‘스페셜 투어’에서는 팝업스토어 견학, 전시회 견학, 특정 지역 여행기 등 기획팀의 방문 스케치와 경험담을 제공합니다. 아오테아로아(Aotearoa)가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길고 하얀 구름의 땅’이란 뜻을 가진 ‘아오테아로아’는 뉴질랜드를 가리키는 말로, 뉴질랜드(New Zealand)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사용하는 마오리어 이름입니다. 본래 마
‘스페셜 투어’에서는 팝업스토어 견학, 전시회 견학, 특정 지역 여행기 등 기획팀의 방문 스케치와 경험담을 제공합니다. 함께 즐기는 복합문화플랫폼성동구 ‘스마트문화편의점’ 문화와 예술, 기술과 사람이 모인 이곳 성수동에는 조금 특별한 편의점이 있습니다. 이 편의점은 물건이 아닌 문화를 제공하는 편의점입니다. 🚶🏻♀️🚶🏻♀️ 성수역 4번 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