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없는 것이 있을까? 없는 것이라곤 단지 없는 것 아닐까? 일찍이 “도서관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라고 갈파했던 이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환상적 리얼리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였다. 그는 세상이 미궁이고 현실이 미로 같다고 생각했던 작가다. 그가 보기에 신은 매우 정교한 설계도를 가지고 미궁의 세상을 만들었다. 따라서 인간이 제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의 눈으로 세계를 성찰하고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의 질서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오히려 불완전하고 무질서하며 혼돈스런 사실들만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세계는 영원한 미궁인데, 인간은 그 미궁의 설계도를 훔쳐낼 수 없기에, 겸허하게 미궁 속의 존재임을 수긍하는 게 낫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은 어떻게 열릴까. 보르헤스가 보기에 인간의 길은, 도서관을 통해서 어렵사리 그 가능성을 탐문할 수 있다.
189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았던 아버지의 도서관에서 태어난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유년을 보냈고, 하급 사서에서 국립도서관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는 거의 도서관을 배경으로 엮였다. 그러니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어 도서관에 묻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도서관의 작가’였다. 1936년 보르헤스는 미겔 까네 시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정리 업무를 맡았는데, 일찌감치 그 날 할 일을 마치고 지하서고에 내려가 홀로 책 읽기를 즐기며 끊임없이 글을 써나갔다. 그에게 도서관은 책 ‘읽는’ 마을이자, 책(이) ‘익(어가)는’ 마을이었던 셈이다. 그의 삶은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쓰는 일이 ‘혼돈 속의 질서’처럼 격렬하게 융합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을 창안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 읽는 인간(Homo Legens), 허구적으로 꾸미는 인간(Homo Fictus)이 서로 스미고 짜이며 끊임없이 갈라지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빚어냈다. 그러면서 세상이란 미궁으로부터 비상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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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일 수밖에 없는 세계를 보르헤스는 도서관 혹은 책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을 무한한 우주라고, 책을 신이라고 적는다. 인간이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신이 쓴 책을 다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가능하랴. 그러니 우주와 세계는 영원히 미궁일 수밖에 없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이 다름 아닌 바벨의 도서관인 것도 까닭이 있다. 바벨은 아시리아 말로는 신의 문을 뜻하지만, 히브리 말로는 혼돈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벨의 도서관이란 “우주의 신비가 담겨진, 그러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신비를 알 수 없는 혼돈스런 도서관”이다.
보르헤스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이 우주”, “도서관이라 불리는 무한공간의 미로”와 같은 표현을 즐겨 썼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라고, 심지어 “미래 세계의 상세한 역사”까지 있다고 상상했다. 그러니 도서관은 무한하며, 혼돈스럽다. 카오스(chaos, 혼돈)와 코스모스(cosmos, 질서)의 합성어인 카오스모스(chaosmos)의 공간이 도서관이다. 그러므로 호모 레겐스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나가는 구도자와 비슷하다. 그들은 도서관-우주에서 늘 새로운 꿈을 몽상한다.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꿈꾼다. 세상의 모든 호모 레겐스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상 발전소를 가동하는 창의적 독-작자들이다. 예전에 보르헤스가 그랬듯이.
대학도서관에는 없는 것이 늘어난다
그런데 요즘 대학도서관에는 없는 것이 많다. 점점 더 많아진다. 무엇보다 예산 사정 때문이다. 10년 넘게 계속되는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인해 축소 지향의 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대학 상황에서 도서관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학술 DB를 비롯한 자료구입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그나마 대학도서관진흥종합계획에 힘입어 최근 5년간 대학도서관 소장도서는 다소 증가했으나, 북미 대학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도 못 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자료에 따르면, 북미 대학 116개 도서관이 포함된 연구도서관협회(Association of Research Libraries, ARL) 회원교 재학생 1인당 소장도서가 211권인데 비해, 국내 상위 20위권 대학의 경우 93.5권에 불과하다. 재학생 1인당 자료구입비는, 북미대학이 2019년 476,000원에서 2023년 660,000원으로 38.7퍼센트 증가하는 동안, 국내대학은 2019년 100,000원에서 2023년 113,000원으로 13퍼센트 느는 데 그쳤다. 5년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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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학도서관의 자료구입비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전자자료에 대한 요구가 늘고 비용이 증가하면서 전자자료 구입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에 전자자료 67.5퍼센트, 인쇄자료 포함 기타 자료 32.5퍼센트 정도였는데, 2023년에는 73.5퍼센트:26.5퍼센트로 격차가 더 커졌다. 전자자료 구입 비중이 3/4을 차지한다고 해서 충분한 것도 아니다. 해마다 전자자료 가격은 상승하고 있기에 같은 예산이라면 구독 종수를 불가피하게 줄일 수밖에 없다. 아예 전자자료를 구독하지 못하거나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대학도서관도 없지 않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대학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일부 지원해주고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 지원 범위와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 2021년 국가 지원 예산이 175억 원이었는데 2022년에 228억 원으로 증액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지만, 이 예산으로는 대학도서관의 정보 가뭄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하고 보니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는 전자저널 및 연구자료를 공공재로 간주하여 지역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대학라이선스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또 국가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에서도 대학에서 연구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Science Direct, Wiely 저널만이라도 국가가 전액 부담해주기를 요구했다.
당장의 전자자료 예산도 문제고 그로 인한 정보 불균등 현상도 문제이지만, 중기적으로는 학술 지식 정보의 생산-유통 과정에 대한 체질 개선도 도서관의 주요 현안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액세스 학술자원의 적절한 환경 구축은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인해 OA 인프라는 아직 취약한 편이다. 국내 상위대학의 논문 1편당 인용 수 비교 결과 OA 논문(14.9)이 일반논문(9.1)의 약 1.6배로 나타났다. 이런 통계는 OA 출판 시 대학평가와 연구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요컨대 전자정보자원 공동 구독을 지원하는 대학라이선스 사업의 안정적 확대 혹은 국가 DB 시스템 대폭 구축, 그리고 대학라이선스 사업 연계 등을 통해 학술정보자원 오픈액세스 지원 체계 조기 구축 및 활성화가 요긴하다. 전자자료 예산 쪽에서 숨통이 트여야 종이책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래야 학술문화 생태계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대학도서관에서조차 좋은 학술도서를 구독하지 않는다면, 그런 책들이 더 이상 출판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학술 생태계가 심하게 위축될 것이 뻔하다.
창의발전소, 희망발전소를 향한 대학도서관의 꿈
두루 아는 것처럼 최근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아 대학도서관이 주축이 되어 미래 교육과 연구 혁신 및 도서관 이용자 모두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대학도서관은 추구한다. 이런 미래 비전을 진실하게 열어나갈 때 대학도서관과 이용자가 함께 공진화할 수 있겠다. 그래야 보르헤스가 상상했던 ‘바벨의 도서관’에 근접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보르헤스 같은 행복한 호모 레겐스들이 도서관을 무한대로 즐기며 창의적 가능성을 확대 심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학도서관은,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이 학술적인 문제를 포함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새롭게 발견하고 기획하고 해결하는 ‘창의’발전소, 개인과 공동체의 미래를 더 활력 있고 긍정적으로 열어나가는 ‘희망’발전소가 될 수 있기를 꿈꾼다.
우찬제_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대학교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2023), 《책의 질문》(2023), 《애도의 심연》(2018), 《나무의 수사학》(2018), 《불안의 수사학》(2012),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시대의 상상력》(2010), 《고독한 공생》(2003), 《타자의 목소리》(1996), 《상처와 상징》(1994), 《욕망의 시학》(1993) 등을 썼고, 대산문학상, 팔봉비평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엔 기후 침묵을 넘어 기후 행동을 위한 생태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탐문하는 환경인문학을 모색하면서, 문학과 문화 교류 양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역사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작별하지 않는다》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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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를 그린 원종국의 ‘믹스언매치’ 연작살바도르 달리의 화실에 밀레의 만종 실물 액자가 걸려 있었다면, 이제 우리 시대의 한국 작가 원종국의 서재에는 디지털 액자가 있고, 거기엔 언제나 달리의 그림들이 흐른다. 특히 대단히 인상적인 원종국의 ‘믹스언매치Mix-and-Match’ 연작 안에 삽입된 살바도로 달리의 디지털 액자 그림들은 소설의 기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