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완전 개가식 운영 대학도서관인 서강대 로욜라(Loyola) 도서관은 정말 새로운 우주와 같았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신입생에게 엄선된 수많은 장서들은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다가왔다. 이렇게 많은 책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이름만 들어봤던 책들이 서가에서 수두룩 빛났고 생전 처음 보는 별들은 낯설면서도 반갑기만 했다. 서가에서 무엇엔가 홀린 듯 끌려 책을 펼치면 눈이 부시고 가슴이 일렁거렸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생각에 잠기다 보면 훌쩍 어두워졌다.
서강대학교 로욜라 도서관.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
별들은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는가 하면 비슷한 주제로 묶여 은하계를 이루었다. 서가들을 어슬렁거리다가 보면 문득 다른 주제의 서가에 있는 별들이 함께 엮이면서 또 다른 은하계가 나에게만 신비롭게 등장했다. 처음에는 흐리고 막연했던 은하계가 점점 더 명징하고 영감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면 나는 어느새 섬세하고 강력한 우주 탐사선이 되었다. 언젠가 이 신비하고 장엄한 우주 속에서 나도 또 다른 우주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경외감에 압도되면서 동시에 희망과 기대로 가득 부풀었다.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 감동을 기반으로 이용자인 인간을 또 다른 우주로 만드는 마법의 공간이다. 이를테면 도서관에는 서가와 같은 물리적 공간 말고도 수많은 공간이 존재한다. 즉, 저자가 책 속에 펼치는 서술과 상상 공간, 그 공간 안에 깃들인 저자의 내면과 감성 공간, 책을 통해 이들을 헤아리고 탐색하는 독자의 수용 공간, 여기에 도서관의 운영 방향을 좌우하는 해당 대학과 도서관 운영자들의 의식 공간 등. 이러한 사실과 해석, 서술과 상상, 의식과 감성의 공간은 책을 중심으로 수많은 매체들과 함께 도서관을 무한한 우주 창조의 공간으로 만든다.
책으로 가득찬 우주에 도킹하다
호주의 작은 도시인 애들레이드. 인구 100여 만의 작은 도시에 150년 전통의 역사를 자랑하는 애들레이드 대학교가 있다. 이 도서관(University of Adelaide Library) 또한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한다기에 직접 찾아갔다. 도서관 입구가 평범한 지하철역 입구 같았다. 하지만 이내 깜짝 놀랐다. 정면 벽에 애들레이드 대학도서관에 재직 중인 ‘연락 사서(liaison librarian)’들의 이름과 전공 주제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호주 역사나 해양생물학, 민속학 같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특별한 주제들도 있었고 영문학, 세계대전, 사회주의 및 파시즘, 여성 및 젠더 연구, 유토피아 사회, 컴퓨터 과학 등 일반적인 주제들도 있었다.
‘연락 사서’는 우리나라에서 주제전문사서(Subject Specialist Librarian)에 해당한다. 문헌 검색과 데이터 관리 등을 교수진과 학생에게 전문적으로 연구 지원한다. 또한 연구 기술, 정보 활용 능력, 도서관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워크숍과 세미나를 실시한다. 이들은 도서관이라는 우주에서 또 다른 우주가 되고 싶은 교수나 학생에게 주제 관련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하며 우주 정거장과 같은 동반자 역할을 한다. 이들이야말로 애들레이드대학교를 비롯한 모든 대학 도서관의 존재 의의를 구현한다.
애들레이드 대학교의 연락 사서 소개, 사진 출처 : 애들레이드 대학교 홈페이지
그렇다. 사서는 살아 있는 도서관이다. 대학 시절에 완전개가제 도서관을 더욱 근사하게 만든 것도 사서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신입생이라면 필수로 들어야 하는 도서관 이용법 과목을 통해 사서 선생님들은 도서관이 유한하면서도 얼마나 무한한 우주인지, 또한 무한의 무한을 어떻게 창조하는 공간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수업은 한 시간의 이론과 지식, 방법 제시와 함께 한 시간의 도서관 실습으로 진행되었다. 완전개가제 대학도서관이라는 엄청난 우주를 본격적으로 즐기고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방법들을 머리로 이해하게 하고 발로 진지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무엇이든 정확하고 빠르게 찾으려면, 특히 무엇보다도 특정한 주제를 풍부하게 떠올리고 더욱 효과적으로 살펴보려면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서 선생님께 물어보는 것이 지름길임을 깨달았다. 요즘에는 도서관 이용법 외에도 다양한 도서관 서비스들이 많다. 그 모든 서비스들은 사서 선생님들의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식을 채우고 배를 채우다
입구가 가까워지자 향긋한 내음이 밀려 왔다. 저절로 코가 벌름거렸다. 갓 내린 커피, 부드러운 빵, 풋풋한 채소……. 점점 더 익숙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정사각형 모양의 도서관은 1층 면적이 교실 여섯 개 크기나 될까, 도서관치고는 소규모였다. 하지만 4층 정도의 천장 높이까지 통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어 널찍한 느낌이 들었다. 강화유리로 된 천장 가득히 겨울 햇살이 따뜻하게 쏟아졌다. 바퀴 달린 묵중한 서가들 아래로 햇살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한없이 풍성하고 따뜻했다.
서가들 옆으로 투명한 아크릴 가림벽이 낮고 길게 서 있었다. 그 너머로 늦은 아침이거나 이른 점심을 드는 이용자들이 보였다. 혼자 책장을 넘기면서 식사를 하거나 두세 명씩 모여 식탁 위에 책을 올려놓은 채 우물거리며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밥을 먹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의문과 사념이 이어졌다. 도서관과 식당은 왜 굳이 삭막한 콘크리트 공간으로 서로 분리되어 왔을까.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진정으로 체감하는 순간은 음식을 먹다가 어느새 책읽기에 몰두할 때가 아닐까. 방금 읽은 책에 대해 조금은 소란스럽게 떠들어도 되는 도서관, 이곳에서 열리는 토론회, 전시회, 워크숍 등의 행사들은 얼마나 신바람 나고 기대 가득할까. 이러한 도서관을 품은 지역사회는 또한 얼마나 활기차고 여유롭게 사람 사는 내음을 그득 뿜어낼까. 누가 이런 깜찍한 생각을 실현시켰을까. 식당이 있는 도서관은 이제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도서관은 그저 조용히 책을 읽는 열람실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도서관은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배움과 소통, 여가가 함께하는 즐거운 우리 삶의 공간이다.
올해 도서관과 독서 관련 국가 예산이 대폭 깎였다. R&D 예산을 대폭 깎아서 과학기술계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게 된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과 국가 미래 경쟁력에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가뜩이나 별로 많지도 않은 예산마저 삭감하니 거의 폭력적이라 할 만하다. 대다수의 대학도서관만 해도 수많은 발전을 했지만 20년도 넘은 과거의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도서관 수준 정도의 주제전문사서들조차 여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은 최근에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도 보완하고 해결해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다.
여기서 도서관 전문가인 사서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도서관이 우주라면, 사서는 우주를 운영하는 현장 책임자다. 향긋한 북유럽의 도서관, 박사급 전문가 사서들이 기다리는 남호주의 대학 도서관, 신입생에게 도서관 이용법을 가르치며 도서관에서 평생 꿈을 꾸게 하고 새로운 상상과 창조를 자극했던 대학도서관…….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훌륭한 도서관들을 만든 것은 언제나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서 덕분이었다.
인도의 유명한 도서관학자인 랑가나단이 도서관은 유기체로서 진화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설파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에는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사서의 지혜와 노력이 끊임없이 병행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당연히 사서는 언제나 존경받아야 한다. 또한 사서는 그 이상의 유능과 헌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사서가 누리는 왕관은 존경과 사랑이며, 감수해야 하는 왕관의 무게는 유능과 헌신인 셈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항상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하며 스스로 공익적으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모든 도서관은 과거를 이으면서 현재에 발을 딛고, 미래를 향해 언제나 완전하면서도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한다.
허병두_한글문화사랑 더나더나 대표
숭문고의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열린 교육과 학교도서관」(1992)과, 「정보화 시대의 학교도서관 만들기」(1999)를 동료와 함께 출판하며 학교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궁극적인 독서교육은 자신의 삶을 주제로 책을 쓰며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어교사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정년퇴직했지만, 그동안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 교육부 학교도서관진흥위원,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 정책기획위원장 등의 활동으로 교육 분야에 이바지했다.
. 올해 퇴임을 한 후에도 책따세와 더나더나 대장장이로 지속적인 저작권 기부 운동 등을 통한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설립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서가 만나본 MZ세대가 도서관에 바라는 것도서관은 어떻게 다양한 청년들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 “오니까 재밌네”, 청년층을 끌어오는 색다른 프로그램필자가 지역에서 도서관 밖에서 진행되는 사적인 청년 모임을 기획, 운영하며 참가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오니까 재밌는데, 오기 전에는 행사에 참여하기가 꺼려졌다.” 혹시 사이비나 수상한 단체는
호기심 가득한 한 시인의 포르투칼 도서관 탐방기성 나자로 도서관의 오각형 방을 지키는 가지각색의 이용자들 포르투갈 여행 중 리스본에서 지내는 동안 성 나자로 도서관을 자주 방문했다. 성 나자로 도서관은 리스본에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으로서 왠지 친근했다. 숙소에서 도서관까지 걸어서 약 30분이다. 하지만 언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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