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마을과 출판단지로 유명한 파주의 도서관다운 발상이 아닐까? 미술 도서를 함께 읽고 그림도 그리는 파주중앙도서관의 ‘북그리미’ 동아리를 만나, 독자이자 화가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파주중앙도서관은 파주출판도시로부터도, 헤이리예술마을과도 20분 거리의 공평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지상 5층, 지하 1층의 규모에 현대적인 외관부터 인상적인 파주중앙도서관은 약 14만 4천 권에 달하는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파주중앙도서관 전경
그리면서 완성하는 제2의 삶
외부로 활짝 열린 테라스가 인상적인 파주중앙도서관 5층에는 매월 둘째, 넷째 주 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파주중앙도서관의 ‘북그리미’ 동아리 회원들이다. 미술 관련 도서를 함께 읽으며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사이 새로 그린 그림을 선보이며 품평회도 한다.
“2016년 첫 발을 디딘 ‘북그리미’ 동아리는 어느덧 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한달에 두 번 있는 모임에서는 미술도서를 읽거나 그간 새로 그린 그림을 수줍게 공개한다.
주로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지만, 때론 날카로운 지적과 조언도 부드럽게 건넨다.”
미술 도서를 읽고 있는 북그라미 회원들
오늘의 도서는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
미술 도서를 읽을 때 회원들의 표정은 학창 시절의 그들을 떠올리게 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새로 그린 그림을 수줍게 공개할 때도 밝고 맑은 아이들처럼 재잘거린다. 주로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지만, 때론 날카로운 지적과 조언도 부드럽게 건네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품평회이다.
그림 품평회를 하고 있는 ‘북그리미’의 회원들
품평회를 위해 전시된 작품들
2시간이 부족한 왕성한 동아리 활동
파주중앙도서관 ‘북그리미’ 동아리의 진짜 활동은 함께 모이는 2시간 외에 각자의 시간 동안 이뤄진다. 회원 모두가 일상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고 부지런히 드로잉하고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모인 2시간 동안에는 주로 책 읽기와 품평회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재연 북그리미 회장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이다.
며느리의 추천으로 ‘북그리미’를 알게 됐다는 이재연 회장은
2019년에는 어린 시절 풍경을 그린 그림과 이야기를 모은 그림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관 1단 참여 자료들
‘북그리미’ 동아리는 매년 전시회도 열고 있다. 연초에 그해의 전시 일정과 횟수를 결정하고, 전시 2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1관 1단’ 사업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1관 1단’은 문화 예술 활동의 증진을 목표로 전국의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내 문화예술 커뮤니티들이 모여 공연하고 전시하는 행사이다.
동아리에서 탄생한 작가
2016년 첫 발을 디딘 ‘북그리미’ 동아리는 어느덧 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매해 새로운 회원들이 찾아와 그림 그리는 매력을 발견하고 있지만, 2016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북그리미’ 활동을 멈추지 않는 회원도 두 명이나 있다.
파주중앙도서관 ‘북그리미’ 동아리 이재연 회장
그중 한 명인 이재연 작가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이자, 이제는 동아리의 회장도 맡고 있다. 며느리의 추천으로 ‘북그리미’를 알게 됐다는 이재연 회장은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밖에도 잘 안 나가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렸다고 한다. 그런데 ‘북그리미’에 참여한 이후로는 외출도 자주 하고 사람 만나는 일도 즐기고 있다고.
이재연 회장의 그림책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와 삽화를 그린 도서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
이재연 회장은 ‘북그리미’ 활동을 시작하며 칠십 평생 처음으로 4B 연필을 잡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그녀의 재능은 곧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9년에는 어린 시절 풍경을 그린 그림과 이야기를 모은 그림책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준비하면서 이 회장은 그림 그리기의 매력을 더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그린 그림을 모은 것인데, 막 기억하려고 애를 쓰니까, 잊어버리고 있던 일들이나 풍경들도 생각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재연 회장은 이후 유소년 시절의 일기를 담은 이종옥 작가의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에 들어갈 삽화도 그렸다. 그 외에도 화가로서도 작가로서도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연 회장의 작품들
INTERVIEW. 파주중앙도서관 김수연 사서
“회원들이 끌고 가는 동아리, 사서는 그저 거들 뿐”
회원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는 파주중앙도서관 김수연 사서(가운데)
Q. 2016년에 처음 시작한 '북그리미'가 올해로 벌써 8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동아리 소개를 부탁드리며, 현재 운영 현황도 궁금합니다.
“‘북그리미’는 2016년 10월 문화예술 커뮤니티로 시작했어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관련된 책도 읽으며 소통하는 모임입니다. 현재는 이재연 회장님과 오은아 총무님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회원 수는 9명인데요. 매월 둘째, 넷째 주 화요일 10시에 도서관에 모여 2시간 정도 함께 책을 읽고 작품활동 및 품평회를 해요.”
Q. 파주중앙도서관의 다른 동아리와 비교해 ‘북그리미’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북그리미’ 활동의 특징은 ‘따로 또 같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개개인의 작품활동 성향이 뚜렷하기에 이러한 활동 방식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실력을 키우기 위해 도서를 선택해서 함께 읽는 시간이 있어요. 이를 통해 예술적 안목을 높이고 실력을 향상할 수 있죠.”
Q. 장수 동아리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담당자로서 운영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북그리미’에서는 5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그분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게 장수 동아리의 비결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매년 전시회를 열어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작품활동을 하시는 것이 동아리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담당 사서로서 동아리의 독립적 운영과 회원들의 작품활동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신 회원분들 중에는 그림책 작가로 등단하신 분, 자서전을 내신 분, 개인전을 하신 분들이 계셔요. 책을 내신 분의 북 토크 진행을 제가 직접 했던 것도 기억나고, 따뜻한 봄날 그림 그리러 나가서 먹었던 김밥도 생각나네요.”
2022년도 전시 ‘좋은 날 그리고 함께하다’ 전시 작품 엽서 모음
Q.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되나요?
“연초에 시기를 결정하고 주제도 함께 결정해요. 작년까지는 개별작품을 모아 전시를 했는데, 올해는 ‘도서관’이라는 주제작품 2점과 자유작 1점씩 모아 10월에 전시하기로 했어요. 전시 두 달 전에는 회원들끼리 작품을 선정하고 액자 준비를 시작하고요. 저는 홍보를 도와드려요.”
Q. ‘북그리미’ 동아리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고민이 되거나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회원분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시는 동아리라, 보람이라고 하기보다는 자랑스럽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아요. 고민되는 것은 지난해까지 7년 동안 멘토가 되어주셨던 화가분께서 올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시민 멘토님을 새로 찾고 있는데 어려움이 조금 있네요.”
Q. 동아리와 관련된 향후 운영 계획이나 원하시는 발전 방향이 있으신가요?
“2026년이면 동아리 10주년이 되는데요. 지난 기간 도서관 밖 전시 등 대내외 활동들을 활발하게 펼치셨던 회원들과 이전 회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북그리미’를 얘기하고 앞으로 또 다른 10년을 기약하는 행사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Q. ‘북그리미’에 참여하고 계시거나 참여를 원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북그리미’는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찾아 이를 표현하기에 훌륭한 동아리예요. 4B연필 한 자루와 A4 스케치북 한 권만 가지고 문 두드려 보세요. 여러분과 똑같이 시작한 작가님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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