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만난 것은 음악으로였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서 접한 <조르바의 춤>이란 곡은 독특한 음색의 악기와 심장이 뛰는 듯한 리듬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자연히 그 영화가 궁금해졌고, 이어서 원작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이렇게 차례로 음악에서 영화로, 마침내 소설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영화의 마지막, 추진하던 갈탄광 사업이 실패해 모든 것을 잃고 만 두 주인공이 마치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 양 팔을 벌려 어깨를 겯고 춤을 추던 그 장면은 좀처럼 잊기 어려웠다. 조르바 역의 배우 안소니 퀸의 표정과 몸짓, 그 뒤로 펼쳐진 크레타 섬의 바다, 바닷가 풍경이 그 장면을 영화사의 한 장면으로 만들었음은 틀림이 없으나 사실 나는 음악이 다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음악 감상]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댄스 장면)
이 불후의 명곡을 만든 음악가는 그리스 민주화의 상징, 독재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1925~2021)다. 그는 굴곡진 그리스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의 사회적, 역사적 사건을 음악에 담아낸 사람이다. 체포와 핍박, 망명으로 점철된 신산한 삶 속에서도 그리스 정신을 담은 음악을 끊임없이 만들어낸 위대한 음악가였다.
그에게 거인(巨人)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지는데, 우선 외모부터 남들을 압도하는 커다란 풍채, 깊고 형형한 눈빛, 그리고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정신력, 대규모 관현악곡(교향곡 포함)과 칸타타, 오라토리오, 오페라부터 실내악, 발레, 연극,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의 방대한 음악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 의회 의원, 장관도 수차례 역임하는 등 정치 활동과 사회 활동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그리스 민중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페인의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8~1936), 칠레의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 같은 폭압에 희생되거나 저항했던 시인들의 시로 노래를 만듦으로써 전 세계의 아픔을 노래하는 음악가였으니, 이런 사람이 거인이 아니면 누구를 거인이라 하겠는가.
조르바를 비롯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에서는 그리스의 민속적 색채를 짙게 느낄 수 있는데, 그 배경에는 독특한 음색의 그리스 민속 악기 부주키(Bouzouki)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부주키는 기타와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로, 서양 배 모양의 몸통과 긴 목을 가지고 있다. 피크로 현을 퉁겨 소리를 내는데 기타에 비해 더 원색적이고 선명하며 금속성 소리를 낸다.
테오도라키스는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을 사사하고 수많은 현대음악을 쓴 클래식 작곡가이지만, 그의 음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조르바의 춤>과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éno févgi stis októ)>라는 대중적인 곡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리스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 1944~ )가 ‘조국이 가르쳐준 노래’라는 타이틀의 음반에 수록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고, 소프라노 조수미 역시 이 노래를 불러 더욱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테오도라키스의 페르소나’로 불릴 정도로 그와 공동 작업을 많이 했던 그리스의 국민 가수 마리아 파란투리(Maria Farant(d)ouri,1947~ )의 깊고 낮은 목소리로 들을 때 우리는 이 노래가 가진 절절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음악 감상]
(노래: 마리아 파란투리Maria Farantouri,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éno févgi stis októ> 공연 실황)
많은 사람이 인생 책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꼽는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읽다가 50이 넘은 나이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삶의 자유를 찾아 여행길에 올랐다고 하고, 또 해보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못 하던 일을 위해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카페를 열면서 ‘조르바’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조르바의 자유’를 부러워하다가 ‘나의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났다. 조르바는 곧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세상 많은 사람에게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자각하게 해준 책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1883~1957)다. 그는 평생을 그리스인, 특히 자신이 태어난 크레타인으로서 긍지와 사명감을 지니고 행동했던 애국자였고, 그리스 국토순례로부터 유럽 전역, 러시아, 아시아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여행자였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남긴 글로도 유명한데, 그 내용은 이렇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 문구에서 카잔차키스가 희구한 자유가 대략 어떤 것일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욕심, 욕망으로부터의 해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어떤 실체나 상황을 초월하는 것, 나를 한정짓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話者)인 ’나’는 누가 읽어도 작가 자신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카잔차키스는 과거에 만났던 실제 인물 조르바를 모델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에 묘사된 예순다섯 살 조르바는 배운 것 없고 본능에 따라 사는 단순하고 거친 인간, 그리고 인간사회의 규범, 도덕, 의무 같은 것에서조차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숱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와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할 줄 알며, 솔직한 성품의 소유자이고 어떤 것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 자유의지가 분명한 사람이다. 어린애처럼 순진한가 하면 상대를 찜 쪄 먹는 능구렁이 같은 면도 있다.
조르바의 고용인인 소설 속 ‘나’는 이런 조르바에 매료되어 자꾸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그의 지난 이야기들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기에 그랬을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조르바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인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자 둘도 없는 동료요 인생의 스승이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지만 그 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책상물림이 얻는 인생의 스펙트럼은 얼마나 좁다랄 것이며 삶의 깊이는 얼마나 야트막할 것인가 말이다.
책을 파고 글만 쓰던 ‘나’와 경험에서 인생을 배운 조르바는 서로 자신이 가지지 않은 부분을 상대에게서 보고 존중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물들어간다. 조르바가 두목(번역에 따라 ‘대장’ 또는 ‘보스’)인 ‘나’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그 또한 두목에게서 지성과 관용, 품격을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으로 보자면 완전히 다른 유형의 인간 둘이 만나 서로 무시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나는 이 소설에서 자유의 개념 못지않게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 더 얻은 것 같아 혼자 흡족해했다.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조르바의 예술 행위 두 가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춤과 산투르 연주다. 소설 속 ‘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 싶으면 펄쩍 뛰어 일어나 춤을 춘다네. 춤으로도 안 되면 산투르를 무릎에다 올려놓고 연주하기도 하네’라고 썼다. 조르바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지만 그 이야기꾼이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걸 춤과 산투르 연주로 표현한다고 하니, 이는 말보다 상위 개념의 표현 수단이자 소통의 수단인 것이다.
이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춤이 책과 달리 영화에서는 실제로 구현되어야 하는 바, 테오도라키스의 음악 <조르바의 춤>은 과연 그 무게감에 부응했을까? 음악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 영화를 넘어설 만큼 성공했다.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후 발레로, 뮤지컬로 재탄생되면서 장르와 음악을 확장시켰다. 수많은 무용단과 연주가들이 이 춤곡을 바탕으로 다양한 창작물을 내놓고 있다. 이 음악이 연주되고 춤추어지는 한, 조르바는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자유를 일깨워주는 상징적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음악 감상]
(앙드레 류 &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André Rieu & His Johann Strauss Orchestra가 연주하는 <조르바의 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공연 실황)
*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악단을 이끌었던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앙드레 류는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음악가다. 무슨 음악이든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 연주해서 대중을 즐겁게 해준다.
임주빈_전 KBS 클래식FM PD, 음악 칼럼니스트
임주빈은 KBS 클래식FM에서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KBS 라디오센터장과 예술의전당 이사를 역임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고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자 힘을 쏟았고, 지금은 강의, 글쓰기 등을 통해서 많은 이와 클래식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작곡가의 생애와 대표작을 수록한 CD 시리즈 “Listen & Lesson – 해설이 있는 클래식‘ 20종을 기획, 제작했다.
얄팍하고 가벼워서 손에 들면 기분마저 좋아지는 책 《콘트라바스》는 내게는 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분은 1985년 라디오 음악 PD로 사회의 첫발을 뗀 나의 멘토였으며 롤 모델인 동시에 스승이었고 선배였다. 38년의 방송국 생활에서 그분처럼 강직하고 성실했으며 열심인 분을 보지 못했다. 1990년대 어느 날, 클래식FM(당시는 1FM) 부장이셨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 일본)의 소설을 읽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내겐 뭐니 뭐니 해도 ‘재미’라는 점이다. 딱 적당한 내러티브로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할까? 우리 곁에서 방금 일어났거나 어린 시절에 경험했을 법한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일단 독자를 끌어들인 후 그 평범한 배경에서 범상치 않은 이야깃거리를 은밀하게 펼쳐내어 결국 끝까지,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이 글귀는 출처를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마치 늘 듣던 유행가 가사처럼 익숙하다. 《데미안》의 한 구절이라는 것을 아는 이라면 그는 아마도 십대에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거쳤을 것이다. 그 통과의례는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