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한국에는 공유형 서점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 3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공유형 서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공유형 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혁명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책과 서점의 미래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공유형 서점’이 공유하는 것은 ‘책장의 선반(서가)’입니다. 책방 주인은 서가를 희망자에게 유료로 빌려줍니다. 월 임대료를 지불한 ‘서가 주인’들은 그 공간에 원하는 책을 진열하고 판매할 수 있는데, 한 칸의 공간은 가로 50센티미터 내외, 임대료는 한 달에 몇 천 엔 정도 받습니다.
서가 주인들은 가게를 지키거나 책을 보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책방을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다른 서가 주인이나 독자를 만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도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치 ‘책방놀이’를 하듯 그 일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책으로 연결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이 공유형 서점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서가 주인들에게 받는 가입비, 월별 서가 대여료, 책이 팔렸을 때의 수수료 등이 공유형 서점의 매출로 이어집니다. 서가가 채워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계속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공유형 서점이 널리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22년 도쿄 진보초(神保町)에 문을 연 ‘PASSAGE by ALL REVIEWS(이하, 파사주)’입니다. 프랑스 문학가이자 문필가인 가시마 시게루(鹿島茂)의 아이디어로, 가시마의 아들인 유이 로쿠로(由井緑郎)가 경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명 작가와 출판사도 서가 주인에 합류해 파사주는 성황이지요.
‘파사주’의 특징 중 하나는 독자적인 단품 관리 시스템입니다. 선반에 진열된 모든 책에 바코드가 부착된 스티커를 붙이고, 판매 시 스캐너로 스캔하면 자동으로 서가 주인에게 메일로 보고됩니다. 판매된 것을 바로바로 알 수 있는 것이 매력입니다. 그 메일을 받고 서가 주인은 서가를 채우러 갑니다. 파사주는 서가 주인이 원하는 신간 도서를 대신 구매해주는 서비스도 합니다. 집에 있는 책만으로는 구비하는 데 한계가 있지요. 마음에 드는 책은 여러 번 팔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원하는 책을 보충할 수 있어 편리한 시스템입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유형 서점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올해 4월에는 같은 진보초에 ‘혼마루’도 오픈했습니다. 대표는 나오키상 작가이자 TV 출연도 많이 한 이마무라 쇼고(今村翔吾) 씨. 이마무라 씨는 작가 활동만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일본에 책방을 남길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SNS 등을 통해 활발하게 정보를 발신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사카에서도 책방을 운영 중이며, ‘혼마루’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명인들의 참여가 공유형 서점 소식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책방놀이와 프로페셔널
‘파사주’나 ‘혼마루’가 공유형 서점의 선구자는 아닙니다. 2013년경에 오사카의 헌책방이 같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도쿄에도 몇 년 전부터 조용히 주목받던 공유형 서점이 있었고, 매장의 일부를 공유형 서점으로 운영하는 책방도 있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일본에서는 ‘한 박스 헌책방’이라는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자회처럼 참가자들이 골판지 한 박스 분량의 책을 진열하여 팝니다. 처음 개최한 것은 2005년 ‘도쿄 시노비스 북 스트리트’로,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유형 서점은 ‘한 박스 헌책방’의 상설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전부터 고객이 추천한 책을 진열하고, 고객이 쓴 POP 광고를 게시하는 등 고객이 판매에 참여하는 서점도 적지 않습니다. 공유형 서점은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업태가 아니라 이러한 흐름을 거쳐 탄생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도 ‘한 박스 헌책방’이나 공유형 서점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초대를 받을 때도 완곡하게 거절해왔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책방 영역에 안일하게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취재해온 책방지기들은 책을 팔고,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프로들입니다. 저 역시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글로 옮기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쉽게 책방 업을 흉내 내지 않는 것이 취재 대상과 취재원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 망설이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책을 파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연재 1회부터 썼듯이, 2024년 저의 과제는 ‘집 안의 장서 정리’입니다. 책을 헌책방에 팔거나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공유형 서점 등에 내놓고 그 책을 원하는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공유형 서점 주인의 참여 권유를 받고 나서도 역시 선뜻 하겠노라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 책방 주인은 서가 주인들에게 “당신의 진정한 ‘1군’ 을 서가에 진열해주세요”라고 조언을 해왔습니다. 자신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책을 내놓지 않으면 손님에게 전달되지 않고,처분하고 싶은 책만 진열해놓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1군 책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업무상 다시 읽을 일이 있고, 글을 쓰기 위한 자료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 책을 공유형 서점에 내놓고 싶다면그 책들을 따로구비하기 위해 점주에게 대리 구매를 부탁하거나 헌책방 등에서 직접 구입하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이 경우 매입비용이 발생하죠. 이때부터 놀이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게 됩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1군 책으로만 서가를 꾸밀 수 있느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좋은 책방이란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책만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것이죠. ‘용돈벌이는커녕 적자겠지,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그렇다면 공유형 서점은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작은 붐일까. 아니다, 공유형 서점은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쓰카와 유키오(橘川幸夫)라는 사람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볼 수 있는 광경
기쓰카와 씨는 수많은 저서가 있지만 아직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어 조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950년생.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록 잡지 《록킹 온(ロッキング・オン)》은 1972년 네 명의 젊은이들에 의해 창간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기쓰카와 씨입니다. 그는 《록킹 온》이 상업잡지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자 그곳을 떠나 여러 출판사와 손잡고 다양한 잡지를 창간하고,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쓰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78년에 창간된 《펌프(ポンプ)》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아마 독자들의 투고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잡지일 것입니다. 유명인이나 전문 작가는 등장하지 않고, 등장하더라도 그 역시 한 명의 투고자일 뿐입니다. 기쓰카와 씨는 권위나 권력이 모든 사람을 묶어두는 상황을 싫어했습니다. 잡지 역시 작가나 유명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쓰고 싶은 글을 발표하고, 그것을 읽은 누군가 반응을 해서 무엇이든 시작되는 기폭제가 되면 되는 것이다. 이게 펌프의 콘셉트였습니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이 따로 없다. 어떤 글이든 환영한다!1970년대 말,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같은 세상이 있기 전 잡지로 표현한 것이 바로 《펌프》였습니다.
기쓰카와 씨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터넷이 등장하자 인터넷에 관여하며 다양한 웹 미디어, 디지털 미디어를 만들어왔습니다. 저는 원래 그의독자였습니다. 출판, 서점, 종이책과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흥미로웠고, 직접 만난 이후에도 서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힌트를 자주 얻었습니다.
그런 기쓰카와 씨가 현재 가장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공유형 서점입니다. 새로운 서점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으면 주인들을 만나러 가서 서가 주인이 됩니다. 지금은 일곱 곳의 서가 주인입니다. 또 올해 《이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판매처는 일반 서점보다 공유형 서점을 우선합니다. 팀을 꾸려 공유형 서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시작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공유형 서점에서 서가 주인으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시바시 씨도 함께 보러 가자”면서 즐거워하십니다(역자 주: 역자가 운영하는 도쿄 진보초의 한국 책방 ‘책거리’에도 걸음해주셨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기대를 하는 걸까? 기쓰카와 씨가 보고 있는 것은 기존 출판사가 출간한 책이 늘어선 오늘날의 공유형 서점 풍경이 아니라, 조금 더 멀리, 어쩌면 앞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풍경일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지금 공유형 서점은 상품 구성도 제각각이고, 운영 방식도 정해져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 그런 곳에는 지금의 서점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찾아온다. 지금은 기존 책들만 진열되어 있어 재미없지만, 내가 일반 서점에 두지 않는 《이퀄》을 두는 것처럼 서가 주인들이 직접 만든 책이나 자신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책들만 두게 되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진화했으면 좋겠다.”
지금 기쿠카와 씨가 특히 기대하는 것은 도쿄의 칵테일 서점이라는 헌책방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유형 서점이라고 합니다. 책방 주인이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는 일기를 좀 읽어보시죠.
“파는 일을 통해 얻게 되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 공유형 서점의 큰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파는 행위에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진열한 선반, 자기표현만 하는 선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책을 살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살 수 있을지 상상하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전문가까지는 아닌 아마추어의 ‘책방놀이’에 불과하더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서점 주인이라면, 예를 들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처럼 이건 정말 대단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을 진열하고 싶을까?’ ‘돈을 주고서라도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전달하면 사게 될까?’ ‘그럼 이 책은 어떨까…….’ 여전히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책을 집어 들고 상상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에세이 번역 :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이시바시 타케후미(石橋毅史)_작가, 출판 저널리스트
2009년까지 출판 전문지 ‘신문화’에 근무한 경험으로 서점업, 출판업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시대의창, 2017),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전설의 책방지기》(남해의봄날, 2016), 《책을 직거래로 판다-출판사와 서점이 공생하는 출판 직거래 방법》(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유유, 2021) 등이 있다.
생명력을 가진 책올해는 꼭 제 방의 장서 정리를 하겠다고 지난 호에 말씀드렸는데요, 사실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그저 막막합니다. 요즘은 며칠에 한 번 책장 앞에 섭니다만 그마저도 큰 진척이 없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까지 구입한 책, 읽은 책을 한 권 한 권 펼쳐보면서 남길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미안해!바로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매장은 80여 평. 잡지, 만화, 소설, 생활실용서, 문고판 등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아동서, 인문서, 예술서 선반도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문구류나 토트백 등을 두고 있었습니다.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로,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 자리해 지역의 다양한 고객층에 대응하는
책이라는 상품의 운명나는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서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왔습니다. 이들은 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로 책이 잘 팔리거나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따라 생계가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자세히 보면 어쩔 수 없는 양가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더 라이브러리’ 독자들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