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마지막에 작별인사를 드렸는데, 한 번 더! 앙코르를 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번 더! 무엇을 쓸까? 지난번까지는 일본의 도서관과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책 몇 권을 소개했습니다. 주제에 맞지 않아 소개하지 않은 책도 몇 권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중 한 권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제목은 ‘찾으시는 책은(おさがしの本は)’이고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저자는 2003년 추리소설 작가로 데뷔한 카도이 요시노부(門井慶喜)입니다. 2018년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의 가족을 그린 《은하철도의 아버지(銀河鉄道の父)》를 써서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나오키상도 수상한 인기 작가입니다. 《찾으시는 책은》은 2009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시립도서관에 근무한 지 7년, 조사상담과에 배치된 지 3년째인 주인공이 카운터에 찾아오는 도서관 이용자 그리고 책과 관련된 상담을 소재로 한 연작 단편 모음집입니다.
그중에 <도서관을 멸망시켜야 한다(図書館滅ぶべし)>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시장 비서실에서 전근 온 신임 부관장이 부임 인사에서 시의 재정 상황 등을 이유로 '도서관은 필요 없다'는 방침을 발표합니다. 주인공이 반대하자, 부관장은 “당신이 있는 레퍼런스 카운터는 특히 필요 없다, 컴퓨터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컴퓨터로 대응할 수 없는 상담도 많다고 받아치자 부관장은 “그럼 당신의 능력을 시험해보자, 이 조건을 충족하는 책을 찾아보라”고 과제를 던지죠. 과제는 ‘제목에 어떤 한 단어가 들어간 책’을 찾는 것입니다. ‘어떤 한 단어’란?
A. 의미적으로는 일본어의 외래어가 들어온 역사를 통째로 포함한다.
B. 음성적으로는 인간의 아이가 처음 내는 소리에 의해서만 구성된다.
주인공과 그를 응원하는 상사는 답을 찾기 위해 회의를 여러 차례 합니다. 일본의 외래어의 역사라고 하면 16세기부터의 포르투갈어, 17세기부터의 네덜란드어, 그리고 19세기부터 유입된 대량의 영어. 이 세 종류의 외래어가 들어온 역사가 하나의 단어 안에 ‘통째로 포함’된다…… 게다가 그 단어는 아기의 말, 즉 옹알이로만 구성되어 있다······과연 그런 ‘하나의 단어’가 있기는 한 것인가?
포르투갈어보다 훨씬 더 오래된 외래어가 있는데, 바로 중국어라는 발견에서 추리는 급물살을 탑니다. 답은 중국어, 포르투갈어, 영어가 한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앙팡맨(アンパンマン)’이었습니다. ‘안(アン)’은 중국어 ‘안(安)에서 유래한 발음일 가능성이 많고, ’팡(パン)‘은 포르투갈어 ’빵(pão)에서, ‘맨(マン)’은 영어 ‘man’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 세 가지 말이 모두 아기들이 쉽게 내는 소리, 옹알이이기도 하죠.
결국 그 도서관에서도 관련 서적 17권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애니메이션도 인기 있는 롱 셀러 시리즈 그림책 《앙팡맨(アンパンマン)》(야나세 다카시 지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본에서 탄생한 히어로 그림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합니다. BTS 멤버들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하는데, ‘앙팡맨’이라는 곡도 만들었죠.
이 단편 <도서관을 멸망시켜야 한다>의 핵심은 퀴즈의 정답이 아니라 그 과정의 재미, 외래어, 옹알이 연구의 재미, 그리고 주인공이 레퍼런스 카운터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부관장에게 당당하게 표현하는 장면들입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도서관에서 책 상담을 해주는 사서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아키타의 도서관에서
아키타현에 있는 한 도시를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아키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폭설 지역입니다. 그 도시에 오래된 서점이 있는데, 그 서점의 역사와 지역에서의 역할을 취재하던 때입니다. 취재를 해보니 창업자의 손자인 현 점주는 창업 당시를 잘 모르고, 2대인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옛날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무실에도 당시 기록이나 사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요.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가게란 그런 것이겠지요.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차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서점을 맡은 어머니, 그리고 창업주나 아버지와 교류했던 지역 어르신 등 몇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모호합니다. 이럴 때는 역시 도서관으로 가야죠. 지역에 관한 사료 중에 그 서점에 관한 기사나 사진이 있지 않을까 싶어 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이 지역의 프리랜서 기자가 제작, 발행하던 신문의 과거 호를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기자는 당시 이미 90세가 넘은 분으로 젊은 시절에는 창업주는 물론 2대째 점주와도 교류했습니다. 그 서점은 언론인의 칼럼집 등 신간이 나올 때마다 매장 내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하고 기념 강연회를 열었던 곳입니다. 지역 서점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언론인들을 응원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도서관에는 그 기자가 1940~70년대에 발행한 신문 백넘버가 많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된 신문이라 종이 상태가 좋지 않아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 서점에 관한 기사, 그 서점이 신문에 실었던 광고를 찾았습니다. 서점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시 정책이나 사건들에 관한 다른 기사도 흥미로워서 딴 짓을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둘째 날, 도서관 담당자는 내가 신문을 펼칠 수 있도록 열람실 구석에 있는 큰 테이블을 비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목적이 그 신문이나 언론인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서점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임을 알고는 시 상업조합의 기록,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열렸던 축제의 보고서 등 지역 명사였던 창업자나 2대째의 이름이 나오는 자료를 함께 찾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서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지역 출신 유명 작가의 기념관 관계자를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기념관 건립과 운영에도 2대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도서관 담당자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기억에 남는 사람’입니다. 찾아준 자료도 귀중했지만, 낯선 땅에서 자료를 찾아다니는 외로운 마음에 힘을 실어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서점 직원도 책을 찾는다
“찾으시는 책이 이거죠?”라고 책을 찾아 건네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은 비단 도서관 사서뿐만이 아닙니다. 《상처투성이 책방지기(傷だらけの店長)》(다테 마사히코伊達雅彦 지음)라는, 2010년 출간된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중견 서점 체인의 책방지기입니다. 들여놓고 싶은 책이 들어오지 않는다, 절도범과 싸워야 한다, 회사 사정으로 팔고 싶지 않은 책도 팔아야 한다······ 이런 일상의 문제를 마주하면서 ‘책방지기’라는 직업의 의미를 계속 고민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인근에 대형 서점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떨어지고 폐점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는 이를 계기로 서점 문을 닫기로 결심합니다. 당연히 책방지기도 그만두어야 합니다. 소설처럼 읽히지만 실화입니다.
그 책방지기가 가장 잘하는 일은 제목이나 저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손님이 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손님이 찾는 책에 대한 모든 정보를 듣고, 그 정보에 오차가 있을 가능성도 고려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인터넷, 인맥을 총동원해 수십 년 된 헌책 등 매장에서 구할 수 없는 책도 며칠, 몇 달을 들여서라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어서, 손님에게 받은 책 상담 리스트를 지갑에 항상 넣어두고 가끔씩 쉬는 휴일에도 진보초 등지로 나가 책을 찾아다녔습니다. 게다가 그것을 고객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해 책을 찾는 데 쓰인 비용은 받지 않습니다.
서점을 그만둔 후 한동안 책 찾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시도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 일로 손님에게 얼마를 청구해야 할지, 적당한 금액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 같아요. “찾으시는 책이 바로 이거죠?”라며 책을 건네지만 그걸 찾기까지의 모든 열정에는 금액을 정할 수 없다는 것. 즉, 그 책을 찾는 고객의 열정, 그 책을 발견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의 열정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열정을 담는 순간이 바로 가치가 되는 것이기도 할 터입니다.
저자는 현재 오키나와 이시가키섬(石垣島)에서 ‘고서 카페 우사기당(古書カフェうさぎ堂)’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망하고 지쳐서 서점 일을 그만두었지만, 결국 다시 서점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오키나와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오키나와에 가신다면 꼭 들러보길 바랍니다.
‘상처투성이 책방지기’는 결코 특이한 사람이 아닙니다.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내어 건네는 데 진심인 책방지기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대형, 중견 규모의 서점 체인에서 일하는 서점 직원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매장으로 보내지는 대량의 신간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책을 다 읽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박스에서 꺼내 양손 가득 책을 들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선반에 꽂는 작업을 통해 책을 알게 됩니다. 몇 번이고 재입고를 반복하는 책, 지금 가지고 있는 재고를 다 팔고 끝낼 책, 반품할 책,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진열대에 놓아둘 책을 항상 가려내면서 책을 알게(읽게) 됩니다.
매일 최신간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방대한 양의 책에 둘러싸여 한 권 한 권을 선별해 손에 쥐고 사람들에게 건네는 것은 사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으시는 책은?”
앞서 소개한 《찾으시는 책은》의 주인공은 난제를 해결하고 신임 부관장도 능력을 인정하고 직장이 화해의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부관장에게 단호한 태도로 말합니다.
“레퍼런스 카운터에 피가 도는 사람이 있는 것이야말로 도서관이라는 시설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당신이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육체적, 구체적 작업의 축적의 결과이며, 컴퓨터의 두뇌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때로는 정답을 찾았는데도 “내가 찾는 것은 이런 책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용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책과 인간의 관계는 그만큼 섬세한 것입니다. 컴퓨터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죠. “찾으시는 책이 이건가요?” 도서관 사서나 서점 직원이 평상시에 내뱉는 말들이 참으로 섬세하고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소설입니다.
도서관 사서나 서점 직원, 수많은 이들이, 그것도 각각 개별적이고 개성적인 ‘책’과 ‘사람’ 사이에 서서 좋은 만남을 하나라도 더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인류의 삶을 지탱하는 귀중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과 함께하는 모든 분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에세이 번역 : 쿠온 출판사 김승복 대표
이시바시 타케후미(石橋毅史)_작가, 출판 저널리스트
2009년까지 출판 전문지 ‘신문화’에 근무한 경험으로 서점업, 출판업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시대의창, 2017),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전설의 책방지기》(남해의봄날, 2016), 《책을 직거래로 판다-출판사와 서점이 공생하는 출판 직거래 방법》(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유유, 2021) 등이 있다.
공유형 서점이 늘고 있다한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한국에는 공유형 서점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 3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공유형 서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공유형 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혁명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생명력을 가진 책올해는 꼭 제 방의 장서 정리를 하겠다고 지난 호에 말씀드렸는데요, 사실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그저 막막합니다. 요즘은 며칠에 한 번 책장 앞에 섭니다만 그마저도 큰 진척이 없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까지 구입한 책, 읽은 책을 한 권 한 권 펼쳐보면서 남길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수술을 앞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함께 갔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심장판막증으로,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왔지만, 점점 악화되어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기 전에 인공판막을 장착하는 것이 좋겠다는 담당 의사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