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서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왔습니다. 이들은 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로 책이 잘 팔리거나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따라 생계가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자세히 보면 어쩔 수 없는 양가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라이브러리’ 독자들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죠. 몇 권이 팔렸는지, 얼마를 벌었는지, 그런 것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책입니다. 제가 취재 대상으로 삼았던 서점 운영자들 역시 더 많이 팔리고 더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잘 팔리지는 않지만 내용이 좋은 책, 누군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소중히 다루고 있었습니다. 서점업을 하는 분들의 그런 모습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사회란, 인생이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요.
최근 몇 년 사이 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 서점 주인들의 생활이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어려웠지만, 이제는 서점 운영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 역시 대형 서점 운영자가 아니라면 책을 팔아 생존과 생활을 이어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서점 주인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종이책 외에 OTT 등 다양한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종이책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종이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 늘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와 잉크 등 재료 가격이 올랐으며 기름값 등 책을 배송하는 데 드는 비용도 크게 상승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출판사는 책 가격을 높게 책정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책이 안 팔리는데 책값까지 오르면 더 팔기 힘들어지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책값을 높게 산정한다는 게 출판사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적은 부수를 팔더라도 내용이 평가받는 책 만들기를 지향하는 유형의 출판사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앞으로는 ‘상품’으로서의 책은 지금보다 좀 더 구매를 유도하는 합리적 가격대와 내용을 지향하고, ‘문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책은 더 전문성을 높이고 가격도 올리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책을 선택하고 읽는 행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요.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바꾸어 읽는 일들이 많아질까요? 이를테면 책을 한 권만 사도 다른 방법으로 두 권을 읽는다고 할까요. 요즘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지금 저는 우리 집에 있는 책을 열심히 정리 중입니다.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어떤 책을 사 왔는지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쯤 독서 관리용 앱을 다운받았습니다. 책 바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고 책 정보를 등록하는데, 바코드가 없는 오래된 책이나 잡지는 손으로 직접 입력합니다. 버릴 책과 보관할 책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판단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책 정리의 종점은 내 책들이 어느 쪽 책장에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충 알 수 있을 정도까지만 책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책 정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업무에 지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혹은 어떤 생각을 하다 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런데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구입한 책, 읽은 책을 책장의 빈 틈새에 끼워 넣고 그런 틈새가 없으면 선반 앞에 쌓아 놓다 보니, 어느새 책들이 몇 겹으로 쌓여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또 사게 됩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책을 책장에서 찾지 못하면 독서 경험을 글쓰기에 활용하지 못하게 되지요.
글을 쓰는 방은 어수선할수록 좋다는 말을 친하게 지내는 편집자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재미있는 글이 나온다고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역시 지금 나의 책장 상태로는 안 되겠다,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책 정리를 해 책장에 빈 공간을 확보하곤 했습니다. 빈 공간이란 채워지기 있는 위해 있는 걸까요. 금방 또 다른 책이 들어섭니다. 그래서 이번 책 정리를 하는 김에 내가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읽었는지 다 정리를 해보자 싶었습니다. 책꽂이에 꽂아둘 책과 버릴 책을 구분해 필요한 책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일반 책이나 잡지뿐만 아니라 무료로 받은 잡지나 만화책 등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양이 정말 많습니다. 종점까지 가기가 멉니다.
정리하면서 어려운 점은 ‘읽지 않은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 많죠? 일본에는 ‘츤도쿠(積読)’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상이나 바닥에 책을 쌓아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읽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장서 정리에 대한 기사를 보면 읽지 않고 몇 년이 지난 책은 인연이 아니니 처분하라는 조언이 많습니다. 한편, 책을 사기만 해도 독서를 한 것과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그 책에서 무언가를 얻은 것이다, 빨리 다음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 인생은 짧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이어집니다.
책 정리를 하면서 막상 읽지 않은 책을 손에 쥐면 마음이 복잡하게 움직입니다. 우선 신기하게도 10년 전, 20년 전 서점에서 손에 쥐었을 때 ‘아, 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는 책이 제법 많습니다. 역시 인연이 있어서 샀구나, 하고 기뻐하다가도 한순간에 한심스러워지곤 합니다. ‘몇 년이 지나도 같은 책을 보고 똑같이 생각하다니, 나는 그때보다 더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읽어두자’ 하고 책을 책꽂이에 다시 꽂아두려다 ‘어라?’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책,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지금 읽지 않으면 또 ‘쌓아두기’가 되어버릴 텐데······
예를 들어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그렇습니다. 총 32권! 20년 전에 구입했습니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언제, 어떤 작품을 읽어도 재미있고 공부가 된다고 생각되어 샀죠. 책꽂이에 멋지게 꽂아두고 구입한 지 며칠 만에 꺼내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확인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습니다. 사실 한 번은 있었지만, 그것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너덜너덜한 문고본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전집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어야 할 필요가 생기면 도서관에 가면 된다······ 나쓰메 소세키를 버릴 이유를 계속 찾았습니다. 실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대부분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32권의 나쓰메 소세키를 안고 있는가.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봅니다. 진정한 동기는 책을 읽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고풍의 세련된 제본으로 만든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집에 있으면 지적인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그것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런 점도 책의 또 다른 큰 매력이기도 해서 지금까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처분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저술가 우치다 다쓰루(内田樹)는 2010년에 출간한 《街場のメディア論》(한국어판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뾰족하게 독해하기 위하여》, 유유, 2020)에서 집안의 책장은 자신의 이상을 타인과 자신을 향해 표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적인 사람,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타인과 자신에게 알리기 위해 사람은 책을 꽂아둔다는 것이지요. 어려워 보여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사상서를 계속 책꽂이에 꽂아두는 것은 언젠가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향의 표현입니다. 읽지 않는 책을 바로 처분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에 제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왔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상을 품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장서를 쌓아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읽지 않은 책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거나 발견과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그릇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독서가라도 세상에 나와 있는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습니다. 눈에 띄는 책이나 마음에 드는 책을 적극적으로 사는 것도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경험하는 것이 좋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집에 있는 책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며 앱에 책을 등록하고 있습니다
책은 세상에 필요하지요. 하지만 연구자나 작가 등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직업인 사람이 아니라면 평생 읽어야 할 책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책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출판업이나 서점업 종사자들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읽고 싶어하게 하는 궁리를 해 지금까지 사업을 이어온 게 아닐까요? 레트로하고 지적이고 집에 두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산 저는 고마운 손님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책이든 ‘상품’으로서의 책은 점점 더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2010년부터 도서관의 도서 대출 양이 신간 시장의 도서 판매량(추정치)을 넘어섰고, 그 차이는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책을 거의 헌책방에서 구입하는 책 애호가도 많습니다. 도서 판매량에는 헌책이 포함되지 않아 ‘사서 읽는 책’과 ‘빌려서 읽는 책’을 순수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책이 돈이 되는 상품이었던 시대는 매우 짧습니다. 크게 보면 기껏해야 20세기부터 100년 남짓입니다. 이 100년이 오히려 특별했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상품’으로 취급해온 서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국의 ‘더 라이브러리’ 독자들과의 첫 만남인 이 글을 마칩니다.
에세이 번역 : 김승복 대표(쿠온출판사)
이시바시 타케후미(石橋毅史)_작가, 출판 저널리스트
2009년까지 출판 전문지 ‘신문화’에 근무한 경험으로 서점업, 출판업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시대의창, 2017),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전설의 책방지기》(남해의봄날, 2016), 《책을 직거래로 판다-출판사와 서점이 공생하는 출판 직거래 방법》(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유유, 2021) 등이 있다.
작은 서점들이 협력해 공공도서관 운영을 맡은 사례먼저 정정 및 사과를 드립니다.2회째 글에서 도쿄도 마치다시의 서점인 히사미도(久美堂)가 2022년부터 시립 공공도서관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지역 서점이 공공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사례는 많지만, 도서관 운영까지 맡는 것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서점에 국한된다고 썼는데, 이는 잘못된
얼마 전 수술을 앞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함께 갔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심장판막증으로,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왔지만, 점점 악화되어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기 전에 인공판막을 장착하는 것이 좋겠다는 담당 의사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이 나
생명력을 가진 책올해는 꼭 제 방의 장서 정리를 하겠다고 지난 호에 말씀드렸는데요, 사실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그저 막막합니다. 요즘은 며칠에 한 번 책장 앞에 섭니다만 그마저도 큰 진척이 없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까지 구입한 책, 읽은 책을 한 권 한 권 펼쳐보면서 남길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