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술을 앞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함께 갔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심장판막증으로,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왔지만, 점점 악화되어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기 전에 인공판막을 장착하는 것이 좋겠다는 담당 의사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 몸에 이물질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이미 80세가 넘은 어머니는 한동안 망설이셨지요. 개흉수술보다 부담이 적은, 다리 밑 관상동맥을 통해 관을 넣는 카테터 삽입술이라는 설명과 그 병원에서는 1년에 수십 명씩 같은 수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겨우 수긍을 하셨습니다.
“조사할 게 많네. 입원도 하기 전에 피곤해지겠어.”
위험도가 낮은 수술이지만, 수술 방식과 사용 약물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에 며칠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날은 CT 촬영, 심초음파, 구강검진, 혈액 채혈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전부터 시작하여 하루가 다 걸렸습니다.
예약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첫 번째 CT 촬영은 무척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의자에 앉는 순간 심장이 다시 불규칙해져, 어머니는 가슴을 움켜쥐고 심호흡을 하며 힘들어하셨습니다. 병원은 넓고 새롭지만, 진료를 받거나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의자가 늘어선 곳에는 창문이 없어 저까지도 기분이 점점 다운되어갔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참, 《후타고노 덴샤(쌍둥이 전차)》 기억해요?”
“너한테 전화 받고 나서도 계속 기억을 더듬었는데…… 거의 기억이 안 나.”
《후타고노 덴샤》는 제가 처음으로 혼자서 읽은 ‘글자가 많은 책’입니다. 다섯 살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몇 번인가 혼자 읽어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읽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지요.
“소리 내어 읽었던 거 같아. ‘덴샤와 하시루’의 ‘와’를 ‘하’라고 읽는 소리가 들려서 그건 ‘와’라고 읽는 거라고 알려주기도 했지. 읽다가 막히면 또 달려와서 어떻게 읽는 건지 알려달라고 했던 거 같아. 기억이 잘 안 나네.”
“뭐, 50년 전 일이니까요.”
“50년! 기억이 안 나는 게 당연하네.”
“《후타고노 덴샤》를 읽기 전까지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
“혼자서 보지는 않았을 거야. 네 누나가 너와 동생에게 읽어주는 경우도 많았는데, 세 명이 누워서 책 보는 그 광경이 기억나. 네 누나가 가운데에 있는. 《후타고노 덴샤》도 아마 네 누나가 가르쳐줘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하네.”
“아, 누나가 읽어주었구나.”
“엄마는 그때 어린 아이가 셋이라 차분히 책을 읽어줄 시간이 없었지. 대개 누군가가 열이 나서 병원에 데려가기도 하고. 늘 바빴지. 집 앞이 병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버스정류장까지 자갈길을 걸어서 가는데 버스도 안 오고…….”
그때 전광판에 번호가 표시되었고, 어머니는 CT 촬영을 하러 들어가셨습니다. 촬영 자체는 금방 끝났고, 심초음파를 받으러 갔는데 역시나 예약한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 접수처 직원의 제안으로 채혈을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채혈을 마친 어머니는 피를 일곱 병이나 뽑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습니다.
《후타고노 덴샤》는 전차가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전차가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 일본 도서관 역사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라는 것, 내가 그 도서관을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제가 신문사에 입사하여 출판계를 취재하면서부터였습니다.
《후타고노 덴샤》의 주인공은 작은 마을을 달리는 두 대의 노면전차입니다. 주민이 늘어나고 활기찬 마을에서 출퇴근, 통학, 쇼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지요. 그러나 개발이 점점 진행되면서 자동차 시대가 도래합니다. 트럭이 오가고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덤프트럭과 노면전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전차도 노후화되어 노면전차의 폐선이 결정됩니다.
남은 차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은 차고에 보관되어 있던 노면전차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을 보고, 차량을 도서관으로 개조합니다. 그렇게 두 개의 전차는 ‘전차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초판은 1969년. 어머니가 사준 책에는 ‘1975년판 17쇄’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도 당시와 같은 아카네 쇼보라는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모델이 된 전차 도서관이 운영된 기간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약 5년간입니다. 전차 도서관이 있던 도쿄도 히노시(日野市)는 도쿄 중심부에서 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버지의 회사 기숙사가 있는 히노시로 이사 온 것은 1966년이라고 합니다. 전차 도서관이 생긴 해입니다. 곧 첫째 딸이 태어나고, 1970년에 제가, 1972년에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전차도서관이 있던 곳은 다마다이라(多摩平) 단지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단지였다고 하네요.”
“타마히라 단지는 기억나지. 단지 근처 역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워서 자주 다녔거든.”
“누나랑 나랑 같이 전차 도서관 들어간 적 있어요? 내가 한 살이 될 무렵에 문을 닫았으니까, 업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갔을 거 같은데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 이동도서관에 갔던 기억은 나. 우리 아파트 앞 공원에 왔었으니까요.”
“이동도서관은 2주에 한 번씩 시내를 순회했다고 해요.”
“너희들을 데리고 가서 몇 권을 빌리고, 다음에 올 때 돌려주고, 다시 빌리고. 그걸 반복하고 있었지.”
드디어 심장 초음파 검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입니다. 무더운 날씨에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병원 안에 있는 작은 빵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자와 테이블도 있고, 산 것을 거기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내겠다면서 계산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히노시의 도서관 운영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1945년 패전으로 군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일본의 공공도서관은 국민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정보를 얻고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와 시설의 미비함이 눈에 띄는 상태가 오래 지속된 것도 사실입니다.
1963년 일본도서관협회는 ‘중소도시의 공공도서관 운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전국 각지의 도서관 이용 현황을 조사하여 자료의 충실화와 활발한 대출이 필요하며, 그 실천의 주체는 대도시와 대도서관이 아닌 중소도시의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줄여서 ‘중소 보고서’라고 불리며 이후 일본 도서관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중소 보고서’를 정리한 도서관협회의 아리야마 다카시(有山崧) 씨가 히노시 출신이었기 때문에, 1965년부터 히노시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인구 7만 명 정도의 히노시에는 도서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리야마 씨의 요청으로 현장을 지휘한 것은 도서관 직원을 거쳐 협회 직원이 되어 ‘중소기업 보고서’에도 관여한 마에카와 쓰네오(前川恒雄) 씨였습니다. 아리야마 씨와 마에카와 씨는 관습을 깨는 시책을 잇달아 내놓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큰 중앙도서관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작은 분관을 만드는 순서가 일반적이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히노시는 우선 마이크로버스를 개조한 이동도서관을 운영하며 시민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동도서관 실제 모습. 출처 : https://www.city.hino.lg.jp/bunka/bunka/kobore/1017425.html
이동도서관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고 도서관이 없는 히노시에도 이웃 도시의 이동도서관이 왔지만, 책 수나 내용은 빈약했다고 합니다. 마에카와 씨는 최대한 많은 책을 싣고 다니고, 1인당 네 권까지 빌릴 수 있게 하고(당시에는 1인 1권 대출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용자가 요청한 책은 최대한 주문하는 등 철저하게 시민을 위한 이동도서관을 지향했습니다.
히노시는 1인당 연간 대출 권수 전국 1위가 되면서 1966년에는 도서 구입비를 전년도 500만 엔에서 1천만 엔으로 두 배로 늘립니다. 당시 연간 1천만 엔 이상의 예산이 책정된 곳은 일부 현립 도서관, 중앙도서관뿐이었지만, 히노시를 본받아 예산을 늘리고 운영 방식을 바꾸는 지자체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식 도서관으로 시작한 히노시의 첫 번째 건물은 ‘전차 도서관’이었습니다. 타마히라 단지는 입주민이 많아 이동도서관이 올 때마다 줄을 설 정도였고 책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습니다. 마에카와 씨는 지역 어린이가 “움직이지 않는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저서에 적고 있습니다. 당시 히노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아리야마 씨의 아이디어로 폐차된 도쿄도의 노면전차를 저렴하게 구입해 개조한 전차 도서관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민의 생활공간으로 파고들어 많은 대출권수로 화제가 된 히노시에 대한 평가는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출 권수로 도서관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도 되느냐, 서비스 과잉의 무료 대여소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점심을 마친 우리는 마지막 구강검진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이동식 도서관은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다고 해요.”
“히노시가 그렇게 화제가 된 줄은 몰랐네. 아이 셋 키우느라 책 살 시간도 돈도 없었지. 도서관이 와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 그 시절에는 너희들에게 오늘은 이동도서관이 오는데 공원에 놀러 가자, 한 게 다야.”
아리야마 씨와 마에카와 씨의 분투를 당시 히노 시민이었던 어머니는 모릅니다. 이동도서관의 풍경도 구체적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히노시 도서관의 역사에 대해 몇 권의 관련 서적을 참고했습니다. 특히 마에가와 씨가 1988년에 저술한 《이동도서관 해바라기호》는 시 담당 공무원과 정치인 등 공공도서관을 둘러싼 관계자들과의 논의도 상세하고 솔직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이동도서관 해바라기호》는 2016년 나츠하사에서 복간된 책입니다. 마지막 ‘복간을 맞이하여’에서 마에카와 씨는 당시 직원들은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것은 눈앞에 이용자의 미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은 히노 시민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엄마도 나도 이동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책을 잔뜩 싣고 공원까지 찾아온 그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남겼을 것입니다.
아리야마 씨는 도서관 개혁이 한창이던 196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히노시를 떠난 후에도 각지의 도서관 운영, 도서관 문제 해결에 계속 관여했던 마에가와 씨는 2020년에 세상을 떠났고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에세이 번역 :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이시바시 타케후미(石橋毅史)_작가, 출판 저널리스트
2009년까지 출판 전문지 ‘신문화’에 근무한 경험으로 서점업, 출판업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시대의창, 2017),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전설의 책방지기》(남해의봄날, 2016), 《책을 직거래로 판다-출판사와 서점이 공생하는 출판 직거래 방법》(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유유, 2021) 등이 있다.
공유형 서점이 늘고 있다한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한국에는 공유형 서점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 3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공유형 서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공유형 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혁명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미안해!바로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매장은 80여 평. 잡지, 만화, 소설, 생활실용서, 문고판 등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아동서, 인문서, 예술서 선반도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문구류나 토트백 등을 두고 있었습니다.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로,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 자리해 지역의 다양한 고객층에 대응하는
생명력을 가진 책올해는 꼭 제 방의 장서 정리를 하겠다고 지난 호에 말씀드렸는데요, 사실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그저 막막합니다. 요즘은 며칠에 한 번 책장 앞에 섭니다만 그마저도 큰 진척이 없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까지 구입한 책, 읽은 책을 한 권 한 권 펼쳐보면서 남길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