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매장은 80여 평. 잡지, 만화, 소설, 생활실용서, 문고판 등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아동서, 인문서, 예술서 선반도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문구류나 토트백 등을 두고 있었습니다.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로,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 자리해 지역의 다양한 고객층에 대응하는 서점이었습니다. 이런 서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서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카페도 하고 헌책도 파는 등 여러 유형의 서점들이 생겨났습니다. 모든 장르의 신간도서를 두루 파는 중소 서점은 이제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저희 동네의 그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무심코 입에서 나온 말은 “미안해!”였습니다. 저는 그 서점에서 책을 자주 사지는 않았습니다. 직업상 서점에 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갖고 싶은 책은 그때그때 들어간 사점에서 사는 편이었지요. 가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도 했지만 안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서점이 근처에 있어서 좋았습니다. 별 관심이 없는 장르도 포함해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책의 실물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구멍가게가 아니어서 눈치 보지 않고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서점에서 볼 수 없는 책도 눈에 띄었습니다. 점장이나 스태프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매입, 진열해놓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판매 부진의 곤경을 극복하려고 궁리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졌습니다.
그래도 책을 직접 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 혼자 많이 산다고 한들 가게가 번창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죠. 한편으로는 ‘책’이나 ‘책방’에 대해 글을 쓰는 나야말로 솔선수범해서 책을 사야 할 손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영업일이 다가오자 매장 내 세 곳에 고객이 작별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일 수 있는 큰 보드가 세워졌습니다. 며칠 안에 보드는 포스트잇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마워요, 안타깝네요’ 등 폐점을 아쉬워하는 말과 함께, ‘계산대 앞의 큐레이션 코너에 늘어선 책을 언제나 즐겁게 보고 있었습니다’, ‘재밌게 꾸민 큐레이션 공간을 볼 때마다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이나 마음 케어에 대한 셀렉션이 좋았어요. 셀텍트해주신 분께 감사‼’ 등 진심어린 큐레이션에 감사하다는 코멘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장 많았던 것은, ‘누굴 만나는 약속 장소였답니다’,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어와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30대인 지금까지, 매주 다녔습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볼펜, 샤프를 많이 샀다’, ‘우리 집에 있는 책은 거의 전부 이 서점에서 샀다’ 등 그 서점이 생활의 일부였다는 코멘트들이었죠.
그리고 ‘아쉬워! 계속할 방법은 없나요? 모두 응원할게요’라고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길 바라는 소리, ‘언젠가 다시 돌아와’라고 쓴 포스트잇을 향해 화살표를 그리고 ‘정말 그래! 꼭 역 앞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또 이 거리로 와주세요’라고 하는 메시지들도 있었습니다. 고령자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메시지가 가득했습니다.
자신들의 생활권에 서점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은 지금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점 수는 30년 전의 3분의 1 정도로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도시 지역이라면 어느 역에 내려도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신간 서점과 고서점이 몇 군데씩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점이 한 곳뿐인 마을, 심지어 한 곳도 없는 마을이 드물지 않습니다. 서점업이란 점점 지속하기가 어려운 장사가 되어갑니다.
서점 경영이 어려운 이유는, ‘(신간 서적의 경우) 이익률이 22퍼센트 정도로, 다른 소매업에 비해 낮다’, ‘1990년대까지의 서점 수가 너무 많았다(신간 서적을 취급하는 가게만 피크 시에는 2만 7천 곳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과당 경쟁이 되고 있었다’ 등 일본 특유의 문제를 포함해 많이 있습니다.
다만 가장 알기 쉬운 이유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스마트폰 하나로 읽기, 보기, 듣기, SNS에 글쓰기까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시간은 없고, 읽지 않으니 살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제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보드에 석별의 메시지를 붙인 사람들입니다. 왜 그들은 서점이 없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걸까.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고 서점도 사랑한다
그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고령자나 어린이는 차치하고, 서점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은 오히려 스마트폰을 잘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좋아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이나 취향은 다르더라도 대부분 정보에 대한 관심이 높은 법입니다. 그러니 스마트폰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럼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고 서점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떤 물리적, 심리적 과제를 안고 있을까요?
1. 책을 좋아해서 많이 사서 읽는 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독서 시간은 짧아졌고 책을 보관할 공간도 한정돼 있다.
2. 다만, 자신의 생활 속에 책은 있으면 좋겠고, 최신의 책도 접하고 싶다. 정보를 얻는 수단이 스마트폰뿐인 것은 어쩐지 무서운 일이다.
왜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가. 실은 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장서를 정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앞서 했습니다(여전히 별 진척은 없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저는 책은 ‘좋아한다’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책이란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하다’라는 감각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기능들을 내 일에 잘 쓰고 있다’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내 주위를 봐도 많든 적든 1, 2의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 앞 서점이 문을 닫자, 이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책이 있는 공간’은 공공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시설은 깨끗하고 이용하기도 쉽지만, 규모가 작고 책의 종류도 충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때를 기회로 도서관을 능숙하게 이용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원고를 쓰기 위해, 한 서점 직원이 서점업에 대해 고찰한 책을 그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지금까지는 숙독해야 할 책, 원고 쓸 때 본문을 인용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은 책들은 거의 모두 사서 보았습니다. 빌리게 되면 책에 메모를 하거나 접을 수 없기 때문이죠.
지금은 저처럼 도서관을 서점 대신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서나 서점원들, 즉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이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저는 계속 거기에 관심이 갑니다.
서점원이나 사서의 역할
제가 생각하는 서점원이나 사서의 역할은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전철을 타면 8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자고 있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 중에 제 감각으로는 한 칸에 한 명 정도 종이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가운데 한 명이나 두 명이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 풍경. 서점원이나 사서의 역할은 그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전철 안에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가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광경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하게 합니다. 다수 안에서도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섞여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는 전철 안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은 소수파를 위한 특수한 미디어가 되었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자신으로 보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독서는 자신과 마주하고 세상의 상황에 의문을 품도록 자기계발을 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책이라는 미디어는 읽는 동안 그 사람을 자타가 인정하는 상태로 고독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책과 독자 사이에는 책이 그런 성질을 가진 미디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중개자, 즉 서점원이나 사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가 좀 추상적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에 당사자의 힘을 빌리려고 합니다. 앞 회에 소개한 이토 키요히코 씨의 유작 《책방과 도서관 사이에 있는 것》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세 개 뽑아보았습니다. 서점과 도서관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책방이란 일하는 사람의 남녀, 연령층의 균형이 잡혀 있다’
서점 직원이 여성에 치우치는 경향을 이토 씨는 옛날부터 걱정했습니다. 물론 남존여비의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책은 사회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원의 속성도 다양한 편이 독자들의 풍부한 책읽기를 가능하게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토 씨와 직접 LGBTQ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더 다양한 직원 고용을 목표로 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가게는, 거기서 일하는 종업원의 얼굴이 보인다’
책의 사입과 전시, 손님 응대, 수시로 간행되어 나오는 책을 선별해 반영하는 스태프의 존재는 정말 중요합니다. 경영자나 관장은 직원이 바뀌어도 서비스의 질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죠. 특히 공공도서관은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직원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토 씨는 운영이나 관리가 쉽지는 않아도 ‘스태프의 얼굴이 보이는’ 서점이나 도서관을 지향했습니다.
‘도서관의 역할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서점업계는 여전히 서점이 잘 나가던 시대의 경영기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서라고 판단되면 팔기 힘들어도 다 들여놓다 보니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이토 씨는 다음과 같이 예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양서를 취급하는 리스크를 지지 않고 팔기 쉬운 책만 취급하는 서점도 결국은 사라져 갈 것이다……. 서점과 도서관이 본래는 모두 한 동네에 있는 편이 좋지만, 당분간은 서점이 계속 줄어들게 되어 ‘파는’ 것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책을 취급할 수 있는 도서관의 역할이 커진다.
모두 관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서와 서점원 개개인, 그리고 나와 같은 외부인의 존재도 의식하면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이토 씨가 묻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 번역 :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이시바시 타케후미(石橋毅史)_작가, 출판 저널리스트
2009년까지 출판 전문지 ‘신문화’에 근무한 경험으로 서점업, 출판업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시대의창, 2017),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전설의 책방지기》(남해의봄날, 2016), 《책을 직거래로 판다-출판사와 서점이 공생하는 출판 직거래 방법》(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유유, 2021) 등이 있다.
얼마 전 수술을 앞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함께 갔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심장판막증으로,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왔지만, 점점 악화되어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기 전에 인공판막을 장착하는 것이 좋겠다는 담당 의사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이 나
작은 서점들이 협력해 공공도서관 운영을 맡은 사례먼저 정정 및 사과를 드립니다.2회째 글에서 도쿄도 마치다시의 서점인 히사미도(久美堂)가 2022년부터 시립 공공도서관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지역 서점이 공공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사례는 많지만, 도서관 운영까지 맡는 것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서점에 국한된다고 썼는데, 이는 잘못된
책이라는 상품의 운명나는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서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왔습니다. 이들은 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로 책이 잘 팔리거나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따라 생계가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자세히 보면 어쩔 수 없는 양가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더 라이브러리’ 독자들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