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비현실적일 정도로 과장된 일, 혹은 너무나 천진난만한 일 앞에서 ‘만화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나도 그렇다. 만화를 업으로 삼으며 다양한 작품을 여러 방식으로 접하는 만큼 내게는 만화가 훨씬 복잡한 의미를 가지는데도, 무심코 ‘만화 같다’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일흔 살 노인이 발레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웹툰 <나빌레라>를 보면서도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발레리노를 꿈꿨지만 현실의 제약으로 꿈을 덮어둬야 했던 할아버지 ‘덕출’이 은퇴 후 뒤늦게나마 발레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가족들은 단호히 말리고 나이 든 몸 역시 따라주지 않는 와중에 치매까지 그를 방해한다. 하지만 덕출은 나이가 들긴 했지만 제법 타고난 신체 능력과, 그 신체 능력 이상의 정갈하고 지독한 성실함을 지녔다. 스물셋 청년 ‘채록’과 벗이자 사제 관계를 맺으며 부단한 노력을 통해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발레 무대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낸다.
2016년 연재 당시엔 눈물까지 지으며 몰입해 읽었지만, 시간이 흘러 작품을 곱씹을수록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로 다가왔다. 아무렴 사람이 마음먹는다고 정말 다 될까. 개인의 노력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건 아닐까. 아름답지만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던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든 것을 보면, 만화를 좋아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나 역시도 만화가 보여주는 일들 모두를 믿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기호화된 그림으로 전달되는 만화는 밝은 이야기를 그리기에 영화나 소설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냉랭함을 전하는 비관보단 꿈과 가능성을 기대하는 낙관이 어울리고, 그것이 위로와 용기를 줄 때가 있다고도. 그러나 대개의 나는 희망보단 기만을 읽어내는 데 눈이 밝고, 평범한 기대조차 곧잘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런 비관적인 인간이라 꿈을 그리는 이야기가 믿기 어려운가 보다.
켜켜이 쌓인 냉소로 덮어두었던 만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021년 <나빌레라>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였다.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유명 작가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으니 드라마화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덕출 역을 맡은 박인환 배우가 “1989년 KBS 2TV <왕룽일가> 이후 32년 만에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연기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미니시리즈’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그 긴 시간 동안 주연의 기회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당 기사가 눈길을 붙들 만큼 설득력 있게 느껴진 것은, 내게는 그가 날 때부터 항상 그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 있던 배우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의 얼굴로 극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물이었다. 정말로 나는 그의 주연 연기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나빌레라> 속 박인환의 얼굴이 매 순간 새롭고 새삼스러웠다. 공중파의 주말드라마에서만 보던 얼굴을 tvN의 그윽한 필터를 거쳐 보니 분위기부터 다르게 느껴졌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표정들을 새로이 볼 수 있었다. 발레 하는 채록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된 표정이나, 발레 자세를 버티느라 고통과 집념으로 일그러진 얼굴 같은 것들.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 남편이나 소파에 앉은 아버지로 있을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드라마의 조연으로 이름도 모른 채 스쳤던 십수 년 간의 얼굴들보다, 덕출이란 이름으로 마주한 몇 시간 동안의 얼굴이 훨씬 다채롭고 음영 깊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이의 얼굴이란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눈에 박혔던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노인의 것을 하고 있는 그의 몸이었다. 주름진 피부와 작아진 키, 불룩 나온 배가 발레복을 입으니 한껏 도드라졌다. 그 몸이야말로 다른 어떤 각색보다도 원작과 달랐다. 사실 만화의 덕출은, 너무 예쁘다. 평균의 웹툰들과 비교해 꽤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됐음에도, 만화 속 덕출의 몸에는 ‘낡은’ 노인의 몸이란 느낌이 거의 없다. 늘어진 피부나 굽은 몸, 굵어진 선 같은 평범하게 오래 사용한 몸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징들이 생략되어 있다. 어쩌면 만화 속 덕출의 꿈 이야기를 믿지 못했던 이유가 그것이 허무맹랑할 만큼 대단해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 그 자체의 몸으로 서 있는 박인환 배우를 보고 있자니, 노인의 발레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 충분히 육화(肉化)된 몸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낼 수 있을까’ 싶어 망설였지만, ‘내 나이에, 앞으로 이런 좋은 작품, 배역이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후회하지 않으려 무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는 박인환 배우의 모습은 발레를 결심한 덕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배역을 위해 6개월의 특훈을 견디고 ‘민망’한 발레복까지 입는 과정을 거치며 배우 박인환은 덕출이 되었고, 발레 하는 노인이 될 수 있었다. 덕출보다 많은 76세란 나이에 몸소 발레를 해냄으로써 ‘만화 같은’ 상상력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 증명을 보고서야 내가 허무맹랑하다 여겼던 만화 속 풍경들이 사실은 조금 과감한 상상일 뿐이라 생각했고, 내게도 그런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만화와는 전혀 무관하게, 우연히도 바로 며칠 전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는 것이 일인 사람이 으레 그렇듯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서였다. 몸 상태를 점검하는 수업 첫날, 선생님께선 화들짝 놀라며 몸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다 평했다. 만 서른 살도 안 됐는데 그런 선고라니, 무너진 몸과 함께 마음마저 무너지는 듯했다. ‘이제 와 운동 좀 한다고 무너진 몸이 회복될까? 20대 초반에는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10년만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던 덕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동시에 내 평생의 시간인 30년이, 박인환 배우가 다시 미니시리즈의 주연을 맡기까지의 공백보다도 짧은 시간이란 사실도 떠올렸다. 두 사람을 생각하자 어차피 더 빠를 수도 없는 것 과감해지자는 마음이 됐다.
날아오르듯 발레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보다 곧은 등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싶다. 그 등과 다리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내디뎌도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그곳이 좀 멋진 곳이었으면 좋겠다. 만화 같은 상상력을 발휘해 그려나간다면, 비관을 주저하는 용기와 대범함을 지닌다면, 지금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멋진 곳에 정말로 도착할지도 모르겠다.
최윤주_만화평론가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만난 인물들에게 현실의 인연만큼 선명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 재주를 살려 평론을 쓰게 됐다. 웹툰을 읽을 때 댓글을 꼭 함께 읽는 습관이 있고, 가끔 베스트 댓글이 되는 것이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어떤 연결감 속에서 읽는 일의 의미를 고민한다.
풍성한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장송의 프리렌》을 설명하는 방법도 수십 가지는 될 텐데, 다른 무엇보다도 ‘선의의 기원’을 주제로 이 작품을 말하고 싶다.《장송의 프리렌》은 천 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 이상의 시간을 살아갈 마법사 ‘프리렌’이 함께 모험을 했던 용사 ‘힘멜’을 이해하고 싶어 떠나는 두 번째 모험담이다. 엘프인 자신의 수명에 비해 찰나를 사는
만화 《극락왕생》은 불교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만화다. 당산역 귀신 ‘박자언’이 1년 간 지난 생을 다시 살면서 극락왕생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삶과 죽음을 다뤘다. 친구의 장례식이 끝나고 줄곧 이 만화를 떠올린 것은, 그러니 진부할 정도로 필연적인 발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볼 때부터 눈물이 났던 에피소드가 마치 예약 메일이라도 되는 듯 시의
많고 많은 만화의 장르 중 가장 다정하고 보드라운 것을 고르라면 조금도 고민 않고 순정만화라 답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위로와 교훈을 순정만화로부터 빚져왔다. 올해 가장 많은 신세를 진 작품은 《스킵과 로퍼》다.주인공은 중학교의 동급생이 겨우 여덟 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에서 진학을 위해 상경한 ‘미츠미’이지만, 굳이 주인공을 짚으려니 어색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