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다. TV의 건강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한 외국 여성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암을 최초로 발견하고 경고한 것은 바로 반려견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반려견이 주인의 몸에서 특이한 냄새를 맡고 계속 경고성 행동을 해서 병원에 가게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암세포에서 발생하는 어떤 냄새를 감지한 것이리라.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개를 훈련시켜 특정 암세포 배양액을 찾아내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훈련된 개의 후각 능력은 올림픽 수영장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를 감지해낼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니 개가 주인의 암을 발견해 짖어대는 것이 허황된 얘기가 아니며 개와 관련된 또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개 사이의 신뢰와 사랑에 관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동화, 소설, 드라마의 단골 소재일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뉴스 기사에서도 심심찮게 다뤄진다.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여러 통계의 데이터를 토대로 추정하기를,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천 500만에 달하며, 그중 개를 키우는 경우가 약 75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저녁에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이 네 명 중 한 명 꼴로 많은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세 명 중에 한 명은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 예쁘고 귀엽거나 잘생긴 개를 보면 나도 개를 입양해볼까? 생각하지만 내 형편을 따져보고는 바로 그 생각을 철회하곤 한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 틈에서 듣는 그들 사이의 러브 스토리는 때로는 미소, 때로는 눈물과 함께 끝없이 이어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저 개와 주인 사이엔 어떤 강한 인연이 있기에 저토록 서로를 끔찍이 여기며 평생(개의 평생)을 함께하는 것일까? 개를 키워보지 않은 나로선 동물과 인간 사이의 교감, 어떤 영적인 연결 같은 것을 경험한 적도 없고 짐작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프랑스의 한 저명한 문필가는 자신이 기르던 개의 이름을 책 제목에 쓸 정도로 개와 각별했다. 그 각별함은 인간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비롭고 은밀한 교감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 문필가와 개는 ‘로제 그르니에(Roger Grenier, 1919~2017, 프랑스)’와 그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Ulysse)’다.
로제 그르니에는 20세기 프랑스 지성의 중심에 있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그는 1998년 ‘윌리스의 눈물(Les Larmes d'Ulysse)’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는데, ‘윌리스(Ulys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영어식 이름 ‘율리시즈Ulysses’의 프랑스어 발음이다)는 그가 키우던 개 이름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의 문학평론가이자 프랑스어 번역가인 김화영 교수가 한글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라고 붙였다. 미국에서도 번역판에는 ‘The Difficulty of Being a Dog’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아, 그르니에 씨가 각 나라에서 독자들에게 더 잘 이해될 만한 제목을 붙이는 것을 허용한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원서에 나오는 숱한 프랑스 작가와 철학자, 예술가, 거리 이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김화영 교수의 의견이 가미된 주석이 달렸고,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개, 거리 사진들이 풍부하게 첨가됐다. 김교수가 덧붙인 주석과 사진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고유명사들로 인해 마냥 복잡하고 지루했을 텐데, 번역가의 애정과 정성으로 흥미롭고 사랑스런 책으로 재탄생했다. 한국 독자들은 이 주석 덕에 책 본래의 따뜻함과 유머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김화영 교수는 부록으로 저자인 로제 그르니에와의 인터뷰를 실어서 저자와 책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였다. 김교수가 그르니에를 만난 것은 2002년 3월 22일, 그르니에 나이 82세 때다(그는 그 후 15년을 더 살다가 2017년 아흔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김교수는 전부터 까뮈 학회에서 ‘고요하고 깊은 눈빛’의 그를 보기는 했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다가, 《윌리스의 눈물》을 번역하기로 하고 나서 여러 궁금증을 직접 물어보기로 작정하고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고 한다. 프랑스 문학에 무지한 나는 김교수의 그르니에와의 인터뷰 글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로제 그르니에는 1919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항구도시 캉(Caen)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때 남서부 피레네 산맥 근처 포오(Pau)로 이주해 열일곱 살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징집당해 군복무를 하다가 1942년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으로 가서 그곳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44년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친구들과 파리 해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소르본에서는 《불의 정신 분석》으로 유명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 1884~1962, 프랑스) 교수 지도하에 석사 논문을 준비했다.
파리 해방 후 그는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그는 자신을 신문기자로, 작가로 만든 사람이 바로 까뮈였다고 말한다. 까뮈가 주필로 있던 일간지 <콩바Combat>와 한 건물에 있던 주간지 <리베르테Libertés>에 글을 쓰다가 까뮈의 눈에 들어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그는 까뮈의 추천으로 유서 깊은 출판사 갈리마르(Gallimard)에서 첫 책 《피고의 역할》을 출판하면서부터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후 소설과 에세이로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하여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 대상이 수여되었다.
대표작으로 《시네 로망》(페미나 상), 《겨울 궁전》 등의 장편소설과 <물 거울>(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 소설 대상), <그 시절 사람> 등의 단편소설, 까뮈, 체호프, 피츠제럴드에 대한 작품론, 평전 등 다수의 에세이가 있다. 저술 활동 외에 그는 1964년부터 갈리마르에서 편집위원, 출판할 책을 선정하는 독회의 위원, 이사로 활동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갈리마르와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또, 수십 년 동안 프랑스 라디오와 TV에서 문학, 출판 관련 방송을 했다. 이런 경력으로, 그가 모르는 20세기 프랑스 문화계 인사가 없었으며 그를 모르는 문화계 인사 또한 없었으니, 누가 뭐래도 그는 프랑스 지성의 핵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로제 그르니에가 이런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배경을 알고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를 읽으니, 이 책이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신의 애견 율리시즈가 죽자, 율리시즈를 키울 때의 추억과 동서고금의 문학가, 철학자, 예술가들의 개에 관한 사유, 단상, 담론들을 모아서 책으로 펴냈다. 그는 이 책을 일종의 개에 대한 명상집이라고 했다. 나는 이 책이 율리시즈에 대한 그리움이자 추모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율리시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이다. 그에게는 충직한 개 ‘아르고스’가 있었다. 아르고스를 두고 전쟁에 나갔다가 오랜 항해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율리시즈는 변장을 한 탓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오로지 아르고스만이 그를 알아보았다. 아르고스는 자신의 주인 율리시즈를 보고 꼬리를 흔들지만 이미 늙고 기진하여 일어서지조차 못하고 주인에게 다가가지도 못 한다. 이런 모습에 율리시즈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린다. 책의 제목인 ‘율리시즈의 눈물’은 바로 이 이야기로부터 나왔다. 물론 그르니에의 개 이름은 아르고스가 아닌 율리시즈였지만.
이 책에는 죽음을 앞둔 율리시즈를 보고 격렬한 울음을 터뜨린 이웃 로맹 가리를 비롯해 라캉, 사르트르, 마테를링크, 릴케, 보들레르, 채플린, 플로베르, 까뮈, 카프카, 아폴리네르, 괴테에 이르기까지, 개에 관해 단 한마디라도 했던 유명 인사라면 다 그의 작품과 말이 인용된다. 그리고 그들이 키웠던 혹은 작품에 나오는 개의 이야기도. 대표적인 예로 버지니아 울프의 《플러쉬》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삶과 사랑을 제3자의 눈과 코(후각)를 통해 전하는데, 그 제3자가 바로 ‘플러쉬’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사냥개(코커스패니얼)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플러쉬》라는 작품의 포맷이 개의 의식을 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됐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유명 인사들의 개에 관한 생각뿐 아니라 개를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얻게 된다. 이 책은 여러 유명 인사들의 개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 철학적 사유까지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인문 교양서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읽는 중에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2~1922, 프랑스)와 작곡가 레날도 안(Reynaldo Hahn, 1875~1947, 프랑스)에 대한 에피소드에 눈길이 머문다. 그 둘은 한때 연인이었다. 프루스트는 어느 날 안의 개 자디그에게 편지를 썼다. 문체도 어린애나 강아지 같은 문체로.
그리운 자디그에게
나는 너를 아주 사랑해. 왜냐하면 너는 나보다도 슬픔과 사랑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데 넌 이 세상 전체에서 그보다 더 좋은 상대를 만날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난 그가 너하고 더 많이 있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게 당연하니까. 그리고 넌 더 불행하고, 더 사랑하는 중이니까.
아마도 프루스트와 안이 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 쓴 글이라고 여겨진다. 프루스트는 질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안과 애견 자디그의 순수한 사랑, 그리고 늘 함께 지내는 것이 몹시도 부러워 이런 편지를 쓰게 된 것이 아닐까. 다만 자디그 또한 안만큼이나 사랑스런 존재였기 때문에 질투로 인한 비극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뿐이다.
작곡가 레날도 안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 프랑스 가곡(mélodie)에 있어 지나칠 수 없는 작곡가다. 안이 불과 열세 살의 나이에 작곡한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Si mes vers avaient des ailes)>이나 <클로리스에게(À Chloris)> 같은 아름다운 선율의 가곡은 프랑스적인 우아함과 순수함, 애틋함을 느끼게 해주며 우리를 꿈꾸는 듯한 세계로 이끈다. 레날도 안의 음악은 프랑스 정서로 가득하지만 그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베네수엘라로 이주한 유태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아주 부유한 집안의 열두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이 파리로 이주하면서 프랑스 문화를 접하게 된다. 파리에서도 상류 계층과 교류하는 집안 환경으로 인해 일찍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고, 파리음악원 예비반에서는 마스네, 구노 같은 당대의 유명 작곡가에게서 작곡을 배웠으며, 생상스에게서도 개인지도를 받았다.
안이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처음 만난 것은 열아홉 살이던 1894년 5월 22일 화가 마들렌 르메르(Madeleine Lemaire)의 살롱에서였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안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2년 동안 연인으로, 이후에도 평생토록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지냈다. 프루스트는 늘 자신이 이룬 일들은 모두 안의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로 안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은 클래식 애호가에게조차도 낭만적인 프랑스 가곡 작곡가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피아노 4중주, 5중주 같은 실내악부터 협주곡, 오페레타, 발레, 연극, 영화음악, 당시 유행하던 재즈나 탱고의 흔적이 담긴 코믹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많이 작곡한 음악가다. 지휘자와 평론가, 성악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오랫동안 잊히고 과소평가되어왔지만 그의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깨끗한 느낌을 주는 작품에 주목해 최근에는 그의 가곡을 피아노, 오보에 등 기악곡으로 편곡,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여럿 있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작품이 하나하나 우리에게 더 모습을 드러내길 기대해본다.
로제 그르니에의 책이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레날도 안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겠는가? 어느 날 클래식 음악 방송이나 연주회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경우가 아니면 일부러 들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에게 또 다른 감사 인사를 해야 할 모양이다. 동시에 중절모를 옆으로 살짝 비껴 쓰고 손가락에 담배를 끼운 채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속 레날도 안의 댄디한 모습도 모른 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레날도 안(Reynaldo Hahn)
[음악 감상]
레날도 안 R. Hahn <클로리스에게À Chloris >
(메조 소프라노: 레아 데잔드레Lea Desandre, 류트: 토마스 던포드Thomas Dunford)
레날도 안이 19세기 프랑스에서 재조명받은 바로크 시대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테오빌 드 비오(Théophile de Viau, 1590~1626)의 시에 붙인 가곡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노래다. 클로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의 요정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대명사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 반주로 노래하는데, 이 영상에서는 류트 반주로 노래해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음악 감상]
레날도 안 R. Hahn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Si mes vers avaient des ailes>
(메조 소프라노: 수잔 그레이엄Susan Graham, 피아노: 로저 비뇰스Roger Vignoles)
레날도 안이 열세 살에 대 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 프랑스)의 시에 붙인 곡이다.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순수하고 진실된 당신 곁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노래한다. 평이하고 단순한 멜로디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임주빈_전 KBS 클래식FM PD, 음악 칼럼니스트
임주빈은 KBS 클래식FM에서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KBS 라디오센터장과 예술의전당 이사를 역임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고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자 힘을 쏟았고, 지금은 강의, 글쓰기 등을 통해서 많은 이와 클래식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작곡가의 생애와 대표작을 수록한 CD 시리즈 “Listen & Lesson – 해설이 있는 클래식‘ 20종을 기획, 제작했다.
마침내 완전한 가을이다. 기후 위기는 해가 갈수록 우리의 여름을 점점 더 견디기 힘들게 한다. 올여름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이 가을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도 아니요, 겨울의 초입도 아닌 가을의 한복판이다. 비로소 안도하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불같이 뜨겁던 여름 햇빛은 어느새 가을의 필터를 끼우고 어루만지듯 나뭇잎을 시나브로 물들
해마다 5월이 되면 클래식FM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기다렸다는 듯이 플레이리스트에 올리는 곡이 있다.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이 하이네(H. Heine)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의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Im wunderschönen Monat Mai)’다. 1840년에 작곡됐다. 그 해는 슈만과
어떤 책은 읽고 있으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과 비교해서 낫다는 말이 아니라, 그 책을 읽지 않았을 때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잊고 지냈던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다든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나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인가 생각해본다든가,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지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