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남한산성에는 만해기념관이 있다. 만해기념관에는 전보삼 관장이 있다. 전보삼 관장은 만해를 연구하고 만해를 부르짖으며 60년을 한결같이 만해와 함께 살아온 분이다. 전시장 전시물은 하나하나 만해의 분신이자 전보삼 관장의 분신이기도 하다. 만해가 살아온 생애가 불교, 조국을 향한 나룻배였듯이 전보삼 관장의 역할이 만해 정신을 향한 나룻배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재 (사)한국문학관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전보삼 관장을 만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만해기념관의 설립 배경, 한국문학관협회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Q 만해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까 오래전 일이죠. 만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님의 침묵》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과의 만남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 운명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해가 부처를 처음 만났을 때만은 못하겠지만, 사춘기 소년에게는 강렬한 충격이었으니까요.
A 강릉포교당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불교에 빠져 반야심경을 열심히 외고 있을 때였는데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러던 중 객승 한 분이 포교당에 들렀기에, 자꾸 물었지요. 무어라 설명해주긴 하는데,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계속 질문을 하니까 귀찮았는지 “얘기해야 네가 뭐 알아듣겠나. 이거나 읽어 봐” 하며 책 한 권을 던져주는데 바로 《님의 침묵》이었습니다. 첫 구절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게 반야심경의 첫 구절과 딱 맞는 거예요, 그렇게 설명해줘도 이해되지 않던 것이 이 한 줄로 단번에 와 닿았어요. 막혀 있던 의문이 확 풀린 거죠. 궁금증 많았던 나로서는 큰 깨달음이었지요. ‘아, 바로 이거다. 한용운, 이분은 어떤 분인가?’ 그때가 중학교 2학년, 1963년 2월이었지요.
Q 결국 《님의 침묵》, 한 권 시집과의 만남은 만해와의 ‘날카로운 첫 키스’였네요. 중학교 2학년 사춘기 때 만해와 첫사랑을 시작한 거고요. 당연히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이렇게 되셨겠군요. 그러니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만했네요.
A 글쎄요.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일 수도 있겠지요. 당시로서는 ‘불교의 깊은 교리를 이렇게 쉽게 풀어놓을 수도 있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지요. 무엇보다. 만해라는 분을 더 알아야겠다는 강한 지적 욕구가 불같이 일어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만해를 죽어라 공부하면 그분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Q 이후 만해를 알아가기 위한 구도의 행로가 시작되었을 텐데요,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을 것 같습니다.
A 고등학교 때까지 강릉에 있었기 때문에 자료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만해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요. 서울 통문관에 우편환으로 책을 주문해서 밤새워 읽었지요. 서울에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전국 여러 스님들을 만나 뵙고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만해를 직접 만나본 후학, 제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실감나고 감동적이었지요. 청담스님, 효당 스님, 경봉 스님, 탄허 스님, 석주 스님, 이분들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만해의 정신적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했고 만해를 향한 배움의 의지를 견고하게 했습니다. 그때 큰스님들의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지요.
Q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60년 넘게 한결같이 만해와의 사랑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만해의 어떤 점을 닮고 싶으셨는지요.
A 만해는 정의롭고 올곧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불의와 야합하거나 또 개인의 편안함, 영달을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는 그런 분이 아니셨죠. 소신을 갖고 꿋꿋하게 평생을 사신 분입니다. ‘살아서 죽는 짓 하지 말고 죽어서 영원히 사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신념이었습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념이 마음 중심에 굳게 자리잡고 있었지요. 어려운 시대, 확고한 지향점을 갖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Q 만해에 대한 배움의 과정은 만해기념관 개관으로 이어지는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A 여러 해 동안 사람을 만나고 수집한 자료가 쌓여가면서 심도 있고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만해 정신의 국민적 승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만해 정신 확산의 거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1981년 성북동 심우장에 만해기념관을 개관했습니다. 만해가 힘겹게 만년을 보낸 심우장에서의 첫출발은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이었지요. 개관 첫날 밤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해 사후 개인이 사용하고 있던 집에 만해 정신 확산의 거점을 마련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지났지만 곳곳에 만해의 체취가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꿈꾸며 한걸음 가까이 만해에 다가갔다는 생각에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만해사상연구회 이름으로 연구 논문집을 발간했고, 정본 《님의 침묵》 간행 등 많은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밤낮없이 뛰어다녔습니다.
Q 관장님은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어 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길을 개척해가는 데 만해가 늘 함께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라나 종단에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해오셨는데,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기념관 40여 년 세월을 돌아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A 다들 그러죠.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일이라고. 하지만 간절했습니다. 만해가 보이지 않게 끌어당기는 힘도 강렬했지요. 일하다 보면 비바람이 불 때도 있고 눈보라가 칠 때도 있고 그렇지요. 또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잖아요. 현재의 어려움이 ‘만해가 겪은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지요. 다시 용기를 내게 되고요. 결코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습니다.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길을 가라. 그런 말도 있잖아요. 이 사회에 내가 지불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지요. 좀 적자가 되더라도 하는 일을 즐겁고 기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식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Q 보람도 있을 텐데요.
A 성북동 심우장에서 시작해 44년이 됐네요. 세월 참 빠르죠. 만해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위대한 삶인지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운동을 지치지 않고 해오고 있다는 것이 가장 보람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만해의 삶을 통해서 현재의 내 모습을 비추어보고 한 번쯤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근대사에 만해라는 큰 인물이 있고 그분의 생각과 사상, 그 큰 정신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나름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 그것이 큰 보람이죠. 만해가 말한 ‘나룻배와 행인’에서 나룻배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Q 맞습니다. 그동안 해오신 일들을 생각하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서’ 만해의 정신으로 이끄는 나룻배 역할을 해오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돌아보면 만해기념관은 기획전시나,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우리나라 문학관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무엇보다 주제가 분명합니다. 곧 만해라는 인물이 갖는 무게감입니다.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여러 모습으로 비쳐지지만 이것이 통합되어 원융무애의 경지에 이를 때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것은 교육 프로그램의 깊이, 전시 주제의 다양성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입체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전시 프로그램을 개발해 확대해가는 것이지요. 유사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주제를 찾아내려는 고뇌의 과정은 필요합니다.
Q 아무리 무게감 있고 비중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운영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A 모든 일이 그렇듯, 절실하면 방법이 있고 간절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하고 절실하니까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거지요. 만해를 향한 절실함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오게 되고 발전적 방향으로 가게 되지요. 명확한 목표 실현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의 농도에 따라 결과도 달라집니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방향도 흔들리게 되고 결국은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랑의 노래’가 되고 말지요.
Q 방향을 바꾸어 한국문학관협회에 대해 말씀 나눠보지요. 관장님께서는 2016년부터 협회장직을 맡아오셨습니다. 그간 많은 일을 추진해오셨는데 먼저 문학관협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A 2004년 한국문학관협회로 출범한 문학관 대표 협의체입니다. 초대 이사장은 김후란 선생이 맡으셨지요. 초창기에는 임의 단체로 친목 단체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2016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일차로 법인화를 추진해 1년 만에 법인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와 파트너십이 형성되고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거죠. 이로써 전국 문학관이 결집되고 확산시켜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문학의 진흥과 문학 유산의 보존, 전시, 교육, 홍보를 지원하는 단체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Q 한국문학관협회에는 현재 97개 회원관이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학관의 핵심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문학관은 꿈과 상상력이 자라게 하는 그런 공간이지요. 어느 면에서는 창의성의 원천 소스를 제공해주는 창고와 같기도 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유소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문학관의 핵심 콘텐츠는 사람과 작품이잖아요. 그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서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작품을 통해서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공간, 곧 인문정신이 발현되는 창조적 공간이 문학관입니다. 요즘처럼 가치관이 흔들리고 개인화되어가는 이기적 사회에서 문학관의 역할은 더 커지는 거지요.
Q 협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 문학관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더욱 확산시켜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지난 몇 년 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각 문학관 별로 스토리텔링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소장품이나 관련 인물, 장소 등에 스토리를 입히는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전시품은 정해진 공간에 정지되어 있지만, 이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어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스토리텔링은 문학관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여 문학관 상주 작가의 협조로 3년 간 지속적으로 추진해 훌륭한 결과물을 발간했습니다. 반응도 좋았습니다.
올해 우리 만해기념관에서 시범으로 단행본 《스토리가 있는 만해기념관》을 간행했는데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전국 문학관으로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국 문학관의 이야기가 모이면 국가적 문화 자산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파생 효과를 가져오는 문학관 아트 상품 1호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전국 문학관이 지역을 거점으로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는데요,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요.
A 소장 자료의 지속적인 확보와 관리, 체계적인 프로그램 운영과 내용의 질적 향상, 방문객에 대한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 전문 인력 확보가 가장 절실합니다. 사립 문학관의 경우, 설립자들은 그 분야에 뜻을 둔 전문가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혼자서 일을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정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을 파견해줌으로써 그분들이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콘텐츠, 건물, 인력을 문학관 운영의 3대 요소라고 하잖아요. 문학관이 인문정신 허브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 확보가 절실합니다. 내년에는 정부에서 인력 지원을 약속했는데 조만간 실현될 수 있을 겁니다.
Q 이제 올 한 해도 저물어갑니다. 내년에는 어디에 중점을 두어 사업을 진행하실지 궁금합니다. 혹시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A 현재 각 지자체와 힘을 합해 활발하게 운영하는 문학관도 있고, 아직 제자리에 서 있기에도 바쁜 문학관도 있습니다. 문학관 별 전문성을 살려 특성 있는 문학관으로 발전시켜가는 한편, 전반적 수준을 높여 이용자의 만족도를 높여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관과 문학관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관이 울타리를 허물고 발전적 방향을 함께 논의해가는 한편, 종사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합하고 동참하는 가운데 서로의 발전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전문 인력 지원뿐만 아니라, 매년 개최되는 전국문학관대회를 더욱 알차게 운영함으로써 전국 문학관의 위상을 높여가는 데 힘을 집중해야겠습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관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만해기념관 운영 철학의 바탕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대 한국문학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남은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밝아오는 2025년, 관장님의 뜻이 더 밝게 빛나는 희망의 한 해가 되길 빌겠습니다.
이창경_신구도서관재단 이사, 수필가
신구도서관재단 이사, 한국출판학회 고문, 수필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1년 《추강 남효온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04년 《문예운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고전 편찬 일을 도왔고 1989년부터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출판 교육, 출판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 연구에 힘써왔다. (사)출판문화학회 회장, (사)한국출판학회 회장, (사)아시아민족조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쓴 책으로 《함께 걷는 책의 숲》과 《세계의 식물원 산책 1》(공저)이 있다.
이효석 선생을 만나러 봉평으로 떠나는 아침.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몇 해 전 겨울, 이효석문학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날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메밀꽃이 없는 봉평, 허생원과 동이가 건너던 냇물이 없는 봉평의 겨울은 한없이 적막했다. 그 겨울바람 속에서 메밀꽃이 필 때쯤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선생은 소금을 뿌린 듯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 · 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노작홍사용문학관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5월호(첫 회)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동탄, 해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지역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부산에 소재한 추리문학관을 기행한 내용을 6월 호에 게재한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6월 바닷바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