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 서지 =
잡초를 매는 서지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A 요즘 작두콩의 모습이 나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근, 아버지가 기르던 작두콩의 씨앗을 받아 화분에 심어 자세히 관찰을 하곤 하는데, 덩굴이 자라는 속도가 엄청나서 어느새 작두콩을 바라보면 모습이 달라져 있곤 한다. 특히나 재미난 부분은 덩굴의 가장 끝부분인데, 마치 주변 환경을 탐지하는 눈이 달린 것만 같다. 촉수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작두콩은 타고 올라갈 만한 주변물을 너무나 잘 찾아 때론 칭칭 감기도 하고, 때론 방향을 틀기도 한다. 그렇게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마치 MBTI 성격유형 중 ENFP인 나의 모습을 닮았다고나 할까.
나는 관심사나 취미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그런 관심사를 잇는 작업을 좋아한다. 내가 만든 제로웨이스트 브랜드 MU도 내가 추구했던 지속가능성을 아버지의 제품과 연결하는 작업에서 태어났다. 유기농이라는 환경적인 가치가 플라스틱 티백과 모순된다는 깨달음에서 시작해, 제조 공법을 바꿔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No Teabag’ 차를 런칭한 것이다.
일년생인 작두콩은 다음해에 다시 씨앗을 심어줘야만 자랄 수 있는 친구다. 하지만 그 뿌리는 결국 동일하다. 농부가 되었다가, 때론 번역가가 되었다가, 때론 서퍼가 되는 나는 자주 모습을 바꾸지만 결국 뿌리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다.
Q 농사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하루는 언제인가.
A 모든 농부가 그러하듯 수확하는 날이 가장 뿌듯하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다양한 작물을 심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는 건 제주도의 산디다. 산디는 제주도의 토종 벼인데, 제주도의 땅은 화산암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물이 송송 빠져 벼농사가 어렵다. 그래서 밭벼를 심는다. 나는 막걸리를 좋아하고 특히나 손으로 담가 먹기를 좋아해서 직접 농사부터 지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수확량은 씨앗을 받는 정도에서 그쳤다. 벼가 자라기에는 맞지 않은 땅이었던 거다. 그때 자연은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알아서 성장한다는 자연의 지혜를 몸소 체험했다. 고집으로 그 지혜를 이기려고 했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밭에서 잘 자라는 씨앗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중이다. 농사에서 인간의 역할은 통제하는 게 아니니까. 통제할 수도 없고.
Q 비건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비건 음식은?
A 낫또버섯밥을 추천한다. 표고버섯을 기름에 바싹 볶아 유자간장을 두른 뒤, 낫또와 송송 썬 파를 밥 위에 올리면 간단하게 완성된다. 건강하게는 먹고 싶은데 요리하기는 귀찮을 때 자주 해먹는 요리다. 유자간장이 없다면 유자청과 간장을 1 대 1로 섞어주면 간단하게 소스도 만들어볼 수 있다.
Q 제주도를 방문하는 독서가가 꼭 가봤으면 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이를테면 책 읽기 좋은 휴식 공간이라든가.
A 곶자왈에서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에는 곶자왈이 많다. 곶자왈은 일종의 원시림인데,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야생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곶자왈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오래 음미하고 싶은 풍경이 나온다면 그곳에서 독서를 해보는 건 어떨까. 곶자왈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 소리, 바람 소리 아래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제주도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인 것 같다.
Q 20년간 유기농 농사를 지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A 초등학생 무렵, 아버지의 가장 밝은 표정을 보았던 걸 기억한다. 아버지가 직접 키운 표고버섯을 처음으로 수확해 온 날이었다. “서지야, 이거 봐라. 아빠가 직접 수확한 유기농 표고버섯이야”라며 표고탕수를 해주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farm to table’을 경험한 것이다. 어찌 보면 정말 축복받은 거다. 농장에서 갓 따온 버섯의 진한 향과 아버지의 사랑으로 내온 음식은 어머니의 음식만큼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억이다.
Q 귀농을 망설이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단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화분에 씨앗 하나를 심는 것도 좋다. 여력이 된다면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구해볼 수도 있겠다. 내가 진정으로 그 일을 즐기는지, 그리고 내가 농사에 재능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처음의 동력을 잃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으니까. 성공하는 경험을 쌓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 어느새 농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노동해서 키운 작물을 먹고 나면 농사의 즐거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Q 수상한 농부 서지에게 농사란?
A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뿌리를 찾는다고나 할까. 밭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있다 보면 책상 위에서 가졌던 많은 고민이 가벼워지거나 사라지는 과정을 몇 번 겪었다. 그리고 본질에 집중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 힘들 때면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곤 한다. 많은 고민도 잠시, 잡초를 매다 보면 어느새 지금 밭을 매고 있는 현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달라진 땅도 보이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와 지렁이도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질 수 있다. 농사를 짓다 보면 가끔 시들해지는 식물이 있는데, 뿌리만 살아 있다면 또 어느새 생명력을 되찾고, 새로운 싹을 틔우곤 한다. 우리 인간도 결국 자연이기에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농사는 그렇게 나의 뿌리를 바라보는 일종의 명상인 셈이다.
서지의 책장
기획자, 마케터이자 농부인 서지가 추천하는 책 네 권
《로컬의 미래-헬레나와의 대화》(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로컬 경제 운동의 선구자 헬라나가 세계화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부터, 부를 축적하여 자연과 우리의 일상을 파괴해온 글로벌 경제의 폐해를 역설하고 그에 대항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지역화를 제시하는 책이다.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앤드류 웨이슬리)
세계적인 환경 저널 《더 에콜로지스트》의 놀라운 취재와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지구와 인간 모두에게 이로운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노마 발효 가이드》(르네 레드제피, 데이비드 질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노마가 안내하는 발효 안내서다. 그동안 전 세계의 수많은 미식가를 감동시킨 노마의 발효 레시피와 그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노마의 방대한 식품 저장실에 담긴 기술을 아낌없이 소개한다.
《채소의 신》(카노 유미코)
'채소요리' 하나로 일본에서 신화를 만들어낸 작가 카노 유미코, 그녀가 오랜 시간 다져온 자신만의 요리 철학과 다사다난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다샤 =
수상한 농부 다샤의 독서 삼매경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A 선인장을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다. 선인장은 잘라서 말려두면 뿌리를 새로 키워내는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다. 전 세계를 쏘다니며 여행을 하고 여행지에서 둥지를 틀고 덜컥 살아버리는 내 모습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또한 큰 관심이나 많은 양의 물도 필요 없이 혼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는 독립적인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합치한다고 생각한다.
Q 농사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하루는 언제인가.
A 봄쯤 대구 고향집에서 우연히 과일트럭 아저씨로부터 옥수수 모종을 잔뜩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태워 데려왔다. 이미 시들시들했던 옥수수 모종이 물도 따로 안 주는 초보 농부 손에 맡겨져 안쓰러웠는데, 한참 습하던 초여름 첫 옥수수가 열린 걸 확인했다. 아주 작고 수염만 겨우 난 옥수수지만 작물이 생긴 것에 대한 뿌듯함과 경외심이 들더라.
Q 비건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비건 음식은?
A 아무래도 비빔두부면이 아닐까 싶다. 사실 비건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탄수화물 과다 섭취와 단백질 부족인데, 시판 두부면과 비빔국수 소스만 있으면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고단백 비건 음식이다. 면을 데치고 갖은 잎채소와 구운 버섯 등등 좋아하는 야채를 넣기만 하면 되니 간편하기까지!
Q 제주도를 방문하는 독서가가 꼭 가봤으면 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이를테면 책 읽기 좋은 휴식 공간이라든가.
A 종이책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는 나 같은 경우에는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찻집을 주로 방문한다. 나에게 없는 다양한 책들을 조금 더 차분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 내가 추천하는 찻집은 사계리에 위치한 ‘짜이다방’이다. 영업을 하지 않는 날들도 있지만 운이 좋다면 따뜻한 짜이를 마시며 새로운 책까지 발견하는 기회를 만나볼 수도 있을 거다!
Q 셰프(제철식물 레시피 창작자)로서 꼭 먹어야 하는 계절별 네 가지 제철 작물을 꼽아 달라.
A 봄은 아무래도 냉이다. 겨울의 기운을 이겨낸 뿌리와 봄의 기운을 가진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냉이는 간단한 조리법으로도 최고의 맛을 낸다. 여름 하면 나는 토마토를 추천한다. 국내 토마토는 유럽이나 남미 토마토에 비하면 맛이 없다고 평가받곤 하는데, 사실 대저 짭짤이 토마토는 내가 여행하면서 먹었던 어떤 토마토보다도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 좋은 유기농 올리브유와 바다소금만 있으면 여름에 딱 맞는 샐러드가 되기도 한다. 가을은 생표고버섯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다.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매일 보는 표고버섯은 대부분 제철이 아닌 시설재배로 생산하는데,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해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자연스럽게 피어난 유기농 표고버섯은 향과 영양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물이다. 겨울이 되면 땅속의 차가운 기운을 이겨낸 뿌리채소를 먹는 것이 겨울나기에 좋다. 내가 추천하는 겨울 작물은 연근이다. 주성분은 전분, 즉 당과 탄수화물인데 인간동물이 겨울을 나기 위해 필요한 지방을 이루고 있는 주요 영양소다. 볶아먹거나 솔잎을 깔아 쪄먹어도 너무 좋은 작물이다.
Q 우주에서 키워보고 싶은 식물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감자를 가장 키워보고 싶다. 감자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탄수화물을 함유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인이 다양한 요리로 활용하는 최고의 재료이기도 하다. 감자라는 뿌리 작물이 화성 또는 달 같은 특수한 땅에서 과연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그 모양은 어떻게 나타날지 너무 궁금하다.
Q 수상한 농부 다샤에게 농사란?
A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 속 동물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직접 자신의 영양분을 채운다. 코끼리는 풀과 물을 찾아 걷고 재규어는 사냥을 한다. 하지만 인간동물은 마트에 가서 먹거리를 구입하고 레스토랑에서 조리된 음식을 구입해 영양분을 채운다. 농사를 지으며 내 몸에 필요한 영양분 섭취를 위해 작물을 직접 키워 조리해먹는 그 과정이 나에게는 의식이자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식이다.
다샤의 책장
셰프이자 농부인 다샤가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숲은 생각한다》(에두아르도 콘)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동등한 위치에서의 시각을 제공한다.
《키친》(요시모토 바나나)
주방이라는 공간과 음식이 각자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
《물결 2022 봄호-교차성 X 비거니즘》(두루미)
비거니즘을 식생활 부분에서만이 아닌 나의 정체성 중 하나로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편지지 & 전범선)
현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장 솔직하게 나타낸 책.
《전통 채식 밥상》(서유구 지음, 문성희 해설)
조선시대 요리책 《정조지》를 현대 채식으로 풀어낸 레시피북. 간단하면서도 정성들인 음식을 만나볼 수 있다.
서지
기획자, 마케터이자 농부. 수상한 농부둘의 김서지는 제주도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면서 자급자족 라이프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가끔 숲이나 바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하고, 제로웨이스트 브랜드의 기획 업무를 보기도 한다. 때론 일을 던져두고 밭으로 가 잡초를 뽑거나, 파도가 좋은 날에는 서핑을 하러 훌쩍 사라지곤 한다. 아버지와 함께 유기농 농장 창대농원의 제로웨이스트 브랜드 MU를 만들었다.
다샤
셰프이자 농부. 수상한 농부둘의 다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법을 개발하는 제철식물 레시피 창작자다. 온라인 기반으로 다양한 레피시를 개발해 나누고,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지속가능성과 환경, 인권, 동물권 등 다양한 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수상한 농부둘
‘수상한 농부둘’은 김서지, 이소영이 서울에서 도시 생활을 정리하며 시골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 뒤, 자급자족을 꿈꾸며 만든 유기 자연농 커뮤니티다. 수상한 농부둘은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 다샤, 힐다의 합류로 ‘수상한 농부둘’은 ‘수상한 농부 넷’이 되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 힐다 =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A 한참 밭을 매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쑥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고
신구문화상(新丘文化賞)은 신구문화사의 창립자 故 우촌 이종익 선생(1923~1990)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한 우촌 정신을 미래세대로 잇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한 상이다. ‘올해의사서상’, ‘올해의책’ 총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이번 제2회 시상식은 10월 17일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가 열리는 정선 하이원리조트 컨벤
반려견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국내에는 아직 독서 공동체로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모습이 낯설 텐데요.한국리딩독연구소 대표이자 동물매개심리치료 연구자 윤혜경은 리딩독(Reading Dog) 프로그램이 학습 부진 아동에게 정서 안정을 주고,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사회성이 좋아지게 한다고 말합니다.자기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