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 힐다 =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A 한참 밭을 매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쑥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고 그 짧은 기간에 어쩜 그렇게 크고 튼튼한 뿌리를 내릴까? 어떤 땅에서든 그렇게 열심히 자라나는 각종 잡초를 보며, 어렸을 때부터 중국,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잘 해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Q 농사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하루는 언제인가.
A 사실 나는 농사를 시작하고 다른 일로 바빠 작물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말 뿌듯했던 순간은 있다. 다 죽어가던 떡잎들이 한 번의 장마 후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게 다시 자라는 것을 보았을 때다. 내가 한 거라곤 주변 잡초를 열심히 뽑아준 것뿐인데 햇빛, 비, 바람을 이겨내고, 떡잎을 피워내고, 본잎으로 자라는 식물들을 보며 너무 뿌듯하고 성취감이 들었다.
Q 비건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비건 음식은?
A 나에게 최고의 비건 음식은 다른 재료 없이 냉이를 볶아 넣은 현미김밥이 아닐까 싶다. 요즘엔 다듬어진 냉이도 슈퍼마켓에서 찾을 수 있지만, 텃밭에서 잡초마냥 자란 냉이를 뜯어서 손질한 다음 약간의 간장과 볶아낸 뒤 현미밥으로 김밥을 만다. 간단하면서도 오감이 모두 만족되는, 꼭 추천하고 싶은 봄 음식이다.
Q 제주도를 방문하는 독서가가 꼭 가봤으면 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이를테면 책 읽기 좋은 휴식 공간이라든가.
A 동광에 위치한 ‘위이’를 추천하고 싶다. 낮에는 드립 커피와 차 그리고 간단한 브런치를 준비해주는데, 실내뿐만 아니라 야외 잔디밭에서 독서를 즐겨도 좋고 프라이빗한 티룸에서 따뜻한 차와 함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Q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가 삽입된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꼽는다면?
A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이 되어 보았을 때 더 공감이 많이 가고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책 속 삽화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책의 내용과 함께 봤을 때 괜히 뭉클해지곤 한다.
Q 수상한 농부 힐다에게 농사란 무엇인가.
A 내 작업 활동을 더욱 넓혀주는 행위다. 자연물을 그리는 작업자로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며 더욱 이해도 깊은 그림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수확의 기쁨은 어떠한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고!
힐다가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김해리)
예술경영이란 독특한 전공을 가진 저자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잘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1990 bookstore cats》(tabacobooks)
대구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친구들과 그들의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을 90년 분위기로 각색한 일러스트북이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철학자이자 동물해방운동의 선구자인 피터 싱어의 책. 비건에 대한 철학적이고 일상적인 사유들.
《Quentin Blake: A Year of Drawings》(Edited by Claudia Zeff)
안데르센상, 프린스 필립 디자이너상 등을 수상한 일러스트레이터 Quentin Blake의 그림들. 2020-2021 코로나 폐쇄 기간 동안의 신작이 담겨 있다.
《Rhythm and Drawing》(류은지)
류은지 작가가 2021년 1월부터 매일 수첩과 작은 종이에 그린 드로잉들. 그날의 감정과 기분, 시간이 흘러가는 리듬을 저장하기.
= 소영 =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A 정말 생각지 못한 어려운 질문이다. 언젠가 제주에 사는 사진작가 친구와 고사리를 꺾으러 간 적이 있다. 그날따라 유독 안개가 자욱했고, 우리가 간 숲에서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친구는 그날의 분위기와 고사리라는 식물의 독특한 인상을 보고 나와 닮았다고 했다. 내가 요가를 할 때처럼 고사리가 마치 차크라를 끌어 모으는 것 같다고. 그 말에 동의했다. 아마 꽃이 피기 전 솟아오른 고사리를 직접 보면 이해할 거다.
Q 농사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하루는 언제인가.
A 농사 첫해에 텃밭의 손바닥만 한 자리에 참깨를 몇 알 심었다. 그해 여름, 깻대가 열 대 정도 자랐고 처음으로 깨를 말려 털어보았다. 깻대를 빨래 건조대에 걸어 말려둔 며칠 동안 비가 올까 어찌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마침내 마른 깍지가 입을 벌리고 열 대의 깻대가 수백 개의 깨로 돌아왔던 그날의 노고와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나처럼 손수 깨를 털어 한 알 한 알 일일이 주워 담는 농부님은 이제 없겠지만, 이 같은 작업을 최초로 했을 과거의 농부님들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Q 비건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비건 음식은?
A 제철 나물로 하는 오일파스타를 추천한다. 재료도 간단하고 요리하기도 쉽다. 집에 손님이 오면 자주 해주는데, 먹어본 사람들 모두 좋아했다. 올리브오일과 마늘, 페페론치노를 베이스로 메인이 될 나물만 고르면 된다. 봄에는 생 고사리나 냉이, 방풍나물로 요리하고, 여름에는 참나물로 요리한다. 그중 으뜸은 역시 고사리파스타. 봄마다 제주에 고사리 장마가 오면 직접 고사리를 꺾어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해둔다. 한 해 동안 두고두고 아껴 먹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Q 제주도를 방문하는 독서가가 꼭 가봤으면 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이를테면 책 읽기 좋은 휴식 공간이라든가.
A 제주 해안도로를 다니다 보면 군데군데 정자가 마련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드라이브를 하다 내키는 곳에 멈춰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곤 한다. 그 어떤 바다 조망 카페보다 인심이 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독립 책방 중엔 한경면에 위치한 책방 ‘소리소문’을 추천하고 싶다. 공간이 비교적 크고, 그만큼 큐레이션이 풍성하다. 놓치지 않은 카테고리가 없는 느낌이랄까? 물론 제주의 독립 책방들은 저마다 매력이 있으니 책방 투어를 다녀보는 것도 추천한다.
Q 디자이너 일과 농부 일의 가장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A 나는 항상 디자인을 ‘그저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떠한 작업을 할 때, 디자인이 돋보이기보다는 그 안에 내재된 철학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부의 일도 비슷한 것 같다. 농사를 짓는 행위보다는 농사가 가진 의미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단지 땅을 살리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있었기에 그와 가장 밀접한 농사를 택한 게 아닐까.
Q 수상한 농부 소영에게 농사란 무엇인가.
A 땅을 살리는 일. 사실 농사에 영 소질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새해가 되고 봄이 오면 새롭게 농사에 도전한다. 설령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땅에 해를 가하는 건 아니지 않나. 텃밭 가꾸기에 관한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그랬던 것 같다. 텃밭을 가꾸는 건, 특히 수상한 농부들처럼 유기농이나 자연농으로 농사를 짓는 건 그만큼의 땅을 살리는 일이라고. 비록 내가 심은 작물이 풍족한 먹거리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뭐 어떤가. 땅을 살렸으면 된 거지.
Q 농사일을 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이웃을 소개하자면?
A 가장 가까운 이웃인 ‘수상한 농부 넷’의 서지(바로 앞집에 산다). 서지는 멀티플레이가 잘 되는 친구다. 이 일과 저 일을 넘나든다. 나는 완전 반대라 한 가지 일밖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동안 밭일을 잊고 있다 서지가 올린 피드를 보고 잡초를 뽑으러 나서곤 한다. 아차 싶은 거다. 뿐만 아니라 농사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곧장 서지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서지가 곧바로 아버지께 질문을 한다. 농부의 딸을 이웃에 둔 건 정말 큰 혜택이다.
소영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이다. 젊은 지식인 ‘나’는 60대 노인이지만 자유로운 ‘조르바’를 만나며 자유와 영혼에 대해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
《천 개의 파랑》(천선란)
2019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소외되고 잊혀지는 존재들에 대한 소설.
《인연》(피천득)
담백하고 아름다운 서정적 문체로 써내려간 피천득의 수필집이다.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닭, 돼지, 개 농장을 거치며 생명의 윤리와 존엄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포함해 한국 식용 고기 산업에 대한 총체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을 수행하는 책이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본 쉬나드)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이본 쉬나드가 세운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이야기. 환경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욱 큰 성공으로 돌아왔다. 친환경 시대에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고 있는 책이다.
힐다
농부 & 일러스트레이터 겸 타투 아티스트.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귀여운 것들을 그린다. 자연과 좀 더 가깝게 생활하며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제주도로 이주했다.
소영
농부 & 퇴사를 앞둔 IT 회사 디자이너.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재택으로 근무하며 비교적 많은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요가 수련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좋은 디자인이 그러하듯 인생에서도 필요한 것만 남기고 덜어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덜어내고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요가 정규 지도자 과정 참가를 앞두고 있다.
수상한 농부둘
‘수상한 농부둘’은 김서지, 이소영이 서울에서 도시 생활을 정리하며 시골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 뒤, 자급자족을 꿈꾸며 만든 유기 자연농 커뮤니티다. 수상한 농부둘은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 다샤, 힐다의 합류로 ‘수상한 농부둘’은 ‘수상한 농부 넷’이 되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 서지 =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A 요즘 작두콩의 모습이 나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근, 아버지가 기르던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기억 속 첫 번째 책은 무엇인가.A 정확한 전집 타이틀이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시절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학생백과》와 《소년소녀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