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이하 ‘배’): 안녕하세요. 배철현입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고전과 경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전과 경전을 직접 읽고 싶어서 이 고전 경전이 쓰인 언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했어요.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과 샘족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해서 그와 관련된 고전들과 경전들을 가르쳐왔고, 그리고 책을 내고 그러고 있습니다.
더: 최근에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를 읽고 있는 걸 봤어요. 요즘 고전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긴 것일까요?
배: 고전에 관한 관심은 없고요, 쇼펜하우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접목이 된 거예요. 쇼펜하우어는 좀 허무주의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찾아봤더니 없더라. 그래서 장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 식의 허무주의가 사실은 요즘 삶의 화두라고 할 수 있고, 고르기아스도 그런 의미에서 허무주의를 말한 철학자인데, 몇몇 책들이 다시 각광을 받는 건 지금 우리가 길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20세기 초에 인류가 새로운 문화 문법, 문화와 문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르네상스와 같은 대변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찰스 다윈이 등장을 해서 인간이 동물이라는 걸 알려줬고, 칼 융과 프로이드가 등장해서 인간은 그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걸 알려줬고. 그리고 특별히 니체가 등장을 해서 인간에게 신이란 자기를 극복하는 거라는 걸 알려줬죠. 그래서 이전에 2,500년 동안 있었던 서양철학과,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로 대표되는 유일신 종교에 대한 대치라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해요.
20세기 초에 1, 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요, 베트남 전쟁과 6.25가 있었고, 9.11 사건이 있었고, 코로나가 오고, 그래서 저는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뭐 프랑스 철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고 있는데, 그거는 니체가 말한 것의 아류라고 생각해요. 앙리 베르그송이 말하는 생의 약동에 대한 풋노트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현대적 삶의 아방가르드 문법을 만들 시점이 비로소 온 거예요. 거기서 맨 처음에 시작하는 것이 역시 허무주의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이 바닥까지 내려가서, 거기서 건져낼 것이 좀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고르기아스》라든지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한국사람, 젊은이들한테까지 왔을 거예요. 그래서 그 불씨를 좀 잘 살렸으면 좋겠어요. K-컬처라는 것이 잔물결이 아니라 정말 파도가 되고 운동이 될 수 있도록, 이 고전 경전에 대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라(Chora)는 그리스어로 자궁,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
더: 최근에 ‘더코라’를 설립하셨는데요, 코라는 어떤 곳인가요. 특히 청소년 인문학교를 소개해주신다면?
배: 제가 5년 전에 17년 동안 있었던 학교를 그만두고 ‘더코라(The Chora)’라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제가 이 개념을 어디서 가져왔냐면 플라톤의 우주 창조 이야기가 있는 《티마이오스》에서 가져왔어요. 플라톤의 우주론에서 코스모스가 ‘있음’인데, 있음은 없음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있음이 갑자기 없음이, 그리고 없음이 있음이 될 수가 없다. 없음과 있음 사이에 중요한 터널이 있는데 그걸 코라라고 했어요. 코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공간이에요.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마치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후에 태어나듯이, 어둡고 축축하고 불편한 공간이지만 반드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그런 터널과 같은 공간이 ‘코라’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두 가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나는 교육이고 또 하나는 종교예요. 그래서 이 종교와 교육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실험을 하고 싶어서 코라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청년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서브라임’이고, 초중등 학생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그것도 이제 서브라임, 그렇게 두 개가 있어요. 청년들을 가르치는 ‘서브라임’은 숭고하다는 뜻도 있지만 사실은 리미트, 경계를 넘는다는 뜻도 있거든요. 청년들이 자신 또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경계를 좀 지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도전받고 넘어가는 실험을 하고 싶어서 서브라임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또 제가 태권도 하는 아이들을 가르쳐요. 부천의 태권도장 아이들이 5년 전에 저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열 명이. 봤더니 태권도장 아이들이 제가 낸 ‘위대한 인간’ 시리즈 《심연》 《수련》 《정적》 《승화》 네 권을 필사했다 그러더라고요, 초등학교 3학년 애들이. 진짜 이게 사실일까 하고 제가 부천까지 간 거예요. 그랬더니 애들이 태권도 유단자고 그리고 이 책을 필사를 했더라고. 그래서 걔네들한테 격주로 영시와 글쓰기와 발표를 가르쳐요. 이런 교육이 대한민국에 퍼지면 좋겠다, 우리 대한민국의 초등학교에서도 적용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달리기가 종교
더: 어떻게 고전문헌학자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배: 운이 좋아서 미국에 가게 됐는데, 좋은 선생을 만나서 미국에서 제가 해야 될 거를 찾게 됐어요. 제가 하버드에서 제일 유명한 선생을 무조건 찾아간 거예요, 1988년도에. 이 사람이 람세스보다 고대 이집트어를 더 잘하고 함무라비보다 아카드어를 더 잘하는 사람이라, 내가 무조건 저 사람 제자가 되겠다 그랬지요. 그분이 저한테 두 가지를 말했어요. 첫 번째, 운동하세요. 두 번째, 운동하고 시간 남으면 공부하세요. 그래갖고 제가 그때부터 좀 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 달리기가 제 종교입니다. 제 지도교수가 저한테 말했어요. 운동이 정신이나 영혼보다 더 중요하다. 신체 단련이 그걸 깨닫게 해줬어요. 그래서 제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거는 지금도 아침 산책과 운동입니다.
묵상으로 시작하는 하루 루틴
더: 매일 쓰는 묵상일기는 어떻게 힘이 되었나요.
배: 이 루틴이 언제 시작됐냐면 13년 전에 시작됐어요. 13년 전에 제가 인생의 반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인생의 반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골로 과감하게 이사를 갔어요. 학교를 오가는 데 70킬로미터지만 갔어요.
저는 아침마다 의례가 있어요.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중요한 의례가. 아침에 무조건 한 3, 40분 앉아 있어요. 사람들이 그걸 기도, 묵상, 명상이라고 그러는데, 앉아 있어요. 지금까지도 화두는 한 가지예요. 내가 오늘 무엇을 안 할까. 안 하는 리스트가 한 100가지가 있어요. 그걸 안 해요. 그리고 남는 거 하나를 하는 거죠.
제가 시골로 이사 간 이유가 있어요. 13년 전에 진돗개를 키우기 시작한 거야, 두 마리를. 그런데 서울에서 키운다는 거는 이 생명한테 몹쓸 짓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를 갔더니 얘네들이 제가 아침에 묵상을 딱 하고 있으면 지네들도 한 2, 30분 동안 앉아 있어요. 조는 것 같으면 막 깨워. 그러면 산책 가야 돼. 그래서 얘네들 데리고 13년 동안 매일 산책을 갔습니다. 산책이 제 일과 중 하루 네 시간이에요.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가니까. 이게 두 번째 제 일과고요, 세 번째는 청소예요. 집안을, 특별히 책상을 깨끗하게 청소를 안 하면 글이 안 써지니까. 그리고 네 번째는 저한테 부과한 책들이 있어요. 매일 읽는 책들을 조금씩 다섯 권을 읽어요.
그리고 아침에 산책을 가서 자연을 보고 나무를 봐요. 그때그때마다 자연은 언제나 나한테 화두를 한 가지 줘요. 그걸 쓰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매일묵상이라는 거로 제가 1천 600개를 썼어요. 9포인트로 A4 용지 두 장을 거의 꽉 채우거든요. 지금 희망은 그 천 일 묵상을 한 출판사에서 내는 거예요. 1만 일까지 한번 써보려고. 왜냐하면 글 쓰는 건 사실은 나란 인간의 마음에 쟁기를 갖다 대는 거예요. 쟁기를 갖다 대서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계속 말하는 것. 그러니까 글쓰기가 사람을 변화시키죠. 요즘 제가 줌으로도 몇몇 수업을 하고 있는데, 거기는 반드시 글쓰기가 들어가요. 어떤 분은 여성분인데 암 수술한 과정을 열일곱 장 써냈어요. 저는 수강하는 사람한테 당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서 꼭 지키면 오히려 그 장소와 시간이 당신한테 선물을 줄 거다, 이렇게 말해요. 특별히 글 쓰는 거는 엄청난 선물을 준다고 생각해요.
다리우스 비문에서 요가수트라까지
더: 경전 연구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 소개해주시다면?
배: 저는 맨 처음에 구약 성경, 유대교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히브리어를 깊이 공부했어요. 그래서 성서가 쓰인 언어들, 그리스어하고 라틴어를 공부를 했고 히브리어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히브리어가 기원전 13세기부터 등장하는데 셈족어에 속하는 아카드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카드어는 기원전 26세기부터 등장해요. 성서에 나오는 문장이나 구절들 중에 해석이 안 되는 말들이 있어요. 한 번밖에 안 나오는 걸 어떻게 압니까? 그거는 이전에 유전적으로 연관돼 있는 셈족어에서 가장 오래된 아카드어거든. ‘길가메시 서사시’의 아카드어. 아카드어를 통해서 보니까 창세기 1장 1절의 내용이 흑백에서 컬러가 되고, 2D에서 3D, 4D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 샘족어 중에서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를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나갔어요.
그러다가 이제 성서의 ‘다니엘서’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관직들은 전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언어라 페르시아 제국의 언어를 공부했죠.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언어인 올드 페르시안과 아베스타어라는 게 있어요. 아베스타어로 쓰인 짜라투스트라의 경전, 즉 젠드 아베스타 경전이 있어서 야, 그거를 공부해야겠구나, 그러다가 다리우스 비문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쐐기문자로 기록된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다리우스 대왕이 인류 최초로 세계 제국을 건설했거든요.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기 한 200년 전에. 스물세 개의 나라를 장악하면서 자기가 어떻게 왕이 됐나를, 이란 중부 이스판 옆에 있는 베히스툰 산에다가 새겨놨어요.
비문에는 고대 페르시아어와 아카드어와 엘람어가 기록되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언어고 해서 제 지도교수한테 물어봤더니 이 세 가지 언어를 함께 공부하고 사전을 낸 사람이 없대요. 그래서 아,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제 박사학위 논문이 ‘다리우스 대왕의 삼중 쐐기문자 비문의 연구’예요. 탁본도 뜨고 거기 있는 거를 판독도 하고 그 판독 과정을 2001년도에 3부작 다큐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EBS의 기획 특집 다큐멘터리가 제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그렇게 그 세계를 공부하면서 경전들을 공부하게 됐죠.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읽고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읽고, 그리고 고대 페르시아어로도 읽었어요. 그러다가 보니 이제 요즘 젊은이들이 요가를 많이 하는 거예요. 어디나 요가가 있어! 요가가 제 눈에는 성전처럼 보이더라고. 이게 젊은이들의 종교예요. 그래서 제가 산스크리트어를 하고 이란어를 아니까 그럼 ‘요가수트라’를 본격적으로 코멘트를 달아서 해야겠다. 요가수트라가 195절밖에 안 되거든요, 사실. 한 열 장밖에 안 돼요. 그 한 문장 한 문장을 묵상을 하고 그걸 좀 길게 썼어요. 이 경전 고전들이 사실은 깊이 들어가면 왜 아직도 사람들이 그 책을 읽느냐를 알 수 있어요. 그 글자와 글자 사이에 여지가 많아서 누구나 깊이 읽으면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아.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읽으면서 느낀 거를 쓰는 작업, 경전 번역 작업을 좀 하고 있어요. 단테의 《신곡》도 그런 작업을 하고 있고 그리스 비극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다음에 요즘은 ‘에우리피데스’를 번역하고 있고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
더: 스마트폰 시대에 자기만의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 코라에서 서브라임을 운영하면서, 거기가 도산공원 앞에 있어서 공부하기 전에 도산공원을 열 바퀴 뛰고 오라고 그랬어요. 짜라투스트라에서 니체가 말한 것처럼 정신이라는 거는 육체에 기생하는 어떤 것이죠. 너무 정신을 강조하면서 육체하고 동떨어지는 행위는 악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운동을 해라, 다른 거 하지 말고 책도 읽지 말고. 점심 때 동네 공원을 세 바퀴만 뛰어봐라, 마라톤도 하려고 노력하고, 하루에 만 보만 걸어봐라, 그래요. 육체를 좀 힘들게 하면 나머지가 스르르 올 것 같아요. 제 지도교수가 말한 것처럼. 그리고 남은 시간에 공부하는 거예요. 등산을 간다든지 만 보 정도를 매일 걷는다든지, 그 패턴을 한 달 정도만 유지하면 그 사람은 독립적으로 자기됨, 저는 그걸 영어로 이즈니스(isness)라고 하는데 자기됨, 비커밍(becoming)의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더: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를 네 가지로 정리하셨는데, 집필 과정을 들려주세요.
배: 단어 품사 중에서 지금 아직 명사 수준이고요. 요즘은 형용사에서 부사로 갈 수 있을까? 감탄사까지 갔으면 좋겠다, 그래요. 아직은 두 글자로 된 명사에 집착하고 있어요. 오늘도 까라바조 그림 하나와 그에 대한 글을 썼는데, 엠마오의 두 제자의 깨달음에 대한 엄청난 작품인데 제가 ‘각성’이라는 개념을 잡으면서 글이 풀리는 거예요. 호모 사피엔스만이 할 수 있는 이족 보행을 하면서 뭐 니체가 자기가 걸은 것만큼 쓴다고 그랬잖아요. 정말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이 항상 자신의 비밀을 걷는 사람에게 조금씩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패턴을 좀 잡아보자 그랬어요. 패턴을 잡아봤더니 제가 공부한 ‘길가메시 서사시’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존 번연의 ‘천로역정’, 단테의 ‘신곡’이 일관되게 하는 패턴이 있더라고요. 그게 뭐냐, 맨 처음에 무시무시한 공간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래서 제가 1권을 나의 최선이 발견되는 공간으로 가기 위해서 쓸데없는 거 다 제거하는, 집을 떠나는 것을 《심연》이라고 한 거예요.
기원전 14세기에 신-레케-우닌니라는 구마 사제가 이전에 있었던 길가메시 서사시를 12개 토판으로 만들어요. 제1토판의 1행이 ‘ša nagba īmuru išdi māti(샤 나그바 임무루 이슈디 마티)예요. ’나라의 기초인 나그바 심연을 경험한 사람, 그게 길가메시라는 거거든요. 이 심연은 당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과거의 자신을, 아주 오래된 자아를 죽이는 장소거든요. 거기로 가야지 비로소 수련이 된다. 그래서 첫 번째 책을 제가 ‘심연’으로 본 거예요. 알고 봤더니 이게 요가수트라의 사마디(삼매)더라고. 그렇게 가면, 이제 걷어내면 내가 해야 될 한 가지가 등장해요. 그걸 갖고 수련을 해야 돼. 태권도 수련을 하려면 갑자기 검은 띠가 아니라 그 과정이 있잖아요. 그 과정의 두 번째 책이 《수련》이에요.
수련의 두 가지 종류가 가 있어요. 수련하는 사람, 안 하는 사람. 수련은 뭐냐. 요가수트라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요가수트라 사마디 13장일 거예요. 요약하면 ‘도를 통한다는 것은 역시 길이지 목적이 아니다. 도는 수련이다.’ 그래서 두 번째는 ‘수련’을 써야겠다, 자연스럽게 간 거예요. 수련으로 간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어요. 그럴 때는 뭐냐, 누에고치 안에 가만히 있어야 돼. 정적을 유지해야 해요. 그래서 세 번째 책이 《정적》이에요.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날개를 펴고 나온다. 그게 네 번째 책 《승화》거든요.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을 보시면 제가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를 좋아해서 그의 색을 흉내 내서 만든 거예요. 요가도 그렇고 단테의 《신곡》도 그렇고 전부 네 단계더라고. 그래서 이게 이제 한 달에 읽을 수 있도록 28꼭지인데요. 하루에 하나씩 네 달 동안 이 단어를 마음에 심어놓으면 당신이 일하는 이 밭을 통해서 당신만의 열매가 맺지 않을까, 그래서 일종의 씨앗을 던져준 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네 권을 썼어요.
불안한 현대인을 위한 메시지
더: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불안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배: 불안. 현대인의 삶이 너무 자신으로 살지 않고 대중으로 살려고 그러니까. 그래야지 명예도 얻고 돈도 얻고 권력도 오니까 항상 대중은 대중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대중에 의해서 춤을 추는 사람을 바라지. 인류 역사를 보면 개인이 되는 거는 항상 죽음이었어요. 코페르니쿠스도 죽고 예수도 죽고 소크라테스도 죽고. 랄프 왈도 에머슨이 《자립(Self-Reliance)》에서 말하는 것처럼, ‘위대하다는 거는 오해를 받는 거다(To be great is to be misunderstood).’ 그래서 개인으로 사는 게 정말 힘든 사회예요. 특히 SNS가 등장하고 나서.
저는 인간이 각자 자신이 돼야 될 자신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의자는 운명이 정해져 있잖아요. 이걸 뭐 사르트의 용어로 하면 ‘즉자’인데, 그런데 인간은 매일매일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자신을 만나잖아요. 이게 ‘대자’거든요. 내가 만들어요. 그 자유라는 것을 얻는 대신 저주를 받은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나 자신을 만들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나 자신을 만들려는 그 여행을 사람들이 안 떠나요. 괴로우니까. 이게 고통이거든. 전부 똑같이 살아야지 왜 너만 다르냐. 그럼 제거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자신으로 살지 못할 때 우리를 연소하는 것이 뭐냐, 그게 우울증이에요. 그게 anxiety고, 그게 분노고. 20세기 초에 포드 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매스 프로덕션 백화점이 생기면서 이제 인간은 진열품의 부품으로 전락해버렸어요.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모더니티라고 말하고 있고요. 지금 문화는 그 안에서 돈 버는 거예요. 우리를 기생시키는,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 빅브라더가 그거 안 하면 다 죽이는 사회예요. 그래서 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산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어요.
그래서 개인으로 살지 못할 때 우리한테 다가오고 엄습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이 정신병이에요. 우리나라에 지금 매일 약 먹고 자는 사람이 500만 명이라잖아요. 대한민국은 너무 심각해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 희망이 없어요. 10년 전부터 자살률 단연 1위. 2위 리투아니아의 두 배고요. 4명 중 한 명만 아이를 낳는다. 이거는 50억 년 전에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이후 처음이에요. 저는 ‘호모 꼬리아나’라고 그래요.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전쟁터에서보다 더 안 낳는다는 거는 낳기 싫다는 거거든요. 낳을 환경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징어 게임>이, <기생충>이 상 받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에요. 우리 현실이니까.
그리고 자살률이 1위가 될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연결되는 게 우울증이고요. 그러면서 이게 교육하고 연관돼 있어요. 교육이 다 무너졌고요. 우리 의대 이야기 보십시오. 1등부터 3천 등까지 전부 다 의대에 가려고 해요. 영화 만드는 사람도 되고 시인도 되는 거지, 어떻게 그래요. 이건 디스토피아 중의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해요. 해결점이 없어요. 그래서 이거를 완전히 돌려야 되는데, 그게 저는 대한민국의 반도체와 핸드폰의 역설이라고 생각해요. 핸드폰 때문에 G10으로 올라갔지만 게임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자기를 잃어버린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완전히 중독돼 있어요. 책을 읽지 않고 운동을 안 하고 그 아이들이 IT세계에서 뭐 춤추고 군무하고 하지만, 돈이 거기서 나오니까, 제가 보기엔 너무 위험한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똑같이 되려고 흉내 내니까.
도서관은 자신을 바꾸는 기적의 장소
더: 도서관이나 사서들의 역할을 고전과 연관시켜서 볼 때 어떻게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배: 도서관은 자신을 바꾸는 기적의 공간이죠. 도서관의 사서들이 이용자한테 이런 책을 읽으면 당신이 원하는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단계가 있다, 소개를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책을 광고에서 베스트셀러라니까 읽거나 혹은 쉽기 때문에 읽어요. 그런데 책은 좀 어려워야 돼요. 그래서 고전이 읽혀요.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깨뜨려주거든요. 그거는 정말 이 몇몇 천재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가면서, 도스토옙스키처럼 시베리아 유배 가면서 책을 썼기 때문에 그 삶의 핵심을 글로 남긴 거예요. 그거를 간접 경험하게 하는 최고의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는 거죠. 맹자를 만나고 노자를 만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엄청난 가치를 놔두고 자신에게 쉬운 책만 읽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무식해져요.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를 깬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예를 들어 지적으로 자극할 책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글쓰기를 시키고 해서 도서관이 ‘노아의 방주’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유명한 시들도 있고 소설들도 있고 이 시대에 꼭 읽어야 될 책들이 있는데 사실은 이게 읽혀져야지만 우리의 교육이 살거든요.
아까도 잠깐 말씀드린 대로 도서관이 제일 중요해요. 요즘도 제가 동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거든요. 거긴 내가 찾는 책이 없기 때문에 내 책을 갖고 가서 읽지만. 미국 유학 시절에 저는 하버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힐레슬 라이브러리 거길 갔어요. 가면 막 가슴이 뛰는 거야. 도서관에 카펫이 쫙 깔려 있고, 좋은 자리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다음에 고전을 읽고 하는 것이 저한테는 무슨 유명한 산사 또는 성당에 가는 것 같은 거룩한 행위였어요. 도서관 자체가 사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알려주는 맵, 뭐랄까 나침판이 되는 장소거든요.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을 좀 적극적으로 주민들, 이용자들과 연계해서 만드시면 어떨까.
제가 초등학교 애들한테 맨 처음에 읽게 한 책이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이에요. 그 문장을 하나씩 하나씩 번역해주고 녹음해서 보내주니까 얘네들이 그거를 100번 듣고 다 외워왔어요. 그러고 책을 두 시간 반 동안 외워요. 한 책을 이렇게 외우니까 다른 것들이 좀 쉬워지는 겁니다. 한국 시도 그렇고 한국 소설도 그렇고. 초등학교 들어가면 반드시 읽어야 될 책들을 지정해서 그거를 이렇게 확산하면 어떨까요.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명 중심주의로
더: 생명 중심주의라는 가치가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만이 기적이고 만물의 척도가 되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되면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그다음에 과학 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가 일어났어요. 그런데 계몽주의가 일어나고 괴테가 등장하고 베토벤이 등장하고 바흐가 등장했지만 20세기 초에 그 똑똑한 독일 사람들 나치스가 유대인 600만 명을 죽여요. 인간의 이성이 또 다른 축과 연결되지 않으면, 영성과 연결되지 않으면 이건 몬스터예요, 몬스터. 인간의 지성이 끝이 나는 것이 AI라고 생각해요. 구글이 내가 뭐 하는지 다 알잖아요. 내 성격까지 알고 내가 무슨 물건을 사는지 다 알거든요. 그래서 이 완전히 엄청난 패러다임, 나는 이 패러다임이 르네상스보다 더 강력한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인간 중심이 아니라 생명 중심으로 넘어가야 돼요.
제가 프랑스 갔다 왔다 그랬잖아요. 프랑스 남부 쇼베(Chauvet) 동굴의 동물 벽화는 3만 5천 년 전에 그려졌다는데, 어떻게 저 엄청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싶어요. 호모 사피엔스는 DNA, RNA를 조사해보면 30만 년 전에 북아프리카에서 시작을 해요. 10만 년 전에 중동 지역으로 와 갖고 그 당시 유럽으로 5만 년 전에 들어가요. 그런데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도 있었고 데니소반도 있었는데 다 유인원들이에요. 호모 하이델 베르겐시스도 있었어요. 그 뼈들을 보면요, 70만 년 전부터 해서 네안데르탈인이 훨씬 더 강했어요. 그 사람들이 무기도 만들고 심지어는 5음계 피리도 만듭니다.
그런데 호리호리한 호모 사피엔스 중에 0.1퍼센트가 자신들의 생존하고는 상관없을 것 같은 일을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지하 동굴로 내려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940년에 발견된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 그건 1만 5천 년 전 벽화였는데요. 1994년에 발견된 3만 5천 년 전의 쇼베 동굴! 그 벽화들을 보면 기절하실 거예요. 피카소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 가서,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후에 모든 것이 쇠퇴했다고 선언을 해버렸어요, 1945년에. ‘What is a modern art?’ 무엇이 현대 예술인가? 알타미라 동굴에 가서 약간 추상적인 조각 이게 현대 예술이다, 그랬거든요.
쇼베 동굴 벽화를 보면 3만 5천 년 전에 어떻게 인간이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싶은데, 저 깊은 데로 가서 그림을 보면 3D, 4D처럼 너무 잘 그려놨어요. 그 이유가 하나 있어요. 네안데르탈인도 없었던, 호모 사피엔스만 가지고 있던 한 가지가 다르게 한 거예요. 그 당시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누구였느냐, 늑대였어요. 근데 늑대는 일부일처제기 때문에 임신한 암늑대가 쫓겨난 거예요. 네안데르탈인한테 가려고 하면 죽이려고 그랬고요.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의 일부가 뭘 가지고 있었느냐, 친절을 갖고 있었어. 그래서 얘를 받아준 거예요. 먹을 걸 줬어요. 그랬더니 늑대도 자기가 사냥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공생하게 된 거예요. 이 암늑대가 계속 새끼를 5대까지 낳으면서 그게 개가 된 거예요. 늑대도 학명이 카니스 루프스(Canis lupus)고 개도 카니스 루프스로 똑같아요. 친숙한 늑대예요.
무슨 기적이 일어났느냐. 빙하기가 만 년 전에 끝났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4만 년 전부터 뭘 하기 시작했냐면, 밤에 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충분한 잠으로 몰입을 할 수가 있고 관찰을 할 수 있고 기억을 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리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늑대 개가 인류를 선택했고 호모 사피엔스와 늑대 개가 공생 관계가 되면서 처음으로 인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냥을 할 때 맘모스같이 엄청난 동물을 개들이 몰아주는 거야, 늑대 개가. 그러면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고요.
네안데르탈인은 2만 8천 년 전에 완전히 사라져요. 데니소바인은 4만 년 전에 없어지고. 아시아인의 6퍼센트가 데니소바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교접을 통해서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유럽인들의 1, 2퍼센트가 네안데르탈인과 교접을 해서 나왔어요. 이 연구로 막스프랑크연구소 파보 박사가 작년에 노벨 의학상을 탔어요. 우리가 하이브리드예요, 사실은.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이 개를 많이 키우잖아, 개를 키우면서 이거를 연결시켰으면 좋겠어요. 독일의 티어하임이라고 동물보호소가 있어요. 거기 고양이하고 개들한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책을 읽어주면서 고양이나 개가 듣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요. 우리도 그런 센터를 만들어서 부모는 와서 요가하고 명상하고, 애들은 동물과 뛰어다니면서 자연과 교감을 하는 거죠. 인간 중심이 아니라, 개도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리는 생명 중심 운동을 아직도 개고기를 먹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하는 것, 이게 혁명일 수 있다. 이걸로 대한민국이 점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작가. 인류 최초로 문자로 기록된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명원 원장과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블로그 ‘배철현의 매일묵상(blog.naver.com/eduba)’에 소소한 관찰을 글로 적고, 유튜브 채널 ‘배철현의 더 코라(TheChora)’에는 동서양 경전과 고전을 통해 얻은 혜안을 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2020년 3월, 교육기관인 ‘더코라(http://www.thechora.com)’를 설립해 청소년과 예술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교 ‘서브라임’과 경영인들을 위한 ‘코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아슈탕가 마이솔 요가 훈련을 통한 영감으로 《배철현의 요가수트라 강독》도 집필하고 있다. 저서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배철현의 위대한 리더》, 그리고 위대한 개인을 발굴하기 위한 에세이 시리즈 《심연》 《수련》 《정적》 《승화》 등이 있다.
Q 이방철 대표님과 무형서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책을 통해 사회가 더욱 지혜로워지기를 바라는 무형서재 대표 이방철입니다. 무형서재는 2017년 직접 창립한 독서 동아리에서부터 시작해 우리나라의 독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뮤니티로 확장 운영하고 있고, 온라인 독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형서재는 ‘책들이 모인 곳이 서
얇은 재질의 소재로 만드는 책갈피 책갈피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어디까지 읽었는지 편하게 표시만 가능하다면 어떤 것으로라도 책갈피로 쓸 수 있다. 주변에 손에 잡히는 것을 책 사이에 끼워 넣기도 한다. 그러면 특히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그만 자고 싶을 때 책갈피를 가지러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새 옷을 샀을 때 부착된 택을 책갈피로 쓰기도 한다
Book 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분들을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6월호에서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와 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치마켓 함의영 대표를 만났다.책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책과 독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A 피치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