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한 시간 20분 정도 가면 중세 도시 지로나(Girona)를 거쳐 피게레스(Figueres)라는 작은 도시에 이른다. 달리 극장-미술관이 이곳에 없었다면 아마 인연의 도시가 아니었을 터이다. 기차역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면 갈라 살바도르 달리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 너머로 그리 크지 않은 달리 극장-미술관이 있다. 지붕에 오스카상 트로피를 닮은 형상들과 가이아 지구상, 그리고 타원형 생명의 알들이,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공간임을 암시하는 듯 손짓한다. 달리가 말년에 고향 마을의 영화관을 매입하여 직접 건축을 설계하고 감독하면서 나름대로 꿈의 공간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그는 비록 1989년 타계하여 이 미술관 지하에 묻혀 있지만, 그의 초현실적 불멸의 꿈은 여전히 세계의 관람객들을 통해 살아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스스로가 ‘마약’이므로 자신은 마약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 달리, “나는 이상하지 않다. 단지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던 달리답게, 그곳은 정말 평범하지 않은 ‘초현실적 오브제’이다. 그것이 오브제인 이유는 거기에 들어가 달리 방식의 예술 놀이에 참여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적 효과를 빚어내도록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엄숙한 미술관이 아니라는 말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하늘이 높은 중정에 설치된 작품부터 이곳에 달리의 극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높은 기둥을 타고 하늘을 오르려는 배가 검은 우산을 쓰고 있다. <갈라의 배와 검은 우산> 바로 앞에는 검은 승용차 위에 올라가 있는 풍만한 여인의 조각상이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로비에는 <18m 떨어진 곳에서 보면 링컨 대통령이 나타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갈라의 누드>(1975)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멀리서 보면 링컨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갈라의 누드가 보인다. 또 시스티나 성당의 절정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오마주한 천정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 극장-미술관에서 관람객이 가장 긴 줄을 이루는 곳은 <아파트로 사용할 수 있는 메이 웨스트의 얼굴>이 설치된 방이다. 달리가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는 흑백영화 시대의 할리우드 여배우 메이 웨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그야말로 극장식 설치미술 공간이다. 낮은 무대에는 입술 모양의 소파가 놓여 있다. 그것을 그냥 보면 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무대 건너편에서 아주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서 큰 볼록거울을 통해 보면 바로 메이 웨스트의 여러 얼굴이 재현된다. 이 계단을 오르기 위해 관람객들은 끈질기게 줄을 서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달리는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자기 극장에 온 사람들에게 다양한 인지의 충격을 제공한다. 예기치 않은 스펙터클 앞에서 놀라게 한다. 달리가 활동했던 시기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에서 그쳤는지도 모른다. 그가 20년만 더 활동했더라면 이 극장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종>을 오마주하여 변주한 괴짜 달리의 작품
수많은 스펙터클 영화를 체험하면서 나는 달리가 오마주한 밀레를 다시 생각했다. 한쪽 부스에 밀레의 <만종> 사진이 맨 위에 있고, 그 아래로 <만종>과 관련한 스케치와 책 《밀레》 그리고 밀레의 <만종>에 대해 자신이 저술한 책과 그 책의 펼쳐진 장면들이 또 하나의 설치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밀레의 <만종>을 오마주하여 변주한 대표적인 세 그림은 이 미술관에는 없었다. 여기서 보지 못했지만 오타와의 캐나다국립미술관에 소장된 <갈라와 밀레의 만종>(1933)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밀레 부스를 지나 갈라의 방에서 1945년부터 1960년까지 다양하게 그린 갈라의 초상을 보면서, 아직 결혼하기 전 같은 초현실주의 그룹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던 시절의 갈라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갈라는 평생 달리의 뮤즈였고 예술적 원동력이었다.
<갈라와 밀레의 만종>은 둘이 결혼하기 한 해 전의 작품이다. 선명한 원근법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가장 안쪽 의자에는 달리의 연인 갈라가 앉아 있다. 그 맞은편에 팔을 테이블에 기댄 채 비스듬히 앉아 있는 대머리 사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흔히 레닌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왼쪽으로 열린 문 뒤에 숨어 문의 모서리를 잡고 바닷가재를 머리 위에 얹은 희극적 사내의 초상이 3분의 1쯤 보인다. 흔히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로 추정된다. 이 세 인물이 한 그림에서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린다. 이 구도에 대해 종종 프로이트적인 해석이 덧붙여지곤 한다.
달리는 열 살 연상의 연인 갈라에게 모성애를 느꼈다. 어머니 같은 연인이다. 그 맞은편 레닌은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1933)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법과 금기를 주재하는 아버지의 변형이다. 실제로 달리는 같은 초현실주의 그룹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던 갈라를 자기 여인으로 만들기 위해 금기를 넘어 온갖 기행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그의 부친은 아들과 의절하기도 했다. 14세기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이었던 빌헬름 텔은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던 그는 실수 없이 사과만 맞추어 아들을 구하고 자신도 구한다.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가 생각하기에 자기 아버지는 자신의 머리 위의 사과가 아니라 자기 얼굴을 맞힐 것 같은 불안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문밖에 바닷가재를 머리에 얹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내를 달리로 해석하는 것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방 안쪽 갈라와의 동일시를 욕망하지만, 당시로서는 갈라가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의 자리에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둘 사이를 가로막은 채 아들의 욕망을 억압하는 형상이다. 저 오래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불안을 극적으로 환기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구도 위에 밀레의 <만종> 액자가 걸려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밀레에 대한 달리의 한없는 오마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복잡한 구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달리가 <만종>에서 죽음의 타나토스에 이끌려 불안을 느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욕망과 불안의 길항이라는 측면에서 액자 속 <만종>과 그 아래 세 인물의 구도는 비슷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욕망은 결코 그 대상에 다다르지 못한 채 결여의 가장자리를 형성하면서 불안을 배태하는 어떤 것이다. <만종>에서 기도하는 부부와 그 대상과의 관계, 달리의 그림에서 바닷가재를 얹은 달리와 갈라의 관계는 그런 지점에서 한 다발로 묶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밀레를 극도로 존경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밀레는 예술적 친부 살해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 농민들의 실제 생활을 진지하게 그렸던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밀레와는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인간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강조했던 초현실주의 화가였으니, 존경과 거부라는 양가감정은 차라리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스펙터클한 달리 극장-미술관의 분위기에서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에 수록된 달리의 삽화 관련 전시도 인상적이다. 돈키호테는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문제적인 캐릭터이다. 이미 철이 지난 중세의 미몽에 사로잡혀 광기 행동을 보이는 가짜 기사의 이야기는 매우 복잡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는 까닭이다. 일찍이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가 돈키호테를 ‘신념의 상징’으로 호의적 해석을 한 적이 있거니와,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미친 상상을 한 창의적 존재로 돈키호테를 상정해볼 수도 있겠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 미친 것인지, 미래에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자신이 미친 것인지 질문하며 끊임없이 미친 상상을 이어갔던 인물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기 어려운 사랑을 하고 싶었던 이가 돈키호테였다. 또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닿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기를 소망하며 행동했던 캐릭터가 바로 돈키호테였다. 그랬던 돈키호테와 “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라고 했던 살바도르 달리는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내가 되는 것”은 정녕 가능한 일인가? 피게레스의 달리 극장-미술관에서 돈키호테의 삽화를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돈키호테가 17세기 괴짜였다면, 살바도르 달리는 20세기 괴짜였다.
문학평론가, 대학교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2023), 《책의 질문》(2023), 《애도의 심연》(2018), 《나무의 수사학》(2018), 《불안의 수사학》(2012),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시대의 상상력》(2010), 《고독한 공생》(2003), 《타자의 목소리》(1996), 《상처와 상징》(1994), 《욕망의 시학》(1993) 등을 썼고, 대산문학상, 팔봉비평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엔 기후 침묵을 넘어 기후 행동을 위한 생태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탐문하는 환경인문학을 모색하면서, 문학과 문화 교류 양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역사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작별하지 않는다》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
영화관에는 없는 도서관의 자유도영화관과 도서관 사이, 미술관이 있다. 영화관에서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영상과 음향을 감상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면 자막을 끝까지 보며 감동의 여운을 오래 저작하고 싶지만, 곧 일어나야 한다. 혹 영화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중간에 나오는 건 쉽지 않다. 타인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쿠바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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