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탐방]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주인은 누구인가: BnF François-Mitterrand에서 느끼는 환대와 시험
박강아름_영화감독
2026-02-0510:02
센강 변에 서 있는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의 네 개의 탑 ⓒ박강아름
파리에는 국립도서관(BnF,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이 다섯 곳 있다. 바로 리슐리외(Richelieu), 아르스날(Arsenal), 오페라(Opéra), 장 빌라르(Jean-Vilar) 그리고 프랑수와-미테랑(François-Mitterrand)이다. 이 중에서 내가 연구자로서 자주 찾았던 곳은 13구의 센강 변에 위치한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이다. 이번에는 연구가 아닌 취재를 위해 이곳을 두 차례 방문했다. 한 번은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 또 한 번은 실제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파리의 국립도서관 중에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은 가장 크고, 또 가장 높다. 네 개의 유리 탑은 각각 폭이 약 80미터, 22층 높이로 솟아 있다. 도서관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이 도서관의 넓이보다도 단연코 위로 치솟은 수직의 힘에 더 압도되었다.
두 개의 탑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13구의 풍경 ⓒ박강아름
도서관 가이드 투어를 통해, 이 네 개의 유리 탑에 각각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탑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탑들이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시간의 탑(Tour des Temps)’, ‘법의 탑(Tour des Lois)’, ‘문자의 탑(Tour des Lettres)’ 그리고 ‘수의 탑(Tour des Nombres)’이라는 이름을 가진 네 개의 탑에는 각각 시간, 법, 문자, 수의 범주에 포함되는 책들이 분류 보관되어 있다. 이 네 개의 탑은 각각 기역(ㄱ) 자 형태로 직사각형 대지의 네 모서리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반으로 펼쳐진 책’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이드는 이 해석이 건축가의 의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서관 개관 20주년 전시 당시 가이드는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이 도서관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를 재현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건축적인 행위(acte architectural)’를 수행했다고 말했단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건축적인 행위란 첫째, 하나의 직사각형 형태를 설정하고 네 모서리를 강조하며 타워를 세운 것, 둘째, 대지를 평평하게 밀어버리지 않고 기존의 지형, 즉 언덕의 높낮이를 건축 안으로 끌어들인 것, 셋째, 그 결과 도서관의 중심 기능을 ‘위’가 아닌 ‘아래’, 즉 지하에 배치한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네 개의 탑이 단지 ‘책’을 표현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인 장치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도미니크 페로, 그에게 건축이란 단지 무엇을 닮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땅, 높이, 접근과 시선 그리고 이동의 방식을 새롭게 재배치하는 행위였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이 도서관은 이제껏 내가 경험한 공공도서관과는 다른 접근과 시선 그리고 이동을 제안한다.
이용자들에게는 탑 가운데 있는 중앙 정원을 기준으로 정원 위와 정원 아래, 두 층만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네 개의 탑은 이용자들의 접근이 제한된다. 이 공간은 서고와 직원들의 사무 공간으로 쓰인다. 하부 몇 층은 채광을 지하로 보내기 위해 비워 놓았고, 중간층은 직원들을 위한 사무실, 그리고 상부는 책을 보관하기 위한 서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시민이 이용 가능한 공간은 14세 이상 이용할 수 있는 ‘정원 위층(Haut-de-jardin)’과 연구자를 위한 지하의 ‘정원 층(Rez-de-jardin)’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원 위층은 화요일부터 토요일에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그리고 일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개방된다. 하루 이용권은 5유로이며, 오후 5시 이후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연간 이용권은 24유로다. 지하의 정원 층은 월요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그리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된다. 정원 위층보다 한 시간 일찍 문을 연다. 이용을 위해서는 별도의 연구 목적과 등록이 필요하며, 하루 이용권은 6유로, 연간 이용권은 55유로, 할인 요금은 35유로다.
지하 5층,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rez‑de‑jardin)’에 가려면 지하 5층까지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나는 이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늘 유년 시절 텔레비전에서 보던 북한의 지하철역을 떠올린다.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이 기분,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바깥의 현실과 이별하는 것 같아서다. 덕분에 나는 유학생으로서의 가난함도, 집 안에 쌓인 가사 노동도, 그리고 당장 감당해야 할 육아도 잠시 잊을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나 자신과의 집중력 싸움일 뿐이다.
연구자를 위한 지하 ‘정원 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싣는 긴 에스컬레이터. 도서관의 중심 기능이 ‘아래’에 있음을 체감하게 만드는 이동 장치다. ⓒ박강아름
지하 5층 깊이의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 열람실은 철학·역사·인문과학, 법·경제·정치, 시청각 자료, 과학·기술, 문학·예술이라는 다섯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분야는 세분화되어 총 열두 개의 열람실로 나뉘어 있다. 열람실을 이용하려면 열두 개의 열람실 중 하나를 선택해 예약한 후 열람실로 들어가 현장의 사서로부터 좌석을 직접 배정받으면 된다. 좌석은 빈 좌석을 둘러본 후에 내가 원하는 좌석을 말해도 좋고, 아니면 아무 좌석이나 좋다고 말하면 서사가 알아서 배정을 해준다.
나는 한때 이곳을 거의 매일 다녔다. 파리 서쪽 외곽에서 이곳 파리 동남쪽까지 대중교통으로 최소 왕복 90분이 걸리는데도 노트북과 도시락을 무겁게 등에 메고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다. 지하로 깊이 내려가면 앞서 말한 것처럼 바깥 시간을 잊게 만드는 고요함이 날 휘감았고, 그것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원목 책상과 의자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또한 내가 이곳을 찾은 주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나는 최근에 나의 경제적인 계급을 느끼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가구 중에서도 ‘의자’라는 생각을 강렬하게 한다. 왜냐하면 마흔이 넘으면서 이제는 플라스틱 같은 가벼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열람실 책상과 의자는 원목이고 묵직하고 크다. 이 육중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마치 법관이 앉는 의자에 앉는 기분이랄까. 적당한 긴장감을 주면서 동시에 편안해서 읽고 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게다가 도서관 내부는 살짝 어두운데, 개인별 책상에 눈높이 정도의 조명이 있어 조명을 켜면 집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연구자 열람실의 풍경. 문을 닫는 일요일에 진행된 가이드 투어 참관을 통해 빈 공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박강아름
각 열람실에는 이용자가 책을 촬영할 수 있도록 돕는 작은 텐트형 스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나는 가이드 투어로 도서관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이 장치를 늘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내가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어떠한 절차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가이드 투어를 하면서 이곳 열람실을 이용하는 연구자들은 모두 자신이 소지한 스마트폰으로 책을 촬영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며칠 후 열람실을 방문했을 때 사서 분에게 한 번 더 여쭈어보았다. 사서는 저작권과 상관없이 스마트폰으로 책을 촬영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활동했던 실험영화의 대가 마야 데렌의 책을 한 권 가져와 텐트형 스캔 장치에 스마트폰을 놓고 책을 촬영했다.
연구자 열람실에 배치된 텐트형 스캔 장치 ⓒ박강아름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에서 중요한 장소는 열람실 사이에 있는 ‘휴게실(espace détente, distributeurs)’이다. 정원 층에는 이러한 휴게실이 총 세 곳 마련되어 있으며, 각 공간에는 전자레인지와 음료 자판기, 정수기, 프린터, 그리고 감각이 돋보이는 가구들이 놓여 있다. 늘 깨끗하게 관리되는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운 후, 이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면 오늘 하루를 버틸 단정한 힘이 생긴다. 내가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에 자주 왔던 이유는 이런 감각 때문이었다.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의 휴게실 풍경 ⓒ박강아름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의 휴게실에 비치된 프린터와 결제 자판기 ⓒ박강아름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의 휴게실에 비치된 전자레인지 ⓒ박강아름
이 휴게실에서 나는 두 이용자를 인터뷰했다. 먼저, 역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중국인 학생을 만났다. 그는 일주일에 다섯 번 이 도서관에 온다고 했다. 집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이제는 습관처럼 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 도서관의 좋은 점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하고, 자료가 많고, 식사하기 편해서요”라고 답했다. 나는 식사 부분에 특히 공감이 되었다. 도서관 밖에서 식사를 하려면 샌드위치만 사 먹어도 최소 5유로를 써야 하고, 다른 음식보다 저렴한 쌀국수를 먹으려고 해도 최소 12유로는 써야 하니까. 하지만 이곳 휴게실은 물도 제공되며, 늘 깨끗한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다.
내가 재학 중인 대학에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공간에 전자레인지가 구비되어 있지만, 늘 그 안에는 터진 음식물들이 딱딱하게 굳은 흔적들이 역력하다. 그래서 학교의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는 전쟁터에 내 음식을 넣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곳은 모든 게 깨끗하다. 집도 이틀만 청소를 안 하면 바닥에 먼지가 쌓이고, 일주일만 물걸레로 가구를 닦아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는데, 이곳은 먼지도 별로 없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내가 이곳에서 호흡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으니까. 내가 청소하지 않아도 청소 노동자가 대신해주는 덕분이다.
휴게소에서 인터뷰한 또 다른 이용자는 1960년대 잡지를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대학교수였다. 그는 이 도서관을 “연구에 필수적이지만 이용자에게 다정하지는 않은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방대한 소장 자료가 연구자에게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했다. 동시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중앙 정원을 가리키며, 그 풍경이 때로는 “쥐라기 공원 같기도 하고, 좀비 영화의 세트장처럼 느껴진다”며. “언제 공룡이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가이드 설명과는 전혀 다른 해석과 표현이 참 좋았다. 아름답지만 접근할 수 없고, 압도적이지만 환대하지 않는 풍경. 그럼에도 그는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는 방대한 자료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네 개의 탑들 가운데 놓인 정원. 정원은 유리 벽으로 둘러싸여 들어갈 수 없다. ⓒ박강아름
정원 위층, 공부하는 사람들의 도시 인프라
투어 때 가이드가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이 도서관의 ‘중앙 정원’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도미니크 페로는 중세 건축, 특히 수도원의 회랑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중앙 정원은 페로 설계안의 핵심 개념이라고 한다. 열람실이 중앙 정원을 둘러싸고 있고, 이용자들은 정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복도를 통해 각 열람실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걷기의 경험 자체가 도서관의 중요한 공간적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도서관의 바닥에는 모두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다. 나는 가이드가 걷기의 경험 자체를 도서관의 공간적 경험이라고 설명했을 때 이 색이 이러한 경험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붉은색을 도서관에서는 ‘아프리카의 붉은 흙(terre rouge d’Afrique)’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이드는 이 명칭을 도서관과 아프리카라는 대륙을 연결하려는 상징적 제스처로 해석하며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국가 기관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신화적 색채처럼 느껴져 다소 오글거렸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를 그렇게 식민지 삼지 말았어야지 싶었던 것이다.
왼쪽의 열람실과 오른쪽의 정원 사이에 놓인 복도 ⓒ박강아름
네 개의 탑들 가운데 위치한 정원은 높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정원 훼손의 위험, 둘째는 도서관의 오염 문제. 실제로 위에서 피자 박스 등이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도서관 입구에서 짐을 검사하는 보안 절차를 통과하면 1층으로 들어서게 된다. 예전에는 출입구가 여러 개였지만, 보안과 운영 상 입구가 하나로 바뀌었다고 한다. 1층에는 14세 이상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정원 위층(Haut-de-jardin)’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가 마치 시간이 멈춘 세계처럼 느껴진다면, 이곳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는 공간에 가깝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를 위한 지하의 ‘정원 층(Rez-de-jardin)’과 달리, 이곳 ‘정원 위층(Haut-de-jardin)’은 별도의 연구 자격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
정원 위층에 위치한 열람실 입구의 풍경 ⓒ박강아름
내가 이 층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이곳이 도서관을 찾는 14세 이상의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구매한 이용권을 찍고 들어가야 하는 열람실 내부가 아니라, 그 바깥에 펼쳐진 열린 공간에 있다. 복도를 따라 곳곳에 놓인 의자와 책상, 그리고 거의 모든 자리 옆에 설치되어 있는 콘센트들이 열린 공간을 만든다. 이곳에서는 자리를 배정받지 않아도 앉을 수 있다. 즉, 1층에는 무료로 앉아 공부하거나 작업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무료로 앉을 수 있는 1층 복도의 좌석들. 열람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자리다. ⓒ박강아름
복도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바칼로레아 모의시험을 앞두고 오늘 처음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집에서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왔다며, 이곳이 좋은 이유로 “조용하고, 넓고, 돈을 쓰지 않아도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에게 이곳은 공부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시의 인프라인 셈이다. 공감이 되었다. 나도 육아와 가사 노동을 시야 밖으로 밀어내고 싶어 집에서 나와 이곳에 왔었다. 필요한 것은 교통비와 도시락뿐이다.
붉은색 바닥의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널찍한 공간이 나타나며 온도가 달라진다. 루이 14세에게 헌정되었던 수 톤이나 되는 거대한 지구본이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어 이름이 붙여진 듯한 ‘카페 글로브(Café Globe)’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식사하는 사람들, 함께 온 파트너와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말소리가 이 공간을 채운다.
1층에 위치한 카페 글로브. 이곳에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사서 자리에 앉아 먹고 마실 수 있다. ⓒ박강아름
이곳에서 나는 한 유튜버를 인터뷰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이 도서관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집이나 카페보다 이곳이 좋은 이유를 묻자, 그는 “사람들이 다들 공부하러 와 있어서, 그 분위기 자체가 집중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부하거나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역시 국가와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인프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1층에는 열람실과 카페뿐만 아니라 전시장도 있다. 물론 전시를 보기 위해 일부러 들어가야 하는 별도의 전시장도 있지만, 복도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전시 작품들을 보게 되는 방식도 존재한다. 내가 방문했던 1월의 복도에는, ‘사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BnF의 한 해 사진상 수상작(La photographie à tout prix. Une année de prix photographiques à la BnF)’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니엡스상(Prix Niépce), 나다르상(Prix Nadar), 부르스 뒤 탈랑상(Bourse du Talent), 카메라 클라라상(Prix Camera Clara) 같은 상들의 수상작 인화 사진들을 한 해의 ‘풍경’처럼 모아 보여주는 전시였다.
1층 복도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사진 전시 ⓒ박강아름
이렇게 프랑수아-미테랑 국립도서관은 기존의 공공도서관이 제안해온 접근과 시선, 이동의 방식을 비켜서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이동, 머묾과 휴식을 함께 설계한 공간이다.
도시 프로젝트로서의 도서관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을 때, 나는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의 꼭대기에 올랐다. 나까지 포함해 약 스무 명의 방문객이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최대 21명까지 허용되는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다. 우리가 향한 곳은 법의 탑(Tour des Lois) 꼭대기에 위치한 ‘벨베데르(Belvédère)’였다. 엘리베이터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출발 전 가이드는 “엘리베이터가 꽤 빠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는 이 건물을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적 성취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실제로 몇 초 만에 우리는 18층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이 도서관이 단순한 문화 시설이 아니라 ‘도시 개발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리슐리외’ 관은 이미 장서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한 상태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임기 말이던 1988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국제 공모가 진행되었고, 1989년 당시 36세였던 젊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설계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도서관은 1996년에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도서관 장소로 왜 파리 13구의 센강변에 있는 톨비악 부지였을까? 이는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늘어나는 장서를 보관하기 위한 거대한 도서관을 새로 짓는 사업에 그치지 않는, 미테랑 대통령이 추진했던 도시 재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파리 13구는 행정적으로는 파리에 속해 있었지만, 지리적으로는 오랫동안 성벽 밖에 위치해 파리의 가장자리로 인식되어 왔다. 그 결과 수도의 중심처럼 보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교외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13구에는 창고, 공장, 철도와 같은 이른바 도시의 ‘뒷기능’이 한꺼번에 모였다. 특히 도서관 부지 일대는 1840년 철도가 들어서면서 농경지에서 벗어나 창고와 공장, 철도 시설이 밀집한 선업 지대로 바뀌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이곳의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한때 파리의 가장자리였던 13구가 어느새 파리의 도심에 편입되었고, 그러면서 수도인 파리 한복판에 100년이 넘은 낡은 철도와 산업 시설이 남게 된 것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이곳은 지리적으로는 중심이 되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뒷기능에 머물러 있는 공간, 다시 말해 도시의 ‘뒷모습’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의 13구를 건축가 도나티엥 센리(Donatien Senly)는 “시대에 뒤처진 도시의 빈터”[1]라고 표현했다. 또한 기자 도미니크 자메(Dominique Jamet)는,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에 실린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 개관 20주년 기념 기사 <BnF의 거시적 관점: 도서관의 뿌리>(2015년 4월 27일)에서 이곳을 “쥐와 길고양이가 다니는 낡은 건물”[2]로 묘사하며, 이곳이 가난하고 쇠락한 공업 지대였음을 강조한다.
파리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지역을 새로운 주거·업무 지구로 재편하기 위해 ‘파리 리브 고쉬(Paris Rive Gauche)’라는 이름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3]. 그리고 당시 13구 구청장이었던 자크 투봉(Jacques Toubon)은 프랑스 국영 철도 회사(SNCF)의 화물 창고가 있던 센 강변의 톨비악 부지를 새로운 도서관의 장소로 제안했다. 그러나 도미니크 자메는 이 부지 선정이 결코 이상적인 선택만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미테랑 정부는 파리 중심부와 가까우면서도, 군부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던 뱅센 요새보다 협상이 쉽고, 생드니처럼 순환도로 바깥으로 나가는 데 따른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보다 ‘합의 가능한’ 공간인 이곳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도미니크 자메는 만약 생드니가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의 장소로 선택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도서관의 민주화를 물질적으로 증명하는 선택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4]. 충분히 설득력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13구가 아니라 생드니에 이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와 국립 도서관이 들어섰다면, 오늘날 생드니는 어떤 도시 풍경을 갖게 되었을까. 반대로 13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까. 이처럼 여러 정치적 고려 끝에 센강변의 톨비악 부지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서관 프로젝트의 장소로 확정되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의 도서관 설립은 ‘책을 보관하는 건물’을 너머,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던 도시의 빈터를 새롭게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도와 창고, 공업지대의 연장선에 있던 이 장소가 도서관을 중심으로 ‘파리 리브 고쉬(Paris Rive Gauche)’의 새로운 도시 구획으로 재구성되었고, 이후 주거 단지와 대학, 영화관, 교통망이 차례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1989년의 톨비악 부지 항공 사진(파리시청이 공모전을 위해 제공한 문서). 센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철도 선로와 화물 창고, 공업 시설들이 보인다. 이곳은 이후 ‘파리 리브 고쉬’ 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 부지로 재편되며, 여기에 프랑수아-미테랑 국립도서관이 들어서게 된다. ⓒ박강아름
도서관 꼭대기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창밖을 다시 내려다 봤다. 유리창 아래로는 센강이 길게 흐르고, 시네마테크가 있는 베르시(Bercy)와 13구의 현대적인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건 같지만 전과 달리 느껴졌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 위로 이 장소가 품어온 다채로운 역사 만큼이나, 그 속에서 탄생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뭉게뭉게 떠올라 나에게 오는 것 같았다.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는 이 부지의 특성도 담겨 있을 것이다. 이 부지는 처음부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장소는 아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센강에 인접해 있어 홍수 위험이 있었고, 지형 자체도 비탈져 있었기 때문에 건축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페로의 설계는 이 조건을 지하화, 네 개의 탑, 중앙 정원이라는 건축적인 행위로 해결한 것이다. 연구자를 위한 ‘정원 층(rez-de-jardin)’에 내려가면, 28m 높이의 방벽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또한 1910년 센강 대홍수와 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그래서 센강 쪽에서는 높은 계단을 통해 도서관에 접근하게 되고, 반대편 쪽에서는 비교적 평탄한 지면에서 진입하게 되는 이유도 이 지형 조건이 비탈진 언덕이기 때문이다.
법의 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시간의 탑과 센강이 흐르는 파리 13구. 맑은 날에는 멀리 몽마르트르까지 보인다. 탑 외벽 상부에 설치된 나무 가리개가 닫힌 층은 서고로 사용되며, 상대적으로 개방된 층은 사무 공간으로 쓰인다. ⓒ박강아름
법의 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센강과 베르시 일대. 대형 공연장이자 스포츠 경기장인 아코르 아레나가 있고, 그 뒤편에는 시네필들의 성지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자리하고 있다. ⓒ박강아름
법의 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센강과 다리들 ⓒ박강아름
이렇게 13구가 도시 개발 프로젝트 구역의 일환이었으므로, 지하철 14호선을 타고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 역에 내리면, 오스만 남작이 만든 고전적인 파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1990년대 이후에 형성된 사각형 아파트 블록과 현대식 오피스 빌딩이 이어진다. 나는 이때 속으로 “13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가는 목적지가 정확해 보이고 바빠 보인다. 반면 6호선을 타고 케 드 라 가르(Quai de la Gare) 역에서 내리면 센강 산책로를 따라 도서관이 서서히 드러나고, 14호선에서 내린 풍경보다 좀 더 한적해 보인다. 같은 목적지임에도 지하철 몇 호선을 타고 내리느냐에 따라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의 경험이 다르게 조직되는 것을 느낀다.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과 가까운 지하철 14호선 2번 출구 근처의 거리 풍경 ⓒ박강아름
다시 꼭대기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프랑스가 욕망하는 ‘관광의 시선’이 얼마나 자주 높은 곳에 놓여 있는지를 체감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개선문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그리고 이곳 도서관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파리까지. 순간, 관광객이 되었다.
결국 도서관은 누구의 것인가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은 14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느끼는 편안함의 정도는 서로 다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 건축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편안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어떤 연구자는 매일 도시락을 싸서 이곳을 찾으며 하루를 보냈고, 또 다른 연구자는 이 공간을 “필수적이지만 다정하지는 않은 장소”라고 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드나들고 있었다.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은 무료로 앉을 수 있는 복도에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었고, 유튜버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빌려 자신의 노동을 이어갔다. 방문객은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 건축이 놓인 자리를 다시 읽고 있었다. 건물 바깥에는 유리 타워를 거울 삼아 춤 연습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나는 어떠한가?
파리 서쪽 외곽에서 이곳 13구까지 왕복 90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이곳에 오곤 했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이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지 않고 집에서 작업을 한다.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에서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일을 한 것 같은 하루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짐 검사를 통과하고, 사물함에 짐을 넣고, 투명한 파일 가방에 개인 소지품을 옮겨 담는다. 지하로 내려가 시청각 자료 열람실을 예약하고, 자리를 배정받아 책상 앞에 앉는다. 영화 관련 책들에 둘러싸여, 영화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 앉아서 노트북을 켠다. 이 사실만으로도 하루는 이미 촘촘해진다. 여기에 편안한 가구에 앉아 밥을 먹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한다.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정원 위로 올라가 복도를 거닐며 전시를 구경했다가 서점에 들어가서 책들을 보는 발걸음까지 더해지면, 실제로 오늘 내가 얼마나 읽고 얼마나 썼는지와 무관하게 ‘오늘은 충분히 생산적인 하루였다’는 감각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오면 내가 매우 뛰어난 연구자가 된 것 같은 기분과 동시에, 오늘 읽고 쓴 양을 확인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늘 한 것이 거의 없다는 자괴감 또한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구자 층에서 1층으로 올라갈 때, 복도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 〈너와 나(Toi et moi)〉 앞을 늘 지난다.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형태. 도서관은 어떤 날에는 나에게 환대처럼, 또 어떤 날은 압박처럼 작동한다. 이 성공과 실패라는 양면의 감각은, 결국 이 도서관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경험과 닮았다.
복도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 〈너와 나〉 ⓒ박강아름
이러한 압도감은, 어쩌면 내가 한국에서 10대 시절부터 경험해온 공공도서관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오랫동안 정보 접근과 학습의 효율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왔다. 검색하고, 신청하고, 대출하고, 반납하고, 열람실에 앉는 동선은 명확하고, 이용자의 역할은 분명하다. 도서관은 ‘무엇을 하러 오는 곳’이지, ‘무엇이 되도록 요구받는 장소’는 아니다. 반면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은 이용자를 특정한 상태로 두도록 설계된 공간에 가깝다는 생각이 매번 든다. 묵직한 원목 책상과 조명은 이용자의 몸을 오래 머무는 상태로 이끈다. 세부적으로 나뉜 열람실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라 ‘어떤 연구의 연구자’로 위치 지워진다. 그래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도서관 앞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누가 이 공간을 자신의 자리로 느낄 수 있는가? 나 역시 유리 타워를 거울 삼아 춤을 연습하는 이들처럼, 이 공간을 나의 자리로 느끼고 싶다. 나도 그들처럼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이곳은 나를 환대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나를 시험한다. 나는 왜 나를 끊임없이 시험할까? 이 모순 속에서, 나는 이 도서관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 계속해서 묻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유리 탑은 춤을 추는 젊은이들에게 거울 기능을 해준다. 덕분에 도서관 밖은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박강아름
센강 변에 서 있는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의 ‘법의 탑’. 탑 아래 계단은 이용자와 방문객이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박강아름
프랑수와-미테랑 도서관 입구 ⓒ박강아름
[1] 도나티엥 센리(Donatien Senley), « 이미지, 네트워크 그리고 도시 개발의 재정(Paris Rive Gauche. Images, réseaux et financement de l’aménagement) », 도시 연구 연보(Les Annales de la recherche urbaine), 제82호, 1999, p. 25-35.
[2] 프레데리크 루셀(Frédérique Roussel), <BnF의 거시적 관점: 도서관의 뿌리(grand angle BnF, les racines d’une bibliothèque)>, 리베라시옹(Libération), 2015년 4월 27일.
[3]도나티엥 센리(Donatien Senley), « 이미지, 네트워크 그리고 도시 개발의 재정(Paris Rive Gauche. Images, réseaux et financement de l’aménagement) », 도시 연구 연보(Les Annales de la recherche urbaine), 제82호, 1999, p. 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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