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중심에 위치한 샤틀레레 알 역(Gare de ChâteletLes Halles)은 다섯 개의 지하철 노선과 세 개의 RER 노선, 총 여덟 개 노선이 지나는 거대한 철도역이다. 낡고 복잡한 구조, 그리고 늘 붐비는 인파 속을 지나 환승할 때면 나는 종종 서울의 신도림역을 떠올린다. 물론 두 공간 사이에는 분위기부터 냄새, 온도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이 글에서 진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다른 지점에 있다. 바로 이 역이 상업시설로만 연결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 알 쇼핑몰 내부 전경 ⓒ박강아름
샤틀레-레 알 역 안에는 대규모 쇼핑몰, 멀티플렉스 극장과 함께 수영장 같은 공공 스포츠 시설과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Bibliothèque du cinéma François-Truffaut)’, ‘포럼 데 지마주(Forum des images)’, ‘음악 도서관(Médiathèque musicale de Paris)’ 같은 파리시의 문화 공공시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인 시설 옆에 공공 문화시설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마치 백화점 옆에 공공도서관이, 쇼핑몰 옆에 공원이 있는 것처럼.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도시가 어떻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영화를 공공재로 다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도서관 이용법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름을 딴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은 일반 도서관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별도의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DVD 코너의 다큐멘터리 섹션 ⓒ박강아름
멀티미디어 열람 구역 입구와 DVD 서가 안내 ⓒ박강아름
이곳은 파리시 공공도서관 시스템에 속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도서와 DVD는 도서관 서가에서 직접 꺼내 열람할 수 있다. 다만 도서를 외부로 대출하거나 현장에서 DVD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회원증이 필요하다. 회원증은 신분증과 증명사진을 제출하고 간단한 등록 절차를 거치면 발급받을 수 있으며, 온라인과 현장 모두 신청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용료는 얼마일까? 이용료는 매체에 따라 달라진다. 도서와 잡지 대출만 할 경우 무료이고, CD와 DVD 대출은 유료 구독 형태로 운영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요금이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만이 아니라 파리시 공공도서관 전체에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CD를 포함한 연 이용료는 30.50유로, DVD까지 포함한 연 이용료는 61유로다. 게다가 18세 미만 이용자와 사회보장 지원 대상자, 장애가 있는 이용자에게는 이 비용이 면제된다. 이용료가 전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은, 파리시가 문화 접근권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지도, 모든 서비스를 동일한 방식으로 무상화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본 열람과 도서 대출은 무료로 두되, 일부 매체의 대출에만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공공성과 운영의 지속성을 함께 조정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잡지 《포지티브(Positif)》 제본 아카이브 ⓒ박강아름
영화잡지 《포지티브(Positif)》 1954~1956년 제본본 ⓒ박강아름
대부분의 자료가 대출이 가능하지만 예외도 있다. 일부 사전과 백과사전, 연감, 언론 스크랩 자료, 제본된 잡지 그리고 일부 아카이브 원고는 도서관 내에서만 열람할 수 있다. 대출은 한 사람당 최대 20권까지 가능하며, 이 중 DVD는 다섯 개까지 포함할 수 있다. 기본 대출 기간은 4주이고, 연장은 두 차례까지 가능하다. 대출 가능 자료 수와 대출 기간 모두 예상보다 넉넉하게 설정되어 있다. DVD는 별도의 시청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열두 개의 전용 좌석에는 모니터와 헤드폰이 설치되어 있으며, 하루 한 편으로 제한된다. 이는 한 사람이 좌석을 오래 차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운영 방식으로 보인다.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 내부 전경 ⓒ박강아름
영화도서관의 내부 구조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의 내부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조용한 도서관’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시청각 자료를 다루는 공간 특유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공간의 가운데에는 공동 열람 테이블이 길게 놓여 있고, 그 옆을 따라 영화 관련 도서들이 꽂힌 서가가 이어진다. 직원은 이 도서관만의 특징으로 “다른 도서관에서는 찾기 어려운 아주 특수한 주제의 책들까지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이 서가에는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를 중심으로 한 도서들이 감독, 국가, 형식, 기술, 영화사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다.
영화 전문 잡지 아카이브 서가 ⓒ박강아름
장 미트리의 존 포드 비평글이 실린 《포지티브(Positif)》 ⓒ박강아름
테이블 위쪽 벽면을 따라 배치된 잡지 아카이브 또한 인상적이었다. 잡지들이 책등이 아니라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되어 있어, 마치 작은 전시 공간처럼 보인다.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포지티브(Positif)》 《브레프(Bref)》 《트래픽(Trafic)》 같은 비평잡지부터 《프르미에르(Première)》 《소 필름(So Film)》 같은 대중 영화잡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라퍼(American Cinematographer)》와 《메디악웨스트(Mediakwest)》 같은 기술·산업 잡지, 《라틴아메리카의 영화들(Cinémas d’Amérique latine)》과 《애니메랜드(AnimeLand)》처럼 특정 지역과 장르에 초점을 맞춘 잡지들까지 함께 놓여 있다. 몇몇 잡지에는 ‘도서관 내에서만 열람 가능한 자료’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도서관 내 열람 전용임을 알 수 있다. 또 《에크랑 토탈(Écran total)》과 《필름 프랑세(Film français)》의 최신호는 안내 데스크에서 회원증을 맡기고 요청해야만 열람할 수 있다. 즉, 잡지 아카이브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으면서도, 열람 방식은 세심하게 조정된 공공 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포럼 데 지마주 컬렉션 열람용 컴퓨터 ⓒ박강아름
창가 쪽에는 포럼 데 지마주의 컬렉션을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는 컴퓨터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이 자리의 화면에는 포럼 데 지마주의 컬렉션 페이지가 떠 있는데, 이는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네마 거리’ 안에 놓인 다른 공공 영화 기관과 연결된 구조 안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영과 영상 아카이브를 담당하는 포럼 데 지마주와, 도서·잡지·DVD 열람 및 대출을 담당하는 영화도서관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으면서도 하나의 공공 영화 인프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열람 테이블과 서가 사이에는 1인용 소파가 놓여 있어, 이용자가 책을 들고 앉거나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눈을 붙이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다. 이곳은 무언가를 해야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것 자체가 허용되는 공간이다.
영화 관련 도서 서가와 1인용 열람 소파 ⓒ박강아름
영화도서관만의 특징
이곳은 공공도서관이면서도 영화 전문 도서관이기 때문에, 영화에 관해서는 일반 도서관보다 더 세분화된 자료를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전문성은 자료의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도서관 직원은 이곳의 가장 큰 특징으로 ‘영화 초창기부터 이어지는 아카이브 성격의 컬렉션’을 꼽았다. 1920~30년대 자료를 포함한 이 컬렉션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크 베케르 감독의 〈황금 투구(Casque d’Or)〉(1952)나 롤랑 토포르 감독의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1973) 같은 작품의 시나리오 원본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이 도서관은 시나리오 전용 컬렉션을 별도로 갖추고 있는데, 이 역시 일반 도서관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이다. 다만 이러한 자료들은 대출이 아니라 관내 열람으로만 접근할 수 있으며, 이용자는 온라인 카탈로그를 통해 미리 검색한 뒤 요청하는 방식으로 열람하게 된다.
자료 수집 방식에서도 이 도서관의 성격이 드러난다. 직원에 따르면, 이곳은 문헌 조사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료를 추적하고 있으며, 수집 정책은 약 3~6년 주기로 재정비된다. 프랑스어로 출판되는 영화 관련 서적은 가능한 한 빠짐없이 수집하는 반면, 외국 서적은 비용과 접근성에 따라 선별적으로 도입한다. DVD 역시 인기 작품이 아니라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전문 매체에서 논의되는 작품, 복원되어 재출시된 고전 영화 등을 기준으로 선택된다. 즉, 이 도서관의 컬렉션은 내부의 임의적 선택이 아니라, 영화 산업과 담론의 흐름을 따라 구성되는 일종의 공공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영화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이 도서관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할까?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이용자가 있다. 하나는 영화를 ‘자료’로서 찾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공간 자체를 ‘머무는 장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도서관 직원은 이용자층을 설명하며 “두 유형의 이용자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에 관한 책과 영화를 빌리러 오는 사람들’과 ‘주로 장소 자체나 작업 공간을 이용하려고 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유형에는 영화를 만들고, 쓰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직원의 표현을 빌리면, 이곳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온다. 그는 이어 ‘기자들, 몇몇 영화 관련 전문직 종사자들, 심지어 프로듀서들’도 자료를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나리오 관련 자료의 이용률이다. 직원은 “많이 이용되는 컬렉션 중 하나가 바로 시나리오 쓰기 매뉴얼들”이라고 말한다. “대사 쓰기든, 특정 장르든, 시나리오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도서관은 영화 관련 도서 31,700권, 대출 가능한 DVD 19,000점, 현장 열람용 DVD 3,100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수치는 이 공간이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영화를 실제로 만들고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기반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다른 한 축에는 특별한 목적 없이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직원은 이들을 “이곳을 작업 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관심이 가는 책이나 잡지를 지나가며 펼쳐보기도” 한다. 실제로 열람실을 둘러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 노트북으로 체스를 두는 사람도, 서가 앞 1인용 소파에서 곤히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이 두 번째 유형에 가까운 이용자다. 아이가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옆 체육관에서 태권도 수련을 하는 동안, 나는 이곳에 들러 잡지를 보거나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한다. 커피값을 아끼기 위해 들어왔다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머무는 장소가 되었다.
영화는 시장 상품일까, 공공재일까?
영화는 분명 시장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상품이지만, 동시에 공공적으로 접근되고 활용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영화는 책처럼 연구와 창작, 비평의 대상이자 한 시대의 사회적 경험을 기록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저절로 공공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시장에 맡겨두면 소비의 대상으로만 남기 쉽고, 더 많은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열려 있는 자원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정리하자면,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의 존재 이유란 열린 접근성, 축적된 전문성, 그리고 실제로 이용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 세 요소를 통해 영화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자원으로 전환된다. 도서관 직원의 말처럼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의 강점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와서 이용하고, 빌리고, 다시 돌려줄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파리시는 영화를 극장이나 OTT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콘텐츠에만 두지 않고, 도서관이라는 공공 인프라 안에서 다시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조직하고 있다. 접근성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은 파리시의 문화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도시의 창작 생태계를 떠받치는 기반으로 기능한다.
결국 도시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창작 생태계를 공공적으로 조직하고 유지하는 일, 즉 문화를 소비의 문제로만 두지 않고 공공적으로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를 조직하는 일일 것이다.
박강아름_영화감독
영화감독. 장편 다큐멘터리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연출했다. 2015년 프랑스로 이주,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방리유인 낭테르에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
파리에는 국립도서관(BnF,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이 다섯 곳 있다. 바로 리슐리외(Richelieu), 아르스날(Arsenal), 오페라(Opéra), 장 빌라르(Jean-Vilar) 그리고 프랑수와-미테랑(François-Mitterrand)이다. 이 중에서 내가 연구자로서 자주 찾았던 곳은 13구의 센강 변에 위
이런 심리는 뭘까?누군가 자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경우. 자기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한 때도 막상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헤어진다.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기불안’과 관련해 심리학 기초에서 많이 다루는 사례다. 유기불안은 불우하게 자랐거나 학대받은 경험이 상처로 남아 커서도 늘 남에게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이들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