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émathèque Française)는 나에게 오래전부터 익숙한 건물이었다. 북부 프랑스의 뚜흐꾸앙(Tourcoing)에 살던 시절, 파리에 올 때면 나는 늘 기차보다 저렴한 장거리 버스를 탔다. 종착지는 늘 베르시 버스터미널이었다. 바로 이 버스터미널 앞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백팩을 메고 지나갈 때면 나는 언젠가 파리에 살게 될 그날, 이곳을 문이 닳도록 드나들 것이 분명할 그날을 상상했다. 그러나 파리 근교로 이사를 온 뒤에도 생계와 학업에 쫓겨 12구의 이 시네마테크까지 오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 시네마테크 도서관을 찾게 된 것은 조금은 부끄러운 이유 때문이었다. 지도교수는 첫 만남에서 시네마테크 도서관 주소를 내 노트에 적어주며 자료 조사를 위해 꼭 가보라고 했다. 내가 “그 주소를 외우세요?”라고 묻자,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시네마테크니까”. 몇 달 뒤 논문 진척이 더뎌지자 교수는 다시 물었다. “시네마테크 도서관에는 가봤니?”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해버렸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고 그 주에 바로 베르시행 지하철을 탔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도서관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것이 나의 첫 시네마테크 도서관 방문이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도서관이 영화를 시민들이 빌려 가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이라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도서관은 다른 일을 한다. 이곳은 영화를 보존한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뿐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흔적들까지 함께 보존한다. 그리고 그 보존된 자료들을 다시 연구와 교육의 자원으로 돌려준다. 이 글은 바로 그 도서관 이야기다.
프랑스는 왜 영화를 보존하는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도서관을 처음 제대로 경험한 것은 한 학기 동안 들었던 영화비평 수업 덕분이었다. 수업은 두 차례에 걸쳐 도서관에서 진행되었다. 강의실은 시네마테크가 교사와 연구자,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공간인 ‘살 뮈지도라(Salle Musidora)’였다.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 이름을 딴 70석 규모의 강의실이다. 도서관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시네마테크는 매년 학생과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컬렉션 소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정 시대의 영화 잡지, 사진 아카이브, 포스터, 문서 자료 등을 직접 꺼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자료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날 우리 앞에는 긴 열람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20세기 초부터의 영화 잡지들이 시대순으로 펼쳐져 있었다. 교수는 잡지를 읽으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져보라고 했다. 신문지처럼 얇은 갱지와 두꺼운 광택지를 사용한 고급 잡지를 차례로 손에 올려보았다. 같은 영화 잡지라고 해도 종이의 질감과 무게가 전혀 달랐다. 영화의 역사를 텍스트가 아니라 물질로 배우는 경험이었다. 다만 조심해야 했다.
“너무 펼치지는 마세요. 어떤 것은 다시 붙여놓아서 아주 약하거든요.”
그중 한 권은 유난히 깨끗했다. 직원은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복제본이에요. 그것만 빼고 다 진짜고요.”
진짜와 복제본이 한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순간 이 도서관의 존재 이유가 조금 이해되었다.
영화비평 수업 중 열람 테이블에 펼쳐진 1920~40년대 프랑스 영화 잡지들. 원본 자료를 직접 만져보며 살펴볼 수 있었다. ⓒ박강아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 앙리 랑글루아(Henri Langlois)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필름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남겨지는 모든 흔적을 함께 보존하려 했다. 포스터, 사진, 의상 디자인, 세트 스케치, 제작 문서, 광고 자료, 비평문, 잡지들. 영화가 상영된 뒤에도 남는 모든 것들 말이다. 필름이 영화의 결과라면, 이들은 영화의 과정까지 보존하려 했던 셈이다.
오늘날 시네마테크 도서관은 도서 2만 3,700권, 전문 잡지 639종, 사진 50만 점, 디지털화된 정기간행물 2만 7,700종, 디지털 포스터 2만 4,120점, 마케트와 드로잉 1만 6,270점, 광고 자료 780묶음, 아카이브 3만 3,700묶음, 그리고 DVD와 VHS 1만 7,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이곳은 단순한 도서관이라기보다 영화의 흔적을 모아둔 거대한 저장소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도서관
도서관 2층에는 비디오테크(Vidéothèque)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컴퓨터가 보인다. 이용자는 이곳에서 시네마테크의 통합 검색 시스템인 ‘시네-리소스(Ciné-Ressources)’를 이용해 보고 싶은 영화를 찾는다. 원하는 DVD의 번호를 적어 직원에게 보여주고 디스크를 건네받으면, 칸막이로 구분된 개인 감상석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열 개 남짓한 감상석에는 모니터와 헤드폰이 설치되어 있다. 각 자리에는 콘센트도 마련되어 있어, 영화를 보며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메모를 할 수 있다. 도서관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묘한 경험이다. 이렇게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보존하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기관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 직원은 수업 시간에 시네-리소스의 한계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현재 정기간행물 가운데 세부 색인이 완료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료 관리 시스템 개편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방대한 컬렉션에 비해 접근 방식은 아직 불완전하다. 그 설명을 들으며, 자료를 모으는 일과 자료에 접근하게 만드는 일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비디오테크의 개인 감상석 ⓒ박강아름
영화를 읽는 도서관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찾는 공간은 3층 열람실이다. 이곳에는 영화 관련 도서와 정기간행물, 참고도서, 영화제 카탈로그들이 보관되어 있다. 입구 한쪽에는 전자자료 열람 전용 컴퓨터가 놓여 있다. 이 컴퓨터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소장 자료뿐 아니라 FIAF International Index to Film Periodicals, Film Index International, AFI Catalog 같은 국제 영화 데이터베이스에도 접속할 수 있다. 영화 연구자들에게는 전 세계 영화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작은 관문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그 컴퓨터를 지나쳐 서가로 향한다.
시네마테크의 통합 검색 시스템 ‘시네-리소스(Ciné-Ressources)’ 화면 ⓒ Cinémathèque française
영화 관련 도서와 정기간행물을 열람할 수 있는 3층 열람실 ⓒCinémathèque française
나는 이곳에 가면 심장이 뛴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1951년 창간호부터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1951년 4월 창간호를 손에 들고 있으면, 프랑수아 트뤼포와 장뤽 고다르가 아직 감독이 되기 전, 젊은 영화광으로 글을 쓰던 시절이 문득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시대별 영화 잡지가 정리된 정기간행물 서가 ⓒ박강아름시대별 영화 잡지가 정리된 정기간행물 서가 ⓒ박강아름
논문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종종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3층의 위층 도서 층 다큐멘터리 섹션에서 책을 찾고, 필요한 부분을 메모하고, 다시 3층 아래층 정기간행물 서가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3층 아래층에서 《Documentaires》라는 회보를 발견했다. 1987년 프랑스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창간한 간행물이었다. 그 안에는 TV 중심의 방송 환경에 대한 비판, 독립 다큐멘터리의 배급 문제, 제작 지원 제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프랑스 다큐멘터리스트들이 1987년 창간한 회보 《Documentaires》ⓒ박강아름
39년 전 프랑스의 다큐멘터리스트들이 남긴 문장이었지만, 읽는 동안 자꾸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현실이 떠올랐다.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지만, 창작자가 겪는 고민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오래된 자료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7년의 영화인과 2026년의 영화인이 같은 문장을 사이에 두고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네마테크 도서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런 순간에 있다.
시네마테크에 도서관이 있는 이유
서가 사이를 걷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에 있는 자료들은 저절로 모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수집했고, 누군가는 분류했고, 누군가는 보존했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찾으러 온다.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 영화를 기록했던 사람들,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 영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이 자료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시간으로 연결된다.
수업 시간에 도서관 직원은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네 개의 동사로 설명했다. 확장한다(enrichir), 보존한다(conserver), 복원한다(restaurer) 그리고 가치화한다(valoriser). 나는 그중 마지막 동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모아둔 것을 다시 흐르게 하는 일. 상영과 전시를 통해, 도서관의 열람실을 통해,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자료는 다시 누군가에게 도착한다.
영화는 상영이 끝나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영화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 보관해 둔 잡지 한 권, 사진 한 장을 다시 꺼내 읽는 사람이 있는 한, 영화는 계속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도서관은 바로 그 살아남음의 방식을 보여주는 곳이다.
박강아름_영화감독
영화감독. 장편 다큐멘터리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연출했다. 2015년 프랑스로 이주,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방리유인 낭테르에 거주하고 있다.
파리에는 국립도서관(BnF,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이 다섯 곳 있다. 바로 리슐리외(Richelieu), 아르스날(Arsenal), 오페라(Opéra), 장 빌라르(Jean-Vilar) 그리고 프랑수와-미테랑(François-Mitterrand)이다. 이 중에서 내가 연구자로서 자주 찾았던 곳은 13구의 센강 변에 위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
파리 중심에 위치한 샤틀레레 알 역(Gare de ChâteletLes Halles)은 다섯 개의 지하철 노선과 세 개의 RER 노선, 총 여덟 개 노선이 지나는 거대한 철도역이다. 낡고 복잡한 구조, 그리고 늘 붐비는 인파 속을 지나 환승할 때면 나는 종종 서울의 신도림역을 떠올린다. 물론 두 공간 사이에는 분위기부터 냄새, 온도까지 모든 것이 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