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꼭 제 방의 장서 정리를 하겠다고 지난 호에 말씀드렸는데요, 사실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그저 막막합니다. 요즘은 며칠에 한 번 책장 앞에 섭니다만 그마저도 큰 진척이 없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까지 구입한 책, 읽은 책을 한 권 한 권 펼쳐보면서 남길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쳐가는 거지요.
책장 맨 위에 무라카미 류의 소설과 에세이집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는데, 그 속도감과 현장감 있는 문장에 매료되어버렸습니다. 오랜만의 무라카미 류. 하굣길에 헌책방을 들락거리며 그의 작품을 발견하면 사서 읽고, 다 읽으면 또 다음 작품을 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인기 작가라 어느 책방에나 있었고, 100엔이나 200엔에 살 수 있었어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은 더 이상 다시 읽을 일이 없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헌책방에서 살 것이다. 지금도 유명 작가니까 구하기도 쉽고, 값도 싸다, 우선은 이 책장을 비우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나를 다독이면서 그의 책들을 모조리 빼냅니다. 그러다가 특히 애착이 가는 두 권만 다시 선반에 꽂아두기도 했습니다.
빼낸 책들을 상자에 넣기 전에 다시 한 권씩 빠르게 책장을 넘겨봅니다. 모두 종이가 많이 변색되어 있습니다. 유명 작가의 책은 희소성이 없다, 헌책방에 가져가도 제값을 받지 못할뿐더러 헌책방 매장에 진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번 종량제 쓰레기 배출일에 집 앞에 내놓으려고 현관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주가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색이 바랜 무라카미 류들은 여전히 내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는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만 일단 세상에 나와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색이 변해도 독자의 집을 떠나지 않는 책을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제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책을 ‘상품’으로 취급해온 책방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번에는 도서관과 서점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근 몇 년간의 화제 중에서 한 가지를 꼽아보겠습니다. 도쿄도 마치다시에 ‘히사미도(久美堂)’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마치다시를 중심으로 여섯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로컬 체인점이죠. 이 서점은 2022년 봄부터 지역 내 마치다 시립 츠루카와(鶴川)역 앞 미치다 시립도서관의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책방이 지역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경우는 많지만, 도서관 운영 자체를 맡는 것은 츠타야서점을 운영하는 CCC(Culture Convenience Club) 등 자본력이 있는 대형 서점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히사미도는 일본이 패전한 직후인 1945년 12월에 창업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귀국했을 때 바로 일할 수 있게 당시 23세였던 부인 이노우에 히사코 씨가 2평 규모의 책 대여점을 연 것이 시작이었죠. 2021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노우에 다케히로(井之上健浩) 씨는 1982년생입니다. 창업자의 손자죠. 대대로 이어온 가업으로 직원 20명,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하면 8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지금보다 더 지역 주민에게 공헌하는 것이 회사의 존속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여 마치다시의 도서관 운영자 공모에 응했다고 합니다. 이노우에 사장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서점과 도서관의 대립을 끝내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서점과 도서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격렬하게 다투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공도서관의 운영 방식이 지역 서점의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이 큽니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은 도쿄에 본사를 둔 도서관 전문업체에 모든 운영을 맡기다 보니 도서관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사주지 않는다.’
‘유명 작가의 신작이나 베스트셀러 등 이용자들의 요구가 많은 책을 많이 소장하기 때문에 인근 서점의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
‘전자책 제공, 동일 지역 내 도서 이송 등 책을 빌리고 싶은 사람, 읽고 싶은 사람에 대한 서비스가 향상되어 서점은 점점 더 책을 팔기가 어려워진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공공도서관도 운영과 자료 구입 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효율화를 너무 우선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이 나쁘다는 단순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공 서비스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니 서점도 영업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책은 ‘사업자들이 파는 상품’인 동시에 ‘공공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서점의 편의만을 우선시하면 분명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노우에 사장의 히사미도서점은 마치다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서관’과 ‘문화재로서의 책’에도 대응할 수 있는 서점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책’을 큰 틀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서점’으로서 살아 있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히사미도는 지역 서점이 도서관 운영도 시작한 새로운 사례지만, 서점과 도서관이 좋은 형태로 연계한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돗토리현은 도서관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서점도 도서관 자료 확충에 관여하는 등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가 2020년에 오픈한 공영 서점 ‘하치노헤 북센터’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 지역 도서관, 서점 등이 협력해 운영하는 서점으로 2012년 시즈오카현에서 시작된 ‘시즈오카 서점 대상’과 같은 사례도 있죠. 시즈오카현 내의 모든 서점 직원과 도서관 직원이 투표 자격을 갖고, 1년에 한 번씩 소설과 아동 도서의 우수작을 선정하는 기획입니다. 서점과 도서관의 거리는 이렇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생각할 때 제가 꼭 떠올리는 두 분의 선배가 있습니다.
한 분은 방금 언급한 돗토리현에서 서점과 도서관의 관계를 발전시킨 중심인물 나가이 노부카즈(永井伸和) 씨입니다. 나가이 씨는 지역의 전통 서점인 이마이서점 그룹의 경영자이지만, 그의 명함에는 도서관을 홍보하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책방보다 먼저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한 분은 이와테현의 서점 직원이자 도서관 직원이었던 이토 키요히코(伊藤清彦) 씨입니다. 이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할게요.
일본 전국에서 가장 주목하는 서점원 이토 씨가 도서관 부관장이 되다
이토 씨는 1954년 이와테현 이치노세키시에서 태어났으며, 20대부터 도쿄에서 서점 직원으로 10년 정도 근무한 후 고향인 이와테현으로 돌아와 모리오카시 사와야서점의 점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점원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한 책에 주목해 그 책을 과감하게 대량으로 구입하고 수백 권, 수천 권을 팝니다. 한 책방에서 똑같은 책을 그렇게 팔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주목한 책들은 다른 서점들도 주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가 되지요. 사와야서점의 매출도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그의 매입 안목, 판매 방식, 그 바탕이 되는 독서량, 책에 대한 깊은 열정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그는 전국의 서점, 출판 관계자들이 다 아는 유명 서점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모리오카시에 대형 서점과 교외형 슈퍼마켓이 진출하면서 사와야서점의 실적은 부진해집니다. 그런 이유도 있고 연로하신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이토 씨는 2008년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한동안 책과 멀어져 있던 이토 씨는 2013년, 새로 설립된 이치노세키시 도서관의 부관장이 됩니다. 계획 단계부터 시작해 인근 도서관에서 도서관 업무를 습득했고 이치노세키시 도서관이 설립되면서 부관장으로 취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2020년 2월, 작은 몸살을 계기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서관 사서로서의 삶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서점 직원 시절이나 도서관 직원 시절이나 이토 씨의 열정은 변함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많다, 그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집중한다.’
도서관 자료실 카운터에 있는 이토 씨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어르신이나 부모 혹은 자녀를 동반한 사람들이 책에 대해 물으면 이토 씨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와, 그런 책이 있었군요. 몰랐어요!” “미안, 그 책은 지금 없는데! 하지만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이 이쪽에 있어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아이 키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말을 건넵니다. 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넓고 조용한 공간에서 그의 주변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공공도서관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지만, 이토 씨에게는 서점 직원 시절부터 이어온 일상이기도 합니다. 고객이 상담을 청해오면 서점 직원들이 기뻐한다는 것을 눈앞의 고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알리는 것이지요. 자신이 앞장서서 이곳은 책을 만나고 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
《책방과 도서관 사이에 있는 것》(유켄사, 2021)
책을 파는 일과 빌려주는 일 사이에서: 책방과 도서관 사이에 있는 것
《책방과 도서관 사이에 있는 것》(유켄사, 202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도서관 관장 등을 역임한 우치노 야스히코(内野安彦) 씨와 이토 씨가 서점과 도서관의 다른 점, 비슷한 점, 각각 서로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 책입니다. 이 대담 2개월 후 이토 씨는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이 책은 유작이 되었습니다. 이토 씨가 지역신문 ‘이와테일보’에 연재한 글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토 씨는 30년 동안 ‘파는’ 일을 해온 자신이 ‘빌려주는’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한 당혹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점은 다양한 책이 흘러가는 곳, 도서관은 자료를 갖춰두는 곳이라는 역할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점은 책이 안 팔리는 것을 도서관이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포기해서는 안 되고, 도서관도 예산이 삭감된 것을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되며, 두 현장 모두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아마 스스로에게 하는 채찍질이기도 했겠지요.
서점원 시절 책을 많이 파는 기쁨은 물론 매장 실적 하락의 아픔을 맛보고, 사서가 되어 숫자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책의 전달 방식과 마주했던 이토 씨. 그가 서점과 도서관을 넘어서 책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도달한 경지를 보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일본에는 서점 직원이나 서점 경영자가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이 많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적지만, 사서나 도서관 관계자가 쓴 좋은 책도 많지요. 하지만 서점원과 사서의 경험을 모두 이야기한 책은 《책방과 도서관 사이에 있는 것》뿐입니다. 한국어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에세이 번역 : 김승복(쿠온 출판사 대표)
이시바시 타케후미(石橋毅史)_작가, 출판 저널리스트
2009년까지 출판 전문지 ‘신문화’에 근무한 경험으로 서점업, 출판업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시대의창, 2017),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전설의 책방지기》(남해의봄날, 2016), 《책을 직거래로 판다-출판사와 서점이 공생하는 출판 직거래 방법》(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유유, 2021) 등이 있다.
책이라는 상품의 운명나는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서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왔습니다. 이들은 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로 책이 잘 팔리거나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따라 생계가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자세히 보면 어쩔 수 없는 양가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더 라이브러리’ 독자들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도서관을 멸망시켜야 한다지난번 마지막에 작별인사를 드렸는데, 한 번 더! 앙코르를 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번 더! 무엇을 쓸까? 지난번까지는 일본의 도서관과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책 몇 권을 소개했습니다. 주제에 맞지 않아 소개하지 않은 책도 몇 권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중 한 권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제목은 ‘찾으시는 책은(おさがしの本は)’이
작은 서점들이 협력해 공공도서관 운영을 맡은 사례먼저 정정 및 사과를 드립니다.2회째 글에서 도쿄도 마치다시의 서점인 히사미도(久美堂)가 2022년부터 시립 공공도서관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지역 서점이 공공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사례는 많지만, 도서관 운영까지 맡는 것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서점에 국한된다고 썼는데, 이는 잘못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