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해를 맞았다. 예전과 같았다면 다소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한 해의 잘한 일과 못 한 일을 생각해보고 멋쩍게나마 소소한 바람을 마음에 새겨보았을 그런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새해였다. 대신 너 나 할 것 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공포의 균형 상태를 경험했다. 더불어 같은 단어와 같은 사실이 극단에서 대치하는 지독한 불균형의 모순도 경험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어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 불면의 시간은 도서관에 대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다. 과연 도서관은 어떻게 이 사회의 혼란에 대응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도서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인공지능 시대, 도서관은 이용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였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처한 아주 독특한 정치적 상황을 제외하면 도서관을 둘러싼 불안과 고민은 비슷한 이유로 공평하게 세계에 번져 있었다.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기술의 발전, 양극화, 혐오와 배제, 자본의 위세 앞에 무력해진 지적인 토대와 점점 파편화되어 가는 인간관계, 그리고 이로 인한 공동체 붕괴의 조짐이 세계의 도서관을 위태롭게 하는 서로 닮은 원인이었다.
특히,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기술의 발전 속도는 가공할 만하다. 단적인 예로 텍스트 생성에 주로 사용되는 언어 모델인 GPT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모델 ChatGPT의 개발까지는 겨우 4년여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더구나 ChatGPT는 발표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약 1억 명의 활발한 사용자를 만들어냈는데, 애플이 1억 대의 아이폰을 판매하는 데 4년의 기간이 걸렸고 페이스북이 1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기까지 4년 이상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영향력 또한 미증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응은 기존과 다른 방식의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 형태를 만들어냈다. 한때 도서관의 목록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구글링(googling)은 이제 대화형 인공지능에그 자리를 내주었다.그러나 정보와 지식에 대한 이용자의 접근이 편리하다는 것이 곧 이용자의 정보와 지식의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이 편리해질수록 오히려 이를 실행하는 이용자의 역량에 대한 중요성이 더 커졌다. 직접 도서관을 방문해서 사서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시절에는 기술은 초라했어도 지식을 걸러주는 문지기의 역할이 개입됨으로써 불편하지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이용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언제 어디서나’로 대변되는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클릭 한 번, 질문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는 대신 과연 그것이 믿을 수 있고 쓸 만한 것인지를 구별하고 팩트 체크와 저작권 표시처럼 디지털 콘텐츠의 재생산에 따른 윤리적 문제까지 살펴야 하는, 정보와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모든 것이 이용자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 되었다. 따라서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그대로 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용자 스스로 정보를 선택하고 평가하고 활용하는 정보 리터러시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도서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정보·지식에의 공평한 접근과 계몽된 시민의 장소로서의 도서관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도 도서관이 정보와 지식의 접근에 있어서 어떻게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장애인을 위해 공간 접근을 편리하게 하고, 노인을 위한 큰 글자 도서를 구비하고, 디지털 기기 이용 교육을 확대하는 그동안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소외와 격차의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의 웹사이트를 플랫폼으로 유료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의 시도도 필요하다. 이미 생성형 인공지능의 유료 서비스와 무료 서비스에 차이가 있고 특화된 기능이 서로 다른 많은 AI 서비스가 있어서, 경제적인 제약 없이 이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혐오와 배제, 지적인 쇠락과 소원해지는 인간관계는 공동체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손쉽게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동시성이 약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빈약했던 시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전날의 사건’을 공유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오늘날에는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요즘의 세태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가 큐레이션한 대로 소비한다. 이런 식의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더 개인화를 부추기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파편화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알고리즘에 갇혀 자신이 접하는 정보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지식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미래의 도서관에 요구되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기록된 정보와 지식에 대한 공평한 접근뿐만 아니라, 만나고 대화하며 서로의 정보를 검증하고 삶을 위한 지식과 지혜를 나누며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시민의 공유 공간이 되는 것이다. 도서관을 통해서 배우고, 만나고, 협력하면서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가는 공간, 즉 스스로 깨치고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몽된’ 시민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요즘에는 ‘계몽’이라는 말조차 극단의 대치 속에 오염된 측면이 있지만 계몽은 세계에 대한 숙고를 위한 이성적 태도와 관련이 있고, 철학자 칸트에 따르면 책임 있는 태도로 스스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지는 것이며, 사회 속에서 사람들 간에 작용하는 공적 사유에도 적용된다. 도서관, 특히 공공도서관은 이성적 대중인 ‘시민’과 ‘민주주의’에 기초해 설립된 기관이다. 대중에 의한 통치를 위한 시민교육 기관의 역할이 공공도서관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시민의 깨어있는 이성, 공적인 사유를 촉진함으로써 건강한 공동체를 지속해나갈 임무가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의지할 마지막 보루
아무도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변화하는 흐름이 큰 줄기를 이루면 그것에 이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적절히 발을 맞추는 것만이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오늘의 준비다. 기술과 자본이 압도하는 쓸쓸한 각자도생의 사회가 예상되는 변화라면 도서관은 그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의지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으면 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길을 잃은 듯 알 수 없는 혼란한 상황에 있어도, 도서관에 가면 필요한 해답을 얻을 수 있고 도와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신뢰를 받는다면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회복과 희망의 장소가 되는 것, 그것이 도서관이 그려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여전히 끝나지 않은 불면의 시간을 견디며 조심스럽게 도서관을 일터로 둔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송경진_전 마포중앙도서관 관장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공공도서관 정책 담당 공무원, 마포중앙도서관 관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서관과 리터러시 파워》 《하타리의 눈-도서관 판타지》가 있고,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의 번역에 참여했다. 도서관에 대한 시민의 이해와 지지를 엮어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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