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는 도쿄의 변천사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는 분들께 추천하는 곳이다. 도쿄에 오는 많은 여행자들이 우에노에 오면 우에노공원, 동물원, 아메요코 시장만 살짝 보고 지나간다. 그러나 도쿄가 초행이 아니고 일본문화 기행을 원한다면 일단 우에노공원을 보고 구글지도 앱에서 ‘국제어린이도서관’을 검색해보자. 핀이 표시된 방향으로 10분만 더 우에노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마치 전근대로 돌아간 듯 오래된 절들이 빼곡히 들어선 마을이 돌연 출현한다. 진한 향 내음과 목탁 소리가 진동하는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보자. 그곳에는 100년이 넘는 시간의 풍상을 온몸에 새긴 허름한 일본식 목조 주택들과 잘 관리된 근대적 건물들이 복잡하게 얽힌 채 동거하는 주택가가 펼져진다. 나카지마 교코의 《꿈꾸는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기와코가 도서관에 가기 위해 걷는 코스다.
우에노에 있는 국립국회도서관 국제어린이도서관은 2000년에 개관했다. 1906년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국립도서관인 제국도서관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협력해 르네상스 양식의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다. 2015년에는 안도가 설계한, 전면이 유리로 된 아치형 건물을 연결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안도는 개관식 축사에서 이곳이 100년의 시간을 두고 이어진 “우에노 숲의 오랜 건축과 새로운 건축이 동거하는 도서관으로 노인과 아이가 대화하듯이 책을 통해 마음의 대화를 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국제어린이도서관의 창》 제3호)고 했다.
건축가답게 도서관을 의인화시켜 말했는데, 이렇듯 세대를 건너 책을 통한 마음의 대화를 꿈꾸는 공간을 소설에서 실현한 것이 나카지마 교코의 《꿈꾸는 도서관》이다. 나카지마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2019. 06. 26.)에서 국제어린이도서관을 견학하고 ‘현대의 우리 삶에 이어지도록 도서관 역사와 개인사를 교차시키는 소설’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가족과 지인, 아이들과 같이 국제어린이도서관을 방문했고, 책의 내용을 따라 주변을 산책하면서 제국도서관의 역사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되새겼다. 문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듯한 독자의 SNS까지도 갑자기 도서관의 역사와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설명,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물론 이 소설에 가장 뜨겁게 반응을 보인 곳은 국립국회도서관이다. 국립국회도서관은 정기간행물인 《월보》(2020년6월호)에 이례적으로 ‘우에노 도서관―《꿈꾸는 제국도서관》에 부쳐서’라는 특집을 구성했다. 총 17쪽에 걸쳐 제국도서관의 역사와 건축 도면, 소설에 등장하는 문화인들 소개, 도서관 검열의 역사를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게재했다. 《꿈꾸는 도서관》 독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또 히비야도서관에서도 시민 강좌를 열었고, 국제어린이도서관에서는 2023년에도 제국도서관 전시회 기념으로 나카지마 교코의 강연회를 개최했다.
순문학과 어려운 인문서를 경원하는 세상에 이만 한 문학의 전도사는 없을 듯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카지마 교코는 나오키상 수상 작가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장편소설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은 집》은 거장 야마다 요우지가 2014년에 영화로 제작해 그 해 최고의 화제작이 된다.
영화 《작은 집》 포스터
그녀는 항상 시대의 공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같이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진다. 2021년에 발표한 《친절한 고양이(やさしい猫)》는 외국인 노동자의 오버스테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큰 화제가 되었고 NHK의 토요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나카지마는 현실에서도 외국인의 권리, 특히 미등록 외국인의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나카지마 교코는 문학 독자의 감성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 여성이나 외국인 등 일본의 오랜 문학의 역사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소설을 통해 부상시키고, 사회의 주류(일본인)에게 타자들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꿈꾸는 도서관》도 그러한 작품의 계보에 속한다. 나카지마 교코는 인터뷰에서 #Me Too 운동, 그리고 재무성 사무차관의 성희롱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시기에 이 소설을 썼고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1985년 고용균등법 세대인 자신이 젊은 시절에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어디에도 없다’(아사히신문, 2019. 06. 26.)는 현실을 재인식하던 바로 그 시기에 이 소설을 쓴 것이다.
그래서인지 《꿈꾸는 도서관》에서 기와코라는 캐릭터 살리기에 온 정성을 쏟은 듯하다. 도서관에 취재를 온 프리랜서 작가 ‘나’는 기와코라는 60대 여성과 만난다. 그녀는 ‘나’에게 도서관이 주인공인 소설을 써달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도서관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 전체가 기와코의 버킷리스트 달성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왜 침묵하는가? 왜 기억하지 않는가?
소설 속에서 도서관의 역사는 일본제국의 침략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축하고, 도서관 밖의 여성들의 역사는 전쟁고아였던 기와코라는 여성의 인생사를 재구성하는 측면이 강하다. 나카지마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전쟁고아의 수기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고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켰지만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열심히 증언을 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개인적 경험은 절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 왜지? 기와코라는 인물을 만들 때 특히 이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했’다고 한다(WEB매거진 《오늘 뭐 읽을 건데? 소설마루(小説丸)》, 2019. 07. 22.).
왜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가? 유명인과 유명한 사건만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 역사인가? 문학이 이런 사고에 동참해도 되는가? 도서관의 역사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전쟁고아로 자란 여성의 역사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엮어가는 이 소설은 이름 없는 여자들의 ‘장밋빛 미래는 어디에도 없다’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한 도전이다.
나는 일본의 출판문화사에 관심이 많다. 책이나 논문을 쓰기 위해 참조해온 도서관의 역사는 도서관의 입장이나 민간인 이용자의 입장에서 쓰여 있지 않다. 제국의 정사다. 그에 반해 이 소설은 나카지마 교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서관의 ‘빈궁연대기’다. 부국강병을 내세우고 침략 전쟁을 서슴지 않았던 일본 정부에게 도서관은 돈 먹는 하마에 불과했기 때문에 예산 확보가 무척 어려웠다. 이 소설은 이러한 현실과 싸우는 나가이 규이치로(소설가 나가이 가후의 부친)나 무명 사서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겨 있다,
또 도서관 밖의 이야기에는 전후 혼란기의 우에노가 원풍경으로 자리 잡아 현재의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패전 직후 우에노는 도쿄의 대표적인 암시장(闇市, やみいち)이었다. 점령군인 미군을 상대로 성노동을 하던 팡팡(パンパン, 양공주), 전쟁고아, 깡패들의 생활터이고 한반도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의 생존을 건 노동 현장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일관된 주제는 기와코의 오빠들 찾기다. 둘째 오빠는 아마도 남창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통’의 ‘평범한’ 일본인들에게 차별을 받는 존재들이 생존하던 공간 우에노는 신생 정부의 권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는 곳이었고, 그곳에는 그들만의 룰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우에노 역사는 도서관이 상징하는 일본의 정사에 절대로 포함할 수 없고 오히려 감추고 싶은 기억이다. 어둠의 세계에 묻혀 있던 기억들이 전쟁고아 기와코의 인생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면서 마치 복잡한 퍼즐을 맞추듯 모양을 갖추어간다.
이 소설을 읽고 ‘기와코’들을 만나러 어딘가 여러분의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보면 어떨까? 오래된 서가에 남겨진 낡은 책더미 속에 또 다른 ‘기와코’가, 한국의 도서관 이야기를 써달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영란_니혼대학 국문학과 교수
니혼대학 국문학과 교수. 전공은 근현대일본어문학, 문화 연구. 저서 《출판제국의 전쟁》(호세대학출판국, 2024년), 《전후라는 이데올러기》(현실문화、2013년, 공편저《검열의 제국》(푸른역사、2016년)등이 있다.
수많은 책들 중에 소수의 책을 선별하는 기준은 솔직히 개인의 취향,취향이 동네책방의 개성을 만든다. 그림책방 곰곰을 한두 줄로 소개하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늘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를 위한 그림책방”이라고 소개한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우리 책방에서 좋아하는 그림책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처음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
사서가 만나본 MZ세대가 도서관에 바라는 것도서관은 어떻게 다양한 청년들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 “오니까 재밌네”, 청년층을 끌어오는 색다른 프로그램필자가 지역에서 도서관 밖에서 진행되는 사적인 청년 모임을 기획, 운영하며 참가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오니까 재밌는데, 오기 전에는 행사에 참여하기가 꺼려졌다.” 혹시 사이비나 수상한 단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