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호명했다.
더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맞이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문학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이병국 시인의 ‘MZ에게 추천하는 한국소설 10’에 이어, 한강 작의 《소년이 온다》 책임편집자인 김선영이
‘사람들이 매일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매일의 문학’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절
사람들이 매일 소설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장편소설이 신문에 매일 연재되던 시절이, 출판사 블로그나 웹진에 장편소설 연재가 매일 일정한 분량으로 올라오던 시절이. 사람들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신문을 펼쳐 연재소설을 읽기도 했고, 즐겨찾기로 설정해둔 블로그에서 알람이 울리면 소설을 읽었다. 매일 아침 소설로 하루를 시작하던 그때는 고작 10년 전인데도 아득한 옛날 같기만 하다. ‘매일’, ‘소설’이라니!
물론 지금도 사람들은 소설을 읽고, 소설 연재도 여러 온오프라인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거개는 주 단위이거나 월 단위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문학을 찾는 날들이 일 년을 기준으로 365번에서 52번으로, 다시 12번으로 줄어드는 기분이라고 한다면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일 수 있겠으나 ‘매일의 문학’을 당연하게 여기던 경험이 추억담이 되어버린 걸 보면 지금의 문학은 분명 ‘매일’에서 멀어진 게 확실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매일’이 다시 가능해질지 모르겠다는 기대가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그런 희망을 품게 했다.
문학에서 멀었던 사람들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든 사건
지난가을, 예기치 않게 들려온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온 나라가 ‘문학’으로 크게 들썩였다. 마음을 쏟아 만든 책들에 좋은 소식이 날아들 때면 매번 감사하고 기뻤다. 한 권의 책에 새로운 길이 펼쳐질 때 작가만큼이나 기뻐하는 사람은 그 책의 책임편집자일 테고 어쩌면 그것은 편집자로서, 편집자만 이 맛볼 수 있는 보람과 긍지일 것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의 감동은 편집자, 출판계 종사자를 넘어 전 국민과 나누는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걸 이번 수상으로 실감했다.
노벨문학상의 의의와 무게감을 생각하면, 노벨문학상 수상은 결코 작은 규모의 즐거움이 아니라 무척 거대한 환희였다. 평소 책을 멀리했던 사람들이 서점을 찾게 되고, 문학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소설책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서 가을이 무르익었다. 문학을 둘러싼 일을 하고 있는 작가와 편집자, 출판계 종사자들에게는 은근한 자부심이 번지기도 했다. 겨우내 사람들의 손에는 한강의 소설이 들려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완성시킨, ‘매일’ 읽어주었던 독자들
나 역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10년 만에 다시 《소년이 온다》의 초판본을 펼쳐 들었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판권면에 새겨진 책임편집자의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사실마저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한 번쯤은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오겠지, 했지만 매번 그저 바람이었다. 노벨문학상은 늘 다른 나라 작가들의 차지였고, 발음하기 어려운 외국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사람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을 듣게 되는 일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졌다. 한강의 손꼽히는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편집자라는 것은 아마도 편집자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경이롭고 귀한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면 나는 여지없이 이 소설을 연재하던 10년 전의 겨울로 빨려 들어간다.
《소년이 온다》는 출간 전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작품이다. 그 기억이 이토록 강렬한 것은 아마도 《소년이 온다》가 내게는 ‘매일의 문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10시에 소설이 업로드되면 매일 3, 400명이 소설을 읽었다. 댓글을 달며 감상을 전하는 사람도 있었고, 댓글을 달지 않아도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고 같이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한 권의 소설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의 마침표를 찍는 사람은 작가이지만 이 소설을 비로소 완성하는 사람은 독자이다. 함께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야기는 멈출 것이다. 작가에게는 반드시 독자가 필요하다. 하물며 ‘매일’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확신은 작가에게 ‘매일’ 쓸 힘을 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금 《소년이 온다》를 자주 손에 들고 펼치게 된 요즘, 나는 책을 만들 당시의 시간과 이 책과 관계된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다 그중 한 분의 안부가 유독 궁금해졌다.
함께 읽는다는 것의 힘
《소년이 온다》를 ‘창문’에 연재할 당시 매번 충실히 댓글을 달아주던 한 독자분이 있었다. 그의 감상은 어느 날엔 짧았고 어느 날엔 길었다. 나의 마음과 겹쳐질 때면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독서 후의 감상을 내 것으로만 한정 짓고 싶지 않은 것이 독자의 마음이다. 담당 편집자는 소설의 첫 번째 독자이고, 나는 한 명의 독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소감이 너무나 궁금했다. 연재를 진행하던 겨울 동안 나도 모르게 그분의 댓글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재 기간 내내 나는 그분이 두 번째 독자일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연재를 함께 읽은 다른 독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연재가 업로드되고 나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그분이 남긴 묵묵한 감상은 분명 작가를 나아가게 했다. 연재를 마치면서 쓴 후기 글에 작가는 ‘함께 달리는 마음으로 마음을 나눠주신 ○○○ 님’을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더불어 ‘간혹 가만히 인사를 건네주신 분들, 소리 없이 연재를 따라 읽어주신 분들께’도 작가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때 연재를 따라 읽은 독자라면 우리가 ‘매일’ ‘함께’ 읽었던 그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함께 읽는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갖는다. 하나의 세계를 함께 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거대한 참고문헌이 되어 소설 속 문장을 말하면서 각주를 달지 않아도 서로 대화가 가능한 날을 상상하면 내가 괜스레 뿌듯해진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실제로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것은 어쩌면 전 국민이 참여 가능한 독서모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읽고 싶었지만 가슴 아픈 장면 묘사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작품도 이번 기회에 도전해 읽는 사람이 늘었다. 서로 감상을 나누고, 책 안의 장면에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보고, 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독서모임에 자신도 모르게 소속되는 것이다. 강요나 억지가 아니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듯 책 한 권이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삶은 어떤가.
‘매일의 문학’을 가능하게 할 훌륭한 문학작품들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봤느냐고 묻듯이 요즘은 어떤 책을 읽느냐고 자연스럽게 묻는 일상을 간절하게 바라는 출판인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책과 멀어진 시간을 천천히 되돌려 한 달에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으로, 그렇게 다시 ‘매일의 문학’이 가능해진다면 좋겠다. 우리에겐 이미 훌륭한 문학작품이 많기에 한강의 소설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자리를 매번 새로운 문학으로 채울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 가능성을 보았다. 이미 활발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뿐 아니라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성취를 거름 삼아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독자는 마음이 흔들릴 한 문장을 기다린다. 쓸 준비도, 읽을 준비도 갖춰졌다. 내년쯤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매일 소설을 읽는다. 더는 시절이 아니다.”
김선영_편집자
한국문학 편집자로 일하며 다수의 시집과 소설책을 만들었다. 책임편집을 맡은 주요 작품으로는 《소년이 온다》 《피프티 피플》 《달까지 가자》 《연년세세》 《철도원 삼대》 등이 있다. 현재는 출판사 핀드에서 '오래 간직할 책, 오래 기억될 이야기'를 모토로 책을 만들며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하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쓴 책으로 《아무튼, 스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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