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처럼 대중과 평단 모두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는 감독은 드물다. 아니, 한국영화사에 그러한 감독은 존재했지만, 이 같은 강도는 흔치 않았다. 그 세계의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끌어당기고 호기심과 탐구 열정으로 끌어들이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여러 방식으로 응답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봉준호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을 품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가 현재진행형인 감독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좋은 영화는 계속해서 질문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봉준호 영화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질문을 안고 있을 테고, 그의 세계를 향한 나름의 도정 또한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짧은 감상으로, 누군가는 장문의 비평으로, 또 다른 이는 인터뷰로 봉준호 영화에 관한 탐색을 펼쳤으며, 몇몇 책도 출간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니, 또 하나의 책이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신뢰도와 기개로 보자면 평론계의 봉준호로 불러도 좋을 남다은, 정한석 평론가가 이 책의 공동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봉준호 감독의 “창작의 두뇌를 형성하고 저변에서 그것을 작용케 하는 영감의 원천들을 알고 싶은” 마음으로 집필한 《봉준호 되기》는 우리가 염원하던 책이다. 봉준호의 영화에 영향을 끼친 그의 삶과 스승이 되었던 작품들, 인터뷰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 느슨한 듯 경탄할 만한 비평을 기발한 방식으로 구성한 《봉준호 되기》는 그야말로 ‘봉준호 되기’를 시도한다. 그 결과 이 책은 영화를 향한 다소 무뎌진 열정에 깊이 시름하던 한 독자의 숨을 틔우고, 다시 가슴 뛰게 만든다. 이는 저마다의 생, 관계와 인연을 이룬 봉준호 영화의 팬들에게도 저마다의 감동으로 작용할 것이다.
봉준호 영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봉준호 되기》는 대단히 고맙고, 한 명의 평자로서는 존경과 질투를 불러일으키며, 한 명의 독자로서는 쾌감이 느껴진다. 봉준호 영화와 닮은 이 책은 익숙한 듯 유다르고, 방대한데 촘촘하며, 재밌는데 허를 찌른다. 구성 또한 절묘하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봉준호 강연록을 실은 부록을 포함해 총 3부로 구성된 책에서 1부는 유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봉준호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미친 생의 경험과 TV, 만화, 그래픽노블,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등 여러 매체의 작품들을 담고 있는데, 때로는 매끄럽고 세련된 평전처럼, 때로는 모험의 기개와 통찰을 품은 비평집과 같이 구성된 총 7장의 글이 오롯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를테면 봉준호가 사랑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을 비롯해 그가 사랑하고 영감을 받은 애니메이션 작품들부터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스스로는 “영화적 외상”을 입은 순간이라 부르고, 풀어내면 그가 ‘창작의 두뇌’를 형성한 ‘영감의 원천’을 맞이한 순간들을 두 필자를 통해 조우할 때, 그리고 그들의 ‘비평적 언어’로 봉준호의 세계를 이룬 세상을 다시 만날 때, 셋 모두의 협업이 이룬 이 책의 막강하고 생생한 저력과 실력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감각은 꽤 짜릿하다. 그러나 짜릿함으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다.
《봉준호 되기》는 모종의 위안과 영감을 선사한다. 유년기부터 남달랐던 봉준호의 예민한 감각과 밝은 눈, 좋아하는 것들을 향한 곧은 애정을 그의 작품과 함께 통찰한 글들을 보고 있자면 풀지 못한 창작의 비밀을 엿본 듯한 인상이 든다. 동시에 그의 세계로 향하는 또 다른 방식, 넓게는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의 감각을 익히는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더욱이 2부의 봉준호 인터뷰에서 들려주는 그의 사적이지만 작품에 녹아 있는 이야기와 불안과 강박 증세, 그가 살아온 시대적 풍경과 영화 이야기는 그의 세계가 놓치지 않는 현실적이고도 영화적인 긴장감의 원천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령 그가 일을 잘 못 하게 되는 것 같아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끊어버렸다고 할 때 불안과 강박 증세는 창작의 원천이자 그의 세계 속 풍경을 그리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적시하는 것일 테다.
더불어 그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은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는 봉준호 작품들이 지닌 유전자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그 정체는 1부 1장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콜세지의 인자를 모두 이어받은 그의 면모를 언급할 때 이미 잘 설명된다. 하지만 그것은 일각일 뿐 봉준호의 “미친 두뇌(insane brain)”를 조금이나마 깊이 들여다보려 하는 책은 봉준호에게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장르 영화에 대한 기억과 베스트 영화 목록, 그 목록에 오른 영화의 면모를 세세히 들여다보고 그 머릿속 지도를 그린다. 3부에 집중되어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 봉준호에게 영감을 주고 미친 두뇌를 작동하게 만드는 영화적 지도는 책 전체를 들여 그려지고 있으며 두 저자의 탁월한 비평적 언어가 이를 실현한다.
이 유기적인 지도를 보고 있으면 어떤 욕망을 참기 어렵다. 《봉준호 되기》에서 언급하고 관련 사진을 실은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편으로는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안달 나고, 한편으로는 광적이고 집요한 애정에 존경을 보내고, 무엇보다 봉준호의 세계로 가는 풍요로운 여정에 마음이 요동친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만난다면 이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봉준호의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그와 같은 창작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닿을 것이다. 그리고 봉준호의 세계에 영감을 준 생의 순간과 작품들의 지도를 그리며 그의 뇌에 다가서려던 《봉준호 되기》는 또 하나의 창조적인 영감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영감은 어떤 경계를 넘어서 공유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제 도서관에서도 영화를 보고 그곳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활발히 나누며 도서관의 의미와 가치와 기능을 확장하고 있듯, 봉준호가 온갖 장르의 창작물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의 봉준호 감독이 되었듯, 《봉준호 되기》 또한 누구의 손에서 어떤 영감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상상해보자. 도서관 한편에 봉준호가 사랑한 만화와 그래픽노블 서적이 전시되어 있고, 또 한편에서 봉준호의 영화를 보고 《봉준호 되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어떤 식으로건 어떤 형태로건 ‘봉준호 되기’를 꿈꾼다고. 창조적 영감은 어떤 시간과 공간을 통과해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까.
홍은미_영화평론가
2011년부터 영화평론을 해왔고 201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에 당선되었다. 현재 부신영화평론가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환경재단이 환경 이슈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미디어 크리에이터 육성을 위해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에코크리에이터' 영상 제작 지원을 통해 영화 동지구를 발표한 청년 감독 김여진을 인터뷰했다. 김여진 감독은 고3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 Q 단편 영화 동지구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A 안녕하세요. 환경 단편영
곳곳에 수로가 흐르는 중세도시의 모던한 핫 플레이스현재 벨기에에서 핫한 공공도서관인 겐트(Gent) 시의 더 크록(De Krook, 네덜란드어에서 ‘oo’는 장모음 ‘ㅗ’라서 ‘더 크록’이라 읽는다)에 다녀왔다. 강이 돌아가는 곳, ‘하회(河回)’라는 뜻의 네덜란드 고어 ‘de Krook’에서 도서관의 이름을 따 왔다. 겐트는 수로가 도시 곳곳을 통과하는,
디지털 네이티브3년을 끌던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실 밖 캠퍼스는 만개한 겹사과꽃처럼 활기로 가득하다. 대면 강의는 물론 답사, MT 등 미루어놓았던 모임과 만남이 끊임이 없고 일정 너머 일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교수라면 이럴 때 간절한 것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