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의 공립도서관 페르메커(Permeke)를 방문했다. 앤트워프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벨기에의 심장과도 같은 이 도시에 대해 짧게 설명부터 하고 시작하겠다. 앤트워프는 유럽 전체에서 물동량으로 로테르담과 치열하게 1, 2위를 다투는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벨기에의 GDP를 끌어올리는 가장 부유한 도시이다. 벨기에는 프랑스어 사용 지역인 왈로니아(Wallonia)와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인 플랜더스(Flanders) 지역으로 나뉘는데, 앤트워프는 플랜더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다. 또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플랜더스의 개’의 배경으로 나온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앤트워프공립도서관의 분관에서 2020년까지 5년간 어린이 교육 담당 사서로 근무했다. 현재는 시 소속이 아닌, 플랜더스 연방정부의 교육부 소속 학술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지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여전히 전 동료들과 교류하고 있다. 본 기사를 위해 페르메커도서관의 전 동료 파트리시아 로페즈(Patricia Lopez) 사서, 그리고 클라스 반 고르프(Klaas Van Grop) 사서와 대담을 나누었다.페르메커도서관은 앤트워프공립도서관의 본관이며, 본관 외에도 총 16개의 분관이 있다. 본관은 주말에도 문을 열기 때문에 분관의 사서들이 주말에는 페르메커도서관에서 돌아가며 일을 한다. 필자에게도 매우 친근하고 추억이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벨기에의 대림동이 벨기에의 힙지로가 되다 페르메커도서관은 2005년에 문을 열었다. 현재의 위치에 새로이 문을 연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현재 도서관이 위치한 앤트워프의 제프훅(Zeefhoek)은 페르메커도서관 개관 이전에는 온갖 범죄가 넘쳐나는 지역이었다. 범죄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이민자로 인해 기존의 벨기에 시민들이 운영하던 상점들과 식당들이 사라져갔고 시민들이 발길을 끊은 지역이 되어버렸다. 이에 시의회에서 이 지역의 오래된 자동차 정비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기존의 협소했던 구 도서관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이러한 상황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한국 상황에 빗대어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시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외국인 생활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대림동이다. 그러니까 제프훅 구역 내 페르메커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은 대림동에 서울시립도서관 본관을 짓는 격이다. 당시 시의회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없는 도박이었던 셈이다. 나빠져 봤자 지금보다 나쁠 수는 없으니 그곳에 도서관을 세워 유동인구를 늘리고 안전한 지역으로 탈바꿈시키자는 계획이었다.도서관이 위험한 지역에 문을 열 계획이라는 것을 안 시민들은 반대를 했다. 각종 범죄와 마약이 넘쳐나는 지역으로 책을 대출하러 간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시민들도 많았다. 하지만 도서관이 개관한 이후 이 지역은 서서히 달라졌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페르메커도서관을 찾았다. 이렇게 이 지역은 변화해갔고, 지금은 힙한 카페와 태국, 중국, 티베트, 시리아 등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곳곳에 자리한,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도서관에서도 시민들의 안전과 마약 사용 금지를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마련했다. 먼저,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보안 직원을 도서관의 개관 시간 내내 상시 근무하게 했다. 지금도 전문 보안업체에서 파견한 보안 직원이 수시로 순찰을 돌며 도서관 곳곳을 살핀다. 둘째로는 도서관의 소파들을 편안하지만 누울 수는 없는 것으로 교체했다. 이 지역에는 노숙자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이 도서관의 긴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거나 오랫동안 머무는 일들이 생겨 다른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했다. 위생 문제와 안전 문제 때문에 도서관 방문을 꺼려하는 이용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문제점들은 가구 교체와 보안 직원의 상시 근무로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도서관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의 정보를 제공했다.
새로 교체된 도서관의 쿠션감 좋은 1인용 소파 ⓒ송영인
셋째로는 화장실의 불빛을 파란색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도서관이 있는 제프훅 구역에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들어와 몰래 마약을 투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빛을 정맥 색인 푸른빛으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핏줄을 찾을 수 없어 마약 투약을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페르메커도서관의 화장실 불빛이 파란 이유이다.
파란 형광색 조명을 사용하는 페르메커도서관의 화장실 ⓒ송영인
이민자들의 융화만큼이나 중요한 자긍심 - 파트리시아 로페즈 사서
파트리시아 로페즈 사서 ⓒ송영인
전 동료인 파트리시아 로페즈(Patricia Lopez) 사서와 다양성과 공존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앤트워프공립도서관의 필자를 포함, 단 두 명의 외국인 사서 중 한 명이었다. 사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벨기에에서 나고 자란 동료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필자와 파트리샤는 외국인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한국인과 멕시코인의 정 많고 열정적인 기질이 비슷한 덕에 가까워졌다. 특히나 사서는 외국인에겐 불모지라 할 만큼 다른 국적을 찾아보기 힘든 직종이다. 파트리시아 사서에 따르면 현재 도서관에서는 외국인 이민자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인턴십을 진행 중이라 한다. 우크라이나, 티베트, 모로코, 인도 등의 국가에서 벨기에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 도서관 인포데스크에서의 이용객 안내, 도서 정리 등의 업무를 맡기며 네덜란드어 사용을 촉진하고, 취업의 기회를 높일 수 있는 트레이닝 기회를 주고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공무원 시험의 높은 장벽으로 인해 이와 같은 인턴십이 실제 시공무원으로 취직하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파트리시아 사서가 기획한 멕시코의 전통 축제 ‘죽은 자의 날’ ⓒ송영인
파트리시아 사서는 지난해까지 해마다 페르메커도서관에서 멕시코의 전통 축제인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을 개최해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Coco)〉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멕시코의 전통 축제는 조상들을 기리는 흥겨운 잔치이다. 멕시코 음식, 노래, 음악과 문학들을 소개하는 큰 행사이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 사는 멕시코인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행사이자, 외국에 가보기 힘든 타 이민자들이나 벨기에인들에게는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집에서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항상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자긍심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구역은 이민자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정치인들과 정부에서는 사회 융합과 통합만을 강조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페르메커도서관은 네덜란드어 교육만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나 저소득 계층의 자녀들이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우고 음식을 만들어보는 워크숍이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들어볼 수 있도록 타 언어로 구연동화 시연을 하는 ‘바블파블(Babelfabel)’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필자 또한 취약계층과 이민자가 모여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서 5년 간 근무하며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문화가 모든 문화권과 모든 계층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목격했다. 네덜란드어, 혹은 타 언어로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을 하며 어떠한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특히나 취약계층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경험일 것이다. 필자 또한 파트리시아 사서의 요청으로 앤트워프공립도서관 어린이 이용자들에게 떡꼬치와 호떡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과 감사 표현 등을 가르치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소개한 후 다 함께 호떡 반죽을 만들고 설탕으로 속을 채워 호떡을 구웠다. 떡에 꼬치를 끼워 소스를 발라 만든 떡꼬치도 할랄 음식을 먹는 아이들에게는 거부감이 없는 인기 음식이었다. 이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은 비록 한국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재료비와 쿠킹 아틀리에 대여료는 모두 페르메커도서관에서 지원했고, 필자는 한국 문화와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려는 마음으로 재능 기부 형태로 참여했다.
호떡 반죽을 만드는 아이들 ⓒ송영인
한국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 ⓒ송영인
파트리시아 사서와의 대담 후, 필자는 한국어 구연동화 시연을 제안받았다.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전 동료를 위해 필자는 흔쾌히 허락했고, 오는 8월 앤트워프의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로 동화를 구연할 예정이다.
도서관 그 이상을 지향하다-클라스 반 고르프 사서 클라스 반 고르프(Klaas Van Gorp) 사서는 2006년부터 페르메커도서관에서 근무했으며, 페르메커도서관에서 가장 근속 연수가 오래된 사서 중 한 명이다. 필자가 일을 할 당시에도 클라스 사서는 도서관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항상 적극적으로 피력했고, 어린이들에게 레고 워크숍이나 프로그래밍, 코딩 워크숍을 직접 진행했다. 또한 클라스 사서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앤트워프시의 사서에서 더 높은 직책으로 승급해 타 부서에 상급 관리자로 갔다가, 본인의 삶의 이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급을 취소하고 현재 도서관 사서의 위치로 돌아왔다. 클라스 사서는 도서관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이며, 사서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도서관이 책을 소장한 공간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올해로 개관 20년째가 된 페르메커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문화 시설이 열악한 앤트워프의 제프훅에서 오아시스와도 같은 공간이다”라고 클라스 사서는 말했다. 그는 여러 문화 행사와 청소년의 도서관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도서관이 문을 닫은 후 레이저 슈팅 게임을 도서관 내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도서관 폐관 후 진행된 레이저 슈팅 게임 ⓒ송영인
앤트워프의 제프훅은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청소년들이 편안하게 배우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도시의 다른 구역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이에 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을 방문하는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진행했다. 도서관에 가장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청소년들은 넓고 쾌적하며 안전한 곳에서 서로 교류하고 함께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페르메커도서관은 한때 도서관의 식당이자 카페였던 쿠부스(Kubus)를 청소년 전용 공간으로 배정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 쿠부스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직접 의견을 내 변화한 쿠부스를 굉장히 아끼며, 본인들이 무언가를 이루어냈고 이러한 변화가 이 구역의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데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클라스 사서는 전했다. 특히나 클라스 사서는 앤트워프의 다양성과 관련해 페르메커도서관이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다만 도서관의 다양성 관련 정책이 시의회 다수 정당의 성향에 따라 너무 쉽게 바뀌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이용자들을 위해 14개의 언어로 도서관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었으나, 우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네덜란드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제외하고 모두 폐기해야 했다. 도서관이 취약계층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정부 정책도 그에 따라 도서관의 노력을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클라스 사서는 강조했다.
AI 시대에도 반드시 사서가 필요한 이유 클라스 사서는 “취약계층의 아동들, 특히 이민자 가정의 어린이들은 중산층 어린이들에 비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어렵다. 도서관 사서들은 방학기간 동안 어린이들을 위해 공원에 나가 카미시바이(일본의 그림연극에서 유래한 구연동화)를 시연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특별한 목적 없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도서관 워크숍에 등록을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코딩 워크숍을 함께한 어느 아이가 과학고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뿌듯했다”며 사서의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AI 시대에 AI가 분명 도서관에 오는 수고 없이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점이 있겠지만, 그 정보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과 따듯함은 AI가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사서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단편적이고 조용한 도서관의 틀을 깨고 혁신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페르메커도서관, 그리고 사서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이용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페르메커도서관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송영인_벨기에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
송영인_벨기에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현재 브런치에서 필명 ‘고추장와플’로 유럽 생활과 문화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있다.
해리포터가 갑자기 나타가 마법을 쓸 것 같은 앤트워프대학(Universiteit Antwerpen) 도서관 건물은 천주교 예수회가 1575년에 세운 중등교육 학교 건물에서 기원한다. 1902년부터는 예수회에서 세운 세인트 이나시우스 경상대학으로 쓰였고, 2003년 여러 대학들이 ‘앤트워프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면서 현재의 건물에 도서관이 들어서게 되었
네덜란드 헤이그행 기차를 타다도서관을 방문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도시의 거주자로 방문하는 법, 문헌정보 종사자로 방문하는 법,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으로 방문하는 법. 그간은 문헌정보 종사자로서 필자의 뒷마당 같았던 벨기에의 도서관들을 탐방했으니, 이번에는 너무 무겁지 않게 여행객으로 마주하는 인상들을 그려내는 도서관 탐방기를 쓰기로 하고 네덜란드
곳곳에 수로가 흐르는 중세도시의 모던한 핫 플레이스현재 벨기에에서 핫한 공공도서관인 겐트(Gent) 시의 더 크록(De Krook, 네덜란드어에서 ‘oo’는 장모음 ‘ㅗ’라서 ‘더 크록’이라 읽는다)에 다녀왔다. 강이 돌아가는 곳, ‘하회(河回)’라는 뜻의 네덜란드 고어 ‘de Krook’에서 도서관의 이름을 따 왔다. 겐트는 수로가 도시 곳곳을 통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