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가 갑자기 나타가 마법을 쓸 것 같은 앤트워프대학(Universiteit Antwerpen) 도서관 건물은 천주교 예수회가 1575년에 세운 중등교육 학교 건물에서 기원한다. 1902년부터는 예수회에서 세운 세인트 이나시우스 경상대학으로 쓰였고, 2003년 여러 대학들이 ‘앤트워프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면서 현재의 건물에 도서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구석구석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16세기의 건물은 놀랍게도 2005년에 리모델링을 마친 현대적인 학술도서관이다. 건물의 외관은 16세기 당시의 외벽을 그대로 살렸고, 내부에는 지하 1~3층의 서고와 함께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는 지상 1~4층 680석의 공간을 보유한 8개 학부의 열람실이 있다. 43킬로미터 분량의 서가에 있는 보유 장서만 해도 약 160만 권이나 된다. 필자는 5년째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해리포터는 보지 못했지만 가끔 이 건물에 찾아오는 부엉이로 만족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현대적인 도서관 내부와 안뜰 ⓒ송영인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도서관이지만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든 도서관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주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주정부에서 시민들의 세금을 사용했으니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1601년 인쇄된 지도에 섬으로 그려진 한국
벨기에의 플랜더스 지역은 중세 유럽에서 상업의 중심지였고 그중에서도 앤트워프는 가장 중요한 핵심도시였다.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도 바로 이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암스테르담을 세계 최초 주식시장으로 알고 있지만, 세계 최초로 어느 한 장소에 모여 어음, 상품과 채권, 무역 거래를 했던 거래소의 기원은 앤트워프다. 이용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점을 부각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상인정신을 이어받은 앤트워프대학 도서관은 다른 학술도서관과는 다른 차별성이 강점인 도서관이다.
앤트워프대학 도서관은 ‘프레시오사(Preciosa)’라고 불리는 문화재 도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145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인쇄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인큐나블(Incunable)’과 1501년부터 1540년까지 인쇄된 ‘포스트 인큐나블(Post Incunable) 장서도 다량 보관되어 있다. 이 장서들은 이중의 보안 장치가 있는 특별한 금고에 보관된다.
문화재 도서 컬렉션 부서의 보안서고와 서고 내의 특별금고 ⓒ송영인
16세기 앤트워프는 유럽에서 가장 이름 있는 인쇄술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당시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했던 크리스토플 플란탠(Cristoffel Plantijn) 인쇄소는 현재 인쇄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벨기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서적들은 가치를 매길 수 없어 구입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앤트워프대학의 문화재 컬렉션은 대다수가 기증된 서적들이다. 정부로부터 문화재도서관 인증을 받아 대학의 재정 지원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받고 있다.
《테아트룸 오르비스 테라리움Theatrum Orbis Terrarum》(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 앤트워프대학 도서관, 1601) ⓒ송영인
앤트워프 출신 지도학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가 만든 테아트룸 오르비스 테라리움(Theatrum Orbis Terrarum)은 문화재 컬렉션의 주요 장서 중 하나인데, 전 세계의 지도들을 모아 서구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세계전도라 일컬어진다. 사진은 위에서 언급한 플란탠 인쇄소에서 1601년에 인쇄된 세계전도로, 한국이 표기된 부분이다. 당시 일본은 천주교 전파를 문제 삼아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내고 포교 금지를 조건으로 네덜란드와 막 교역을 시작하려던 때였다. 지도의 한국 부분은 라틴어 ‘꼬레아 인술라(Corea Insula)’, 즉 ‘한국 섬’이라 표기되었고 단 두 도시의 지명만 보이는데, 한국은 당시 쇄국정책으로 외국과의 교역이 거의 없는 미지의 국가로 여겨졌다.
앤트워프 학술도서관은 이 외에도 국가 지정 문서 보관소로서 앤트워프대학과 고등교육기관의 역사적 관련 기록을 보관하는 일도 하고 있다. 앤트워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아카이브를 이용할 수 있다.
Gen-Z 세대를 공략하라
도서관의 주요 이용자는 젠지(Gen-Z) 세대다. 젠지 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데,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며 개성을 중시한다.
앤트워프대학 도서관은 무겁고 진중한 학술도서관 특유의 분위기보다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젊고 힙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한다. 삭막하고 어두컴컴했던 도서관 입구를 산뜻하고 신선하며 젊음이 느껴지는 카페와 같은 곳으로 개조하고 ‘리빙(Living)’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도서관 입구 리모델링 전과 후 ⓒ송영인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은 재미있고 젊은 감성으로 신선한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도서관 안팎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누기도 하고, 페이지 터너(Paige Turner, 책장을 넘기는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와 발음이 같다)라는 가상의 사서 캐릭터를 만들어 직접 사서 연기를 하게 하며, 도서관 정보를 유머러스한 요소를 섞어 젊은 세대들이 이해하기 쉽게 짧은 비디오로 만들어 업로드하기도 한다. 이는 타 도서관들에게 귀감이 되어 베네룩스 문헌정보컨퍼런스에서 케이스 스터디 사료로 발제되기도 했다.
도서관의 앙케이트에 의하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주로 장서를 대여한 뒤 바로 돌아가지 않고 두세 시간, 혹은 그 이상 머무는 경우가 50퍼센트 이상이었다. 이는 앤트워프대학 도서관이 학술도서관일지라도, 단지 책을 빌리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공부와 연구를 하기도 한다. 도서관은 이용자들의 멘탈 웰빙을 고려해 스트레스를 받는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쉴 수 있도록 ‘마인드풀 네스트(Mindful Nest)’라는 명상 공간을 마련했다. 이 작은 공간에는 최대 두 명까지 들어갈 수 있고, 측면에 붙어 있는 태블릿에는 조용한 음악과 함께 명상 프로그램이 5분, 10분, 15분 단위로 감사, 믿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등등의 다양한 테마를 선택해 명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상의 조명이 선택 가능하게 되어 있어 사용자의 취향이나 기분에 따라 변경 가능하다. 시험 기간이나 논문심사 기간처럼 스트레스가 많을 때 다양한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명상을 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이윤을 창출하는 특이한 도서관
도서관은 공익을 위해 이용되는 곳이며 이윤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틀을 깨고, 앤트워프대학 도서관은 다른 학술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타 도서관과 가장 대비되는 점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통합 도서관 관리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고 판매하는 디지털 솔루션 팀(Digital solution team)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팀은 도서관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다. 팀은 16명의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98년에 브로카더(Brocade)라는 웹 기반 도서관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고 벨기에 내의 수많은 도서관들이 주요 고객이다. 특히 학술도서관이나 문화재도서관, 아카이브-문서 보관소가 주요 고객이며, 오픈소스를 사용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1년에 3회 새로운 버전을 내놓고 있다. 웹 기반 형식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따로 다운로드하지 않아도 웹브라우저와 컴퓨터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도서관 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도서목록화 시스템, 회원 관리, 도서관 자리 예약 시스템 등등 여러 모듈들이 있으며, 그중 도서관의 기호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만 구입하면 되기 때문에 고객의 입장에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플랜더스 내의 상호대차 서비스(Interlibrary loan)를 신청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서 정보가 있는 전 세계 도서 정보 카탈로그인 월드캣(Worldcat)에 벨기에 도서관들의 도서 정보를 업로드하는 프로젝트도 담당했다.
학술도서관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제한된 열람 좌석에 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는 학생 수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열람 좌석의 책상에 필통을 놓고 자리를 맡아놓은 뒤 수 시간 자리를 비우는 학생들, 자신의 자리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자리를 맡아놓는 학생들로 인해 도서관 열람실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깨닫고 사용자가 열람 구역과 좌석을 선택해 예약할 수 있는 도서관 열람실 예약 시스템 ‘테이크 어 싯(Take a Seat)을 개발해 하루에 최장 세 시간, 2회 예약으로 제한해 실제 사용되지 않는 좌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고, 이 또한 도서관 관리 프로그램의 모듈로서 판매되고 있다.
디지털 솔루션 팀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료들. 왼쪽부터 톰(프로젝트 관리), 수자나(메타데이터 관리), 브람(메타데이터 목록 작성) ⓒ송영인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도서관 관리 프로그램 개발과 판매로 수익을 올리며, 또한 이용자의 요구와 바람을 이해하는 신선하고 발랄한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발랄한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들 ⓒ송영인
송영인_벨기에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
송영인_벨기에 앤트워프대학 학술도서관 사서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현재 브런치에서 필명 ‘고추장와플’로 유럽 생활과 문화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있다.
곳곳에 수로가 흐르는 중세도시의 모던한 핫 플레이스현재 벨기에에서 핫한 공공도서관인 겐트(Gent) 시의 더 크록(De Krook, 네덜란드어에서 ‘oo’는 장모음 ‘ㅗ’라서 ‘더 크록’이라 읽는다)에 다녀왔다. 강이 돌아가는 곳, ‘하회(河回)’라는 뜻의 네덜란드 고어 ‘de Krook’에서 도서관의 이름을 따 왔다. 겐트는 수로가 도시 곳곳을 통과하는,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의 공립도서관 페르메커(Permeke)를 방문했다. 앤트워프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벨기에의 심장과도 같은 이 도시에 대해 짧게 설명부터 하고 시작하겠다. 앤트워프는 유럽 전체에서 물동량으로 로테르담과 치열하게 1, 2위를 다투는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벨기에의 GDP를 끌어올리는 가장 부유한 도시이다. 벨기
나는 문자 중독자다. 늘 읽고 쓴다는 얘기면 좋겠지만 실은 딴짓을 더 많이 하는 것도 같다. 책 읽어야지 하고는 영화를 보고, 번역해야지 하다가는 음악을 듣는다. 미술 칼럼 써야지 했는데 갑자기 미술관 북 숍에 가서 육중한 그림책을 사버리기도 하고, 문학 칼럼에 실을 자료 사진을 찍으러 부러 멀리 떠났다가 스치는 사람들 목소리나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