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목포, 용해동 갓바위문화타운은 여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이곳은 목포의 역사와 예술, 생활문화를 품은 문화예술 복합지구다. 목포문학관을 비롯해 남농기념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문예역사관 등 여러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목포 문화의 아름다운 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목포의 문학적 기억을 응축해 보여주는 목포문학관은 푸른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목포는 바다와 산이 만나 빚어낸 자연의 정서가 녹아 살아나는 예술의 도시다. 유달산, 갓바위, 삼학도는 목포 사람들의 유년 시절을 품었고, 항구에 드나드는 수많은 배들은 낯선 세계의 자유로움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자연의 정서와 개방성은 목포 문학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목포는 국내 처음으로 문학을 주제로 한 문학박람회를 개최했고, 올해는 목포골목길문학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 자원이 풍부한 도시가 목포다.
목포문학관은 2007년 목포와 인연이 깊은 박화성(1903~1988), 차범석(1924~2006), 김우진(1897~1926), 김현(1942~1990)을 함께 기리는 국내 최초의 ‘4인 복합문학관’으로 개관했다. 네 문학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전시 규모나 프로그램 운영이 활발하다. 문학관 1층에는 박화성관, 차범석관, 2층에는 김우진관, 김현관 등 주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기획전시실, 문학체험관, 창작교육실 등도 갖추고 있다. 최근 전라남도 지역특화 콘텐츠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구축한 스마트 체험 존, 목포 문학 미디어아트 플랫폼 등 체험형 디지털 전시관은 문학관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있다.
박화성은 한국 최초의 여류 장편 소설가로 여성문학의 지평을 열었다. 교직 생활을 이어가며 여성 계몽과 교육에 힘썼고, 장편소설 《고향》, 단편 〈백화〉에서 여성의 삶과 민족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선생의 흉상이 먼저 반긴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릿결, 반듯한 안경, 고운 한복 차림의 선생이 환하게 웃고 있다. 다시 발길을 옮기면 전시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선생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단정하고 온화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꿋꿋한 의지와 묵묵한 강인함이 숨어 있다. 사진 옆으로 선생의 대표작 〈사십 년 다듬잇돌〉의 한 대목을 소개하고 있다.
‘내 집같이 맑은 집에 무에 있겠습니까마는 한 가지 나로서는 참 그야말로 전대(傳代)할 귀중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듬잇돌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첫 살림을 나실 때 생돌을 사신 것이랍니다. 다듬잇돌은 어머니와 함께 늙은 것입니다. 그러나 백발이 되시고 야윈 얼굴의 어머니와 옛 얼굴 그대로 새파란 몸뚱이를 지키고 있는 다듬잇돌.’
세월을 견디며 고단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숨결이 담겨 있다. 다듬잇돌을 매개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고, 그 안에서 굳센 생명력을 발견했다. 유리 케이스에 전시된 유품들은 선생의 삶을 가까이서 전해준다. 손때 묻은 찻잔, 작은 소반, 정갈히 놓인 부엌 도구들, 구두와 가방까지. 하나하나가 선생의 일상과 호흡을 간직한 채 관람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선생이 글을 쓸 때 곁에 두었을 만년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을 찻잔, 문득 집필을 멈추고 바라보았을 부엌살림까지,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울려 퍼지지 못하던 시절, 선생은 현실의 벽을 넘어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사진 속 온화한 미소와 작품집들에서 시대를 향한 선생의 목소리를 듣는다.
전시장 동선은 자연스럽게 차범석관으로 이어진다. 차범석 선생은 한국 현대극의 거장으로 꼽힌다. 대표작 〈산불〉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사실주의적으로 형상화해 한국 연극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도시의 역사와 항구의 삶을 작품의 배경으로 하여 연극이 단순한 무대예술이 아니라 사회적 증언임을 보여주었다.
먼저 선생의 흉상과 마주한다. 은은한 조명 아래 고개 들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표정은 결연하면서도 사색적이다.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창밖으로 스치는 남해의 바람과 겹쳐 고향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문학에 관한 그의 생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석류 앞에서〉 패널 앞에 선다. ‘나의 가난한 문학론’이란 부제를 단 이 글은 선생이 생각하는 문학론을 밝히고 있다. 석류가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듯, 문학 역시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변화와 자기 고백을 통해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나의 삶은 그 석류에서 뿌리 내리고, 나의 문학은 그 석류의 생리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삶과 문학이 외부로부터 침입한 자의 횡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내 내부로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변화를 가져오는 작은 변화가 그것이다.’
문학은 사회나 환경 등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성찰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석류가 진통 끝에 스스로 껍질을 깨고 속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작가 또한 스스로 진실을 깨닫고 드러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표작 〈산불〉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마을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 압축해, 인간의 갈등과 고통을 치밀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쟁이라는 참혹함 속에서 흔들리는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과 관련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유리장 안에 전시된 〈산불〉의 흔적들이 한 시대의 숨결처럼 다가온다. 전쟁의 상흔을 뒤덮은 듯 붉은 불길을 형상화한 포스터, 흑백으로 남은 공연 장면, 그리고 세월의 손때가 묻은 희곡 대본까지. 작품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끌어올리려 고뇌한 흔적이다. 작품 속 불타는 숲을 지나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작가의 숨결을 느낀다.
2층에 마련된 문학평론가 김현 코너는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김현은 80년대 한국 문학비평의 최전선에서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 서구 이론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문학평론의 개척자다.
오른쪽 벽면에 걸린 여러 장의 캐리커처는 김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영태, 이제하, 김승옥 등이 그렸다. 가족,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강연 등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한쪽 벽면에는 김현을 평하는 지인들의 말을 아크릴판에 새겨 전시하고 있다. 시인 정현종은 “귀를 기울일 줄 알았던, 경청 속에서 신전을 세울 줄 알았던 영혼”이라 했고,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김현이라는 뜨거운 상징은 문학의 이름으로, 부재하는 것의 아름다움으로 살아 움직인다”고 했다. 생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김우진은 목포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나 짧지만 치열한 생을 살다 간 청년 극작가다. 희곡 〈이영녀(李英女)〉 〈산돼지〉 등을 통해 억압적 사회구조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갈등을 담아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국 근대 연극의 토대가 되었고, 목포라는 지역이 지닌 개방적이고 격동적인 정서를 전해준다.
전시장에 놓인 그의 일기와 육필 원고 앞에 서면, 한 시대를 살아낸 젊은 지식인의 숨결이 아직도 진하게 배어 있는 듯하다. 집안 내력과 관련된 흑백사진들, 초기 연극 활동의 기록, 흑백사진과 빛바랜 서류, 낡은 책에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벽면을 채운 붓글씨와 흘려 쓴 글자체는 그가 살았던 고단한 시대를 상기시킨다.
지금, 여기
목포문학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역시 다양하고 활발하다. 문예대학 운영, 어린이 동시 쓰기와 가족 대상 문학 체험 등 연령과 세대에 맞춘 강좌들이 매년 열리고 있다. 성인 대상 문예대학은 소설 창작, 시 창작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어린이 글쓰기 교육은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수강 인원 20명 내외로 매주 1회 6개월간 진행된다.
상주작가 프로그램 운영도 인기가 높다. 상주작가 지원사업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 여름방학 특강 어린이 동시반을 운영했다. ‘여름, 시로 쓰는 나의 이야기’를 타이틀로 어린이 동시 시작법, 동시 감상 및 창작 등이 진행되었다. 조기호 시인이 지도했다.
문학관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목포문학관 산책 내용은 목포문학관 관람 및 목포의 문학비 답사로 진행된다. 15명 이상, 60분 내, 문학관 활동지 놀이 및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문학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직접 쓸 수 있는 문학적 정서를 체험한다. ‘글은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이 ‘나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바뀌는 순간, 문학은 책 속 활자가 아니라 생활 속 경험이 된다.
목포문학관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2027년까지 원도심 목원동 일대에 ‘문학마을’이 조성되면서, 작가별 개별 전시관 형태로 이전할 예정이다.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에 더해 김지하, 최하림, 천승세, 황현산 등 목포와 인연 깊은 여덟 문인의 전시관이 들어설 계획이다. 골목길 전시관, 문학공원, 문학마을센터, 야외 갤러리까지 마련되면, 목포 원도심은 그야말로 ‘지붕 없는 문학관’으로 거듭날 것이다.
목포문학관을 나서는 길, 바닷바람이 다시 얼굴을 스친다. 한 도시의 삶과 문학의 궤적을 몸으로 느끼고 떠난다. 김우진의 불꽃같은 청춘, 박화성의 따뜻하고 강직한 눈빛, 김현의 치열한 사유, 차범석의 무대 위 진실들이 찬찬히 다가와 마음을 흔든다. 목포문학관은 한국 문학관의 역할과 방향성을 알려주고 있다.
주문과 동시에 상이 차려진다. 먼저 민어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도톰한 민어회의 부드러움과 쫄깃쫄깃한 식감, 단맛과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저온에 하루 정도 숙성한 것이라 한다. 새콤달콤한 민어초무침은 민어의 담백함과 직접 담근 막걸리 식초를 기반으로 만든 초고추장 베이스의 소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특유의 맛이 있다.
손님들이 ‘찐맛’, ‘인생전’이라고 극찬하는 민어전은 단순히 계란물을 묻혀 부쳐냈을 뿐인데 그냥 먹어도, 초장에 찍어 먹어도, 묵은지와 함께 먹어도 그 맛은 최고였다. 상추, 깻잎에 민어회를 얹어 기름쌈장에 찍어 한입에 쏙 먹어본다. 역시 담백함과 기름진 풍미가 입 안 가득 느껴진다. 곁들여 나온 민어 껍질과 부레는 구운 소금과 함께 나와 씹을수록 고소하고, 쫀득쫀득 담백하여 식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밑반찬과 묵은지, 초장, 쌈장, 와사비 간장으로 취향에 따라 다양한 민어 부위와 조합해서 먹는 재미가 있다. 칼칼하면서 따끈한 매운탕으로 마무리한다. 직접 담근 된장을 사용해 민어 뼈에서 우려낸 진한 육수로 깔끔하고 얼큰한 맛을 완성했다. 이래서 목포 사람들이 “영란횟집, 영란횟집” 하나 보다.
56년 긴 세월 동안 전국적 맛집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자 주인장의 남모를 애환이 민어 한 상을 통해 느껴진다. 이것이 항구도시 목포에서 앞만 보고 징하게 일만 하며 살아온 목포 아재 그리고 아낙네들의 고집이 아닐까. 여름 보양식 민어. 민어 고유의 식감과 풍미를 최대한 살린 민어 한 상! 올가을에는 민어 드시러 목포로 가심이 어떨지?
경향수_에이치에스라이팅 대표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에이치에스라이팅 대표로 있다. 대학 시절 음악다방에서 DJ를 맡으면서 다양한 음악에 빠졌다. 회사에 입사해서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많은 조리장을 만났다. 틈틈이 음악과 음식이 어울리는 글을 쓰고 있다.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담고 있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경향수 대표가 강릉의 김동명문학관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12월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을 단풍 짙게 물든 대관령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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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 · 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경향수가 만해문학박물관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6월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문학관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늘 고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