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멀리 간다》는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은의 첫 에세이다. 어린이와 어린이책에 대한 그의 꾸준하고도 진심 어린 목소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독자가 분명하게 상정되어 있는 평론집과는 달리 더 많은 이들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유독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이책 업계에서 김지은은 믿음직한 평론가이자, 작가이고, 번역가이고, 독자다. 김지은의 언어는 어떤 힘이 있다. 그건 어린이와 책을 사랑하게 만드는 능력인데, 바로 그 용례가 나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학부 시절 그는 우리에게 아동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늘 양쪽 어깨에 어린이책이 한가득 담긴 에코백을 이고 지고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다. 그는 책 보따리(어린이책은 대부분 양장본이라 무겁다)에서 실물 도서를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며 이 책을 왜 소개하고 싶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땐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진심과 열정이었다. 왜인지 그에 대한 호기심이 나에게는 어린이책 세계를 새롭게 열어준 입구가 되었고, 이렇게 어린이·청소년문학을 다루는 서점을 여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떤 마음은 때때로 한 사람의 생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김지은은 언제나 어린이와 그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는 내내 어린이를 ‘멀리 가는’ 이들로, ‘오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날 사람’인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호명한다. 2017년 출간된 평론집 《어린이, 세 번째 사람》(창비)에서도 ‘오늘의 어린이는 미래를 살아갈 사람’이라 말한 바 있다. 변함없이 계속되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가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태도와 고민을 환기하게 만든다. 서문을 통해서도 ‘용감하게 떠나는 것이 어린이의 일’이고, ‘정성껏 돌보고 사랑을 주어서 잘 보내는 것이 어른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초등학교 운동회에 대한 소음 민원이 늘면서, 얼마 전에는 운동회 시작 전에 어린이들이 주민들에게 사과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른들은 한때 우리가 모두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다 잊은 모양새다. 여전히 ‘노키즈존’이란 단어로 어린이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키고, 어린이를 미숙하고 순진한 이미지로 ‘밈화’시켜 무례한 소비를 이어간다. 과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어린이를 멀리 떠나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낮고 그늘진 곳을 바라보는 ‘눈’, 어린이·청소년책
현실적인 사안과 문제에 관한 해답을 내리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가늠할 수 있는 어떤 방향이라도 제시해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서로 다른 ‘먼’ 세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에 쓸 작은 돌을 찾는 마음이 아닐까. 김지은은 그렇게 쓸 만한 돌들 중에서도 ‘아동청소년문학’의 효용을 강력하게 말한다. 영국 그림책 작가 랜돌프 칼데콧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웃집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른들의 과오를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책에 기록’(79면)했다. 어린이를 지키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기리고자, 매해 출간된 책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꼽아 ‘칼데콧상’을 수여하며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칼데콧 이야기처럼 ‘아동청소년문학’은 대체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럼에도 동시에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데, 어린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순수하고 순진하며 꿈과 희망을 품은 정의롭고 선한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훈과 교화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근래 출간된 어린이·청소년책을 조금이라도 읽게 된다면 이러한 편견에서 빠르게 벗어날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일론 비클란드 그림, 창비)이 불합리한 세계와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용기를 전했듯이 동화는 다양한 은유로 현실과 처절한 진실을 그려낸다. 어린이·청소년책은 가장 낮고 그늘진 곳을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 그 눈을 가지게 되면 이 세계에 미처 틈입하지 못한 존재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 아동 노동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불러와 삶을 직시하게 만든다. 어린이책은 망가져가는 세계에서조차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동화는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약자’들이 ‘세계와 투쟁하며 성장하고 독립’하도록 이끄는 이야기다. 너그러운 시간 안에서 작고 어리고 미숙한 존재들을 성장시킨다. 고유한 개성을 지닌 다 다른 존재들은 자기 자신 그대로를 인정받는다. 또한 동화 속에서는 나와 타자의 삶을 이어주는, 곁에 있는 수많은 동료 시민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타자뿐 아니라 동식물은 물론 콩벌레, 지렁이 같은 곤충들까지도 자기 존재를 호명받는다.
이렇게 ‘아동청소년문학’은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바르게 호명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김지은은 동화를 통해 그 ‘이름 없는 이름들의 힘’(84면)을 잊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말하며, 그것이 이 세계를 지켜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힘을 통해 우리는 다양성을 긍정하고, 공감하며 어떤 타자와도 가능한 ‘되기’의 세계를,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모든 이에게 열린
어쩌면 어린이책을 읽는 일이란 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가장 간편한 노력일 수 있다. 어린이책은 경계를 나누지 않고 자격을 요하지 않으며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김지은은 글쓰기와 문학이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는지를 아주 절실하게 전한다. 우리가 글을 씀으로써, 만듦으로써, 읽음으로써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어린이는 멀리 간다》는 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조금씩 더 길을 넓히는 마중물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인 독자라서 어린이·청소년책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책의 맨 뒷부분에 있는 ‘이야기를 만든 책과 글’에 실린 목록의 책들로 ‘아동청소년문학’의 세계를 시작해보길 권한다.
최근 몇 년간 어린이를 이야기하는 책이 많아졌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경향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의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담론이 많아져야 사회가 변할 테니, ‘희망은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의 것이다’(207면)라는 말대로,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요즘의 어린이는 자신들의 이야기조차 바라볼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더불어 어린이의 시간과 영역을 존중해주는 공간과 거점들도 점점 사라진다. 그 가운데 나는 애틋한 마음으로 책과 책방 곁에 있던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한 풍경처럼 한때는 책방에 매일 책과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의 책을 고르는 어린이들은 종종 책방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 “사장님이 어린이를 좋아해요.” 단골인 어린이가 책방을 홍보하기 위해 적어준 메모 속의 문장을 매만지며 마음속에 품는다. 어린이는 오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는 존재지만, 우리 곁에 있는 어린이는 너무 멀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 또한.
유지현_책방 사춘기 대표
본명보다 ‘춘기’ 혹은 ‘춘기 이모’라 불리는 게 더 익숙한 사람. 어린이청소년문학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의 영어 책 취향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는 곳, 도서관아이가 자발적 독서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 책에 관한 고민은 도서관에서초등 2학년 아이와 엄마표 영어를 하던 시절, 가장 즐겁고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도서관 가기였다. 우리집 도서관 원칙은 ‘T-day&3T’였다. 1. Tuesday(화요일), Thursday(목요일), saTurda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
나무를 통해 위기의 시대 도서관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사명 탐구! 도시에서의 나무 심기도시는 사람보다 먼저 다른 생명들이 살림을 이어가던 보금자리였다. 나무들이 먼저 숲을 이루어 살았고, 나무 그늘에는 여러 짐승이 모여 살았다.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냈다. 나무 곁에서 살던 짐승들도 더불어 떠나야 했다. 원초적 자연은 망가지고, 사람 중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