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낯선 지역에 이사를 왔다면 어디서부터 적응이 시작될까? 시장이나 마트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을 사귀게 된다면 좋을 것이고,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얼굴을 손에 비벼오는 고양이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단박에 그 동네가 좋아질 것이다. 이용하기 편리한 공공 인프라가 어떻게 갖춰져 있는지 여러 정보를 얻어두면 요긴할 것이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 경찰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두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일인 가구 생활자인 나에게 이 문제는 중요했다. 마음을 붙이고 산다는 것. 정착해서 한 곳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 친절한 이웃을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무턱대고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는 어렵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용하기 편하도록 잘 조성된 공공의 공간을 통해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 붙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사적인 장소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이후 외부와 고립되어 자신을 보호하며 사는 데 이미 그리고 충분히 이골이 났으니까. 여기에서의 공간은 무람없이 녹아들 수 있고 잠시 머물렀다가 자유롭게 떠날 수도 있는,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도서관이나 공원 같은 공공의 공간이다.
작지만 작지 않은, 다정한 작은도서관
사는 곳 근처에 작은도서관이 하나 있다. 운이 좋았다.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집을 나서서 고즈넉한 골목을 따라 걸으면 주택가 한 곳에 위치한 도서관이 나온다. 6월에는 담장을 따라 장미가 가득 피고, 겨울에는 햇빛이 다정하게 머물다가 천천히 사라지는 그런 골목이다. 책을 빌리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지만 산책 삼아 목적 없이 나서서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다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편하게 골라서 대출하거나 그 자리에서 읽다가 돌아올 때도 있다. 단편소설 한두 편이나 시 몇 편쯤 그 자리에서 읽다 보면 성취감이 들기까지 한다(사실 나에게는 일정하게 정해진 일과가 없는데, 그래서 쉽게 하루를 허비하곤 우울해지고 말 때가 많다. 혹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늦은 저녁이라도 짧은 문학 작품을 집중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꽤 큰 성취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규모가 무척 작더라도 동네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큰 유익이 된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새로운 도시에 대해 느꼈던 낯설음은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점차 친숙함으로 바뀌었다. 도서관에서는 책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은 나 자신이 그 공간으로부터 받아들여진다는 기분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책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도서관에서는 그 누구도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구비된 책이 많지 않아도 나는 자주 작은도서관을 찾았다.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책은 대부분 그 도서관에 없었다. 하지만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상호대차 신청을 하면 관내 다른 도서관들에서 내가 지정한 도서관으로 책이 배송되어 왔다. 책이 도착하면 그걸 수령하러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내 필요를 채워주는 것 같아서 풍성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받아들여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주저 말고 도서관에 가기를,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깊이 몰입하기를 권하고 싶다. 낯선 도시의 도서관을 우연히 찾게 되더라도, 도서관은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을 언제든 맞아준다.
책이라는 대해와 허수경 시인
생각해보면 책의 망망대해에서 내게 필요한 책을 찾아 읽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사실 나는 도서관 하면 허수경 시인이 떠오른다. 고고학 전공자이기도 한 허수경 시인(1964~2018)에게 이 세계를 거대한 발굴지이자 폐허로 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허수경 시인을 잠시 소개하고 싶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등 총 여섯 권의 시집을 출간한 허수경 시인은 젊었을 적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 뮌스터로 유학을 가 고대근동고고학을 전공했다. 이후 평생 독일에서 지내면서 시와 산문, 동화,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했고, 파울 첼란의 시집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런 허수경 시인의 여러 글에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관한 단상, 그리고 독서 경험을 담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허수경 시인은 비록 타국에서 외로움과 궁핍함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히 독서를 해나간 것 같다. 허수경 시인에게 독서는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 세계에 연결되는 방식이자, 발굴지처럼 탐구해나가야 할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허수경 시인이 남긴 시에서는 오랜 역사 속에 남겨진 폐허와 폭력의 잔해를 깊이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한편 고향과 고국을 떠난 허수경 시인은 시와 산문을 통해 기억 속 공간의 저잣거리와, 타인들과의 싸늘한 엇갈림과 시차를 확인하게 되는 거리 공간을 형상화한다. 또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잠시 머물렀던 숙소 공간들이 시에 중요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저 먼 역사 속 과거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고 폭력을 마주했을 장면을 상상하며 쓴 시편들도 상당하다. 어긋난 관계 그리고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또는 폭력으로 구성된) 인간 문명이 허수경 시에서 그려질 때, 그러나 동시에 고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인간의 노래와 같은 영혼 그리고 상처 입은 타자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세계의 폭력에 노출된 여리고 순한 영혼들을 찾아 구슬프게 시로써 매만지는 허수경 시인의 손길을 따라가 보기를 나는 자주 추천하고 싶다. 특히 허수경 시인의 시집 중 세 번째 시집인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고아와도 같은 상한 영혼들을 살피는 시인으로서의 시선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고고학자로서의 시선이 잘 드러난 산문집인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역시 일독해볼 만하다.
고고학적으로 책 읽기, 든든한 밥 챙겨 먹기
이상하게 나는 책을 읽을 때면 쉽게 배가 고파진다. 흥미롭게도 허수경 시인의 글들에서는 허기 진 시인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허수경 시인이 빵을 떼어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장면, 고국의 음식을 기숙사에서 해 먹는 장면을 글에서 보았을 때, 나는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공감했다. 젊은 날의 허수경 시인은 책을 살 돈이 없어 학교 도서관 책을 빌려 읽으면서도 자신이 매우 부유하다고 고백한다.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만약 허수경 시인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든든히 밥과 국으로 식사를 한 뒤 읽기를 권하고 싶다. 예측 불가능한 음식명이 여러 글들에서 출몰하여 식욕을 자극하곤 하니까 말이다.
밥을 잘 먹고 와도 도서관에서 배가 고프다면, 어쩌면, 정말이지 어쩌면 그것은 과거로부터 우리 앞에 도착해온 책들에게 우리의 기운을 모두 다 빼앗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기 시작한 우리는 책 앞에서 더욱 허기진 사람이 되어갈지도 모르겠다. 그 허기는 책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허기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허기는 또 다른 책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일는지도. 종내 우리는 책이 인도하는 세계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허기를 느끼며 헤매게 될지도. 허수경 시인이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세계의 시공간 속에서 인류가 남긴 흔적을 더듬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나는 내 앞의 책들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해본다.
책의 매혹은 아찔하다. 그러므로 밥을 잘 챙겨 먹는 수밖에. 마음 놓고 헤매기 위해서 내 현실의 배라도 잘 채워두는 수밖에.
책 읽는 유년의 작은 공동체
도서관엔 아이들도 꽤 많이 온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도, 혼자 와서 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을 한 번씩 조심스럽게 눈여겨 봐둔다. 다른 곳에서 놀 수도 있었을 텐데 도서관으로 와서 시간을 보내다니, 이 아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릴 적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방과후나 주말, 또는 긴 방학을 보내곤 하던 것을, 아이들은 먼 훗날 기억하면서 풍성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나는 어릴 적 오빠와 함께 해리포터 시리즈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만화로 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삼국지》 《수호지》와 같은 긴 호흡이 필요한 책들을 친구와 함께 도서관 한구석에 자리잡고 읽었던 좋은 추억이 있다. 굳이 어려운 책들을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락거리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게 책이 외부를 향해 열린 문이 되어주었던 건 당연했다.
그때는 일종의 책 읽는 작은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꾸렸던 것 같다. 가볍고 흥미로운 책들을 친한 사람들과 함께 읽어나갔던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도서관을 친근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택한 책을 혼자 읽는 지금은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상 책 속 세계로 들어가고 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릴 적 경험했던 열린 문으로서의 독서가 지속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펼친다는 건 현실에서의 외로움 너머 독서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일이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헤매기, 더 작고 다정하게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으로 도서관 이용이 어렵게 된 적이 있었다. 특히 어린이들이 오고가는 공공기관이 폐쇄되었고 개관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갈 곳이 없어져 난감했다. 그러다 제한적으로나마 이용이 가능해졌을 때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도서관이 폐쇄되었을 때 나는 그동안 도서관이 내 필요를 얼마나 많이 채워주는 곳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즈음 나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폭력 상황들, 자연재해들에 관심이 있다. 인간이 개발하는 과학기술은 더욱 발달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지를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싶다. 먼 훗날 일어날 일에 불과할까? 지금의 내가 도서관에서 헤매며 책을 읽을 때, 그것은 세계와 내가 연결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고, 마치 잠수함처럼 일종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책이 그리고 도서관이 실제로 삶을 부유하게 만들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작음을 계속해서 발견해가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가장 안전하고 가장 지혜롭게 이 세계의 폭력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공공의 장소로서 말이다.
‘멀리 가는’ 이들인 어린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잘 보내는 일 《어린이는 멀리 간다》는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은의 첫 에세이다. 어린이와 어린이책에 대한 그의 꾸준하고도 진심 어린 목소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독자가 분명하게 상정되어 있는 평론집과는 달리 더 많은 이들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유독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이책 업계에서
새로운 시대의 거점이 왜 도서관이어야 하는가?The Liverary는 2025년 6월 4일 새정부 출범을 기해 새정부에 바라는 도서관 정책, 도서관 인들이 향후 논의해야 할 이슈와 아젠더를 제안하는 전문가 칼럼 코너를 마련하였다. 문헌정보학자, 현직 도서관 사서, 협회장 등 총 네 분의 필자가 참여하는 이 칼럼을 통해 도서관이 AI 시대 지식정보의 허브
초등학교 사서가 만들어준 '처음 작가 경험'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가너는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뜻밖의 인물을 먼저 떠올린다. 감독도, 유명 배우도 아닌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 '맥캔 선생님(Mom McCann)'이다.가너가 다녔던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턴의 작은 초등학교, 그곳 도서관에서 맥캔 사서는 늘 한결같이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