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2025년 12월호에서는 철학책 편집자이자 《철학책 독서 모임》 《동료에게 말 걸기》의 박동수 작가를 초대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한다.
철학책 편집자로 16년째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고, 동료 편집자들과 함께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과학기술학과 현대사상의 새로운 조류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일을 인생의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 작가로서 두 권의 책을 썼다. 2022년에 첫 번째 책 《철학책 독서 모임》을, 2025년에 두 번째 책 《동료에게 말 걸기》를 출간했다. 《철학책 독서 모임》은 ‘철학책을 함께 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에 오늘의 철학책 열 권을 읽으며 답한 생각의 기록이다. 《동료에게 말 걸기》는 말이 어긋나는 분열의 시대에 ‘대화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바로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철학의 길을 찾아 나선 결과물이다.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모두 동등하게 존재하는 세계에서 ‘동료’가 되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작은 약도를 그려보려고 했다.
Q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는데 철학책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언제부터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나.
A 고등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리학 경시대회 시험에서 떨어져 방황하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났던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때 나는 물리학자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물리학과 달리 이 세상이 무의미할 수 있고, 목적이 없을 수 있다고 보는 세계의 모습을 처음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세상에는 늘 정답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구토》를 읽으며 처음으로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세계가 사실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해방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여러 철학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수많은 철학적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철학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자연스레 철학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었다.
Q 10년 넘게 진행된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에서 다룬 책을 소개하는 《철학책 독서 모임》을 냈다. 모이게 된 과정과 독서회가 진행되는 방식이 궁금하다. 오래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 알려달라.
A 고독한 편집자들이 한데 모여서 철학책을 읽으며 서로의 고독을 달래보자는 것이 함께 모이게 된 주된 이유였다.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서로의 관심을 함께 나누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셈이다.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단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다양한 의견을 솔직하게 나눌 곳이 필요했던 거다.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의 특징적인 한 가지 진행 방식은 남성 저자와 여성 저자의 책을 기계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저자 성별의 선택에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맥락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할까. 평소에는 접하기 어렵거나 굳이 읽고 싶지 않았던 책도 독서 모임에서 반쯤 의무적으로 읽는 경험이 생각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다. 독서 모임 외에는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오래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비결도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 보면 새로운 종을 비롯한 타자와 관계 맺기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A 내게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시기에 걸쳐 계속 달라져 왔다. 사르트르, 마르크스, 알랭 바디우, 리처드 로티 등을 거쳐 현재 가장 즐겨 읽는 철학자는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다. 라투르는 과학 실험실에 대한 인류학 연구로 이름을 알린 독특한 경력을 지닌 철학자다. 그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추상적으로 세상을 논하지 않고, 여러 현장에서 세계를 다시 보는 법을 몸소 배우는 ‘경험 철학자’였다. 특히 나는 철학을 단순히 진리 찾기가 아니라 타자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사유하는 그의 태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Q 특별한 독서 루틴이나 습관이 있나. 또 독서 중에 자주 하는 딴짓은?
A 병렬 독서가 기본이다. 한 권의 책을 쭉 읽기보다는 여러 권을 읽을 수밖에 없는 직업상의 이유도 있지만, 나 자신이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건너가고 뛰어 다니는 자유로운 읽기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책들 사이에서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며 책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나가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병렬 독서법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가벼운 에세이나 인터뷰집을 읽고, 새벽 시간이나 주말에는 집중력이 필요한 철학 원전을 읽는다. 그러다 여러 책을 왕래하며 발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SNS에 글을 쓰기도 한다. 책이란 언제나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 있기에, 다른 책들 속에서 그 책을 바라보면 더 배울 점도, 더 생각할 점도 많아진다.
Q 《동료에게 말 걸기》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그 옳고 그름의 이유를 묻는 느린 대화가 철학의 방법론”이라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 시대에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A 진영 논리처럼 이미 선을 정해놓고 타 집단을 타자화하려는 태도가 오늘날 여기저기에서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선 긋기의 태도는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서로를 같은 환경 속에 살아가는 동등한 동료로 여기고 말을 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는 그저 비난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를 서서히 알아가다 보면 다른 관계 맺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아가다 보면 어색하고 적대적인 사이에서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렇듯 대화를 지향하는 철학적 태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Q 책 안에서 소개하는 오늘날의 철학은 진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아니라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다양한 존재와 어떻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철학은 지금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A 철학은 세상의 복잡한 사태를 가장 복잡한 언어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복잡한 사태를 간단하고 흔한 말로 요약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한다. 철학이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사태의 복잡함에 충실하려는 비타협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태도, 곧 생각을 사태의 복잡함에 충실할 수 있게끔 내가 알던 범주와 사고의 한계까지 밀고 나가려는 태도가 지금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철학은 더 좋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토대란 실은 ‘토대 없음에 대한 자각’이다. 다시 말해, 내가 토대라고 생각했던 것도 어떤 위치성, 상황성, 역사성, 집단성의 산물임을 서서히 자각하는 과정이다. 이런 무너짐의 과정은 오직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만, 대화 속에서만 가능하다. 철학이란 언제나 타자와의 만남, 무너짐의 경험, 그리고 새로운 입장의 탄생을 이야기해왔기에, 오늘날처럼 서로의 말이 어긋나는 다원화 시대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철학책 편집자이며 철학책 번역자, 또 잡지의 기획위원이기도 하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A 여느 직장인들처럼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 다만 새벽이나 저녁, 그리고 주말에 유독 철학책을 많이 읽는다는 점이 좀 특이할 뿐이다. 특히 좋아하는 독서 시간은 새벽이다. 새벽에 일찍 깨어 책상에서 조용히 책을 펼치면 소음이 잠시 멈춘 그 시간에만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다. 그 시간만큼은 편집자도 작가도 아닌 ‘독자’로서의 나와 다시 만나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여가와 업무의 경계가 모호한 삶일 수 있지만, 내게는 책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의 시간 중 하나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쓰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A 현재 세 번째 책을 쓰는 것을 다음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어떤 주제와 어떤 내용의 책을 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몇 가지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 주제들을 구현할지 조금 더 길게 고민하고 싶어서다. 우선은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책을 써보는 것이 과제가 될 것 같다.
Q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에 대한 경멸과 무시다. 이런 태도는 동료에게 말 걸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문제조차 악화시키고 만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는 용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박동수가 추천하는 책 세 권
《나와 타자들》(이졸데 카림)
이졸데 카림에 따르면 우리는 다원화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도 가치를 주입할 수 없는 시대,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에 어떤 것이 맞고 어떤 입장이 옳은지를 두고 끝없이 다투는 시대다. 세대, 젠더, 계급, 인종, 민족 등으로 이토록 분열된 풍경 속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이 책은 이러한 시대 상황의 기원과 현재 상태를 간명한 필치로 정확히 그려준다.
《존재양식의 탐구》(브뤼노 라투르)
오늘날의 생태 위기는 현대인의 가속화된 삶이 지구로부터 무차별적으로 자원을 추출하고 수많은 생명의 서식지를 파괴해온 결과다. 이 파괴의 근원에는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온 근대적 사고방식이 있다.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위기 해결은 요원하다.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방향 상실에 빠진 우리에게, 생태적 전환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사유의 지도를 제공해주는 탁월한 철학책이다.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박승일)
영화로 읽는 기술철학 강의를 담아낸 책이다. 기술문화 연구라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의 언어로 바꾸어놓은 모두를 위한 기술철학서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쟁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일상에 스며든 기술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등 지금 여기에서 가장 치열한 기술 문제와 씨름한다. 그러면서도 동료에 대한 친절함과 다정함을 잃지 않는 좋은 책이다.
박동수_작가, 철학책 편집자
작가, 철학책 편집자. 경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려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과학기술학과 현대사상의 새로운 조류에 관심이 많으며, 동료 편집자들과 함께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 책 『철학책 독서 모임』은 ‘철학책을 함께 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에 열 권의 오늘의 철학책을 읽으며 답한 사유의 기록이다.
기획하고 편집한 책으로 브뤼노 라투르의 『존재양식의 탐구』,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과 후속 저작들, 알랭 바디우의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 박승일의 『기계, 권력, 사회』 등이 있다. 함께 옮긴 책으로 데이비드 건켈의 『리믹솔로지에 대하여』가 있으며 『장뤽 낭시 강의실』을 작업 중이다.
2024년의 두 번째 석학 인터뷰에서 만난 분은 장석주 시인이다. 장석주 시인은 30년 간 저술가로 살았다. 겸손하게 자신을 ‘문장 노동자’ ‘인문학 저술가’로 소개하고 있지만 지독한 독서를 통해 저술 활동을 이어온 독보적인 예술가이자 석학이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예술가란 하루도 쉬지 않고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을 빈틈없이 직조해내는 사람”이 바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좌절하지 않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니 킴 박사는 누구에게나 잠재된 회복탄력성의 자원을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살아간다면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지니 킴 박사가 얘기하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의 특성과 함께 영유아 시기에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습관에 대해서 들어본다. [인터뷰 개요] 1. 유아교육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패션‧코스메틱 MD로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살아가느라 도서관을 자의로 간 게 손에 꼽을 정도였지요. 초보 맘이었던 저는 여러 육아서를 교과서처럼 읽곤 했는데, 공통된 얘기가 어릴 때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림책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