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대학교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시사IN 선정 디자이너상(2012), 한국출판인회 선정 올해의 디자이너상(2014)을 수상하며 현재까지 1,500권이 넘는 책을 디자인했다. 우연히 시작한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
책은 매번 다른 얼굴로 찾아오기 때문에 여전히 원고를 받으면 조금 긴장한다. 이번에는 어떤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책은 어떤 모습으로 독자를 만나야 할까 생각하는 거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힘도 매번 처음처럼 책을 대하려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자세에서 오지 않았을까. 어떤 원고는 첫 문장부터 마음을 붙잡는가 하면 어떤 원고는 몇 번을 읽어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어떤 책은 표지 한 장을 결정하는 데 며칠이 걸리고, 어떤 책은 아주 짧은 순간에 답이 보이기도 한다.
우연으로 시작한 일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오래 해온 데는 무엇보다 계속할 수 있는 행운이 따라준 덕이 크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책을 좋아하게 됐다. 책은 한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 물건이라고 보는데,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긴 시간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편집하고, 나는 그 마지막에 앉아 글이 머무를 자리를 만드는 일을 한다. 책을 오래 만들다 보니 디자인은 결국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길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쩌면 책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Q 독자는 책의 내용보다 표지를 먼저 만난다. 그 첫 만남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과 ‘이 책을 오해하지 않게 만드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그건 정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오해하지 않게 만드는 것. 이건 늘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 표지는 독자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거는 텍스트다. 가장 먼저 보이는 텍스트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시작부터가 잘못된 디자인이니까.
표지가 너무 큰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책의 본래 모습을 가리는 경우가 있는데, 독자가 표지를 보고 기대한 내용과 실제 내용에 간극이 크다면 그 첫 만남은 오래가기 어렵다. 표지는 책의 내용을 전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가진 온도와 태도, 그리고 독자가 들어가게 될 세계의 입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표지는 독자의 손을 먼저 잡아끌고, 책을 펼친 뒤에는 그 손을 놓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독자를 책으로 데려왔다면, 그다음부터는 책의 내용이 독자를 데리고 가야 하는 거다. 책의 내용을 다 읽고 표지를 바라봤을 때 표지가 책이 전해준 감동의 여운을 준다면 그것으로 완벽한 디자인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Q 독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혼자 며칠씩 붙잡고 고민했던 디테일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북디자인을 하다 보면 독자가 알아차리지 않았으면 하는 디테일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알아차리지 않아도 좋지만 그 책을 읽는 동안 어딘가에서 은근히 느꼈으면 하는 것들.
가장 오래 고민하는 것은 의외로 여백이다. 어떤 이미지가 좋을지, 어떤 글꼴을 쓸지, 제목을 어디에 놓을지 다 정하고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는 거다. 제목과 이미지 사이를 얼마나 더 벌릴 것인지, 글자를 더 작게 할 것인지 크게 할 것인지, 행간의 넓이는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지 같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전체의 호흡을 바꾼다는 걸 아니까.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더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오래 고민했던 디테일이 결국 독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제목이 3밀리미터 위에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근래 작업한 책 중 ‘블루홀6’ 출판사에서 나온 《Q》는 제목과 이미지가 하나의 레이어처럼 보이게 작업했다. 보통 이미지와 타이포의 레이어가 나뉘어 있는 게 익숙하기에 디자이너나 출판 관계자는 제목을 어느 위치에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하는데, 《Q》의 경우엔 그 고민을 과감하게 덜어낸 쪽이다. 결과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Q 일을 하다 보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게 됐다고 들었다. 디자인을 위해 읽는 책과 즐기기 위해 읽는 책은 읽는 방식이 다른 편인가. 두 모드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편인지도 궁금하다.
같은 문장을 읽더라도 디자이너로 읽을 때와 독자로 읽을 때는 눈이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디자인을 위해 원고를 읽을 때는 내용만 읽을 수가 없다. 문장의 길이를 보고, 장의 호흡을 보고, 장제목, 부제목, 소제목의 반복 주기나 어떤 대목에서 글이 갑자기 조용해지는지를 본다. 소설이라면 장면의 온도를 생각하고, 인문서라면 저자가 어떤 생각의 구조로 독자를 끌고 가는지를 살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문장 옆에 이미지가 떠오르고, 책의 크기나 글자의 크기, 여백의 넓이까지 머릿속에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로서 책을 읽는 것은 조금 피곤하다. 읽으면서 동시에 책의 꼴에 대한 스케치를 만들어야 하니까.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많은 책을 디자인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디자인을 내려놓고 읽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원고를 처음 받을 때는 ‘이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문장에서 마음이 멈추면 그냥 독자가 되는 거다. 그때부터는 책의 판형도, 서체도, 표지도 잠시 잊은 채 그냥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진다.
텍스트를 접하는 위치에서의 자세는 다를지라도 두 가지 읽기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자이너로 읽다가 독자가 되고, 독자로 읽다가 다시 디자이너로 돌아오고. 어떤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움직였다가도 ‘이 감정을 표지에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디자인을 고민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하며 책 속으로 들어간다. 아마 북디자이너에게 책 읽기는 두 개의 시선이 동시에 책을 좇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Q 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향하는 코너가 있나.
장르문학 코너를 가장 먼저 찾아가는 편이다. 좋아하는 분야라 읽고 싶은 책들이 잔뜩 쌓여 있다. 갈 때마다 사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은데 구매 욕구를 참아내는 게 힘든 코너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코너이기도 하고.
가장 잘 보이게 진열하는 책은 따로 없다. 작업 시간이 길었건 짧았건 내 고민이 묻어 있는 모든 책이 소중하다. 예전에는 디자인이 흡족하게 나온 책들을 잘 보이는 곳에 진열했는데, 어느 순간 나머지 책들에게 좀 미안해졌다. 그래서 진열하기를 그만둔 것도 있고, 현실적으로 작업실에 책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헌책방의 한 코너처럼 변해버려서 진열할 곳도 마땅치 않다.
다만 내가 작업한 장르문학이나 관심 분야의 책은 따로 모아두고 있다. 지금은 읽어야 할 원고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갖고 읽을 수 없지만 나중에 은퇴를 하고 한 권씩 천천히 정독할 생각으로.
Q 디자인 작업에 힘을 불어넣는 일상적 요소가 있는지 궁금하다. 늦잠, 휴식, 여행, 독서, 기타 등등.
의외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질문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 글자는 조금 큰가? 이 색은 너무 강한가? 표지는 여기까지 설명해야 할까? 하루 종일 선택의 연속이다. 그래서 작업을 오래 할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늦잠을 자기도,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몰아서 보기도,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더 좋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다 보이는 오래된 간판의 글자, 창문에 걸린 커튼의 색, 누군가 무심하게 칠해놓은 외벽의 색감 같은 것을 생각 없이 접하고 느끼며 에너지를 얻는 거다. 그런 것들이 당장 디자인에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언젠가 책 한 권을 만났을 때 불쑥 떠오른다.
나는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억지로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걷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돌아왔을 때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가 있다. 디자인에 힘을 불어넣는 것은 특별한 영감일 때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눈을 열어두는 것이 나에겐 반드시 필요한 일로 느껴진다.
Q 전자책과 웹소설 등 디지털 텍스트가 일상이 된 시대다. 그럼에도 물성을 가진 종이책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디지털 텍스트가 익숙해질수록 종이책의 의미가 선명해지는 게 아닐까.
화면 속의 글은 아주 빠르고 편리하다. 수천 권의 책을 한 손에 넣을 수도 있고, 검색 한 번이면 원하는 문장에 바로 도착할 수도 있다. 책을 읽는 방식이 훨씬 자유로워진 거다.
종이책의 의미는 책을 ‘읽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바꾸는 물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종이책에는 무게가 있다. 책을 펼칠 때 나는 소리가 있고,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있고, 종이마다 조금씩 다른 촉감과 냄새가 있다.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화면의 숫자가 아니라 왼쪽으로 넘어간 페이지의 두께로 알게 된다. 읽다가 책을 덮어놓으면, 그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책은 시간의 흔적을 몸에 남긴다. 밑줄이 생기고, 모서리가 접히고, 책등이 조금씩 닳고. 책 사이에 영수증이나 메모가 끼어 있는가 하면 표지가 손때로 닳기도 한다. 누구의 손에 있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매일 화면을 바라보는 시대에 손으로 넘겨야 하는 몇백 장의 종이는 느리고 무거울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 느림과 무게 때문에 책을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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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은 1969년 미국 해상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민간에서 제정한 ‘지구의 날’이다. THE LIVERARY에서는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지구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고 환경 보호를 다짐하는 국제적인 기념일을 맞아 인사이트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추령 교수는 34년간 지구과학 교사로 근무했으며 교육 현장에서의 활발한 교육 연구 활동과 더불어 다수의 과
Book 메신저는 책과 언어 그리고 독서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는 분들을 만나는 인터뷰 코너이다.5월호에서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작가인 김미라 작가를 만났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책과 독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A 안녕하세요?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