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무대와 함께 사라지는 공연예술을 기록해 둘 때 나만의 습관이 있나. 공연을 본 직후에 글을 쓴다든가, 음악을 틀어놓는다든가.
A 가슴 뛰는 작품을 만난 날에는 객석에서부터 간절한 마음이 된다. 폭포처럼 미풍처럼 흘러가는 것들을 되도록 잘 기억하려 눈을 크게 뜨고 손을 꼭 쥔다. 그런 날에는 반드시 잠들기 전에 기록을 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깊은 밤 고요히 앉아 그날 본 것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작은 수첩이 있다. 묘사만 해두고 덮어둔 뒤 보지 않는다. 훗날 글을 쓸 때가 오면 다시 펼친다.
Q 사진산문집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의 제목도 ‘사라짐’에 대한 많은 생각을 준다. 사라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기를 소망하는 풍경이 있다면?
A 어쩔 수 없이 죽음이 두려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어려서부터 날마다 생각했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을 쓰면서 조금씩 죽음보다 큰 사랑에 대해, 사라짐 뒤에 남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죽은 친구를 애도하며 우리가 그토록 슬퍼하는 것은 그만큼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슬픔은 사랑에 포함되므로, 사랑보다 큰 슬픔은 없다. 그리하며 종국에는 제 안에 고인 사랑을 쓰다듬으며 풍경 속을 거니는 슬픈 사람들이 남아 있기를 빈다. 그들마저 떠난 후에 무성한 식물과 파도가 세계를 잠식하기를 빈다.
Q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 공연을 하는 장소는 ‘거리에서, 지하실에서, 주차장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가장 낯선 장소에서 공연을 마주한 경험을 듣고 싶다.
A 2010년 아비뇽 외곽의 작은 학교에서 보았던 <미래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라는 공연이 떠오른다. 1940년대 초반 비엔나의 한 정신병원에서 자폐아들에 대한 나치의 실험과 몰살이 자행됐다. 공연에서 학교 곳곳은 그 병원의 산책로, 실험실, 기도실, 식당 등으로 구현된다. 관객들은 네 시간 동안 그곳을 배회하며 복도에 설치된 수신기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마당에 줄을 서 우생학에 관한 문서를 건네받고 서명을 하고, 알록달록한 식탁보가 깔린 식당에 앉아 제거돼야 할 인류의 목록에 관한 연설을 듣는다.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난, 까다로운, 비사교적인, 순종적이지 않은, 불안에 사로잡힌, 교화 불가능한, 정신병을 앓는, 생산을 하지 않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Q 공연예술에서 들었던, 지금까지도 귓가를 맴도는 대사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 소개한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가거라, 모세>(2014)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식당 화장실에서 홀로 출산하고 아기를 버린 한 여자를 조사관이 문책한다. 여자는 유기한 장소를 발설하지 않고, 튼튼한 바구니에 담아 띄워 보냈으니 모세가 우리를 구해줄 거라고 말한다. 조사관은 끝내 화를 내며 떠나는데, 그때 여자가 이렇게 묻는다. “그 아이가 당신도 구할 거라는 걸 당신은 모르시나요?” 이 대사가 오래 맴도는 이유는 그것이 다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신도 아프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시나요?”
Q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의 표지와 책 안의 이미지 모두 직접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다.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목정원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
A 내가 거기 있었고, 풍경이 또한 있었기에 그저 셔터를 눌렀던 순간. 우리가 있었다는 증거.
Q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 공예예술 작품 속 배역(캐릭터)으로는 누가 있을까.
A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인물은 없다. 다만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인물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의 여림과 강함을 볼 때. 가령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소냐를 애틋해했다. 그는 고달프게 노동하며 불평 없이 천진난만하게 사랑에 빠지고, 옆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끝내 사랑이 좌절되자 깨끗하게 절망하고 옆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마침내 위로하며 말한다.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Q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독서를 하는지, 나만의 독서하는 풍경에 대해 말해 달라.
A 나에게 독서는 크게 공부를 위한 것과 여흥을 위한 것으로 나뉜다. 공부를 위한 독서는 책상을 떠날 수 없다. 메모도 하고 밑줄도 그으면서 집중해서 본다. 그러다 가슴 뛰는 문장을 만나면 책을 덮고 잠시 가만히 있기도 한다. 반면 여흥을 위한 독서는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침대에서, 카페에서, 바닷가에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 없이 마음껏 빠져들어도 되는 그런 독서를 늘 그리워한다.
Q 예술 분야에서 연구자와 이론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자신의 글이나 말이 권력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론과 해석으로 작품을 재단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해 작품 가까이 가세요. 우리는 언제나 더 섬세해질 수 있어요.
Q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주제나 쓰고 싶은 책은?
A 극장과 관객의 역사에 관한 다소 학술적인 책을 준비 중이다.
Q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A 냉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목정원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앙토냉 아르토)
20세기 초 아르토는 기존의 연극이 생의 본질을 담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에게 있어 생의 본질은 고통이었다. 고통의 감각을 생생히 담는 잔혹극을 통해 그는 이성과 언어의 허상을 고발하려 했다. 그의 시선에서 반 고흐는 누구보다 생의 본질에 닿아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예술가였다. 도리어 그를 죽인 것은 병든 세상이었다.
《직업 전선》(송승언)
시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시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시인의 성정을 지닌 채로 가마꾼, 노점상, 선원, 묘지기, 바리스타, 사서가 되어 살아간다. 그들 각자의 직업에 대한 가상의 말들을 담은 책이다. 문체도 형식도 모두 다른 수많은 생이 모여 끝내 한 편의 시집을 이루고 있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고명재)
자신을 키운 사람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한 시인의 산문집이다. 비구니, 할머니, 엄마. 그 몸을 잠식하던 고통을 그들이 어떻게 끌어안고 계속 나아갔는지, 그 눈발 같은 강인함이 어린 그를 어떻게 길러냈는지, 무엇을 함께 먹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웃었는지, 어떻게 끝내 이별했는지, 이별 후에도 어떻게 함께하는지. 허다한 시공을 통과하며 우리도 그들 손에 길러지는 것 같은 책.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고통을 기억하는 마음,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이 흰 눈처럼 오래오래 내려앉을 것이다.
《자코미누스》(레베카 도트르메르)
초록 털조끼를 입고 목발을 짚는 자코미누스라는 이름의 토끼가 있다.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긴 생의 이야기가 담긴 아주 커다란 그림책이다. 그가 사랑한 장소들, 마음에 이는 질문들, 할머니의 장례식, 전쟁터와 바닷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 매번 울음을 참아야 했던 것. 책장을 덮으면 오래오래 생각이 난다. 자코미누스가 살았다는 사실이 나의 생을 고요하게 만들어준다.
목정원_공연예술이론가
공연예술 미학을 공부하고 가르친다. 쓴 책으로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사진산문집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가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음악에 밑줄 긋기 영상은 한희정 음악가가 직접 제작해 보내왔다. Q 직접 쓰고 부른 가사 중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구절은 무엇인가.A “너무
물건에 치여 사는 삶, 왜 문제인가?지금까지 2천 개의 집을 바꾼 대한민국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의 똑똑한 정리 노하우 대공개!MBC 나 혼자 산다 스페셜 출연, 그리고 화제의 유튜브 채널 ‘정희숙의 똑똑한 정리’를 운영중인 정희숙. 그녀가 들려주는 집 정리의 기본 원칙, 특히 책 정리의 노하우와 집 정리에 담긴 애틋한 사연도 들어본다. 정리를 마
Q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음식은?A 몇 살 때인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보리차에 말은 밥 한 숟갈에 장조림 한 조각을 얹어 먹여주신 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음식이다. 구수한 보리차의 향과 간장의 짭조름함이 기억난다. Q 음식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A 중·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도시락의 밥을 넣는 칸에 반찬을, 반찬 칸에 밥을 싸주셨다. 이런 어머니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