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기억 속 첫 번째 책은 무엇인가.
A 정확한 전집 타이틀이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시절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학생백과》와 《소년소녀 세계 명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모님이 처음으로 사주신 전집류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생백과》의 경우 컬러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틈나는 대로 즐겨 읽었다. 특히 인명사전과 음악, 미술 분야는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어 자주 손이 갔고, 그때 흥미 있게 읽은 내용이 성인이 될 때까지 주요 관심사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Q 어느 때 ‘책 읽는 기쁨’을 느끼는가.
A ‘내가 고른 책’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강요나 의무, 일이 아닌 내 욕구와 필요에 의해 스스로 고른 책을 읽을 때 진정으로 나의 내면이 충족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교양서와 전문서에서는 몰랐던 사실과 지식을 얻는 기쁨이 있고, 소설이나 에세이, 시 같은 문학작품에서는 창의적인 생각과 신선한 표현, 문장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게 된다.
Q 음악가를 주제로 하거나 음악가가 쓴 책들 중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 있다면?
A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1931~ )이 쓴 《피아노를 듣는 시간》을 소개하고 싶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최고의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교육가, 에세이와 시를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경험하고 사유한, 음악과 음악가에 관한 단상을 적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알파벳 A부터 XYZ까지 첫 글자에 따른 음악 용어나 주법, 음악가 이름을 놓고 떠오르는 자신만의 생각을 짧고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짧은 글들이지만 노대가(老大家)의 오랜 연륜과 경험에서 나온 글이어서 그의 통찰력과 혜안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음악의 속 이야기를 피아노의 거장에게서 듣는 기분이 든다.
Q 30년 넘게 클래식 FM 프로듀서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A 클래식 라디오 방송 채널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이 아닐까 싶다. 클래식 음악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이런 문화유산을 일반인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거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고 작동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접하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긍지였다.
이런 방송 채널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귀한 경우다. 더구나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이 아닌 동양의 한 나라에서 이런 지상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지금은 인터넷, 유튜브로 무엇이든 손쉽게 만나는 세상이 되었지만,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는 KBS 클래식 FM만이 유일하게 비용 없이 클래식 음악을 맘껏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KBS 공영방송이 수신료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클래식 FM 청취자들은 이 채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신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응원을 해주신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교육적 내용의 기획 음반을 제작, 출반한 것이었다. 방송을 하면서, 특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의 경우 좋은 내용이지만 방송 특성상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이런 유익한 내용을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클래식 음악 입문용 음반 시리즈 ‘Listen & Lesson-해설이 있는 클래식’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초기 진입이 까다로운 편이다. 작곡가 이름도 연주자 이름도(물론 요즘엔 우리나라 연주자도 많지만), 더더구나 곡명도 모두 외국어인지라 익숙하지 않고 어렵다.
하지만 일단 진입하고 나면 중독성이 있어서 푹 빠져 계속 듣게 되고, 심지어 클래식 음악만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아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기에 음악 공부를 하게 된다. 작곡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공부하다 보면 서양음악사까지 섭렵하게 되고, 소나타나 콘체르토 같은 음악을 더 잘 이해하려다 보면 음악 이론까지 공부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이런 음악을 들으려고 맘먹은 사람에게 가이드 역할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떤 음악부터 들어야 할지 모르는 거다. 음반을 사려고 해도 같은 곡에 연주자가 수도 없이 많으니 어떤 음반을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교육적 의도가 다분한 관계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뜻밖에 어르신들이 좋아하셨다. 노안으로 책읽기가 불편해진 분들이 음반을 틀어놓기만 하면 해설과 함께 음악을 들려주니 아주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거리 운전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있었는데, 음악과 함께 해설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니 덜 지루하고 음악 상식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령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음반이 된 거다.
이 시리즈는 바흐부터 라흐마니노프까지 서양음악사에서 주요 작곡가들의 생애를 클래식 방송 MC들이 내레이션하고, 사이사이에 해당 작곡가의 대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보통 한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을 두 장의 CD에 담았는데, 총 25명 작곡가의 생애와 대표작이 20개 타이틀, 41장의 음반에 수록됐다. 이 음반 시리즈는 2005년 바흐를 시작으로 2009년 라흐마니노프까지 5년 동안 진행됐고, 시리즈 완성 기념 특집 프로그램 ‘김소은의 처음 만난 클래식’ 방송으로 마무리됐다. 이 특집 프로그램은 ‘제22회 한국PD대상 실험정신상(라디오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보람에 영광을 더하게 됐다.
Q 클래식음악-라디오-37년의 시간. 오래된 것을 이어가는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A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 있고 나를 안심시키는 오랜 친구와 함께하는 것.’ 그러고 보니 내가 해온 일들이 새로운 것, 최신의 것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것들과 함께하는 일이었다. 클래식 음악도 옛날 음악이고 라디오도 올드 매체다. 새로울 건 없지만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것들이다. 검증된 것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은 부정적 형태로 나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내 곁에서 조용히 나를 위로하고 안정시키며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책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런 귀하고 순한 것들을 변화하는 세상에 어떤 형태로 지속시켜야 할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사랑이 이어져 사라지지 않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Q 17-20세기 사이의 음악가 중 한 명을 ‘클래식 FM’ 특별 게스트로 초대할 수 있다면, 누구를 초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A 낭만주의 음악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슈베르트(1797~1828)를 초대하고 싶다. 당신은 서른한 해 짧은 생을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무수히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그 창작의 원천은 무엇이었습니까? 묻고 싶다. 더구나 극도의 가난과 병고를 일상사로 겪으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니, 슈베르트를 생각하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너무나 불쌍해서. 그의 음악을 알아주는 시인, 법률가, 화가, 가수 친구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가족의 사랑도 없이 따뜻한 가정도 없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해진다. 게다가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힘든 병(매독)에 걸려 늘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살았을 걸 생각하면 정말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슈베르트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친구들과 지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친구들 각각의 어떤 면들이 좋았는지, 슈베르트의 인생에 그들은 어떤 의미였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만일 가난하고 쓸쓸한 환경이 아닌 유복한 환경에서 지냈다면 당신의 음악은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음악가의 환경이 창작에 주는 영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또 음악가로 살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해 가장 아쉬웠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궁금하다.
Q 클래식 음악이 테마곡으로 쓰였거나, 음악가를 소재로 한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A <희생>이라는 영화에 쓰였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의 아리아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블록버스터나 액션영화보다는 사람이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잔잔한 영화에 더 마음이 가기에 ‘예술’이니 ‘작가주의’니 하는 설명이 붙은 영화도 웬만해선 지루해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내가 두 번이나 실패한 영화가 있다. 두 번 다, 정신을 차려 보니 눈을 감고 있는 거다. 조는 바람에 한 번은 중간에 포기했고, 한 번은 끝까지 보기는 했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20세기 가장 예술적 감독이라는 평을 받는 망명한 옛 소련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마지막 작품 <희생>이라는 영화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인데다 내 영역이 아니라 말할 입장이 못 되지만, 이 영화 시작과 말미에 화면 가득 흐르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의 아리아는 두고두고 잊히질 않는다.
그 아리아는 바흐가 1727년 4월 11일, 음악감독으로 있던 성 토마스 교회의 성 금요일(Good Friday) 예배를 위해 작곡한 음악극 <마태수난곡>의 2부에서 알토가 부르는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라는 곡이다. 노래가 나오기에 앞서 1분가량 바이올린이 지극히 아름답고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는데, 이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는 노래 내내 독자적으로 연주되면서 심금을 울린다. 아리아의 가사는 이렇다. ‘나의 하느님, 제 눈물을 보아서라도 불쌍히 여기소서. / 여기 보소서, 당신 앞에서 제 마음과 눈이 애통하게 우나이다. / 나의 하느님, 제 눈물을 보아서라도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는 때, 예수님을 부정한 베드로가 눈물로 통회하는 내용이다.
보통 영화에서 음악을 사용하면 주제 부분만 잠깐 사용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영화 앞, 뒤에 이 아리아의 전곡을 내보낸다. 이 곡이 이 영화의 서곡이자 마무리인 셈이다.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워낙 내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Q 클래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감상법이 있다면?
A 앞서도 얘기했지만, KBS 클래식 FM 같은 방송이 있다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데 있어 천혜의 환경이다. 요즘은 재미있는 유튜브도 무수히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기 편리한 세상이지만, 개인이 하는 매체들은 검증이 좀 약해서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 전문가들이 운영해온 방송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귀에 익혀가면 좋을 것 같다. 클래식 FM은 입문자도 편안히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부터 본격 클래식 감상자를 위한 전문적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골라서 꾸준히 듣다보면 귀가 열리고, 음악가와 곡명이 친숙해진다. 그리고 곡을 소개할 때 진행자의 말에 귀 기울여보면 간단한 해설을 해주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늘게 된다. 클래식 음악 감상은 라디오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 다음에 더 관심이 가는 음악이 있으면 유튜브나 음반, 음악 파일을 찾아서 여러 번 듣고, 책을 사서 읽다보면 어느새 클래식 애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Q 돌이켜봤을 때 가장 잘 했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인가.
A 곰곰 생각해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하나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PD가 됐다는 것이다. 내가 KBS에 입사할 때는 TV PD와 라디오 PD를 구분해서 뽑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TV에서 일하기를 선호했지만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입사 후 근무 희망 부서를 써낼 때마다 늘 TV가 아닌 라디오 클래식 FM을 썼다. 물론 모두가 희망대로 부서 배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데, 운 좋게도 나는 원하는 대로 됐다. 보통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니까 이런 경우 ‘주님의 뜻’, ‘하느님의 섭리’라고 여긴다.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된 것은 참 잘 된 일인 것 같다. 나한테 맞는 일이고,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한 시간이 축적되어 지금 졸고지만 가톨릭 서울주보에 음악 칼럼을 쓰고 있으니 주님께서 나를 이 일에 쓰시려고 37년 전 그 부서에 발령을 내신 건가? 아전인수 격 해석을 해보기도 한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슬럼프에 빠지고 힘들 때가 있지 않은가. 나도 한때는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잘 안 나오고 집안 일로 회사 일로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빠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 금방 정신을 차렸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고르면서 남한테 알려주는 일, 그 이상으로 행복한 일은 다른 곳 어디에도 없다는 걸 금방 깨달은 거다. 다행이었다. 이런 말이 있다. ‘지금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남의 떡, 다른 일을 부러워하며 넘보지 말고 내 일이나 잘 하자. 더 신경 써서 잘 해보자. 그러다 보니 37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오게 됐다.
Q 임주빈의 플레이리스트 1번 음악은?
A 사실 음악 관련 일을 하면서도 집에서 별도로 음악을 듣는 일이 잘 없었다. 업무와 관련한 음악을 듣거나 항상 라디오를 켜놓으니 따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간혹 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음반은 번번이 바흐의 음악이다. 주로 건반악기나 바이올린, 첼로 독주곡을 듣는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프랑스 모음곡, 바이올린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같은 곡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시끄럽고 복잡한 생각들이 가라앉거나 사그라들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임주빈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최대환)
문학, 음악, 영화에 해박한 최대환 신부의 예술 영성 에세이. 20권을 구매해 친지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롤리타는 없다》 1, 2권(이진숙)
미술사학자 이진숙의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 에세이. 고전문학과 미술의 공통점을 날카롭고 신선하게 통찰한 예술 교양서다.
《나의 서양음악 순례》(서경식)
음악과 미술 애호가로 정평이 난 재일 조선인 2세 서경식 교수의 클래식 음악 감상 에세이. 이전부터 저자의 글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음악 관련서가 나오자마자 구입, 저자 사인까지 받아놓았다.
《행복한 클라시쿠스》(유정아 외 6명 공저)
KBS 클래식 FM 개국 33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책.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MC 일곱 명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클래식 음악과 가까워지는 법을 알려주는 책. 클래식 음악이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로제 그르니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대상 수상 작가 로제 그르니에의 애견 율리시즈에 대한 글이지만, 이 글에서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으며 교양서에 가까운 책이다.
임주빈이 추천하는 음악
1. W. A. Mozart <증거자 축일 저녁기도 Vesperae Solemnes De Confessore K.339> 중
‘주님을 찬양하여라(Laudate Dominum).’
- Mozart /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K. 339/Laudate Dominum
- Lucia Popp(sop), Georg Fischer(지휘) Philharmonia Orchestra & Ambrosian Singers
1967년 녹음.
* sop. 루치아 포프(Lucia Popp, 1939~1993, 슬로바키아): 맑고 고운 소리로 많은 오페라의 주역 가수로 활동했다. 특히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작품에서 뛰어났던 소프라노 가수다.
<곡 해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순교자’, 박해를 받았으나 목숨을 건진 사람들을 ‘증거자’라고 합니다. 클래식 음악사상 가장 천재적인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 오스트리아)의 작품 중에 ‘증거자’ 축일에 부르도록 작곡된 음악이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1780년 고향인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전례음악으로 작곡한 <증거자 축일 저녁기도 Vesperae solemnes de confessore K.339>입니다. 여섯 곡의 짧은 곡들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단연 우릴 사로잡는 곡은 다섯 번째 곡인 ‘주님을 찬양하여라(Laudate Dominum)’입니다.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라틴어로 시편 117편을 노래하고 나면 뒤이어 합창이 영광송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노래의 끝에 다시 소프라노가 아름답게 ‘아멘’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이 음악을 듣노라면, ‘영광송’ 그 짧은 기도문을 어쩜 이렇게 우아하고 품위 있게 노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어떤 선율도 ‘아멘’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상의 소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죠.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그분의 사랑, 우리 위에 굳건하고,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 Arvo Pärt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 첼로: 레온하르트 로첵, 피아노: 헤르베르트 슈흐
<곡 해설>
올해 87세인 현대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년~ , 에스토니아)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은 아르보 패르트가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Vladimir Spivakov, 러시아)의 의뢰를 받아 1978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했습니다. 원곡은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지만 이후 바이올린뿐 아니라 첼로나 비올라로도 많이 연주됩니다. 현대음악임에도 귀에 순하게 와 닿는 서정성, 단순하지만 독특한 음악적 흐름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각종 영화, TV, 무용, 연극에서 배경이나 효과음악으로 수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음악은, 리듬이랄 것도 없이 마치 기계처럼 단순하게 세 음씩 연주되는 피아노 반주에 느릿느릿 끄는 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이올린 멜로디가 곡의 거의 전부입니다. 때때로 피아노가 세 음에서 벗어나 왼손으로 낮은 음이나 높은 음을 한 번씩 쳐주는 정도죠. 이 곡에 대한 음악적 해설은 ‘미니멀리즘’(Minimalism, 제한적이거나 최소한의 음악적 소재를 사용하는 음악으로, 반복적인 패턴이나 리듬 등이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라든지 아르보 패르트 특유의 작곡기법인 ‘틴틴나불리’(Tintinnabuli, ‘종’을 뜻하는 라틴어로, 아르보 패르트가 서양의 중세와 르네상스 성가에서 받은 영향에서 창안.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삼화음을 구성하는 세 개의 음이 마치 종소리 같다고 표현하며 붙인 명칭) 같은 전문용어로 설명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감정으로 느끼는 이 음악에 대한 설명은 단순함 속에 담긴 순수함과 명료함, 영성적으로 다가오는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단순한 이 음악은 우리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 순정한 마음으로 음악 자체를 들여다보게 하고, 결국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나란히 마주한 거울에 맺힌 상이 서로 반사되면서 거울 속 거울에 끝없이 형성되는 것처럼, 다가오다 멀어짐을 반복하듯 연주되는 선율과 리듬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음악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영혼이 가벼워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명상을 넘어 영적인 시간을 만나고 난 느낌입니다.
임주빈_전 KBS 클래식FM PD, 음악 칼럼니스트
임주빈은 KBS 클래식FM에서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KBS 라디오센터장과 예술의전당 이사를 역임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고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자 힘을 쏟았고, 지금은 강의, 글쓰기 등을 통해서 많은 이와 클래식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작곡가의 생애와 대표작을 수록한 CD 시리즈 “Listen & Lesson – 해설이 있는 클래식‘ 20종을 기획, 제작했다.
내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만난 것은 음악으로였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서 접한 조르바의 춤이란 곡은 독특한 음색의 악기와 심장이 뛰는 듯한 리듬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자연히 그 영화가 궁금해졌고, 이어서 원작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이렇게 차례로 음악에서 영화로, 마침내 소설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영화의 마지막,
해마다 5월이 되면 클래식FM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기다렸다는 듯이 플레이리스트에 올리는 곡이 있다.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이 하이네(H. Heine)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의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Im wunderschönen Monat Mai)’다. 1840년에 작곡됐다. 그 해는 슈만과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 일본)의 소설을 읽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내겐 뭐니 뭐니 해도 ‘재미’라는 점이다. 딱 적당한 내러티브로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할까? 우리 곁에서 방금 일어났거나 어린 시절에 경험했을 법한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일단 독자를 끌어들인 후 그 평범한 배경에서 범상치 않은 이야깃거리를 은밀하게 펼쳐내어 결국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