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스티브 잡스를 동경해 전기공학과에 진학했으나, 2022년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SF 소설가로 데뷔했다. 프로필에는 ‘전깃줄이 하늘을 일곱 조각으로 잘라놓은 걸 보다가 문득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나와 있다. 소설을 쓴 계기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들려줄 수 있나. 그리고 소설 중에서도 SF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
A 처음에는 도피성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업 아이디어는 떠올랐는데 그게 숫자로는 좀 엉성할 때,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냈다. 전깃줄 이야기도 처음에는 전자파 차단 액세서리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떠올리게 된 거였다. 그런데 반응이 좋더라. 옆에서 자꾸 박수를 쳐주니까 점점 더 쓰게 됐고······정신을 차려보니까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SF인 이유는······사실 SF를 써야겠다는 확실한 조준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원래 소설을 쓸 때 현실에 달라붙어 있기보다는 여러 상상과 정보, 메타 텍스트가 틈입해 들어오는 스타일이었는데, 그게 SF의 한 갈래가 될 수도 있겠다고 나중에 깨달았다. 과장 좀 보태자면 세상이 먼저 발견해준 셈이다.
Q SF소설을 쓰다보면 많은 과학 이론을 소설 안으로 들여올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와 이론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A 폴 디랙을 좋아한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로 반물질에 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시한 과학자다.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현대물리학에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별로 유명하지는 않다. 논리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태도와 특유의 샤이함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하루는 저녁을 먹다가 누군가 “바람이 많이 부네요”라고 말하자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고는 “정말이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지 않나.
사람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디랙의 바다’라고 하는 멋진 개념도 만들어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이동할 수 있는 낮은 에너지 준위가 있으면 자신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낮은 준위로 떨어진다. 그런데 흔히 알려져 있다시피 세상의 99퍼센트가 텅 빈 진공이라면 세상에 전자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에너지를 방출한 입자는 소멸하기 때문이다. 하여 디랙은 진공이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 세상에 전자가 꽉 차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게 바로 디랙의 바다다. 말하자면 전자를 위한 호밀밭의 파수꾼인 거다. 제법 낭만적이지 않나.
Q 서윤빈 소설에는 우주에서 해물 대신 광물을 캐는 제주 해녀들(〈루나〉),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AI가 디자인에 필요한 업무를 대체해 해고된 주인공(〈페가수스의 차례〉) 등 기술의 진화에 따라 현실에서 밀려난 평범한 사람이 등장한다. 챗GPT에 추억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유행인 지금이다. AI에 대한 두려움과 환호 속에서 SF 소설가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이 궁금하다.
A AI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AI는 메타버스나 암호화폐 같은 기술과는 다르다. 인건비를 절감시키는 기술은 역사를 통틀어 폐기된 적이 없다. 지칠 줄 모르는 패권의 열정으로 빠르게 발전한다.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무슨 일을 하든 사람보다 AI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세계가 될 거다. 노동시장에서 인간의 영역은 최저시급이 AI 도입 비용보다 저렴한 영역에만 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아마 살아남을 것 같긴 하다. 와아!) 그런데 그조차도 특이점이 오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만약 특이점 이후의 기술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소유하게 된다면 그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인간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세상은 그들이 신으로 군림하는 코즈믹호러 같은 곳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아직 우리가 규칙을 정할 수 있을 때 규칙을 빨리, 잘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편소득에 관한 논의라든지 인공지능세에 관한 논의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특이점 기술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기술 발전이 세계적으로 공유되거나 분산되는 체제로 이행해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의 노동 경제 체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노동 박탈’ 시장이 도래할 거다. 적극적인 체제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Q 자신만의 독서 루틴 혹은 습관이 있나. 독서 모임 같은 곳에 참석하는지, 또 독서 중에 자주 하는 딴짓이 있는지, 소설을 쓰지 않을 때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도 궁금하다.
A ADHD가 있어서 독서에 어려움이 많다. 집중도 잘 못 하고, 읽는 속도도 느리고······사놓고 안 읽는 책이 한 트럭이다. 아예 각을 잡고 읽으려고 하면 오히려 못 읽기에 요즘에는 지하철 독서법을 수행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어떻게든 읽고 치워놓으면 마음이 편하다. 언젠가 떠오르면 다시 읽겠지, 하하……. 작년부터는 철학서를 읽는 독서모임도 하나 하고 있는데, 강제로 책을 읽혀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소설 안 쓰는 시간에는 드럼을 치거나 영화를 본다(드럼 대신 카혼을 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체인스모커스의 〈Something Just Like This〉를 칠 수 있게 됐다. 야호.
Q SF소설뿐만이 아니라 청소년소설 《코끼리 무덤 케이크》와 동화 《장난기》까지, 등단한 지 2년 만에 많은 작품을 써왔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소설을 쓸 때와 성인을 대상으로 쓸 때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가.
A 어린이, 청소년 도서의 재미있는 점은 예상 독자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대략 두 살 간격으로 나이 대에 따라 굉장히 촘촘하게 도서 분류가 나뉘어 있다. 나는 각 나이 대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을 상상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나쁜 일에 가장 엉뚱하게 대응하는 인물에 관해 생각한다. 내가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청소년기 내내 우울했다. 비성년이 읽을 만한 이상한 책이 더 많았더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어린이, 청소년 책은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는 것 같다.
Q SF소설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이고, 그 책은 어떤 방식으로 읽어보면 좋을까.
A ‘SF 명예의 전당’ 시리즈를 추천한다. 미국 SF작가협회에서 투표로 선정한 최고의 SF 단편을 모은 선집이다. 네뷸라상이 만들어지기 전인 1964년 이전의 작품들만 있어서 너무 옛날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있는 작품들은 올드한 게 아니라 클래식이다. SF에는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세부 장르가 많다. SF를 안 읽는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 어려워서 손이 안 간다는 말과 허무맹랑해서 읽고 싶지 않다는 말이 병존하는데, 내가 보기엔 서로 다른 갈래의 작품을 읽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에는 각 갈래의 원류가 모여 있으니 아무거나 뽑아서 읽다보면 하나쯤은 자기 취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지금 쓰고 있거나, 다음에 쓸 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A 6월에 Cli-fi 연작 소설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오염된 땅이 점차 물에 잠기면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을 다루는 세계관인데, 디스토피아라기보다는 망해가는 세계의 입구를 맴도는 느낌의 이야기를 모았다. 이전 소설들의 테마가 ‘살아남기’였다면 이번 책은 ‘살아가기’인 것 같다. 형식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해서 오래 좋아할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출판사에서도 마음에 들었는지 책과 연계된 관객참여형 하이테크 전시가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좋은 소식도 있다. 웃기면서도 서늘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서윤빈 연작소설 중 선연재분을 웹진 림에서 미리 감상할 수 있다
Q SF 소설가가 보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좀 막 살아도 살아지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호머 심슨처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 아닐까.
키리냐가라는 이름의 테라포밍된 행성을 배경으로, 키쿠유족의 옛 전통대로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하는 코리바의 이야기다. 아프리카 문화가 주요 소재인 점도 좋지만, 전통과 진보에 관해 여러 생각을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좋다. 과연 우리는 맹목적인 믿음과 환상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걸까?
《노변의 피크닉》(스트루가츠키 형제)
외계인이 방문한 뒤 지구에 나타난 여러 구역에서 외계인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주워다 파는 ‘스토커’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외계인은 지구에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 게 아니다. 그저 우주여행 중에 잠깐 들러서 피크닉을 즐기고 제대로 치우지 않고 떠난 것인데, 그게 지구에는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설정이다. 소설 전반에 깔린 이와 같은 시니컬과 아이러니가 좋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할란 엘리슨)
할란 엘리슨 걸작선 3편이다. 단편 간 편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뉴웨이브 SF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특히 형식적인 측면에서 많은 영감을 준다.
서윤빈_SF 소설가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에서 〈루나〉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 《날개 절제술》, 장편소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유니버설 셰프》, 동화 《장난기》, 청소년 소설 《코끼리 무덤 케이크》가 있다.
중고등학생 때 자퇴를 하지 못한 걸 여태 후회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동경해 전기공학과에 진학했으나, 막상 계산을 싫어해서 종교에 심취하거나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스트릿 댄스를 추는 등 딴짓을 하며 살았다. 애매한 재능이 많아 티끌 모아 소설가가 되었다. 완전 힙합 같은 글을 쓰고자 하며, 유머를 잃지 않기 위해 늘 수련하고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선한 영향력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A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꽤 오래 고민해봤지만 정확히 잘 모르겠다.(^^;) Q 지
다독가들은 책에 영향을 받아 삶의 전환점을 맞은 분을 인터뷰 해서 책의 가치를 꾸준히 알린 더라이브러리의 대표 콘텐츠이다.2025년부터 다독가들의 형식을 특정 분야의 필자를 인터뷰 해서 그 분야의 책을 읽는 N가지 방식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2025년 3월호로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과 에세이집 《이듬해 봄》의 저자로 매번 신선한 시를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이고, 그마저도 ‘통장을 잠시 스쳐갈 뿐.’재테크 용어들은 낯설고, 투자는 원금마저 잃을까 두렵기도 하다. 재테크 멘토 슈엔슈는 투자에 대한 압박감을 내려놓고 소비에 대한 개념부터 바꾸자고 말한다.예금 적금은 재테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남들 따라 잘 모르는 주식을 덜컥 사본 사람,《전업맘, 재테크로 매년 30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