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겨울 중 가장 추운 달은 언제일까? 기상청 통계를 보니 예상대로 1월의 평균기온이 가장 낮다. 지금이 겨울의 한가운데, 가장 추울 때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 매서운 칼바람이 1월의 모습이다. 이즈음 클래식 음악 방송에서 빠지지 않고 선곡되는 음악이 있다면, 바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의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가 아닐까. 스물네 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집인 〈겨울 나그네〉는 제목은 물론이려니와 노랫말이 온통 겨울의 정경을 품고 있으니, 겨울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이자 마땅히 들어야 할 음악처럼 여겨진다.
내가 〈겨울 나그네〉를 처음 만난 것도 한겨울, 코가 얼어붙을 것만 같던 날이었다. 1970년대 중반 우리 집은 경복궁 옆, 통의동의 작은 한옥이었는데, 나는 막내 고모와 한 방을 썼다. 직장에 다니던 고모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던 일은 머리맡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켜는 것이었다. 제 몸보다 큰 배터리를 등에 매단 작은 라디오였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겨울 아침, 두툼한 솜이불을 바짝 당겨 턱까지 덮었지만 웃풍이 센 한옥 방의 찬 공기 때문에 얼굴은 밖에 내놓은 것만 같았다. 이불 속에서 꼼짝도 하기 싫은 날, 아침보다는 새벽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시각에 고모가 잠자리에서 손을 뻗어 켠 라디오에선 누군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음악이 같이 흐른다. 이야기와 음악, 그리고 또 이야기와 음악…….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비몽사몽간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독하고 슬픈 방랑자. 잠결에 듣는 그 낭독의 내용은 초등학생인 내게는 도통 모를 소리였다.
‘쉬려고 몸을 누이니, 내 이제야 얼마나 고단한지 알겠네. 황량한 길을 따라 방랑하는 건 차라리 견딜 만한 일. 두 발이 휴식을 원치 않으니, 서 있기엔 너무 추웠음이네. 등은 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니, 폭풍이 앞으로 나가도록 도왔음이네…….’
날이 밝자 나는 친구, 동생들과 겨울방학의 쾌활함을 즐기다가 다시 저녁을 맞았지만, 새벽녘에 들은 그 꿈같은 분위기가 머릿속을 떠난 건 아니었다. 내가 들은 것이 실제 라디오에서 나온 것인지, 꿈을 꾸었던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차가운 겨울 냄새와 함께 아련히 들려왔던 그 음악과 낭독은 ‘명상’의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영화의 줄거리였을까? 황량한 분위기를 떠도는 어떤 이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또 미지의 세계로 나를 불러들이는 주문 같기도 했다. 매혹적이었다.
퇴근한 고모에게 물었다. 내가 꿈을 꾼 것이냐고. 그날 어스름 새벽에 잠결의 나를 황홀하게 했던 그 음악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였다고 고모는 알려줬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결코 잊히지 않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어쩌면 나는 그 곡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음악,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상황에서 들은 음악이지만 처음 들은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날 방송에서는 아마도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1794~1827, 독일)의 시에 붙인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시 낭송과 함께 들려줬을 것이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가 함께 수록된 빌헬름 뮐러의 시집 《겨울 여행》
시인 뮐러는 독일 데사우(Dessau)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작 서른세 해의 삶을 살고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 또한 서른하나에 운명을 달리했으니, 세 살 터울의 예술가가 둘 다 젊음과 예술을 맘껏 펼치기도 전에 일찍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물론 그들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백세 장수의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예술적 업적을 이루어놓긴 했다. 하지만 신이 그들에게 세상의 시간을 좀 더 주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그들이 미처 내놓지 못하고 간 작품들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맛보고 있지 않을까. 뮐러는 일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슈베르트와는 달리 다채롭고 순탄한 삶을 살았다.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이탈리아 등지로 여행도 다니고, 참전 경험도 있었다. 소박하고 서정적인 민요풍의 시로 20대에 이미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결혼으로 사회적 신분도 상승했고, 교사로 봉직했으며, 궁중 고문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늘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만 서른세 살이 되기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600곡이 넘는 그의 가곡 가운데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를 모두 뮐러의 시에서 가져와 곡을 붙였다. 두 작품이 분위기는 다르지만 둘 다 실연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뮐러의 시에서 음률적인 부분을 발견한 슈베르트는 시와 음악의 완벽한 결합을 확신한 것 같다. 그 확신은 틀리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탄생했다.
〈겨울 나그네〉에는 슈베르트의 내면이 투영되어 있다. 이 작품을 작곡하던 1827년,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의 슈베르트는 극도의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두 번을 빼고는 평생 빈을 떠나는 일 없이 작곡에만 열중했던 수줍고 내성적인 슈베르트는 연주자로 살지도 않았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기는커녕 그것으로 돈을 벌 줄도 몰랐다. 그저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 작품을 발표하고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이 다였다. 열네 형제 중 열두 번째로 태어났으니(그중 다섯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 특별히 가족의 사랑을 받았을 리 없고, 열한 살이 되어서야 왕실 신학교 소속 예배당 합창단원이 되어 정규교육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본격적으로 드러났으나 5년 만에 학교에서 나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교의 보조교사로 일해야 했다.
프란츠 슈베르트
작곡은 꾸준히 했지만 보헤미안적인 기질로 인해 마음이 맞는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제일 행복해하며 돈을 버는 일과는 무관하게 지냈다. 그는 늘 가난했다. 상냥한 성격과 뛰어난 재능으로 친구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지만 작은 키(156센티미터)와 말더듬 때문인지 자존감이 낮았고, 친구에게 이끌려 간 사창가에서 얻은 성병과 무절제한 음주로 건강도 안 좋았다. 가난과 병으로 그는 항상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슈베르트가 어느 날 뮐러의 시에서 자신이 느끼는 삶에 대한 절망과 고통을 발견했고, 이 감정을 고스란히 음표로 표현해 자신의 삶을 노래했다. 그것은 음울하고도 황량한 겨울 풍경, 세상과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한 나그네의 응어리진 마음과 방랑, 쓸쓸함으로서, 다름 아닌 〈겨울 나그네〉였다.
〈겨울 나그네〉 음반 재킷
제목인 독일어 ‘Winterreise’는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겨울 여행’이라고 해야 한다. 독백처럼 이어지는 이 연가곡의 줄거리는, 실연의 아픔을 안은 젊은이가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청년의 마음은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다가 급기야 까마귀, 여인숙, 도깨비불, 백발, 환상의 태양에서 죽음을 떠올리고, 마지막으로 마을 어귀에서 손풍금을 돌리는 노인에게 “함께 가리이까?” 하고 물으며 끝나는 여정이다. 스물네 곡의 노랫말(시)을 읽어보면 ‘겨울 여행’보다는 의역이라고 할 ‘겨울 나그네’가 곡의 분위기와 내용에 더 걸맞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어 ‘reise’에는 단순한 여행(관광)이 아닌 방랑의 의미가 담겨 있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정처 없이 길을 떠난 방랑자로 우리말 ‘나그네’에 해당되니, ‘겨울 나그네’라는 번역이 적절하지 않은가.
한겨울, 어린 초등학생의 감성을 사로잡았던 매혹적인 음악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상념에 잠긴다. 죽을 것같이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며 보석과 같은 선율을 빚어낸 슈베르트를 생각하면, 우리의 힘든 오늘도 가치 있는 내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간이라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창밖의 겨울바람이 매섭지만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음악 감상]
슈베르트 F. Schubert /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 911
노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 Dietrich Fischer-Dieskau(baritone)
피아노: 알프레드 브렌델 Alfred Brendel
임주빈_전 KBS 클래식FM PD, 음악 칼럼니스트
임주빈은 KBS 클래식FM에서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KBS 라디오센터장과 예술의전당 이사를 역임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고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자 힘을 쏟았고, 지금은 강의, 글쓰기 등을 통해서 많은 이와 클래식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작곡가의 생애와 대표작을 수록한 CD 시리즈 “Listen & Lesson – 해설이 있는 클래식‘ 20종을 기획, 제작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이 글귀는 출처를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마치 늘 듣던 유행가 가사처럼 익숙하다. 《데미안》의 한 구절이라는 것을 아는 이라면 그는 아마도 십대에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거쳤을 것이다. 그 통과의례는 다름
마침내 완전한 가을이다. 기후 위기는 해가 갈수록 우리의 여름을 점점 더 견디기 힘들게 한다. 올여름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이 가을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도 아니요, 겨울의 초입도 아닌 가을의 한복판이다. 비로소 안도하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불같이 뜨겁던 여름 햇빛은 어느새 가을의 필터를 끼우고 어루만지듯 나뭇잎을 시나브로 물들
하루가 다르게 해가 짧아지더니 어느새 겨울이 코앞이다. 2025년도 얼마 안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한 해를 되짚어보다가 그만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 인생까지 돌아보게 됐다. 길 위에 떨어져 뒹구는 마른 잎들이 언제 윤기 나는 초록을 지녔었는지 흔적을 찾기 어렵듯, 지금 늘어지고 주름진 피부에서 한때 빛나던 내 젊음을 찾아볼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