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창의력과 서사] 아주 개인적인 알고리즘_One movie after another
서희원_문학비평가
2026-01-2700:01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이야기하는 방식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볼 때마다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판단했지만, 반복해서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의 경우는 달랐다. 이 영화를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반복해서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장면과 요소 들이 영화 곳곳에 산재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의 극우와 극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정서를 짙게 깔고 있는 블랙코미디이다. 블랙코미디답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현실의 미국이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미국이다. 그곳은 풍자와 조롱의 화법에 어울리는, 조금은 과장되어 있고, 조금은 기이한, 하지만 현실의 미국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세계이다. 라틴어와 스페인어로 ‘배신’, ‘불성실’을 뜻하는 퍼피디아(perfidia)와 미국 소비자본주의의 상징적 공간인 비버리 힐스(Beverly Hills)를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청담동 배신자’와 유사한 어감으로 들렸을, 혁명조직 ‘프렌치 75’의 행동대장이자 여주인공 윌라 퍼거슨의 엄마인 퍼피디아 비버리 힐스부터 ‘하나된 인류(Mankind United)’란 트럼프 식의 작명 방식을 사용하는, 하지만 인류의 단합보다는 인종과 국가 간의 차별을 위해 폭력과 고문을 일삼는 불법 이민자 단속 경찰 조직 MKU, 과거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흑인들을 학살한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의 직계임이 분명한 극우 백인 우월주의 단체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등은 이러한 단체의 결성 목적과 구체적 강령에서부터 비롯된 모든 인물들의 행동과 사건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준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식의 이야기가 가능하다. 하나는 흔히 많은 평론가들이나 영화 유튜버들이 하는 작가주의적 방식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전작과 비교하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나 메시지 등을 찾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영화의 스토리와 장면의 디테일을 따라가며 꼼꼼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란 제목이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처럼, 하나의 전투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전투의 연쇄가 가진 의미와 그것의 시대적 확산을 말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스포일러 없이 영화 내용으로 말하자면 ‘프렌치 75’의 멤버였던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와 그녀의 연인이자 폭파 전문가 팻 캘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급진적 테러 행위와 딸 샬린 캘훈(체이스 인피티니)의 출산, 퍼피디아의 배신으로 조직원 대부분이 검거된 16년 전의 이야기와 밥 퍼거슨과 윌라 퍼거슨이라는 위장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팻과 샬린이 다시금 MKU의 추격을 받으면서 진행되는 현재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하나의 영화가 영화 속 다른 영화와 연결될 때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하거나 이 둘의 방식을 하나로 합쳐도 영화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조금은 다른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제목처럼 하나의 전투 다음에 또 다른 전투가 이어지듯이 하나의 영화가 끝난 후 자연스럽게 연상된 또 다른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글은 한 편의 감상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내 개인적 기억을 관통하는 나만의 것이 되었다는 고백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하나는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1966년 작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이다.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 중 국민해방전선(FLN)의 도시 게릴라들이 프랑스 진압군과 벌인 전투를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사실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수많은 혁명 키드들을 양산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반쯤 도주와 육아, 혁명적 과거와 자본주의적 일상에 지쳐 술과 대마초로 매일을 보내는 밥 퍼거슨이 거실에서 보는 영화로 등장한다. 달큰한 환각과 몽롱한 의식,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고양감과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을 동시에 주는 알코올과 향정신성 물질에 취한 밥 퍼거슨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소파에 누운 밥 퍼거슨의 머리 너머 보이는 TV 화면으로 인해 그가 꾸는 꿈이나 환각처럼 보이는 이 영화를 통해 폴 토마스 앤더슨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한때는 나의 것이라고 느꼈으나 이제는 사라졌다는 확신이 드는 치욕적 삶에서 꾸는 일장춘몽을 위한 진통제. 아니면 견딜 수 없지만 견뎌야 하는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자극적 촉매제. 그 무엇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윌라의 학교를 찾아간 밥이 학교 선생님에게 던지는 반자본주의적 외침이나 16년간 지속된 도망자의 고투를 견디게 한 힘 중 하나는 분명 <알제리 전투>의 반복적 시청, 그것을 통해 간신히 간직할 수 있었던 혁명의 푸른 꿈이었을 것이다. 이를 현실에서 도피한 실패한 자들이 알코올과 약물에 기대어 만든 ‘인공낙원’이라고 비난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 전투>는 자본주의적 삶의 일상에서 난파한 밥 퍼거슨이 붙잡고 있는 난파선의 작은 조각과 같은 것이다. 그는 혁명의 바다에서 기나긴 수매와 일상의 파도에 휘말려 난파했지만 결코 익사하지 않았다. 딸 윌라가 MKU의 수장 록조(숀 팬)에게 잡혀간 이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힘겹게 이끌며 딸 윌라에게 달려가는 밥의 모습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윌라를 찾아 사막의 파도처럼 펼쳐진 길을 차를 몰며 달려갈 때 밥의 얼굴은 난파선의 작은 조각을 노처럼 휘저으며 사나운 물결을 헤쳐 딸에게 달려가는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나의 영화가 다른 영화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편의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88년 작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이다. 이 영화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와 스토리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영화이다. 1971년 반전운동을 위해 네이팜탄을 개발하는 군사 연구소를 폭파하며 의도치 않게 경비원을 실명하게 한 아서와 애니 부부는 그 일로 인해 FBI의 수배를 받게 되고 두 아들과 함께 신분을 숨긴 채 도피자의 삶을 살아간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도 16년의 시차를 두었던 것처럼 <허공에의 질주>도 아서와 애니의 테러로부터 16년이 지난 1987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아서와 애니의 큰 아들 대니 역을 연기한 인물이 전설적인 배우 리버 피닉스이다. 지금의 영화팬들에게 리버 피닉스는 대배우로 성장한 호아킨 피닉스의 요절한 형으로 더 유명하겠지만, 이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된 1990년에 리버 피닉스의 위상은 달랐다. 그는 할리우드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청춘의 얼굴이었다. 특히 <허공에의 질주>에서 리버 피닉스는 신분을 위장한 채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이어가는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소년의 세밀한 모습과 가족을 위해 너무 많은 책임을 어린 시절부터 감내해야만 했던 조숙한 청년의 모습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연기한다. 리버 피닉스가 1993년 23살의 나이로 사망한 후 세계적인 청춘의 얼굴을 이어간 배우가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다.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에서 리버 피닉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이미지의 유사함에도 있지만 이러한 시기적 연결에도 있다.
<허공에의 질주> 마지막 장면에서 아서는 잠깐 도피한 장소에서 사랑과 자아를 찾은 아들 대니를 놓고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가서 세상을 바꿔 봐. 네 엄마랑 나는 노력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밥은 윌라에게 퍼피디아의 편지를 전한다. 편지에서 퍼피디아는 딸 윌라에게 자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고 씁쓸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퍼피디아는 딸에에게 우리의 패배가 너의 패배는 아니라고, 너는 너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보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윌라는 오클랜드에서 벌어지는 MKU의 급습 작전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한 무전을 받고 멀리 떨어진 그곳으로 떠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유사한 연결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의 전투가 끝나고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된다. 하나의 영화가 끝났지만 또 다른 영화가 기억의 영화관에서 영사된다. 하나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지만 또 다른 행동이 이어진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연결 또는 연쇄가 아닐까. 반복되며 마치 파도처럼 삶의 해변가에 도달하는 행위의 연속, 그러한 시도가 살아간다는 일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까?
서희원_문학비평가
2009년 문화일보와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얼룩을 가리는 손》(2021) 등이 있다.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10월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난여름 한탄강
미술 작품을 깊고 풍부하게 감상하는 법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쓴 글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생각을 만들고, 내가 쓴 글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문호의 명언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읽기와 쓰기는 생각을 키우고 확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마중물임에는 틀림이 없다.초등학
검도라는 비인기 종목을 21년째 하고 있다. 운동 취미를 묻는 질문에 러닝, 헬스 혹은 요가, 필라테스라 답하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검도해요”라고 말하기란 여전히 쑥스럽다. 대학 동아리로 시작한 검도를 마흔인 지금까지 할 줄이야. 내성적인 나를 신입회원으로 받은 선배들도, 운동이라곤 지각을 피하기 위한 등굣길 뜀박질이 전부였던 나도 몰랐다. 게으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