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창의력과 서사] 아주 개인적인 알고리즘_배달의 민족, 아니 우린 뷰티의 민족이었어
서희원_문학비평가
2026-03-1910:05
우리는 '뷰티의 민족'?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중학생인 딸아이는 가끔 엉뚱한 얘기를, 하지만 생각할 ‘꺼리’가 제법 많은 얘기들을 내게 던지곤 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아이는 얼굴에 여드름 팩을 붙이고 소파에 누워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우리가 무슨 민족인 줄 알아?” 오래된 광고를 응용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빠르게 “배달의 민족”이라 답했지만 그것은 아이가 원하는 정답이 아니었다. “백의의 민족…… 한민족…… 아니면 촛불의 민족.” 모두 아니라는 듯이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빤 이렇게 세상을 몰라. 우린 뷰티의 민족이야”라고 답했다. 아이와 나에겐 하나의 말버릇이 있다. 어떤 엉뚱한 얘기가 나오면 즉시 이렇게 묻는다. “근거는?” 아이는 얼마 전 단군신화에 대해 생각을 했고, 이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했다며 이야기를 펼쳤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예전에 신화는 일종의 상징이라고, 이야기 그 자체를 사실로 읽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서 읽어야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얼마 전 아빠랑 영화를 본 후 단군신화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들었어. 하늘의 신인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환웅은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싶어했잖아. 하늘에 사는 환웅이 왜 인간 세계로 내려오고 싶었겠어. 아마도 환웅은 외아들이 아니었을 거야. 하늘은 쟁쟁한 경쟁자로 가득한 일종의 레드오션인 셈이지. 그러니 블루오션인 인간 세상에서 새로운 창업을 하고 싶었을 거야. 일종의 스타트업이지. 그래서 풍백, 우사, 운사 같은 브레인 동업자들을 데리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만든 거잖아. 신시, City of God, 뭐 일종의 LA(Los Angeles, 천사의 도시) 같은 거지. 어떻게 됐겠어. 유행의 최첨단인 하늘의 것을 가지고 땅에 왔으니 대박이 났겠지. 이제 사람들이 신시로 몰려들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와서 환웅에게 인간이 되고 싶다고 간청한 거지.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이것만 먹고 동굴에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하잖아.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곰은 아름다운 웅녀가 되잖아.
아빠가 곰과 호랑이는 진짜 곰과 호랑이가 아니라, 곰은 곰을 섬기는 부족이고, 호랑이는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을 의미하는 거라고 했잖아. 곰을 섬기는 부족의 여인이 쑥과 마늘을 먹는 식이요법과 자외선을 피하는 자연 피부 케어로 아름다워진 거야. 그래서 백마 탄 왕자님, 아니 하늘에서 구름 타고 내려온 후계자 환웅과 결혼할 수 있었던 거지.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거야. 쑥과 마늘이 가진 항산화와 항균, 미백 효과를. 채식 위주의 식단 조절이 다이어트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놀랍도록 현명한 사람들이야. 한국인들은. 진정한 뷰티의 민족인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라고 반발할 수 없는 묘한 설득력과 이야기의 재미가 있었다.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한 거야?” “아빠랑 얼마 전에 넷플릭스 영화를 봤잖아. 〈얼굴〉이랑 〈파반느〉. 그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나저나 너도 쑥과 마늘을 자주 먹어야겠네.” “무슨 소리야, 그건 아빠가 먹어야지. 흥.”
연상호 감독, 영화 <얼굴>_사진출처: Wow Poing
외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 영화 〈얼굴〉과 〈파반느〉
아이가 안내해준 이야기의 복도를 따라 아이 없이 혼자 걷는 것은 즐거웠다. 아이가 알려준 입구는 두 편의 영화였다. 연상호 감독의 2025년 작 〈얼굴(The Ugly)〉과 이종필 감독의 2026년 작 〈파반느(Pavane)〉가 그것이다. 둘 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기에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두 영화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세상의 멸시를 받고 있는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하나는 스릴러의 방식을, 다른 하나는 로맨스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은 바라보면 돌이 되어버리는 메두사의 얼굴처럼 못생긴 여자의 얼굴을 무섭게 그리고 있고, 〈파반느〉는 여주인공의 얼굴을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해 그 진면목을 알아차리지 못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이야기 전개의 방식처럼 결말도 아주 상이하다. 먼저 〈얼굴〉을 보자.
연상호 감독의 대표작인 〈부산행〉과 〈지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호러와 오컬트의 이야기 방식에 능한 사람이다. 연상호답게 〈얼굴〉은 엄마를 찾는 아들의 이야기를 스릴러의 방식으로 전개하며, 호러의 방식으로 끝을 낸다. 주인공인 임동환(박정민 분, 박정민은 임동환과 젊은 시절의 임영규를 같이 연기한다)은 시각장애인이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전각의 장인이 된 임영규(권해효 분)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명성으로 운영되는 공방을 경영하고 있다. 임영규의 예술적 인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중 동환은 갓난아이였던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사라졌다고 알고 있는 어머니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사인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러한 사연이 흥미로운 소재가 될 것이라고 직감을 한 다큐멘터리 감독 수진은 오래된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가며 모든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던 진실로 동환과 관객들을 이끌어간다.
수진의 취재를 통해 동환과 만나게 된 엄마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엄마인 영희를 못생겼다고 증언한다. 그것도 끔찍하게 못생겨서 마치 괴물 같았다고. 장례식에 참석한 엄마의 가족들은 엄마의 이름이나 기억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며 두려움을 표시한다. 이런 두려움과는 반대로 영화는 조심스럽게 동환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앞을 보지 못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아름다운 전각을 하는 영규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영희의 고운 내면을 보게 되어 결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펼치게 한다. 하지만 영화가 알려주는 진실은 잔혹하다. 사람들은 영규를 조롱하는 의미로 영희를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속였고, 영규는 그런 영희를 얼굴도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이라 여기며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영희가 괴물처럼 못생겼다는 말을 듣게 된 영규는 영희를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던진 조롱과 멸시 그 자체임을, 영희와 살면 평생 그 조롱과 멸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결국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목 졸라 죽이게 된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동환은 아버지에게 “살인자”라며 분노를 표출하지만, 동환 역시 참혹한 진실을 은폐하는 결정을 한다. 결국 영희는 사랑하던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야산에 버려져 백골이 되고, 40년 후 발견되지만 아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진실이 은폐되어 망각 속으로 소멸되는 두 번째 살해를 당하는 것이다.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는 주인공 경록(문상민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경록의 아버지는 무명 배우였지만 우연한 기회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후 엄마와 경록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다. 경록에게 세상은 신의 없고, 덧없으며, 의미 없는 것으로 가득한 곳이다. 춤을 추고 싶었지만 그 꿈을 펼칠 희망조차 가질 수 없던 경록은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요한(변요한 분)과 음울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룡’이라고 놀림을 받는 미정(고아성 분)을 만나게 된다. 배우인 아버지를 닮아 잘생기고 키가 큰 경록은 백화점 여직원들의 호감을 받지만 경록은 그들에게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록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미정을 자신이 자꾸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호감이며 애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경록을 미정은 세상이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던지는 조롱이나 일종의 적의로 생각하며 밀어내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확인하며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끝내지 않는다. 자신에게서 도망친 미정을 찾아 그녀의 고향집으로 간 경록은 미정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재회를 약속하며 떠나지만, 경록이 탄 버스는 눈길에 사고를 내게 되고 결국 경록은 죽게 된다.
이종필 감독, 영화 <파반느>, 사진출처_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The Lamp
괴물의 죽음 그리고 ‘공룡’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얼굴〉에서는 “괴물”이라고 불리던 영희가 남편과 아들에 의해서 두 번의 죽음을 맞고, 〈파반느〉에서는 “공룡”이라고 불리던 미정이 아닌 그녀를 사랑한 경록이 죽음을 맞이한다. 이 각기 다른 두 가지의 죽음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얼굴〉이 차용하고 있는 호러의 문법을 따르자면, 괴물은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고, 평온한 일상은 무너진다. 결국 괴물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그것이 만든 균열은 봉합되고 사회는 안정된다. 왜 엄마를 죽였냐는 동환의 외침에 “나는 내 운명을 개척한 살아 있는 기적이야”라고 답변한 영규의 말은, 모든 진실을 은폐하기로 한 동환의 결정은, 우리가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어떤 잔인한 진실 위에 만들어졌는지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파반느〉의 결말은 더욱 생각할 거리가 많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파반느〉의 원작은 박민규의 2009년 장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다. 이 소설은 두 가지 결말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경록과 미정에 해당하는 소설의 ‘나’와 ‘그녀’가 ‘나’의 버스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독일에서 재회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해피엔딩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죽음 이후 세상에 남은 ‘그녀’와 요한이 결혼해 일본에서 살고 있는 결말이다. 두 가지 중 감독이 선택한 결말은,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경록의 죽음으로 끝나는 버전이다. 이러한 선택의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이 영화를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의 결합보다 한 사람이 죽어야 이야기가 더 로맨틱해진다는 판단, 키 크고 잘생긴 남자와 키 작고 못생긴 여자의 결합이 지속되는 시간보다 금기를 깬 사람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의 여운이 더 길게 지속될 거라는 생각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못한 것은 죽임을 당하고, 모두가 말리는 아름답지 못한 것을 사랑한 사람은 이야기를 끝마치기 위해 죽어야만 한다.
단군신화를 통해 ‘뷰티의 민족’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아이의 상상은 아마도 이러한 과정을 따라가는 산책의 결과였을 것이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모든 종교는, 외모보다는 내면의 성장과 성숙을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외형은 순간적인 가치만을 가질 뿐이고 세월 앞에 쉽게 사그라지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단단하고 영원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외모를 바꾸는 일이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라는 획기적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외모를 바꾸는 것보다 내면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가능한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소파 옆에서 옅은 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에 붙은 팩이 바람에 흐느끼는 밤이다.
서희원_문학비평가
2009년 문화일보와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얼룩을 가리는 손》(2021) 등이 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이야기하는 방식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볼 때마다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판단했지만, 반복해서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의 경우는
이런 심리는 뭘까?누군가 자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경우. 자기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한 때도 막상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헤어진다.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기불안’과 관련해 심리학 기초에서 많이 다루는 사례다. 유기불안은 불우하게 자랐거나 학대받은 경험이 상처로 남아 커서도 늘 남에게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이들의 상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 일본)의 소설을 읽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내겐 뭐니 뭐니 해도 ‘재미’라는 점이다. 딱 적당한 내러티브로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할까? 우리 곁에서 방금 일어났거나 어린 시절에 경험했을 법한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일단 독자를 끌어들인 후 그 평범한 배경에서 범상치 않은 이야깃거리를 은밀하게 펼쳐내어 결국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