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학생들과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대한 수업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화폐와 교환될 수 없는 것들의 명단을 나열했다. 목숨, 건강, 시간, 사랑, 가족, 친구, 반려동물 등등. 누군가는 가진 돈보다 더 큰 금액의 물건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나는 학생들이 말한 목록의 것들을 진짜 돈으로 살 수 없는지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가치나 의미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들이 빠르게 환금되었다. 반려동물이 가장 먼저 사라졌고, 아쉽게도 우정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만 시간과 건강이, 대화의 복식부기를 통해 빠르게 돈으로 환산되었다.
목숨은 두 가지로 분류해서 봐야 하기에 조금 더 긴 논의가 필요했다. 자신의 목숨과 자기를 제외한 것들의 목숨으로. 자기를 제외한 것들의 목숨은 아주 쉽게 돈으로 거래되었다. 우리가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식재료들이 그렇게 거래되고 있으며, 킬러가 등장하는 영화나 신문의 사회면에서 읽을 수 있는 청부살인이 분명히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연루되어 있다면, 그것도 큰돈이 얽혀 있다면 사람은 타인을 너무도 쉽게 죽인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돈으로 사기 어려운 것은 자기의 목숨뿐이었다. 불로불사의 꿈을 꾸었던 진시황의 일화나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하고 영생을 설계했던 파라오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목숨은 돈으로 어느 정도 연장시킬 수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오는 장면 중 하나가 만남을 반대하는 연인의 부모가 헤어짐의 대가로 돈봉투를 내미는 장면일 것이다. 낭만적 주인공들은 돈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나는 그 봉투 안에 얼마가 들었는지가 정말 궁금했다. 학생들에게 물으니 자기들도 항상 그것이 궁금했다고 답했다. 얼마면 사랑을 버리고 돈봉투를 챙겨서 나올 수 있을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백만 원 이하의 금액에서는 모욕감을 토로하며 사랑을 택했다. 단위가 천만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억으로 바뀌면 사랑의 언약은 대부분 깨어졌다. 단위가 10억을 넘어가면 누구도 사랑 따위를 선택하지 않았다. 간혹 한두 명이 남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숭고한 사랑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랑과 돈의 밀당을 통해 거대한 일확천금을 꿈꾸는 허황된 투기꾼으로 밝혀졌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적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릴 수 없는 유일한 영역, 가족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의외로 가족이었다. 그것 역시 적은 돈으로는 구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과 비슷하게 돈의 단위가 커지면 기꺼이 판매를 하겠다는 호방한 공급자들이 등장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액수가 커져도 3분의 1 정도는 절대 이 거래에 응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수치는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간의 핏줄에는 과학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신비의 아우라가 있었다.
렌탈 패밀리:가족을 빌려드립니다 출처: 씨네21
도쿄의 북극곰, 가짜 가족으로 진짜 구원을 연기하다
가족도 렌탈이 되나요?
올해 초 한국에서 개봉했고, 현재는 디즈니플러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는 히카리 감독(본명은 미야자키 미츠요)의 2025년 작 영화이다. 가족이란 가슴 뭉클한 말 앞에 붙은 ‘렌탈’이란 단어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도쿄에서 7년째 살고 있는 필립 밴더플로그(브렌든 프레이저)는 무명 배우이다. 필립은 처음 출연하게 된 치약 광고의 유명세 덕분에 도쿄에서 홀로 사는 것을 선택했지만 도쿄는 그 이상의 기회를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오디션장을 전전하던 필립은 우연한 기회로 인간관계 대행사인 ‘렌탈 패밀리’의 일을 하게 된다. 렌탈 패밀리는 회사 이름처럼 고객에게 부모나 형제, 연인, 친구를 대여해주는 곳이다. 필립은 이러한 사업이 도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타인을 기망하는 행위라 생각해 더 이상의 의뢰를 거절하지만, 사장인 타다 신지(히라 다케히로)는 이것이 배우가 하는 연기와 다르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설득한다. 고심 끝에 회사와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한 필립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는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를 속이기 위해 가짜 결혼을 하는 신랑을, 사립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싱글맘의 아이를 위해서는 아빠를, 우정 없는 삶을 살아온 히키코모리에게는 다정한 친구를, 은퇴한 노배우의 활기를 위해서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를 연기한다.
이 과정에서 필립은 스크린이 아닌 곳에서 펼치는 자신의 연기가 만드는 실제 감동을 경험하게 되고, 그 관계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오디션을 본 영화의 배역마저 거절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더 이상의 스토리를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이러한 줄거리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세심하게 다루며, 그 이상의 반전이나 과도한 사건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더 웨일 출처:영화사 제공
대본 아닌 실제 삶이 스크린에 재현될 때 오는 감동
영화의 스토리가 비교적 단순하고,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서사의 역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 영화가 흥미롭고 감동적인 것은 감독의 세밀한 연출력 덕분이다. 먼저 주인공 필립을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저의 캐스팅과 호연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1998년부터 제작된 〈미이라〉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이혼과 막대한 위자료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사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소모되었고,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체중까지 늘면서 대중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진 배우가 되었다.
브렌든 프레이저를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낸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준 〈더 웨일〉(2022)이었다. 그가 연기한 ‘찰리’는 영화 제목처럼 초고도 비만의 사내이다. 찰리는 결혼과 출산 후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된다. 가정과 사회적 안정을 포기하며 선택한 동성 연인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자 찰리는 삶에 대한 모든 의지를 잃고 폭식을 거듭한 끝에 엄청난 체중의 ‘고래 인간’이 된 것이다. 영화는 카메라 뒤에 숨어 온라인으로 글쓰기 지도를 하는 대학강사 찰리의 모습, 육체와 생명의 비대칭을 견딜 수 없는 그가 딸과의 화해를 위해 사용하는 마지막 삶의 시간을 담아낸다.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지만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대본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겪었던 삶의 비극을 재현하는 것 같은 감동을 관객들에게 자아냈다.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 스틸 출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북극곰이 펭귄 무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 다정함
스크린 밖에서 겪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인생 여정은 〈렌탈 패밀리〉에서도 그가 연기한 필립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지만 특별히 도드라지진 않는다. 〈더 웨일〉의 감독인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이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며 연출했던 것과는 달리, 히카리 감독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과거를 강조하거나 과장하는 어떠한 연출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히카리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큰 키와 거구의 몸집, 오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타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존감 낮은 태도와 얼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경계와 공손의 표정을 필립이란 배역에 세밀하게 녹여낸다. 주변에 폐가 되지 않게 몸을 추스르는 거구의 사내, 일본인보다 더 깍듯하게 사과하는 미국인. 그것이 〈렌탈 패밀리〉에서 브렌든 프레이저가 연기한 필립이다.
영화가 시작하는 첫 장면도 그렇지만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히카리 감독은 거대 도시 도쿄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모습을 삽입한다. 이러한 편집이 알려주는 것은 분명하다. 거구의 필립에게 도쿄는 공간적으로는 광활하지만 장소적으로는 협소한 곳이다. 의자는 작고, 지하철은 타인과 함께 앉기에 비좁다. 그가 살고 있는 원룸은 거대한 몸집의 필립에게는 작은 우리와 같다.
비유하자면, 필립은 남극의 수많은 펭귄 무리와 살고 있는 북극곰과 다르지 않다. 크기도, 언어도, 관계도, 그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생소하고 협소하지만 이곳을 떠난다고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도 같지 않은 고독과 상실감을 브렌든 프레이저는 멋지게 연기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앞에서도 반복적으로 말했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관객들이 예상하고 있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필립이 자신의 아빠를 연기한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된 ‘미아’가 필립과 화해의 악수를 한 후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이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처럼, 북극곰은 이제 펭귄의 무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대여한 가족을 연기하던 필립의 열연이 그의 삶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히카리 감독의 연출에 담긴 세밀함과 존중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연기한 필립의 다정함으로 완성된다. 어떤 가치는 돈으로 계산될 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비로소.
서희원_문학비평가
2009년 문화일보와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얼룩을 가리는 손》(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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