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배우의 이름보다, 방영되는 시간대나 방송사보다, 작가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최고의 영예일 것이다. 과거 김수현 작가가 그랬고, 송지나와 노희경 작가가 그랬으며, 지금은 김은숙과 김은희 작가 같은 소수가 이런 영광을 누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박해영. 〈나의 아저씨〉(2018), 〈나의 해방일지〉(2022) 등을 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에 매료되어 본방을 사수하거나 OTT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이라면, 박해영이라는 이름을 ‘드라마 명예의 전당’에 추대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해영은 서사보다는 인물, 사건보다는 감정에 치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른 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른 이질적이지만 매혹적인 드라마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박해영 작가의 새 드라마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2026)가 시작되었고 아직 종료되지 않았기에,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인물이나 서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하지만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가 왜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을, 그것도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외라고 하면 〈오징어게임〉 같은 드라마만 해당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박해영 드라마에 대한 외국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나의 아저씨〉는 인간의 심리를 완벽히 묘사한 작품이다. 엄청난 각본, 환상적인 연출, 최고의 출연진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했으며,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코로나 기간 〈나의 아저씨〉를 보고 이지은의 팬이 되었고, “그녀가 나오기만 해도 계속 울 정도였다”고 밝혔다.
박해영 드라마에 대한 모든 비평과 기사를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흥미롭게 박해영 드라마의 인기를 분석한 글은 두 개이다. 하나는 구조적 특징을 분석한 장덕균의 글이다.1)그에 따르면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의 구조적 공통점은 이질적인 세계의 충돌에 따른 장르적 즐거움과 서로 다른 것들이 천천히 상호 흡수되는, 일종의 삼투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적 감동이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박동훈(이선균 분) 삼형제나 〈나의 해방일지〉에 등장하는 염미정(김지원 분) 삼남매는 일상 속에 갇혀 흔들리며 외로워하는, 그렇기에 괴로워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익숙하지만 너저분한 일상에 틈입하는 이질적인 인물이, 그것도 범죄나 전락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살인의 기억과 사채의 압박에 짓눌린 이지안(이지은 분)이 그렇고,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폭력의 기억과 알코올이 주는 거짓 망각과 위안에 찌든 구씨(손석구 분)가 그렇다. 이 두 개의 세계는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며 충돌하지만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게 된다. 마치 달과 지구처럼. 아름답게, 하지만 독립적으로.
다른 하나는 황지민 기자의 글이다. 2)그는 “박해영의 드라마가 세대를 가로질러 지지를 얻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의 실제 통증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밝힌 2025년 기준 항우울제 처방 건수가 약 2,440만 건이라는 사실과 우울증 환자의 급격한 증가, 청년층 사망 원인 1위인 자살을 언급하며 ‘우울’을 얘기하고, 800만을 넘어선 1인 가구의 급증을 통해 ‘고립’을 설명한다. 한국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인간 사이의 분열과 그 결과 만들어지는 각자도생의 고립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는 “혼자서는 버티기 어렵지만 쉽게 마음을 열 수도 없는 인물들이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과정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누군가를 살게 하는 근원적인 힘임을 역설한다”고 박해영 드라마의 정서적 특징을 집어낸다.
늙어가는 나라, 늙지 않는 세대
기꺼이 동의할 수 있고, 충분히 좋은 설명이다. 여기에 나는 조금 더 근원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해석을 추가하고 싶다. 조금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읽어두면 한국의 변화된 문화에 대한 좋은 기준점이 될 것이다. 먼저 한국이란 국가의 ‘노화(늙음)’와 구조적 ‘불로(늙지 않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0퍼센트를 넘어서면 그 국가는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한국은 2024년 12월 23일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한국은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늙고 있는 국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사회에서는 늙지 않는 세대가 존재한다. 바로 한국의 제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분류되는 1968~1974년생들이 그렇다. 조금 범위를 넓히자면 1970년대생들이 이 늙지 않는 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1970년대생은 다르다. 그들은 시간의 역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구 비율의 구조적 변화가 만든 세대적 지속과 시간의 둔화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위연령’이라는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중위연령은 한 국가의 전체 인구를 나이순으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나 라이프 스타일, 심지어 선거를 통한 정치적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중위연령이며 그에 해당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숫자로 보면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1970년 18.5세였고 1980년 21.8세이던 한국의 중위연령은 1990년 27세가 되었고, 2000년에는 31.8세, 2010년에는 37.9세, 2020년에는 43.7세, 2026년 현재는 47.3세이다. 1970년대생은 1990년대에 20대에 진입했고, 2000년대에는 30대, 그리고 현재는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중반의 삶을 살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1970년대생에게 중위연령의 변화와 생물학적 나이 먹음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가 알려주는 것은 명확하다. 1970년대생은 사회에 진입한 이후 한국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에서 단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중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TV를 켜면 나오는 연예인들이 있다. 예능의 영역으로 한정하면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이 그들이 될 것이며, 영화나 드라마로 보자면 이병헌, 김혜수, 이정재, 장동건, 정우성, 고현정, 전도연 등이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1970년대 초반 출생이다. 놀랍게도 1986년 데뷔한 김혜수를 제외한다면 이들은 모두 1990년대에 데뷔했고, 청년이나 새로운 세대를 각자의 분야에서 대표하는 연예인이었다. 그때부터 시간이 거의 30년이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도 자신을 중심으로 한 각자의 무대를 가지고 있고, 주요한 서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노력과 연기력이, 재치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완성한 동년배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가 그들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국의 시청자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회적 행운을 운 좋게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자면, 주인공 박동훈의 극중 나이는 45세이고, 형 박상훈은 49세, 동생 박기훈은 42세이다. 〈나의 해방일지〉의 삼남매 중 첫째인 염기정은 30대 후반이고, 염창희는 30대 중반, 막내인 염미정은 30대 초반이며, 구씨는 40대 초반 정도로 설정되어 있다. 이제 막 시작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분)은 20년째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40대 초반이며, 변은아(고윤정 분)는 30대 중반의 영화사 직원이다. 이들은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박해영은 사회적으로는 중장년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을 배치해놓고, 마치 이를 성장과 사랑을 찾아가는 ‘청춘 드라마’처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뭐가 그렇게 다른 것이냐고 묻는다면, 2005년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노처녀라고 불리며 가정과 사회의 홀대를 받던 김삼순(김선아 분)의 극중 나이는 서른 살이었으며, 성공한 프렌치 레스토랑의 사장을 연기한 현진헌(현빈 분)의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박해영 드라마의 인물들은 청춘의 서사를 연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이다.
하지만 나이의 많고 적음은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중위연령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동년배이거나 동생처럼 느껴질 만큼 충분히 젊다. 이들의 성장과 사랑이 깊게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과 시청자가 같은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늙지 않는 도시의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늙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드라마의 인물과 서사가 필요하다. 청춘은 이제 2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청춘’은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 좋았던 한때, 눈부신 시절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푸른 봄을 하염없이 걷고 싶은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박해영 드라마는 늙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청춘’ 드라마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이야기하는 방식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볼 때마다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판단했지만, 반복해서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의 경우는
우리는 '뷰티의 민족'?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중학생인 딸아이는 가끔 엉뚱한 얘기를, 하지만 생각할 ‘꺼리’가 제법 많은 얘기들을 내게 던지곤 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아이는 얼굴에 여드름 팩을 붙이고 소파에 누워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우리가 무슨 민족인 줄 알아?” 오래된 광고를 응용한 농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의 목록, 과연 그럴까사랑도 환금이 되나요?오래전 학생들과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대한 수업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화폐와 교환될 수 없는 것들의 명단을 나열했다. 목숨, 건강, 시간, 사랑, 가족, 친구, 반려동물 등등. 누군가는 가진 돈보다